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1월 3일 이라크 영내에서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를 암살했다. 무인 항공기를 이용해 이라크 영토 안에서 이란 군 지도자를 암살한 것이다. 미국은 "임박한 위협"에 따른 제거 작전이라 했지만, "임박한 위협"이 무엇인지는 밝혀진 바 없으며 트럼프는 이어진 발언에서 "임박한 위협이 무엇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임박한 위협"이라는 레토릭은 기시감을 일으킨다. 2003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있다는 이유로 이라크와 전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조지 부시 행정부는 "대량 살상 무기"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했고, 당시 국방부장관이었던 폴 울포위츠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대량 살상 무기는 미국이 이라크전을 감행한 주 이유가 아니다"고 말했다. 8년여간의 이라크 전쟁이 끝난 후, 조지 부시는 자신의 회고록에 이렇게 기록한다.

"이라크에서 대량 살상 무기가 발견되지 않아 당혹스러웠다."

과연 솔레이마니는 미국이 말하는 것처럼 '임박한 위협을 방지하기 위해 제거'되었는가? 2003년 이라크의 경우든, 2020년 이란의 경우든, 공격 근거가 실재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즉, "임박한 위협"에 의한 제거 작전의 정당성을 주창하는 목소리는 일견 거창하고 비장하게 들리지만, 실상은 불법 범죄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제거'라고 표현된 이 사건의 본질은 살인이며 범죄다. 미국이 '제거'했다는 솔레이마니는 '살해'되었다.

그렇다면 살해된 것은 솔레이마니뿐인가? 솔레이마니가 죽는 순간, 그 자리에 7~8명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이라크군 부사령관으로 알려졌고 다른 이들은 시신이 전소되어 신원을 파악할 수 없다는 소식이 몇몇 언론에 보도되었을 뿐, 그들의 사연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이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이라고 부르는 이 사건은 10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살해한 살인 사건이지만 누구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그들이 누구였고 어떤 삶을 살다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는지 이 세계는 크게 궁금해하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사람들은 이들만이 아니다. 이란의 보복 공격이 있었던 1월 8일, 이란 테헤란공항을 출발한 우크라이나항공 소속 보잉737 여객기가 추락해 탑승자 176명 전원이 사망한 것이다. 이란이 격추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쏟아졌다. 이란 정부는 즉각 부인했으나 당시 항공기 격추 장면이 소셜미디어에 공개되면서, 지난 11일 오판으로 격추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미국의 보복 공격에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던 상황, 군사적 긴장이 최고치인 상황에서 자국민도 탑승했을 여객기를 미국이 보낸 적기로 오인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밝혀지자 이란 시민들은 거리로, 광장으로 몰려나왔다. 2019년 11월 중순 휘발유값 인상을 계기로 일어났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솔레이마니 죽음이라는 사건을 만나며 반미 시위로 전환되는 것 같았는데, 여객기 격추 사실이 밝혀진 이후 이란 시민들은 '미국에게 죽음을'이 아니라 '최고 지도자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우리의 적은 미국이 아니라 여기에 있다"고 다시금 정부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란 시민들의 적은 과연 미국이 맞는가? 미국보다 더 많은 이란인 사상자를 낸 이란 정부는 이란 시민들의 적이 아닌가? 앰네스티 집계에 따르면, 작년 11월부터 시작된 반정부 시위에서 사망한 이란인 숫자는 최소 208명으로 추정된다.

2019년 여름 한국을 찾은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장관은 호르무즈 해협의 원유 수송로 확보와 유조선 안전을 위해 다국적 호위 연합체에 파병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명료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아덴만에 파견된 청해부대의 작전 수역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파병을 갈음하는 것을 검토하는 듯 보인다. 한국 사회 여론은 찬성과 반대가 분분한데, 찬성하는 이들은 원유 수송로 확보, 유조선 승무원 안전보장, 한미 동맹 재확인을 통한 방위비 분담금 및 북미 관계 개선 가능성과 국제사회 일원으로서의 책무 이행 등을 파병 찬성의 주요 근거로 삼고 있다.

하지만 호르무즈 해협 파병은 명분과 실리 면에서 모두 어불성설이다.

