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 처음 갔을 때, 여느 관광객들처럼 독일 통일과 관련한 흔적들을 찾아다녔다. 베를린장벽의 흔적은 공원을 지나 주택가 사이로도 이어졌는데, 인도를 따라 걷다 보니 바닥의 금속 표지들이 눈에 띄었다. 할리우드 스타의 거리를 생각하며 무심코 들여다봤는데, 표지의 내용들은 나의 기대와 전혀 달랐다.

그 표지들은 탈동독을 꿈꾸다 목숨을 잃은 자들의 기록이었다. 동독 사람들은 땅굴을 파고, 벽을 허물고, 서독과 맞닿은 집의 창문을 통해 경계를 넘었다. 지난한 시도 속에서 누군가는 탈출에 성공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체크포인트 찰리, 그 거리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또 다른 표지가 있다. 1962년 페터 페히터(Peter Fechter)가 동독군의 총에 맞아 사망한 자리다. 그는 친구와 함께 베를린장벽을 넘을 계획을 세웠다.

이중의 장벽을 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함께했던 친구 헬무트는 내벽과 외벽 모두를 넘어가는 데 성공했으나, 페터는 벽에 매달린 상태에서 총에 맞았다. 탄환은 그의 골반에 박혔고, 그의 몸은 장벽 아래 '죽음의 지대'(dead strip)라 불리는 공간에 떨어졌다.

죽음의 지대, 동독과 서독 사이의 그 공간에서 그는 도움을 요청했다. 서독군이 그에게 붕대를 던져 주었다는데, 그 붕대는 페터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동독군과 서독군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는 가운데, 수백 명의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페터는 과다 출혈로 숨을 거두었다.

그가 목숨을 잃은 자리에는 원통형 금속 표지가 세워져 있다. 그 자리에는 1944년 태어나 1962년 목숨을 잃은 페터 페히터의 이름과 한 문장이 새겨져 있다.

"…er wollte nur die Freiheit(그는 단지 자유를 원했다)."

나는 베를린에 가게 될 때마다 페터 페히터를 기억하는 그 자리를 찾는다. 어쩌다 시작된 방문이었지만, 이젠 베를린에 도착한 후 내가 꼭 해야만 하는 의식(ritual)이 되었다. 주차된 차들 사이로, 마치 전봇대이거나 소화전인 양 무심히 서 있는 원통형 표지, 그 곁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의 복작거림과 사람들의 생기가 교차하는 그 자리에서, 나는 이곳과 저곳의 사이, 그들과 우리의 차이를 생각한다.

무인 지대(dead strip)에서 죽음을 맞은 페터 페히터.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미지
무인 지대(dead strip)에서 죽음을 맞은 페터 페히터.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미지
페터 페히터를 기억하는 원통형 표지.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미지
페터 페히터를 기억하는 원통형 표지.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미지

얼마 전, 북한 수역에서 북한군의 총에 목숨을 잃은 이를 기억한다. 그가 과연 알려진 것처럼 월북 의사가 있었는지, 아니면 뜻하지 않게 휩쓸려 가고 나니 월북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것인지 나는 그의 마지막 마음을 알지 못하기에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사실이라고 알려진 것들이 그의 진의를 얼마나 담고 있는지 누가 알 수 있을까.

그는 돌아오지 못했고, 그의 몸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북은 부유물만 소각했을 뿐, 그의 몸을 불태우지는 않았다고 했다. 알고 싶지 않았던 그의 사연들이 사실이어서 빚 때문에 월북을 선택한 것이라 한들, 그것이 목숨을 잃을 사유가 돼서는 안 될 일이다. 언론은 그의 죽음을 대서특필했고, 북한의 잔혹함과 야만에 대한 분노와 혐오가 쏟아져 나오던 그때, 나는 어떤 기시감을 느꼈다.

2013년 47세의 한 남성이 몸에 부표를 매고, 임진강 지류 탄포천에 몸을 던졌다. 그는 경계 근무를 서던 군인들에게 수백 발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일본에 난민 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사실과 그의 성이 '남 씨'였다는 게 전부다. 부표 삼아 몸에 묶었던 스티로폼 상자에는 과자 조금과 옷가지가 들어 있었다. 그게 그의 마지막 소지품 전부였다. 당시 이 사건은 뉴스에서 단신으로 처리되었고, 사살한 군인들은 포상을 받았다.

'우리 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던 47세 남 씨의 죽음과, 북한군에 의해 목숨을 잃어야 했던 47세 이 씨의 죽음은 어떻게 같고 또 다른가. 그 북한군의 대응은 '우리 군'의 대응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 건너가고자 한 이들이 죽어야 했을 일인가? 건너가지 못하게 하는 분단의 문제가 해결됐어야 할 일은 아닌가.

세계사는 냉전이 끝났다고 기록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남과 북 사이, '죽음의 지대'는 여전하다. 그 사이 공간에 떨어진 이들에 대한 선택적 기억이 지속되는 현실에서 냉전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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