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선지자의 임무가 주어집니다.

"유다의 왕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 곧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라(미 1:1)."

광야에서 미가가 활동했다면 왕궁에는 이사야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유다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사 1:1)."

아모스와 미가는 들판에서 예언했기에 예언서 분량이 적습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왕궁에서, 다니엘과 에스겔은 바벨론 왕궁에서 활동했기에 모두 분량이 많습니다.

북왕국이 722/721년에 멸망하면서 북이스라엘 사람들의 이주로 예루살렘 인구가 크게 늘어납니다. 이는 미가로 하여금 남유다의 불안한 미래에 관한 예언 사역을 시작하는 결정적 동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미가는 중앙과 지방의 지배 엘리트들의 죄악을 고발합니다. 히스기야 시대가 상당히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다른 성경 본문(왕하 18-20; 사 36-38)과는 달리 지배 엘리트들의 죄악을 고발합니다.

침상에서 죄를 꾸미는 자들

그들은 침상에서 죄를 꾀하며 악을 꾸밉니다(미 2:1). 시편(시 4:4; 36:4; 63:6)에서처럼 잠자리는 바쁘게 보낸 하루 일과를 멈추고 여호와를 묵상하는 평안의 시간인데, 그들은 이 기회를 불법과 악을 계획하는 데 할애했습니다.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하기는커녕(시 63:6), 아침에 행할 새로운 악을 궁리하고 날이 밝으면 그것을 실행했습니다.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차지하니 그들이 남자와 그의 집과 사람과 그의 산업을 강탈하도다(미 2:2)."

이런 탐욕자에게는 화가 미칠 것입니다. 2장 1절 후반부 "화있을진저"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공동번역은 "망할 것들"로 번역했는데, 어떤 학자들은 '아아, 슬프다'라는 뜻을 지닌 장송곡(funeral lament)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이미 이 관습적인 장송곡 표현은 아모스 이래 예언자들이 사용하는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였습니다(암 5:18; 6:1).

상황이 이렇게 위중한데도, 그들은 도리어 미가 선지자에게 예언을 멈추라고 위협합니다(미 2:6). 그들에게 미가는 눈엣가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가는 예루살렘을 항해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한다고 더욱 맹렬히 비난합니다(미 3:10). 미가가 분노에 차서 예언한 것은 수도 예루살렘의 번영이 지방 마을까지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모든 예언서 중에서 아니 성경 전체에서 가장 읽기 거북한 구절은 이 구절입니다.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미 3:2-3)."

이들에게 백성은 돌봄과 공존 대상이 아니라 약탈과 요릿감에 불과했습니다.

통치자와 우두머리는 뇌물을 착복하려고 재판하고, 제사장은 삯을 노리고 교훈하며, 선지자는 돈을 받으려고 점을 치면서도,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하니 자신들에게는 재앙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합니다(미 3:11).

그러나 여호와 신앙을 기초로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사회는 모든 구성원이 함께 번성할 때에만 희망을 이어 갈 수 있었습니다. 빈부 격차가 큰 국가는 온전히 지탱될 수 없으며, 일반 백성의 삶이 피폐하게 되면 국가의 찬란함도 곧 무너질 것입니다.

미가의 예언자적 통찰력에 따르면, 통치자들의 무자비한 탐욕은 자기 백성들의 수탈을 넘어 국가의 존망에 결정적인 위협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미 3:12)."

여호와가 원하는 것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번제물이나 제사가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이라고 선포합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미 6:6-7)."

사람들은 맏아들의 희생을 인간이 신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예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선지자 미가가 보기에 그것은 착각일 뿐이었습니다. 인신 제사를 암시하는 성서 구절이 몇 군데 있습니다(왕하 3:27; 23:10, 렘 7:31).

기원전 1세기 그리스 역사가 디오도루스(Diodorus Siculus), 서기 1세기 그리스 전기 작가 플루타르코스(Plutarch)와 교회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이 카르타고인들의 어린이 제사를 비난한 것으로 보아, 인신 제사가 후대까지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카르타고 토페트(Tophet)의 항아리 안에서 발견된 불에 탄 뼈들은 페니키아 어린이 희생에 대한 결정적 증거를 제공합니다. 더구나 골학적 증거는 희생자 대부분이 생후 2~3개월 된 아이들이었지만, 5살짜리도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 유골을 보면, 죽음을 야기했을지도 모르는 치명적인 병의 상태가 나타나지 않기에 희생 제물일 가능성을 높습니다.

봉헌자가 자신의 약속된 서원을 지켰다는 글이 새겨진 비문과 함께 납골용 단지, 화장된 흔적, 부장품들이 있었습니다. 시실리, 사르데냐에서도 이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인신 제사는 여호와의 명령도 아니었고, 여호와의 생각도 아니었습니다(렘 7:31; 32:35).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을 건축하였으며 자기들의 아들들과 딸들을 몰렉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느니라. 그들이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하여 유다로 범죄하게 한 것은 내가 명령한 것도 아니요 내 마음에 둔 것도 아니니라(렘 32:35)."

그렇다면 여호와는 무엇을 원하실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진심이 담기지 않은 제물이나 제사는 여호와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가증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정의·인자·겸손을 원합니다. 인격과 도덕이 없는 제사는 하나님의 분노만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미가, '여호와와 같은 분이 누구인가'

이제 미가는 자신이 하나님께 바라는 것을 기도합니다.

"원하건대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주하는 주의 기업의 양 떼를 먹이시되 그들을 옛날 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옵소서(미 7:14)."

과연 미가의 기도는 응답될까요? '미가'라는 이름의 뜻은 '주와 같은 분이 누구인가'입니다. 미가는 도래할 희망으로 예언을 마무리합니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미 7:18)."

여호와의 인애와 성실은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미 7:20). 이 문제의 해결은 오직 미가에게서 '예언을 들은 자들'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팟빵 '에르고니아 라디오' 채널 바로 가기: http://www.podbbang.com/ch/12827
*유튜브 채널 '에르고니아' 바로 가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Pw8sxRrpaJba1RXI97GwSA
박태순 / 새들녘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신학 아카데미 에르고니아(http://ergonia.org)에서 신학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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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Donald E. Gowan, 『구약 예언서 신학』, 차준희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3) Phillp J. King, Lawerence E. Stager, 『고대 이스라엘 문화』, (서울: CLC, 2016)
4) Martin A. Cohen, "The Prophets as Revolutionaries: A Sociopolitical Analysis," Biblical Archaeology Review 5:3, May/June 1979
5) Lawrence E. Stager, Joseph A. Greene, "Were living Children Sacrificed to the Gods? Yes," Archaeology Odyssey 3:6, November/December 2000
6) 차준희, "거짓 평화와 참 평화," 『구약논단』, 24집 (2018): 156-178
7) 구자용, "12소예언서의 이방 민족들," 『구약논단』, 25집 (2019): 5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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