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역사에서 연대를 확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비교적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있는 열왕기서와 역대기를 빼면, 창세기부터 사무엘서까지는 연대를 추정할 뿐입니다.

연대를 확정하기 위해 인용하는 대표 구절 가운데 하나는 열왕기상 6장 1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 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왕상 6:1)."

이 '480년'을 기준으로 출애굽과 다윗, 솔로몬의 연대를 확정합니다. 그렇다 해도 난제는 많습니다.

열왕기서 연대도 때때로 명확하지 않습니다. 연대 확정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열왕기서에 나오는 연대기적 수치들이 창세기부터 열왕기하까지 전반적 연대기 구조의 일부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숫자'들은 도식적 역사관을 전제합니다(광야 생활 40년, 사사들의 40년 통치, 다윗과 솔로몬의 40년 통치 등).

사본들과 판본들을 서로 다르게 읽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히브리 사본과 헬라어 사본이 심하게 다릅니다. 하나의 사본 전승이나 판본에서도 내적 불일치가 있습니다. 열왕기 및 역대기의 표준 히브리어 본문(마소라 본문)에서 인용한 구절을 들 수 있습니다. 바아사 왕은 그가 라마에서 건축을 시작했을 때, 이미 죽은 지 10년이 지난 뒤가 됩니다.

"유다의 아사 왕 제이십육 년(26)에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디르사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 년 동안 그 왕위에 있으니라(왕상 16:8)."

"아사 왕 제삼십육 년(36)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라마를 건축하여 사람을 유다 왕 아사에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려 한지라(대하 16:1)."

열왕기에 나오는 연대기적 자료들이 서로 모순을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요람은 열왕기하 1장 17절에서 유다의 여호람 2년에 통치를 시작합니다.

"왕이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고 그가 아들이 없으므로 여호람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둘째 해(2)였더라(왕하 1:17)."

하지만 열왕기하 3장 1절을 보면, 여호사밧 18년에 통치를 시작합니다.

"유다의 여호사밧 왕 열여덟째 해(18)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열두 해 동안 다스리니라(왕하 3:1)."

열왕기하 8장 16절에 따르면, 유다의 여호람은 이스라엘의 요람 5년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오 년(5)에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었을 때에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니라(왕하 8:16)."

유다의 아하시야는, 이스라엘의 요람 때 왕위에 올랐다는 두 구절에서 1년 차이가 발생합니다.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십이 년(12)에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니(왕하 8:25)."

"아합의 아들 요람의 제십일 년(11)에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었더라(왕하 9:29)."

열왕기하를 보면 므나헴과 호세아 중간에 통치했던 브가히야와 베가 모두 22년간 왕위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시리아 기록을 보면 므나헴이 기원전 737년에 디글랏 빌레셀 3세에게 조공을 바쳤다는 때부터 아시리아가 732년 호세아를 왕위에 앉혔다는 사건까지 기간이 6년입니다. 따라서 다른 왕들과의 연대를 고려해, 열왕기하 15장 27절에서 베가의 '20년' 통치를 '4년' 정도로 단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동 섭정을 한 경우도 있습니다. 열왕기상 16장 21절에서 오므리와 디브니는 동시에 왕이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둘로 나뉘어 그 절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따라 그를 왕으로 삼으려 하고 그 절반은 오므리를 따랐더니(왕상 16:21)."

열왕기하 15장 5절에 따르면, 웃시야와 요담도 공동 섭정을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그가 죽는 날까지 나병 환자가 되어 별궁에 거하고 왕자 요담이 왕궁을 다스리며 그 땅의 백성을 치리하였더라(왕하 15:5)."

이집트는 선연산법(antedating)을 사용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통치 1년은 왕이 등극한 날로부터 계산됩니다. 어떤 파라오가 11월에 등극할 경우, 그는 1달 통치하고 1년을 통치한 것으로 계산됩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후연산법(postdating)을 사용했습니다. 실제 통치 제1년은 새해와 더불어 시작합니다. 어떤 왕이 3월 중순 등극할 경우, 그는 실제 왕위에 오른 지 21개월이 지났어도 여전히 통치 1년일 수 있습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어떤 계산법을 따랐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학자들마다 상이한 연대 계산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연대를 확정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같은 체계를 사용했는가.

