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간사] 경기도 고양시 관산동에 위치한 고양외국어고등학교(류승화 교장). 미래관 계단과 복도는 수업을 마친 학생들로 시끌벅적했습니다. 4층 빈 교실에 들어가니 학생 4명이 털실 뭉치를 옆에 두고 앉아 있었습니다. 1학년인 이 학생들은 목도리를 뜨고 있었는데요. 코바늘이 아니라 처음 보는 도구가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손바닥만 한 플라스틱 막대에 2줄로 26개 나사가 박혀 있는 물건인데, 뜨개질 입문자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니팅룸'이라고 불립니다.

"목도리 뜨기 어렵지 않아요?" 학생들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아니요. 유튜브 보고 따라하면 돼요." 윤민상 군이 말했습니다. "드라마 보면서 만들면 시간이 금방 가요." "은근히 힐링돼요." 김준수 군과 정윤 군도 각각 말을 보탰습니다. 대화가 멈추자, 학생들은 다시 고개를 숙여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각 나사에 사선으로 실을 얽는 작업을 반복했습니다. 언뜻 보면 이리저리하는 듯한 손놀림인데, 베틀이 옷감을 짜내듯 니팅룸에 얽은 실들은 두툼한 목도리 꼴을 갖춰 냅니다. 평소 교과서와 문제집에 골몰했을 학생들의 두 눈이 반짝였습니다.

복숭아만 한 털실 두 뭉치로 목도리 한 개를 뜹니다. 다 만든 목도리 길이는 130~140cm. 민상 군과 정윤 군 앞에는 제법 완성된 파란색 목도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처음치고 잘 만들었다며 칭찬하자, 옆에 있던 준수 군이 끼어들었습니다. "저도 털실 한 뭉치는 다 끝냈어요. 이것만 뜨고 두 개를 연결하면 완성이에요."

고양외고 학생들은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나면 목도리 뜨기 캠페인에 참여합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고양외고 학생들은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나면 목도리 뜨기 캠페인에 참여합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니팅룸. 초보자도 이 도구만 있으면 쉽게 목도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니팅룸. 초보자도 이 도구만 있으면 쉽게 목도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현재 고양외고에서 목도리를 뜨고 있는 학생은 4명이 전부가 아닙니다. 해마다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가을바람이 제법 매서워질 때가 되면, 고양외고 1~2학년 학생 상당수가 목도리를 뜹니다. 통일부 산하 비영리단체인 사단법인 하나누리(방인성 대표)가 북한 어린이를 돕기 위해 기획한 목도리 뜨기 캠페인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목도리 1개를 만들면 학생들은 봉사 활동 12시간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간 적게는 150명에서 많게는 200명 정도 참여했는데, 올해는 1~2학년 절반이 넘는 300여 명이 지원했습니다.  코로나19로 외부 봉사 활동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고양외고에 '목도리 뜨기'라는 전통(?)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교내 동아리 통일미래연구부를 담당하고 있는 노승진 교사의 역할이 컸다고 합니다. 11월 10일 고양외고에서 만난 노승진 교사가 말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평화통일을 향한 기대와 소망을 심어 줄 수 있을지 고민하다 우연히 하나누리 캠페인을 알게 됐어요. 손수 뜬 목도리를 북한 어린이들에게 보낸다는 말에 아이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해요."

감자 요리 축제, 통일 꿈 솜사탕 등
체험·상상으로 만드는 통일 교육 동아리

통일미래연구부는 2010년 만들어졌습니다. 학생들에게 인기가 아주 높은 동아리는 아니지만, 노승진 교사와 부원들의 적극적인 홍보로 현재 소속 학생이 26명입니다. 이 정도면 많은 축에 속합니다. 이들은 매년 전교생을 대상으로 체험 활동에 기반한 통일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고양외고에서 노승진 교사가 가르치는 과목은 영어입니다. 국사나 사회 교사도 아닌 영어 교사가 통일 교육에 나선 이유가 뭘까요. 10년 전 교회에서 다녀온 통일 비전 트립이 계기였다고 합니다. 통일이나 북한에 대해 별 관심 없던 그는 교우들과 처음으로 북중 접경지대를 방문했는데, 이때 받은 충격이 컸다고 합니다. 

"북한이 멀리 있는 나라가 아니고, 남북 갈등이 우리 사회에 주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요. 기독교 신앙에서 볼 때도 분단이 기독교인에게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깨달았죠. 한반도 평화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저는 교사이고 학교에 있으니까 아이들과 동아리를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어요."

"통일 짱!" 고양외고 동아리 성과 발표회의 통일미래연구부 체험 행사. 캘리 엽서에 평화통일 관련 메시지를 적게 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통일 짱!" 고양외고 동아리 성과 발표회의 통일미래연구부 체험 행사. 캘리 엽서에 평화통일 관련 메시지를 적게 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다트 과녁에 있는 숫자가 문제 번호입니다(사진 위). 정답을 맞히면 '통일 꿈 솜사탕'을 먹을 수 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다트 과녁에 있는 숫자가 문제 번호입니다(사진 위). 정답을 맞히면 '통일 꿈 솜사탕'을 먹을 수 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노승진 교사를 만난 날 고양외고 동아리 성과 발표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통일미래연구부는 다양한 체험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북한 문화와 제도를 소개하고 퀴즈를 내서 정답을 맞히는 학생에게 '통일 꿈 솜사탕'을 만들어 줬습니다. 솜사탕을 나눠 주는 교실 주변은 단내가 진동했고, 퀴즈를 맞히려는 학생들이 복도 빼곡히 줄을 섰습니다.

