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리아 멸망

성서에서 아시리아(개역개정 '앗수르')는 창세기에 처음 나옵니다.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창 10:11-12)."

함의 후손인 니므롯(Nimrod)은 '용감한 사냥꾼'으로,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바벨론)과 에렉(Erech), 악갓(아카드), 갈레(Calneh)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아시리아로 가서 니느웨와 리호보딜(Rehobothir), 갈라(Calah, 오늘날의 님루드), 레센(Resen)을 건설했습니다.

앗수르바니팔 2세(기원전 883~기원전 859)는 신-아시리아 제국의 창시자로 생각되며, 갈라를 요새·궁전·사원 등으로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이스라엘의 예후왕이 조공을 바치는 모습이 새겨진 '검은 방첨탑'(Black Obelisk)이 바로 갈라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아시리아 4대 도시는 아슈르, 니느웨, 갈라(Calah), 두르-샤루킨입니다. 자신들의 최고신 이름을 본 딴 아슈르는 그 땅과 민족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사르곤의 아들 산헤립(기원전 704~기원전 681)은 구약성서에서 가장 유명한 아시리아 왕입니다. 북이스라엘을 공격한 산헤립은 페니키아와 블레셋도 정복했습니다. 산헤립의 강력한 군대가 페니키아에 도착하자 그들은 항복하고 맙니다.

"나의 주 아슈르의 무기에 대한 두려움이 요새화된 그의 강력한 성읍들로서 그의 요새들을 위하여 식량과 물의 공급을 가능케 하던 큰 시돈 성읍과 작은 시돈 성읍, 벧-자이트 성읍, 차리프투(사렙다) 성읍, 마칼리아 성읍, 우수 성읍, 악십 성읍, 악고 성읍 등을 압도하였다. 그들은 나의 발 앞에 굴복하였다." (아시리아의 라쌈 실린더)

산헤립은 또한 이스라엘과 오랫동안 적대 관계였던 블레셋을 정복하고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아스글론의 왕 치드카는 나의 멍에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그의 집의 신들과 그 자신과 그의 아내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뜰들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집의 자손을 추방하였으며, 그를 앗수르로 보냈다. 나는 이전의 왕이었던 로킵티의 아들 샤루-루-다리에게 아스글론 사람들을 다스리게 하였으며 그에게 나의 통치권에 복종함을 나타내는 조공물과 예물들을 바치게 하였다. 그는 나의 멍에를 메었다." (라쌈 실린더)

그는 예루살렘을 포위해서 유다 왕국을 벼랑으로 몰고 간 왕이기도 합니다(왕하 18~20; 대하 29~32). 산헤립은 히스기야왕을 '새장 속의 새처럼' 가두었으나, 하나님 도움으로 아시리아 군대의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파죽지세로 위세를 떨치던 산헤립은 자기 아들들의 반란에 살해되고 맙니다. 생전에 에살핫돈에게 왕위를 넘겨 주기로 했으나, 이를 시기하던 아들들 중 일부에게 살해당합니다. 작은아들 에살핫돈은 그 공모자를 쫓아내고 왕권을 잡습니다.

에살핫돈은 기원전 627년 순조로운 왕권 이양을 위해 아들 아슈르바니팔(스 4:10에서 "존귀한 오스납발")을 아시리아 왕으로, 다른 아들 샤마쉬-슘-우킨은 바벨론 왕으로 임명합니다. 하지만 에살핫돈이 죽자 샤마쉬-슘-우킨은 형의 왕위까지 넘보고 전쟁을 일으켰고 4년의 내전 끝에 샤마쉬-슘-우킨은 패배하고 맙니다.

아슈르바니팔이 죽고 그의 아들 아슈르-에틸-일라니가 잠깐 다스리고 그의 형제 신-샤르-이쉬쿤이 왕위에 올랐으나, 이미 신-바벨론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아시리아는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아시리아 마지막 수도였던 니느웨는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오랜 도시들 가운데 하나였지만, 산헤립과 그의 후계자들 통치 때에만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기원전 616년에 시작된 공격으로 기원전 612년 3월 니느웨가 함락되면서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아시리아 제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최근 연구들에서는 바벨론의 군사 공격뿐만 아니라 극심한 가뭄과 제국으로의 강제 정착 때문에 인구 폭발을 겪으면서 아시리아가 멸망했으리라고 추정합니다.

요나와 나훔

아밋대의 아들 요나(1:1)는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통치 기간(기원전 783~기원전 743년, 왕하 14:25) 중에 살았습니다. 하지만 요나서 실제 저자와 저술 시기에 대해서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습니다. 나훔이 철저한 니느웨 멸망을 예언한 것과 달리, 요나는 니느웨를 향한 여호와의 구원을 선포합니다.

1장과 3장, 2장과 4장 사이의 병행하는 내용을 통해 일련의 반어법적 대조 형식이 독특한 요나서는 문학·신학적으로 매우 뛰어난 작품입니다. 아시리아는 비록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지만, 창조 세계에 대한 여호와의 선하심은 요나가 느끼는 니느웨를 향한 분노와 불평을 초월합니다.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니느웨를 향한 요나의 분노는 조국에 대한 사랑을, 니느웨를 향한 여호와의 자비는 전체 피조물에 대한 사랑을 표현합니다(4:1-11).

아시리아 멸망을 예언한 선지자는 나훔입니다. 그의 고향은 엘고스(나 1:1)로, 정확히 어느 지역인지 모릅니다. 나훔서는 질투하며 보복하는 여호와(나 1:2)가 아시리아 수도인 니느웨를 멸망시키는 것을 다룬 책입니다. 기원전 663년 이집트 수도 테베(나 3:8 노아몬)의 함락과 기원전 612년 니느웨의 멸망 사이 기간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아시리아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주변 국가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세력을 과시했지만, 여호와는 남유다를 지켜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비록 강하고 많을지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그가 없어지리라.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혔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히지 아니할 것이라(나 1:12)."

