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평화', 제가 2020년 한 해 동안 <뉴스앤조이>에 기고했던 칼럼의 제목입니다. 마감을 앞둘 때마다 이 칼럼 제목에 마음이 한참 머물게 되었습니다. "과연 나의 글이 '모두를 위한 평화'를 담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품고 글의 시작과 끝을 맺게 되었죠. 그렇게 10번의 연재를 약속했고, 이제 이 글을 마지막으로 연재는 마무리됩니다.

'모두를 위한 평화'라는 말은 참 소중하지만, 여전히 어렵게 느껴집니다. 올해 초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하는 상황에서 주민등록증이 없는 이들, 즉 한국 국적이 아닌 사람들이 공적 마스크 구매에서 제외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저의 좋은 친구 한 사람은 홍콩에서 왔는데, 한국에서 일한 지 8년째인 성실한 납세자였습니다. 그 친구는 자기가 공적 마스크를 살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분노했습니다. 나는 어째서 한국 정부가 생각하는 '모두'에 포함되지 못하는 것인가, 나는 왜 자격이 없는가?

자격의 다른 이름은 '계급'입니다. 아니라고 말하려고 해도, 사실 그렇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할 수 없는가. 자의가 아닌 타의로 규정되고 부여된 한계들은 '할 수 없음'의 무력감을 선사합니다. 홍콩 사람이기에 한국에서 공적 마스크를 살 수 없는 상황에서 그녀는 질문했습니다. 자격의 기준이 무엇이냐, 세금이냐? 나는 세금을 다 냈는데, 왜 내 몫은 없느냐?

이 사회는 권리와 자격을 세분화해서 각자 자기 위치를 두고 끊임없이 비교하며 경쟁하도록 구성되었습니다. 계급은 사라지지 않았고, 다른 방식으로 선명해졌지요. 긴 은행 대기 줄을 기다리며 한숨을 폭폭 내쉬고 있을 때, VIP 창구로 에스코트를 받으며 입장하는 분의 뒷모습은 일견 의기양양해 보입니다. 비행기 탑승을 기다릴 때, 일등석은 보이지 않는 통로를 통해 이미 입장했고, 비즈니스석은 일반석보다 앞서 탑승합니다. 우선순위(priority)라는 호명과 함께 탑승하는 그들에게 우선될 자격은 그들이 지불한 비용으로부터 발생합니다.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의 대화는 '세금을 냈으니 내게 마스크를 내놓으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것들조차 '국적'이라는 자격으로 구분하게 될 때, '인권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세일라 벤하비브는 <타자의 권리 - 외국인, 거류민 그리고 시민>(철학과현실사)에서 우리, 국민이라는 개념이 동질적 시민으로 한정되어 이해될 때 시민의 민주적 권리가 왜곡될 수 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시민의 민주적 권리란, 다시 말해 '사람의 권리'입니다. 국적을 떠나, '사람'이기 때문에 응당 누려야 하는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누려야 할 이 권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한길사) 9장에서 '권리들을 가질 권리'에 대해 꽤 긴 지면을 할애합니다. 그녀가 경험했던 홀로코스트는 그녀를 모든 권리와 자격의 공동체 바깥으로 내던졌기 때문입니다. "고향을 떠났더니 고향 없는 사람이 되었고, 국가를 떠났더니 국가 없는 사람이 되었으며, 인권을 한번 박탈당하고 났더니 그때부터는 아무 권리가 없는 사람, 곧 지구의 쓰레기가 되었다"고 한나 아렌트는 말했습니다.

국민국가의 형성은 난민의 형성과 맞닿아 있고, '우리'라는 단일한 공동체의 형성은 '그들'이라는 타자의 형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상황에서 권리와 자격에 대한 질문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얼마 전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사망한 미국의 의사 수전 무어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내가 백인이었다면 이런 대우를 받지 않았을 거다. 백인 의료진들은 내가 마치 마약중독자인 것처럼 느끼게 했다."1)

올봄, 코로나19 백신 임상 실험을 아프리카에서 진행하자던 프랑스 의사들의 망언을 기억하실까요?2) 코로나19를 굳이 '우한 폐렴'이라 부르던 언론과 정치인들을 기억하실까요?3) 코로나19는 권리와 자격에 관련한 수많은 질문을 아프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고충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은 하루빨리 백신과 치료제가 작동하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 어려움은 어서 마무리되어야 할 것이지만, 우리가 마주하게 되었던 질문의 목록들이 백신과 치료제의 효과가 입증됨과 동시에 잊혀질까 두렵습니다.

코로나19는 지구 생태계가 던지는, 인간의 자격과 권리에 대한 커다란 질문이 아닐까요? 인간들아, 너희 종이 지구에서 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코로나19와 미세 먼지로 점철된 일상을 살면서 희뿌연 창밖을 내다보자면, 저는 지구의 호령이 들리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듭니다. 어쩌면 착각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모두를 위한 평화', 이루고 싶지만 참 쉽지 않은 목표입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것은 아니지요. 2020년에 제게 큰 희망을 주었던 한 단체를 소개하면서 저의 마지막 글을 마감할까 합니다. 기독교 배경으로 만들어진 단체 '겨자풀(@mustard_ful)'4)인데요. 노숙하시는 분들은 식단이 제한적이어서 '탄수화물 중독'이신 경우가 많습니다. 겨자풀은 노숙하시는 분들께서 비타민과 무기질 등을 섭취하실 수 있도록 신선한 과일을 공급하는 활동을 합니다. 탄수화물 중독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실이었거든요.

'알아차린 사람들'은 권리와 자격을 묻지 않고 그 필요를 채우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사회 곳곳에 이렇게 고맙고 소중한 알아차림과 움직임들이 존재하지요. 그렇기에 부디, 2020년의 끝자락에서 "알아차림으로부터 시작하는 평화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고 함께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부디, 그 알아차림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크고 작은 환대의 사례들로 이어지기를, 그 환대가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이 지구를 함께 나누어 쓰는 모든 존재에 가닿는 2021년이 되기를 감히 희망해 봅니다. 그래도, 새해니까요.

1)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5365033&code=61131111
2) https://www.bbc.com/korean/news-52196320
3) https://slownews.kr/75130
4) https://www.instagram.com/mustard_ful/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