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모두가 진정 평화롭기 위해 '잘 싸워야' 한다고 믿는 사람. 3월 중순부터 <뉴스앤조이>에서 '평화'를 주제로 글을 연재하기로 한 피스모모 문아영 대표에게서 받은 인상이다.

'평화주의자'라고 하면 싸우지 않는 사람을 떠올리기 쉽다. 웃으면서 논쟁이 벌어지는 상황을 유연하게 피하는 사람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럴 경우 묻혀 버리는 목소리가 생기게 마련이다. 논쟁이나 갈등이 벌어지는 현장에서는 언제나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이때 서로 의견을 조율해 합의를 만들어 가지 않으면, 수면 아래 묻히고 마는 목소리는 대체로 약자의 것이다.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다양한 논의를 통해 결정하는 과정은 결코 짧지 않지만, 이를 통해 소극적·단기적 평화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평화'를 추구할 수 있다. 생명력 있는 '모두'가 평등한 존재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을 꿈꾸는 시민단체 피스모모는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우는 수평적 서로 배움'을 지향하는 평화교육으로 이 일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문아영 대표는 <뉴스앤조이>에 10차례 연재하며, 일상 속 우리가 놓치고 있는 평화 담론을 짚어 볼 계획이다. 일상을 낯설게 보면서, 분단 체제를 포함해 사회를 평화에서 멀어지게 하는 구조적 문제에도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2018년 6월 '진격의교인'으로도 소개했던 문 대표를 2월 19일, 피스모모가 운영하는 은평구 카페 트랜스에서 만났다. 지속 가능한 평화와 연재 관련 이야기를 들었다.

3월 중순부터 <뉴스앤조이>에 '모두를 위한 평화'를 연재하는 피스모모 문아영 대표를 인터뷰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3월 중순부터 <뉴스앤조이>에 '모두를 위한 평화'를 연재하는 피스모모 문아영 대표를 인터뷰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 2020년은 한국전쟁 70주년이다. 특별히 계획하고 있는 활동이 있나.

올해는 한국전쟁 70년이고, 3년 후는 정전협정 70년이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렇게 긴 전쟁을 아직 끝내지 못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답보 상황에 놓인 남북 관계를, 2020년에는 민중의 힘과 목소리로 바꿔 낼 계기를 만들 수 있었으면 한다. 국내 및 국제 평화 단체들이 종전 캠페인을 함께 진행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평화가 다른 시민사회 논의와 분리돼서 평화 논의로만 이야기되는 경향이 있다. 평화 논의와 다른 시민사회 의제를 연결하고 싶다. 기본소득, 기후 위기, 동물권과 평화가 만났을 때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평화를 커먼스(Commons) 관점에서 바라보고 연결하는 작업들을 시작했다. 평화를 어떻게 함께 가꿀 수 있는지, 각자의 몫에 대한 목소리를 키워 보려 한다. 평화운동을 확장해서 '모두를 위한 평화적 실천'을 많이 해 보려 한다.

- 피스모모 비전 선언문은 "가르치지 않는 평화교육을 통해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우는 수평적 서로 배움을 실천합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평화교육',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운다'는 것이 피스모모의 핵심 키워드로 보인다.

한국 교육에서는 일방성·획일성이 폭력으로 작동해 왔다. 질문하지 못하게 하고 한 방향만 보도록 설계돼 있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몫을 높이는 것이 평화에 가까워지는 길이라 생각한다. 자기 결정의 몫이 높아지면,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이를 비폭력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일이 민주주의와 평화의 핵심이다.

피스모모는 교육의 변화로 평화를 만들고자 하는 시민들과 연대하고 공감대를 확장하려 한다. 국가 주도 교육과정으로 국민을 양성하려는 국가의 욕구를 해체하고, 개별적이고 고유한 각각의 존재가 자기 시민성을 실현할 공간을 마련하는 게 평화교육 운동의 중요한 화두다.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운다'고 했을 때, '모두'라는 말에 낭만성이 있다. 그런데 이 말에 담긴 선언적 의미도 있다. 모두가 모두를 평등하게 만나려면,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서로 감당해야 할 책무도 논의해야 한다. 그럴 때 '모두'가 성립된다.

모두의 범주를 사람으로만 한정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착취하는 수많은 생명 있는 존재까지 포함해야 한다. 휴머니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모가 지향하는 모두는 열려 있는 개념이다. 계속 확장될 수도 있고, 누구를 포함할 것인가를 놓고 치열하게 논쟁할 수 있다.

최근 숙명여대에서 트랜스젠더 A가 입학을 포기한 사건을 생각해 보자. 페미니즘이 트랜스젠더 혐오의 근거로 사용됐다.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쓸 수 없는 자가당착적 논리였다. 이 사건으로 사회에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A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굳이 알리지 않고 입학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입학 사실을 알려 사회에서 논의할 수 있도록 '액션'을 취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리액션' 기회를 얻었고, 공론장이 형성됐다. 한국 사회에서 아주 멋진 촉진자 역할을 해 준 A를 통해 서로 배움이 일어나고 있다. 이 기회로 어떤 배움을 만들어 갈지는 남겨진 몫이다.

-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 잠잠한 상태를 '평화'라고들 생각한다. 피스모모가 지향하는 평화는 이와 결이 다른 듯하다.