첫째, 대한민국 헌법 5조는 대한민국이 국제 평화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할 것과 국군이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 의무를 수행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국군의 의무는 국토방위이며 혹여 해외에 파병해야 할 경우 유일한 명분은 국제 평화 유지에 기여할 때뿐이다. 지금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파병 문제는 유엔이 요청한 평화 유지군도 아니고 아덴만에 청해부대를 파견한 것과 같은 유엔 안보리 결의 사항도 아니다. 동맹을 이유로 한 미국의 파병 요청일 뿐이다. 이에 따를 경우, 한국의 파병은 국제 평화 유지가 아니라 국제 평화에 위협이 된다. 따라서 호르무즈 해협 파병은 헌법에 배치된다.

둘째, 지금 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아덴만 청해부대의 작전 수역 변경안은 헌법 제60조 2항이 명시하고 있는 국군의 해외 파병에 대한 국회 동의권을 부정하는 처사이다. 청해부대는 해적으로부터 민간 선박을 보호하기 위한 안보리 결의로 구성된 다국적군으로 국회 동의를 거쳐 파병되었다. 하지만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한다면, 해적이 아닌 미국과 이란 그리고 주변 국가들과의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방안을 강행할 경우 한국 정부는 헌법을 부정하는 자가당착의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셋째, 파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한미 동맹의 불평등함을 염두에 두더라도 미국 요청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하는 것은 한국과 이란의 우호 협력 관계를 포기하는 것이 된다. 이미 이란은 여러 차례 정치적 중립을 지켜 줄 것을 한국 정부에 당부했으며 파병 시에는 이란과의 단교를 각오해야 할 것임을 대사를 통해 전한 바 있다. 한국의 원유 사용량 70%가 이란에서 온다. 미국과 이란 중 양자택일하는 상황이 아니라 미국도 이란도 놓치지 않는 주도적인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넷째, 원유 수송로의 안전한 확보와 유조선 승무원들 안전을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파병이 아니라 호르무즈 해협 주변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지 않는 것이다. 군사적 긴장이 높아진 상황에서 이란군이 저지른 실수를 이미 목격하지 않았는가. 파병하면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파병을 통해 군사적 긴장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논리는 인과관계의 오류에 빠져 있다.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은 미국과 이란에 "이 세계가 더 이상의 전쟁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고 호소했다. 기술과 결합한 자본은 빈익빈 부익부를 강화하고 사회 불평등, 양극화를 가속화했다. 세계 각국의 청년들은 위험한 노동 현장에 내몰리고 기회 없는 현실에 대한 분노가 사회마다 넘쳐나고 있다. 반년 가까이 잡히지 않은 호주의 산불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동물이 끔찍한 고통 속에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4차 산업혁명을 이루었다는 세계는 두 손 모아 비가 내리길 기도한다. 인류는 인정해야 한다.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기술의 발전은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되어 이 세계를 더 위험하게 만들었고, 이 지구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는 철저하게 실패했다는 사실을.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던 그날, 록히드마틴을 비롯한 무기 회사 관련 주의 주가가 상한가를 쳤다. 이것은 파병에 반대하고자 만들어 낸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조지 부시가 벌인 '테러와의 전쟁'과 이라크 침공으로 가장 큰돈을 벌어들인 회사는 딕 체니 미국 전 부통령이 CEO로 재직했던 회사 '핼리버튼'이었다. 체니는 핼리버튼에서 근무했던 5년간 무려 4400만 달러(한화 약 510억 원)를 벌어들였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적은 누구인가? 적이 누구이기에 한국은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고민하는가? 과연 적은 실재하는가? 누가 적을 필요로 하고 있는가? 지구가 불타고 있는 상황에서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전쟁을 부추기는 존재들은 누구이며, 이미 기후 위기의 전쟁 속에 살고 있는 인류는 어째서 또 다른 전쟁으로 달려가려 하는 것인가?

마태복음 26장 52절은 이렇게 말한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부디 들을 귀 있는 자여, 들을지어다.

문아영 / 평화교육 단체 피스모모(www.peacemomo.org) 대표.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