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단체들의 대북 전단이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선교 단체 순교자의소리도 대형 풍선 등을 동원해 북한에 성경을 보내고 있다. 순교자의소리 유튜브 영상 갈무리
탈북민 단체들의 대북 전단이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선교 단체 순교자의소리도 대형 풍선 등을 동원해 북한에 성경을 보내고 있다. 순교자의소리 유튜브 영상 갈무리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남북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화근은 '대북 전단'이다. 연일 한국 정부를 비난해 온 북측은 6월 9일, 남북 간 모든 통신 연락선을 차단한다고 밝혔다.

탈북민 단체들은 정권 성향과 관계없이 대북 전단, 이른바 '삐라'를 지속적으로 뿌려 왔다. 가장 최근에는 5월 31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난하는 내용이 담긴 전단 등을 대형 풍선에 달아 북으로 날려 보냈다.

노동당 김여정 제1부부장 측은 6월 4일 담화문에서 "남조선에서 공개적으로 반공화국 삐라를 날려 보낸 것이 5월 31일이지만 그전부터 남측의 더러운 오물들이 날아오는 것을 계속 수거하며 피로에 시달려 왔다"면서 "우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적은 역시 적이라는 결론을 더욱 확고히 내렸다"고 전했다. 남측 정부가 대북 전단 살포를 제재하지 않을 시 금강산 관광을 폐지하고, 개성공단을 완전 철거하고, 9·19 남북 군사 합의를 파기하겠다고 언급했다.

남북 관계가 경색되는 와중에도 자유북한연합 등 탈북민 단체들은 대북 전단 살포를 또다시 시도했다. 단체들은 6월 5일 강화 석모리에서 대북 전단을 날리려 했다. 북한의 보복 조치를 우려한 지역 주민들은 통행로를 막아서며 반대했고, 결국 전단을 날리지 못했다.

이번 일과 관련해 여권에서는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도 9일 서울 종로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20주년 기념사업회 특강에서 "대북 전단 살포 금지는 남북이 합의한 것으로, 막지 못한 것은 우리 정부 잘못이다"며 "대북 전단 살포를 분명하게 금지시키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순교자의소리 에릭 폴리 대표는 북한 복음화를 위해 매년 약 4만 권의 신약성경을 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순교자의소리 유튜브 영상 갈무리
순교자의소리 에릭 폴리 대표는 북한 복음화를 위해 매년 약 4만 권의 신약성경을 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순교자의소리 유튜브 영상 갈무리

교계에도 대형 풍선 등을 동원해 북한에 물자를 보내는 선교 단체들이 있다. 순교자의소리, 대북풍선선교단, 와우사랑선교회 등이 대표적이다. 여러 단체 중 가장 체계적이고 활발히 활동하는 곳은 순교자의소리(에릭 폴리 대표)다. 이 단체는 전 세계 50여 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순교자의소리는 2001년 설립됐다. 북한 복음화와 '지하 교회'를 돕기 위한 사역을 해 오고 있다고 소개한다.

탈북민 단체들이 주민들 반대에 부딪힌 날, 순교자의소리도 강화 석모리에서 쌀과 신약성경이 담긴 페트병 250개를 바다에 띄워 북한에 보내려 했다. 지역 주민과 마찰을 빚은 탈북민 단체들과 달리 순교자의소리 측은 조용히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순교자의소리 관계자는 6월 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우리는 주민들이 막으면 그냥 온다. 이 역시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억지로 주민들과 싸워 가면서 물품을 보내지 않는다. 하나님을 섬기는 단체가 싸워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순교자의소리는 북한 당국을 자극하는 '대북 전단'은 보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단체들처럼 정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성경도 북한 당국이 허락하는 '조선어 성경'을 보낸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평양출판사에서 나온 조선어 성경을 보낸다. 북한 헌법에도 종교의자유가 있기 때문에 북한 성경을 보내는 건 특별히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매년 북한에 보내는 성경은 약 4만 권에 달한다고 했다. 대형 풍선을 통해 보낼 때는 GPS도 장착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 단체는 전 세계에서 오는 헌금으로 운영한다. 풍선 하나 날리는 데 10만 원 넘게 든다. 다른 단체처럼 형식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GPS를 넣는 것이다. 재정도 투명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시사저널> 보도에 따르면,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단체들은 미국 국무부 지원을 받고 있다. 순교자의소리도 미국 지원을 받느냐고 묻자, 그는 "미 국무부나 한국 통일부에서 돈을 지원하겠다고 한 적이 많다. 지원을 받으면 우리 단체는 정치적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복음만 전하고자 한다. 나라도 중요하지만 하나님나라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 미국이나 정부 지원을 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 지하 교회 교인 10만 명이 있고 강제수용소에 3만 명이 갇혀 있다면서, 사역은 계속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하나님 허락하에서 모든 게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못 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걸로 생각한다. 북한 복음화를 위해 대북 사역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 성향 시민단체들이 6월 8일 국회 앞에서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진보 성향 시민단체들이 6월 8일 국회 앞에서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순교자의소리 측은 자신들의 행위는 정치와 무관하며 복음을 위한 활동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지역 주민이 피해를 겪지 않는 선에서 활동을 하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남북이 오랫동안 대북 전단 등으로 갈등을 빚어 온 상황에서 기계적으로 물품을 보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대북 전단 살포 및 애기봉 등탑 반대 운동에 앞장서 온 이적 목사(민통선평화교회)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북 전단 살포는 남북 관계를 이간질하려는 심리전과도 같다. 심리전은 전쟁의 일종이다. 남북 관계를 경색하게 만드는 일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법을 제정해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순교자의소리와 같은 단체가 하는 사역에 대해서도 "북한에 성경을 보내는 것이 유의미한 일인지 모르겠다. 북한에는 이미 500여 가정교회가 있고, 자신들이 만든 성경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대북 사역 단체 (사)하나누리 대표 방인성 목사는 북한에 종교의자유가 있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북한이 기독교를 순수하게 바라보지는 않는다고 했다. 체제를 흔들 수 있는 종교로 보기 때문에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대북 전단이든 성경 배포든 모두 우리 남한 관점에서 진행된다. 일방적이고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다. 북쪽을 존중하면서 할 수 있는 선교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단순히 북쪽을 포교의 대상으로 삼고 접근하는 건 부적절하고 무례한 처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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