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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도 24시간 배송 서비스가" 급변하는 북한, '사회적 경제'로 꿈꾸는 남북 경협
하나누리 '서울-평양 사회적 경제 심포지엄'…"시장경제 확산이 만사형통 아냐"
  • 박요셉 기자 (josef@newsnjoy.or.kr)
  • 승인 2019.09.09 18:31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경제 전문가들이 '사회적 경제'를 새로운 남북 경협 모델로 제안했다. 이들은 중앙정부나 대기업 중심의 남북 경협보다 지방정부와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차원에서 진행하는 남북 교류가 접근성과 효율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사단법인 하나누리는 9월 6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 청암홀에서 '서울-평양 사회적 경제 심포지엄'을 열었다. 북한 경제와 국내외 사회적 경제 사례를 연구해 온 학자와 기업인들이 발제·토론에 나섰다. 심포지엄에는 80여 명이 참석했다. 남북 관계를 사회적 경제로 풀어 보려는 신선한 관점이 사람들 관심을 끌었다.

이찬우 교수 "사회적 경제, 남북 모두 익숙
남북 주민이 함께 생활수준 올라야"
'북한 농산물을 남한 식품 매장에서'
협동조합 유통망 공유 제안

북한 경제 전문가 이찬우 교수(일본 테이쿄대)가 기조 강연을 맡았다. 그는 협동조합이 남한보다 북한에서 먼저 출현했기 때문에, 북이 사회적 경제를 다른 분야보다 쉽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1940년대부터 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첫 소비협동조합(소비조합)은 1946년, 생산협동조합은 1947년 발족했다. 비록 당 지도와 관리를 받긴 했지만, 주민들은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자치 경제활동 조직을 꾸릴 수 있었다.

협동조합은 도시와 농촌 사이에 상품을 유통하는 역할을 했다. 이들은 시가와 떨어진 공장 지대나 농촌 벽지에 이동판매대, 상점 등을 운영하며 유통망을 보완했다. 1947년 평양에 북한 최초 백화점을 설립한 곳도 일반 소비조합이다.

이찬우 교수는 남북 경협 모델로 남북 협동조합 간 유통망 공동 이용을 제안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북한 생산협동조합은 지금까지 농장과 공장을 중심으로 건재하지만, 소비조합은 1958년 이후 소멸했다. 이 교수는 소비조합을 이끌던 박헌영 일파가 김일성에 숙청당하면서, 소비조합이 각 도 인민위원회에 흡수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에 존재하는 생산협동조합과 남한 사회적 경제 주체가 협력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한 예로 남북 사회적 경제 주체가 물류망을 함께 운영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북한 생산협동조합이 생산하는 물품을 남한 협동조합 지역 매장에서 판매하거나, 거꾸로 남측 생산품을 북측 매점에 유통하는 방식이다.

이찬우 교수는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남북 주민이 함께 생활수준을 향상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경협을 전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사회적 경제를 낡은 방식으로 보고 사회주의경제 일부로 인식한다. 반면, 남한은 사회적 경제를 자본주의 모순과 폐해를 극복할 하나의 수단으로 여긴다. 이런 인식 격차를 극복한다면, 사회적 경제가 남북 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몰락한 사회주의국가에서 배운 교훈
"자본주의 환상, 소수 재벌 독점 낳아
건전한 시장경제 위해, 지역적·분산적 계획 필요"

김창진 원장(성공회대 사회적경제대학원)은 소련 등 사회주의국가가 체제 전환 후 겪은 부작용을 소개하며, 남북 정책 입안자와 경제학자들이 지금부터 인식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소련은 1920년대부터 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레닌은 죽기 전에 논문 <협동조합에 관하여>를 남겨, 협동조합의 사회적 가치와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레닌 후계자 중 한 사람인 니콜라이 부하린은 레닌의 유지를 받아들여 소련 전역에 협동조합을 확대하려 했다. 하지만 스탈린과의 정쟁에서 패하면서 협동조합 운동이 끝났다. 이후 협동조합은 1980년대 후반 개혁·개방을 주창했던 고르바초프가 협동조합법을 만들며 재평가되지만, 소련이 붕괴하면서 빛을 보지 못했다.

김 원장은 자본주의로 전환한 러시아 사회가 협동조합을 구소련 시대의 낡고 비효율적인 관변 조직으로 인식했다고 설명했다. 대규모 집산 농장과 국영 농장은 대부분 도시 기반 자본가들의 대형 영농 지주회사로 전환됐다. 그러면서 러시아에서는 대형 영농 그룹이 토지를 독점하는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김창진 원장은 북한이 경제개혁을 진행하면서 자본가들 투기판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지역적·분산적 경제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그는 "자본주의국가에서는 소수 재벌의 독과점 문제를 보며 협동조합을 대안으로 보는 주장이 커지는 반면, 당시 러시아는 자본주의를 대안으로 여겼다. 협동조합 형태를 띤 집산 농장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건 경험과 지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러시아는 협동조합 자체가 잘못됐다고 봤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러시아 사례처럼 시장경제를 무조건 확산해야 한다는 인식을 넘어서야 한다. 사회주의국가에 자본주의를 도입하는 것이 만사형통이라는 생각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향후 경제개혁 과정에서 자본가들 투기판으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는, 건전한 시장경제를 목표로 지역적·분산적 경제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학자, 기업인, 시민단체 대표가
제안하는 남북 경협 아이디어
△농촌 마을 자립 △도시 간 협력
△남한 기업과 북한 주민 협업 등

학자들 발표 이후, 대북 지원 사업과 지방자치 및 기업 육성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 나와 구체적인 남북 협력 모델을 제안했다.

