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시간 - 40일을 그와 함께> / 김헌 지음 / 북루덴스 펴냄 / 216쪽 / 1만 5000원
<질문의 시간 - 40일을 그와 함께> / 김헌 지음 / 북루덴스 펴냄 / 216쪽 / 1만 5000원

[뉴스앤조이-박요셉 간사]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사랑하는 아들을 버린 신의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는 여러 에피소드 중 가장 역설적이다. 그리스·로마 문학과 신화, 철학을 연구해 온 서양고전학자 김헌 교수(서울대)가 이 이야기의 하이라이트인 '사순절'을 묵상하며 책을 펴냈다. 모태신앙으로 자란 김 교수는 부친의 사망을 계기로 기독교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예수의 삶을 곰곰이 살펴본다. 그렇게 2017년 3월 1일 재의수요일부터 40일간 묵상한 기록을 책에 담았다. 책은 '고행의 이유는', '나는 누구인가', '죽음의 이야기가 아닌' 3개 장으로 구성돼 있다. 서른 살 청년 예수가 금식을 위해 광야로 나가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마지막 장에서야 청년 예수는 그 답을 찾은 듯하다. "다 이루어졌구나"라는 말과 함께. 저자는 인자(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 온 예수가 고행과 고독을 통해 자기 정체성과 사명을 찾는 과정을 묘사하는데, 이때 예수가 던지는 질문은 곧 그에게 투영된 저자 자신의 물음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한 청년이 허허벌판으로 나갔다. 가족과 친구를 떠나 아무도 없는 곳, 오직 자기 자신만이 있는 곳이었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몸뚱이를 움켜쥐고 오직 흙먼지만이 깃발처럼 나부끼는 텅 빈 광야에 홀로 섰다. (중략) 외로움으로 정신을 굶겼고 곡기를 끊어 육신을 비웠다. 살아 있음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삶을 살아야 하는지 묻고 또 묻고 깊이 생각에 잠겼다. 그때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 (1장 "고행의 이유는 - 첫째 날 재의수요일 '광야로 나가다'", 13쪽)

"그는 철저히 오해되고 왜곡되었으며 최후의 순간에 버려졌다. 그러나 그런 그의 모습은 그때만의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그의 이름을 대놓고 찬양하고 그가 고독하게 죽어 가던 형틀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어마어마한 건물을 세워 그를 기리지만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고독할 것만 같다." (3장 "죽음의 이야기가 아닌 - 서른한째 날 수요일 '이 순간도 그는 고독하다'", 156쪽) 

"그를 믿는다는 것. 그의 가르침에 따라 사랑과 정의, 진리의 가치를 지키며 사는 것이 옳다고 믿는 것. 세속적 부와 권력, 명예 같은 것에 대한 욕망을 채우는 것보다 그런 삶이 더 아름답고 가치 있으며 살 만한 삶임을 믿는 것. 설령 그의 가르침에 따르는 삶을 살다가 부당하게 손해를 입고 억울하게 모함을 당하고 핍박과 고통에 시달리더라도 그런 삶과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 (중략) 그의 탄생과 시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 보여 주는 이와 같은 윤리적이고 도전적인 가치와 의미를 믿는 것이 종교적 상징과 존재론을 믿는 것만큼이나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 아닐까?" (3장 "죽음의 이야기가 아닌 - 마흔째 날 토요일 '믿는다는 것'", 205~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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