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비극은 짙은 그림자를 남긴다. 박정희가 주도한 군사 쿠데타의 부작용이 그의 죽음 이후 신군부 등장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무력 진압으로 이어진 것처럼, 독재 체제와 같이 정치 시스템을 붕괴하는 사건은 더욱 깊은 상흔을 남긴다. 그러므로 한 사회가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해야 하며, 만약 그 비극을 피할 수 없었다면 이를 분명하게 단죄하고 지속적으로 비판하여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집단 내 건강한 시스템의 붕괴에 따른 부작용은 사회·정치적 영역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2020년 한국교회는 전광훈 사태를 맞아 건강한 종교 체제의 붕괴를 경험했다. 극우 정치 이데올로기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며 폭주했던 전광훈 유의 부상과 몰락은 교회의 이익집단화를 막을 능력을 상실한 한국교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지금의 일시적 소강상태는 시민사회가 8·15 광화문 집회발 집단감염에 저항한 결과이지 한국교회가 자체적으로 이루어 낸 결과물은 아니다. 한국교회는 극우 기독교 세력이 남긴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명확한 단절을 시도했어야 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했다.

그 실패의 부작용은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 신뢰 상실이라는 본질적 문제부터 전광훈이 차지하던 극우 기독교 세력의 '대변자' 자리를 노리는 선동가들의 부상이라는 현실적 문제까지 다양하다. 교회 내 집단감염이 발생했는데도 이를 서울시 책임으로 돌리며 극우적 발언을 이어 가고 있는 예수비전성결교회 안희환 목사나, 최근 갑자기 등장해 극우적 발언을 쏟아 냈던 유승준, 즉 스티브 유는 이런 현실적 문제의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한국교회가 전광훈 유의 정치 선동을 믿고 싶어 하는 극우 기독교 세력을 명확하게 단죄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선동가들의 등장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한국교회 내 건강한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스티브 유의 최근 망언을 좀 더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외적으로는 전광훈 유와 거리를 두는 척하면서도 심적으로 그 논리에 동의하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대외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둘째, 기독교 근본주의의 인식론적 문제가 한국 사회라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 근본주의 문제를 다룰 때는 지역·정서적 차이로 발생한 괴리감으로 해외 한인 교회들을 종종 제외했다. 하지만 한국교회와 밀접하게 연관된 미국 내 한인 교회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근본주의적 신앙 교육으로 왜곡된 정치 윤리나 편향된 역사의식의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 사실 해외에 나가 있는 한인들과 유학생들의 경우, 일부를 제외하면 본인들이 한국을 떠날 때 지녔던 한국 사회에 대한 인식이 오랜 이민 생활이나 유학 생활에도 크게 변화하지 않는 특성을 보인다. 한국 사회에 대한 구시대적 인식과 왜곡된 근본주의적 신앙 교육은 정치·사회 문제를 이해할 때 심각한 '인지 왜곡'(cognitive distortion)과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문제를 만들고 있다.

인지 왜곡과 확증 편향

미국정신의학협회(APA)는 인지 왜곡을 과도한 일반화와 같이 "잘못되거나 부정확한 생각, 지각 또는 신념"이라고 규정한다.1) 물론 크든 작든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인지 왜곡은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상적인 심리 현상이다. 하지만 일부는 이를 자신의 범죄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그래서 범죄학에서는 인지 왜곡을 위법행위 시 범죄를 지지하는 태도나 인지 과정, 또는 범죄에 대한 변명 및 가치 중립화 등과 연관해 연구하기도 한다. 인지 왜곡은 반사회적 행위를 정당화하여 심각한 가치 전도顚倒 현상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정서·심리적 장애로 인한 정신 병리적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인지 치료'(cognitive therapy) 개념이 대중화한 에런 벡(Aaron T. Beck)과 데이비드 번즈(David D. Burns)는 인지 왜곡의 특징을 △흑백논리 △과잉 일반화 △마술적 사고 △정신적 여과 △긍정 격화 △성급한 결론 △과장과 축소 △정서적 추론 △당위적 진술 △낙인찍기 △개인화 등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인지 왜곡은 확증 편향을 강화한다. 확증 편향이란 기존에 옳다고 믿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증하는 증거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증거를 무시하는 경향성을 뜻한다. 확증 편향은 인지 왜곡과 같이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일반적 심리 현상이다. 모든 인간은 타인의 주장이나 다른 의견은 냉철하게 비판할 줄 알면서도 자기주장에는 관대한 경향을 보인다. 1968년 피터 와슨(Peter C. Wason)은 심리 실험을 통해 지적 성인이라 할지라도 새로운 문제에 대한 과학적 태도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과 지적 성인이 자신을 위해 확증적 증거를 생산해 낼 수 있을 때 눈에 띄게 집착적으로 자신의 설명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2)

종교적 맹신과 결합된 확증 편향은 심각한 사회병리적 문제를 일으킨다. 이러한 종류의 확증 편향은 절대적 가치를 내세우는 종교적 주장이나 지도자에 대한 맹신을 강화한다. 맹신과 결합한 확증 편향은 내적 갈등을 덮어, 일시적으로 기분 전환 체험을 제공할 뿐 아니라 현실 문제를 외면하도록 이끈다. 종교적 신념에 기반한 테러 사건이나 사교 집단의 반사회적이고 비윤리적인 문제가 외부적으로 폭로된 후에도 추종자들이 쉽게 그 집단을 떠나지 못하는 현상은 결국 인지 왜곡으로 발생한 확증 편향이 가진 문제의 심각성을 잘 보여 준다.