조성찬 원장(하나누리 동북아연구원)은 하나누리가 2009년부터 실행한 나선특구 농촌 자립 마을 지원 사업을 소개했다. 이 사업은 본래 농촌 마을에 도서·식량·연탄 등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였다. 지금은 하나누리가 북한 협동 농장에서 논이나 밭을 임차해 직접 농부를 고용하고, 농기구와 시설 확충을 위해 무이자로 자금을 빌려주는 식의 사회적 경제 모델로 발전했다.

조 원장은 "북한 당국과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면서 신뢰를 구축했기 때문에 협력이 가능했다. 북한은 더 이상 일방적 지원을 원하지 않는다. 상호 호혜 관계를 요구한다. 인도적 지원과 사회적 경제는 DNA가 같기 때문에 이를 결합한 사업 모델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마을이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 지금은 농산물과 가공 식품을 판매하며 일정 수익을 내고 있다고 했다. 부분 자립에 성공한 것이다. 하나누리는 이 마을이 고등교육과 고급 의료 등 높은 수준의 경제적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조성찬 원장은 하나누리의 북한 농촌 마을 자립 지원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김용식 국장(전국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은 국내 사회적 기업이 해외 지역개발에 참여했던 사례와 서울시가 마련한 '서울-평양 포괄적 도시 협력 방안'을 소개하며, 북한 적용 가능성을 제안했다.

사회적 기업 '바리의꿈'은 러시아 연해주에 있는 고려인의 자활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기업이다. 고려인들이 생산한 친환경 콩을 국내에 들여와 청국장·두유 등 가공 식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페어트레이드코리아'는 해외 저개발국 여성 노동자를 위해 설립된 사회적 기업이다. 수공예 의류, 생활 소품, 식품 등을 공정한 가격으로 거래해 생산자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한다.

서울시는 2016년 지방정부 최초로 평양과 협력 모델을 개발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우리 마을 집수리 봉사단 △우리 구역 재난 안전 센터 △따릉이 자전거 통합 운영 시스템 등이 있다. 서울시와 국내 사회적 경제 주체가 인프라와 자원을 지원하고 북한 주민이 운영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북한 지역개발과 일자리 창출, 남북 인적 교류 확산이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김 국장은 "남북 협력에 중요한 점은 북한 주민이 스스로 경제활동 조직을 만들어 자립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시민들의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활동이 결국에는 북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현명 대표는 북한에 진출한 여러 스타트업 사례를 소개했다. 그중에는 24시간 무료 배송 서비스나 이커머스 플랫폼도 있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도현명 대표(임팩트스퀘어)는 스타트업과 사회적 기업, 비영리단체 등에 비즈니스 솔루션을 제공하는 소셜벤처엑셀러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해외 파트너들과 대화하다 보면 북한 창업팀이 태국·싱가포르·이스라엘 등에서 아이디어 상담을 받는다는 말을 듣는다. 그중에는 외국 회사와 합작한 사회적 기업 형태도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북한에 새로운 변화가 싹 트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평양에 진출한 다양한 스타트업 사례를 소개했다. 이커머스 플랫폼 '만물상', 자동차 내비게이션 '길동무', 평양시를 중심으로 한 택시 호출 앱 '콜택시'와 24시간 배송 서비스 '앞날' 등이다. 도 대표는 국내 배달 앱과 비슷한 서비스가 북한에도 있다며, 일부 국경 도시에서는 중국 음식까지 주문해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도 대표는 "북한에서 이미 다양한 스타트업 개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면, 지역에서 사회적 경제 조직을 육성하는 방안도 유효할 거라고 본다. 특히 다년간 축적된 기술과 설계 능력이 필요한 의료·모빌리티 분야에서는 남한 전문 기업과 북한 현지 주민이 협업하는 모델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사회가 국내외 요건으로 많은 제약 조건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시장이 저절로 꿈틀거리며 만들어지고 있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비즈니스로 나타난다. 이것은 기회다. 사회적 경제 주체들도 자신들이 어떤 역할을 할지 상상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나누리는 심포지엄 내용을 바탕으로 9월 23일부터 27일까지 '서울-평양 사회적 경제 아카데미'를 연다. 아카데미에서는 발제자들 내용을 심화해서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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