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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창세기> / 민경구 지음 / 이레서원 펴냄 / 312쪽 / 1만 6500원
<다시 읽는 창세기> / 민경구 지음 / 이레서원 펴냄 / 312쪽 / 1만 6500원

창세기는 전통적으로 인류의 기원과 이스라엘의 시작을 다룬 책으로 인식돼 왔다. 1~11장은 원역사로 우주와 인간과 만물의 시작을 다루는 부분이고, 12~15장은 족장들을 통해 펼쳐지는 이스라엘의 시작과 믿음의 행진을 담고 있다. <다시 읽는 창세기>(이레서원)는 기존 해석을 인정·수용하면서도 창세기와 성경을 더욱 풍성하고 은혜롭게 볼 수 있는 시각과 틀을 제공해 준다. 성경을 사랑하며 연구해 온 저자 민경구 교수의 깊은 마음이 느껴진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경은 저자의 감정·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쓰여지지 않았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거나 천사가 불러 주는 것을 받아 적은 게 아니다. 성경은 저자의 전 인생·감성·지식·은사를 활용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였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성령님께서 감동·감화해 주셔서 저자는 자신의 수준과 실력을 넘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말씀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 것은 저자의 상상력과 탁월한 작문 실력 때문이 아니라, 그 기원이 하나님이고 주 예수님을 통해 성령님에 의해 저자에게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저자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쓴 글은, 우리에게 그 시대 배경을 가르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일차 독자인 당대 독자를 위한 것이다.

창세기 저자는 아브라함 시대 사람도 아니고, 야곱·이삭과 함께 살았던 사람도 아니며, 더욱이 아담을 만나 본 사람도 아니다. 애굽에서의 삶을 경험해 본 적도 없고 광야에서의 행렬도 귀로만 들어 본 역사일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 저자는 아브라함과 족장 시대의 배경을 설명하기보다 일차적으로 자신과 동일한 시대에 사는 이들을 위해 기록한 것이다.

민경구 교수는 성경의 배열 순서에도 하나님의 뜻과 신학이 있다고 믿으며, 히브리 성경의 배열을 따라 창세기를 '출 바벨론' 관점으로 해석한다. 필자는 이런 해석을 본 적이 없었는데 저자의 관점·해석을 따라가 보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성전과 제사장 나라로서 사명을 감당해야 했던 당대 창세기 독자들에게 충분한 신앙적 교훈과 은혜를 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브리 성경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은 고레스의 칙령으로 종결된다.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의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대하 36:22-23)

이후로 히브리 성경의 역사는 이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기독교 성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역대기 이후에도 에스라·느헤미야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펼쳐지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러나 히브리 성경은 순서가 다르게 배열돼, 포로 귀환 역사가 어디서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그때 포로 귀환 공동체는 은혜로운 출 바벨론의 역사를 시작하면서 창세기를 읽고 감동과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물론 필자는 창세기가 '제2의 출애굽'이라 불리는 출 바벨론만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창세기에는 하나님의 구원·교훈·훈계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창세기를 단지 출 바벨론이라는 고정적인 관점으로만 보면, 성경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놓치고 무리하게 적용·해석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히브리 성경 배열의 신학적 의미를 고려한다면, 이 관점은 우리에게 성경을 보는 눈을 넓고 깊게 만들어 줄 것이다.

저자가 해석한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의 스토리를 통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약속의 땅에서 제사장 나라를 세우려는 하나님의 열심을 볼 수 있었다. 실제 당대 창세기 독자들은 선조들의 시대 배경을 아는 것을 넘어 하나님 열심에서 교훈을 얻고 감동했을 것이다. 인류와 민족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창세기를 보며, 민족의 재시작(출 바벨론)을 알리는 말씀에 힘과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이 책을 보면 이외에도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들이 있다. 저자는 원문과 문맥을 근거로 창세기를 차분하고 설득력있게 설명한다. 우리는 고대 근동 배경을 따라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을 '왕을 대신해 수행해야 하는 존재'로 이해했다. 물론 이것도 적절한 해석이지만, 저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또한 대부분 부정적인 인물로 여기는 이스마엘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로 설명하고, 요셉을 유혹한 보디발의 아내를 단지 악녀로 보기보다는 그의 답답했던 속내를 알게 해 주는 등, 흥미롭고 유익한 내용들이 많다. 이 책을 통해 창세기를 새롭게 읽고 그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을 더 풍성히 접하길 기대한다. 성경을 해석·적용하며 살아야 하는 신자들에게 성경이 말하는 소리를 일차적으로 들을 수 있도록 안내해 준 저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방영민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서현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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