모모가 이야기하는 평화는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잘 싸우는 것이다. 잘 싸우자는 말은, 폭력적 선택을 하지 않더라도 당면 과제에 있는 이해관계들을 드러내고, 서로 물러날 부분과 취할 부분을 면밀하게 조율하면서 합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밟는 것이다. 이상적인 부분도 있지만, 서로 상처 주지 않으면서 원하는 것을 멋지게 취할 수 있도록 잘 싸우는 방식을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 현실적으로 내 앞에 있는 누군가가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했을 때, 어떻게 '잘' 싸울 수 있을까. 혐오 발언이라는 점을 상기하고 설득하려면 어떤 작업이 필요할까.

발생한 혐오 표현, 발생한 사안에 대해서는 명료한 입장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 발언이 누군가의 존재를 부정하고 상처를 주기에 쓰면 안 된다고 명확히 이야기해야 한다. 존재를 혐오하는 표현을 사용했을 때 "용납할 수 없는 말이다"라고 분명한 메시지를 보여야 맞닥뜨리는 사람이 가부간에 자기 판단을 내리지 않겠나.

상대방이 '내가 뭘 잘못한 거지?'라고 반응할 수도 있고, 논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아닌 것에 분명히 아니라고 답하는 게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는 있지만, 'I-Message'(나-전달법)로 나가면 달라지는 듯하다. "저는 그 말씀이 불편한데요. 어떤 맥락에서 하신 말씀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요." 내 느낌을 중심으로 상대방에게 질문하는 형태로 말을 거는 것이다.

불편하고 논쟁·조율하는 과정이 벌어지겠지만, 그사이 넓혀지고 확장되는 범주가 있지 않을까. 내 입장을 기꺼이 두려움 없이 표현하는 것, 불편해지더라도 표명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자극이 왔을 때, '이야기가 안 통할 테니까 하지 말아야지' 하는 순간, (혐오 표현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 매 순간 자기 입장을 자기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화가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평화만 지향하면, 갈등과 직면해 있는 위기를 어떻게든 모면하고 없는 것처럼 덮을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지금은 평화로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소극적·단기적 평화가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생물 다양성을 포함해 서로 삶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

함께 만들고 싶은 세상이 무엇인지 비전을 공유하고, 그 안에서 누가 고통받고 있다면 그 문제를 들여다보고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을 장기적으로 찾아가는 것. 서로의 삶에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형태로 평화를 지향해야 한다.

- 2020년, 한국 사회가 평화로 나아가는 데 가로막는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국회다. 한국 정치는 대의代議에 실패했다. 국회는 한국 사회 구성원의 견해를 대변하는 존재들로 구성돼야 한다. 누군가는 동물을, 누군가는 성소수자를, 장애인을, 또 누군가는 여러 다양성을 대의하는 공간이어야 하는데, 지금은 정치권력 투쟁의 장, 자기 몫을 갖고 싸우는 장 이상은 되지 않는 듯하다.

혁신을 말해도 모양만 내는 정도다. 주변에 많은 분이 비례대표 후보로 나갔는데, 기탁금 1500만 원이 마련되지 않아 서로 후원 요청하는 상황을 본다. 실질적 정치 변화를 도모하겠다면 이분들이 참여할 장을 열어야 한다. 그런 구조가 짜여 있지 않다.

구조적으로 망가진 정치 생태계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 자기 의사를 대리하게 할지 고민하고, 다양한 사람에게 시선을 줘야 하지 않을까. 사표가 될지언정 필요에 따라 투표해야 한다. 그리고 누구에게 권력을 위임했다면, 그 위임이 정당히 이행되는지 감시하는 일이 책무로 따라와야 한다. 권력이 그렇게 활용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평화 담론을 정치에 이용하는 일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올해도 평화 포럼, 이벤트가 많이 열린다. 수십억 원씩 들여서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불러와 이벤트를 연다. 이것이 한국에 무엇을 남기겠나. 정치인들과 평화상 수상자가 찍은 사진 몇 장, 보도 자료 몇 개, 기사들….

차라리 한국 내에서 평화와 관련한 여러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자금을 투자하든지 시민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기금을 조성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평화 담론에 지치게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모든 걸 정치권력 획득의 도구로 사용하는 세태가 우려스럽다.

문아영 대표는 더 이상 평화를 정치에 이용하기 위해 도구화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문아영 대표는 더 이상 평화를 정치에 이용하기 위해 도구화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 연재에서 어떤 내용을 다룰 것인가.

일상의 여러 순간 속에, 평화에 대해 질문할 순간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빠서 지나칠 수 있는, 일상에서 평화와 연결해 질문할 수 있는 요소를 나름대로 놓치지 않고 붙잡아 지면을 통해 함께 나누면 좋을 듯하다. 분단과 한국전쟁의 문제를 포함해 다양한 평화의 모양을 담고 싶다.

한국 사회의 부족한 평화 논의의 장에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추가할 수 있었으면 한다. 잠시라도 평화 이슈를 생각할 기회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

피스모모가 있는 은평구에 크리킨디센터라는 청소년 센터가 있다. 우화 '크리킨디 이야기'에 나오는 벌새 이름이더라. 이 벌새는 숲에 불이 났을 때 다른 동물들처럼 도망치지 않고 불을 향해 날아간다. 물 한 방울을 입에 물고서. 불을 끄기 위해 물 한 방울을 가져오는 벌새의 몸짓. 글을 쓰거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어쩌면 이와 같지 않을까.

피스모모를 하면서 수많은 벌새와 만난다. 내야 하는 목소리를 계속 내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 자리를 지키고 버티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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