스티브 유의 문제

이번 스티브 유의 발언은 종교적 맹신과 인지 왜곡에 따른 확증 편향의 종합판과 같다. 첫째, 스티브 유는 자신의 잘못을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성급하게 정당화한다. 그는 자신의 병역 기피를 개인적 실수로 규정한다. 소위 '유승준 방지법'은 스티브 유와 같은 식의 병역 기피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발의된 것이다. 하지만 스티브 유는 그것이 국회의원 역할이 아니며 오히려 자신이 13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으니 이후 미국에서 시민권을 얻어 정착하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거 그는 한국 사회에서 연예인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군 복무를 마치고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할 것이라는 말을 방송을 통해 여러 번 반복했다. 이는 그의 인기 유지나 이미지에도 많은 영향을 줬다. 한국 사회에서는 병역 기피가 불법이기 때문에, 병역 기피에 대한 불공평한 처벌로 대중의 관심은 연예인의 군 입대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거짓말과 편법에는 눈을 감고 대중이 쉽게 알 수 없는 개인적 사유를 들어 자신을 변명한다. 이러한 자기 정당화 기제는 자신의 잘못을 정치인의 잘못과 비교하면서 자신만 불이익을 당하는 것처럼 언급하는 과정에도 등장한다.

둘째, 스티브 유는 왜곡된 스타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이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스타가 되었고 대중이 좋아해 준 것은 자신의 노력이 정당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그는 대중의 호응을 들먹이며 본인의 거짓말과 불법이 대중에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정상적인 사유를 하는 사람이라면 연예계 스타로서의 인기가 그 스타의 거짓말이나 편법을 무마해 줄 수 없다는 사실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스티브 유는 모순적이게도 자신이 더 이상 영향력 있는 연예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을 좋아해 주는 팬층이 존재하기에 그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입국을 허락해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예계 스타라 해서 일반 시민에게 주어진 의무를 면제받고 권리만을 주장해도 된다는 생각은 왜곡된 특권 의식일 뿐이다.

국적 변경을 통한 병역 기피 등을 방지하는 소위 '유승준 방지법'이 발의되자 유승준 씨는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이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그 과정에서 유 씨는 극우 기독교에서 반복적으로 주장해 온 내용을 언급하면서 한국 정치권을 비판했다. Yoo Seung Jun OFFICIAL 유튜브 채널 갈무리
국적 변경을 통한 병역 기피 등을 방지하는 소위 '유승준 방지법'이 발의되자 유승준 씨는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이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그 과정에서 유 씨는 극우 기독교에서 반복적으로 주장해 온 내용을 언급하면서 한국 정치권을 비판했다. Yoo Seung Jun OFFICIAL 유튜브 채널 갈무리

셋째, 스티브 유는 군사독재 시대의 냉전 논리를 맹신한다. 그는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통치자 권한이라고 정당화한다. 이는 독재자가 헌법 위에 군림하고 그의 의지가 곧 국가 통치의 목적이 되었던 군사독재 시대의 이데올로기이다. 박근혜 탄핵으로 이어진 촛불 혁명을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민주적 통치 방식을 공산주의로 매도하는 것은 독재 체제를 강화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던 박정희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구나 스티브 유는 자신의 발언 마지막 부분에서 21대 총선에 불법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등 지속적으로 극우 기독교 세력의 정치적 발언을 되풀이하면서도 결코 정치적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는 모순적 주장을 늘어놓는다. 민주주의에 대한 올바른 정치의식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정치적 판단을 내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넷째, 스티브 유는 자신의 정치적 지향과 종교적 가치를 동일시한다. 사실 그의 발언이 전광훈 사태와 연관되어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스티브 유는 방역 당국에서 한국교회의 예배를 제한했다는 사실에만 관심을 두고 방역 당국을 반기독교적이라고 몰아간다. 그에게 방역 문제와 관련한 한국교회의 잘못과 오류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의 논리는 과잉 일반화를 통해 형성된 흑백논리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분노를 하나님의 분노와 연결하며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포장한다. 이번 스티브 유의 발언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병역 기피 이후의 자기 선행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스티브 유는 "유 목사"라는 자신의 별명을 그 근거로 제시하면서 병역 기피를 이미 용서받은 것처럼 주장한다. 이런 식의 논리는 한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에게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스티브 유의 자기 정당화와 책임 회피가 성서의 죄책과 용서의 가르침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더구나 그는 반복해서 대한민국을 "선교사에 의해 세워진 나라"라고 강조하며 이정훈을 치켜세우고 있다. 스티브 유가 미국에 있는 동안 신학을 공부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유승준은 조용기 목사가 세운 미국의 베데스다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편집자 주). 그가 한국의 극우 기독교 세력이 내세우는 논리를 적극 대변하는 모습을 보아 왜곡된 신학 교육이 인지 왜곡과 확증 편향을 더욱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이번 스티브 유의 발언은 종교적 기제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잘못을 정당화했던 전광훈 유의 주장과 별 차이가 없다. 자신의 문제를 회개하고 통렬히 반성하기보다 신앙의 이름으로 이를 정당화하려는 이들은 아무리 기독교적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그들은 인지 왜곡과 확증 편향에 사로잡혀 종교 병리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모순된 신념의 추종자들일 뿐이다.

박성철 / 경희대학교 객원교수

1) "Cognitive Distortion," APA Dictionary of Psychology, 2nd ed. (Washington, DC: APA, 2007), 204.
2) Peter. C. Wason, "Reasoning about a Rule," Quarterly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20/3 (1968): 273-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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