나일강이 테베를 아시리아 손에서 보호하지 못하고 무너졌듯이, 티그리스강도 니느웨를 지켜 주지 못할 것이며 위세를 떨쳤던 아시리아 군대와 신들도 니느웨를 지켜 줄 수 없을 것입니다(3:11-15).

이라크 모술에서 북동쪽으로 48km 떨어진 니느웨 평원에 알코시(al-Qosh)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이곳이 나훔의 고향이라고 믿고 있으며, 여기에는 나훔이 묻힌 것으로 알려진 무덤이 있습니다. 이 무덤은 서기 1173년에 만들어져서 실제 나훔의 무덤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기독교인과 무슬림에게도 중요한 순례지입니다.

바벨론의 발흥

바벨론을 시날(Shinar)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창 10:10, 11:2, 14:1,사 11:11, 슥 5:11, 단1:2).

바벨론은 구 바벨론(Old Babylonian)-중기 바벨론(Middle Babylonian)-초기 신 바벨론(Early Neo Babylonian)-신 바벨론(New Babylonian)으로 나뉩니다. 창세기는 구 바벨론과 연결되며, 열왕기서·다니엘서·에스겔서 등은 신 바벨론과 연결됩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남부 메소포타미아에 있던 바벨론은 아시리아에게 골치 아픈 존재였습니다. 바벨론은 기원전 689년 산헤립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에살핫돈이 재건하여 사람들이 다시 살게 했습니다. 기원전 652년 앗수르바니팔은 심각한 폭동에 직면하여 2년간의 포위 공격 끝에 기원전 648년 바벨론을 점령합니다. 기원전 640년에는 수사(또는 수산, Shushan)를 정복해 이 엘람족 국가를 멸망시켰으며 팔레스타인에서도 자신의 권세를 재천명했습니다.

끊임없는 전쟁 중에 바벨론은 기원전 648년 다시 파괴됩니다. 하지만 아시리아 앗수르바니팔의 바벨론 공격은 이미 힘에 부쳤으며 도리어 아시리아 제국의 취약성이 명백히 드러납니다. 바벨론은 빠르게 경제를 회복하고 아시리아의 기세에 눌려 있던 여러 민족의 저항운동이 결집하는 촉매제가 되어 버립니다. 이렇게 바벨론은 1000년 전 함무라비왕의 영광을 되찾을 준비를 합니다.

앗수르바니팔이 죽은 뒤, 바벨론과 고대 근동의 미래는 사실 기원전 626년 바벨론 왕이라 자칭한 나보폴라살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나보폴라살이 기원전 626년 11월에 자기를 복속시키기 위하여 파견된 아시리아군을 격퇴한 뒤 바벨론 성과 남부 지역 전체를 장악합니다. 나보폴라살은 기원전 612년 아시리아 수도 니느웨를 공격하는데, 니느웨가 함락될 때 신-샤르-이쉬쿤은 불길 속에서 죽었고, 패잔병들은 서쪽으로 이동했습니다.

"10년째 되던 해: 나보폴라살은 아야르 월에 아카드 땅의 군대를 소집하였다. 그는 유프라테스 강변을 따라서 행군하였다. 수쿠 땅과 킨다누 땅은 그에게 맞서 싸우지 않았다. 도리어 그들은 그의 앞에 조공을 바쳤다. 아브 월에 앗수르 땅의 군대는 가블리니 성읍에 모였다. 나보폴라살은 그들을 향하여 올라갔다. 아브 월 12일에 그는 앗수르 땅의 군대와 교전하였다. 앗수르 땅의 군대는 그의 앞에서 퇴각하였다. 그는 앗수르 땅에게 심각한 패배를 안겨주었다." (바벨론 연대기)

하란에서 왕족이었던 앗수르우발릿(기원전 612~기원전 609)이 아시리아 마지막 왕으로 즉위합니다.

기원전 609년 이집트의 파라오 느고 2세와 앗수르우발릿은 하란에 있는 바벨론을 역습하지만 패배했고, 이 패배로 아시리아 제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제2차 하란 전투를 기점으로 이제 시리아-팔레스타인 및 동부 지중해 연안에 대한 패권을 놓고 신흥 강국인 신-바벨론과 이집트가 다투게 됩니다.

*팟빵 '에르고니아 라디오' 채널 바로 가기: http://www.podbbang.com/ch/12827
*유튜브 채널 '에르고니아' 바로 가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Pw8sxRrpaJba1RXI97GwSA
박태순 / 새들녘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신학 아카데미 에르고니아(http://ergonia.org)에서 신학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참고 문헌

1) Anson F. Rainey and R. Steven Notley, 『성경 역사, 지리학, 고고학 아틀라스』, 강성열 역 (서울: 이레서원, 2010)
2) Israel Finkelstein, Neil Asher Silberman, 『성경: 고고학인가 전설인가』, 오성환 역 (서울: 까치, 2002)
3) Alfred J. Hoerth et al., 『고대 근동 문화』, 신득일, 김백석 역 (서울: CLC, 2012)
4) Marc Van De Mieroop, 『고대 근동 역사』, 김구원 역 (서울: CLC, 2010)
5) 정중호, "앗수르와 이집트 관계에 관한 역사적 연구." 『구약논단』, 8집 (1998): 189-213.
6) Megan Sauter, "Tomb of the Biblical Prophet Nahum—Safe for Now," Bible and archaeology news, July 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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