'평화 캘리그래퍼'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이 캘리 엽서에 메시지를 적는 공간도 마련했습니다. "통일되면 보자♡", "통일하면 냉면부터 먹으러 감ㅋ", "남북통일을 위해 힘냅시다!", "평화통일 마렵다" 등 스스럼없고 장난기 가득한, 아이들의 마음이 게시판에 걸렸습니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북한 주민 주식主食이 감자라는 데서 착안한 'Postival'[감자(Potato)와 축제(Festival)의 합성어]이라는 감자 요리 축제를 열었습니다. 감자튀김, 감자전, 감자 샐러드, 감자 라면, 감자 피자 등을 만들어 팔았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고 합니다. 학생들은 감자 요리 축제에서 생긴 수익금을 북한 아동 지원에 사용했습니다.

이외에도 통일 1년 후 상황을 가정한 모의 국무회의, 해외 통일 비전 트립, DMZ와 도라산역 방문, 북한 이탈 청소년 대안 학교 여명학교 학생들과의 만남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 왔습니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참여한 목도리 뜨기 캠페인도 이러한 체험 활동의 일환입니다.

10년 전, 교회 비전 트립으로 중국 접경 지역을 다녀온 노승환 교사는 그해 통일미래연구부를 만들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10년 전, 교회 비전 트립으로 중국 접경 지역을 다녀온 노승진 교사는 그해 통일미래연구부를 만들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소셜미디어에서 통일은 부정적 이미지
아이들에게는 가볍고 즐거운 활동 중요"

통일미래연구부는 외부 기독교 단체와 함께 평화와 통일을 주제로 콘서트를 열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신정호 총회장) 남북한선교통일위원회 이북5개노회협의회(윤광식 위원장) 목회자들이 미션스쿨인 고양외고 학생들을 위해 예산을 들여 행사를 열고 싶다고 제안이 온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처음에 안보 강연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노승진 교사는 문화적 접근이 학생들에게 더 좋을 것 같다고 역으로 제안했습니다. 목회자들은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평화와 통일을 주제로 활동하는 유니드림콰이어 중창단을 초대하고, 학생들이 주제에 맞는 랩과 댄스를 선보였습니다. 교사와 학생, 목회자 모두가 만족하는 행사였습니다. 올해 12월, 제2회 평화통일 콘서트가 열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먹고 마시고 노는 것만으로 무슨 통일 교육이 가능하겠냐고 의문을 품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최소한 전문 강사의 안보 강연 하나쯤은 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말입니다.

"딱딱한 강연보다 이런 콘셉트가 아이들에게 더 맞아요. 아이들에게는 사실 '통일'이나 '평화', '남북 관계'가 관심 있는 주제가 아니거든요. 이런 활동들을 통해서 통일을 한 번 더 생각하고, 얇고 즐겁게 알아 가는 거죠."

무거운 교육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들이 통일 문제에 진지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미래관 4층에서 목도리를 뜨고 있던 1학년 학생들과 대화를 나눴는데, 저마다 통일과 관련한 입장이 분명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봉사 활동 시간을 채우려고 목도리 뜨기 캠페인에 참여했다는 하은 양은 "원래 통일을 반대했어요. 통일이 되면 우리가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런데 수업을 들으면서 막상 분단 비용도 통일 비용 못지않게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지금은 찬성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준수 군은 우리나라가 북쪽이 막혀 있어 섬처럼 고립되어 있다며, 통일은 경제 발전을 가져올 거라고 했고요.

정윤 군이나 민상 군은 통일에 회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서로 갈등하며 비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건 옳지 못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민상 군은 "갈라진 지 70년밖에 안 됐는데, 이미 너무 다른 사회가 됐잖아요. 지금은 통일보다 관계 개선부터 시급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누가 이런 생각을 17세 청소년들에게 가르쳐 줬을까요. 목도리 뜨기? 감자전? 노승진 교사가 말했습니다.

"학생들이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에요. 아이들은 소셜미디어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 자주 사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에 '통일'이나 '남북 관계', '북한' 등이 주제로 거론되면, 날선 글과 댓글이 오갈 때가 많아요. 이런 내용을 계속 접하면 통일에 안 좋은 선입견을 가질 수 있어요. 통일이 왜 우리에게 중요한지, 우리 사회가 북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긍정적이고 열려 있는 대화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런 기회가 많지 않죠.

 

그렇다고 목도리 뜨기나 체험 활동이 아이들 인식에 엄청난 변화를 줬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졸업 후 진로를 이쪽으로 결정한 친구들이 나온 건 아니거든요.

 

다만 학교에서 즐겁게 먹고 놀고 체험하는 경험이 학생들에게 통일이나 남북 관계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작용할 거라고 기대해요. 실을 뜨고 여러 체험에 참여하면서 한번쯤 북한에 대해 생각해 보는 거죠. 그러면서 학생들에게 올바른 이해와 인식이 형성되는 거라고 봐요."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는 사단법인 하나누리가 주관하는 북한 어린이 지원 캠페인 '목도리, 마음과 마음을 잇다'에 협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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