둘째, 열왕기서와 역대기서의 편찬자-편집자들은 어떤 체계를 사용했는가.

셋째, 공동 섭정 기간이나 왕좌에 공백 기간은 얼마였는가.

넷째, 마소라 사본과 70인역 및 수정본들 간 차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성서 본문 연대의 확정 기준은 '바벨론 연대기' 기록으로 보완합니다. 바벨론 연대기에서는 유다의 저항을 진압한 사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7년, 그슬레브 월: 아카드 왕(느부갓네살)은 군대를 이끌고 하티 땅으로 진격하여 유다 성(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아달 월 제2일에 그 성을 함락시키고 왕(여호야긴)을 사로잡았다. 그는 그 곳에 자신이 좋아하는 왕(시드기야)을 임명하였고 거기에서 많은 전리품을 바벨론으로 가져왔다."

느부갓네살 재위 7년은 기원전 597년 3월 16일 또는 15일이었습니다. 바벨론은 하루의 시작을 자정이 아닌 저녁으로 봤기에 정확한 날짜를 잡을 수는 없습니다. 이 날짜를 기준으로 열왕기서와 역대기 연대를 추정합니다. 그렇다 해도 열왕기 왕들의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오차 범위가 10년 안팎 혹은 1~2년이 됩니다.

연대 확정은 성서만의 문제일까요? 다른 역사 문서들도 왕들의 연대를 확정하는 문제는 언제나 골칫거리입니다.

이집트는 기원전 17세기~기원전 16세기의 왕 명단과 통치 기간이 불확실합니다. 제14왕조의 경우, 이집트 역사서에서 대부분 언급을 피할 정도로 그 존재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이집트는 기원전 3세기가 돼서야 제사장 마네토가 역사책을 기록합니다.

아시리아의 연대기도 기록한 사건과 같은 시기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왕의 통치 기간 중 나중에 기록되며, 실제 사건을 기록하기보다는 왕이 원하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슈르바니팔(Ashurbanipal, 기원전 668~기원전 627 통치)의 토판들을 보면, 군사 원정 순서가 연대기마다 차이가 납니다. 1~3차 원정 순서는 같지만, 제4차 원정부터는 토판에 따라 원정지가 달라집니다.

아시리아 왕실 문서를 기록한 서기관들은 왕의 군사적 업적을 강조하는 식으로 기록했습니다. 나중에 일어났던 원정을 왕의 통치 초기로 앞당기거나,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짧은 시간에 군사 작전이 완료됐다고 기록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산헤립의 초기 문서는 실제 산헤립 제2통치년도와 제3통치년도에 있었던 원정을 통치 초기에 일어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르곤의 문서들에도 이런 현상이 있습니다. 아시리아의 사마리아 함락이 살만에셀 5세 때인지 사르곤 때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아시리아 왕실 연대기 또한 비평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성서의 연대기적 자료들이 불확실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 두 왕국 이야기가 모두 같은 책에 밀접하게 연결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록 두 왕국으로 분리됐으나 여전히 '온 이스라엘'이라는 통일성을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두 왕국 밖의 사건들과 연결해 더 큰 세계 역사와 이스라엘 역사를 연결할 수 있습니다.

셋째, 어느 정도의 연대 차이는 다른 나라 역사 기록에서 보여 주는 차이와 비슷하거나 적어서 성서의 역사성이 상당히 신뢰할 만하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넷째, 열왕기서(역대기서 포함) 연대의 불확실성이 사건들 자체의 불확실성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고고학 자료들과 상호 비교했을 때도 상당히 정확하게 점검됩니다. 따라서 성서의 역사는 고대 근동 다른 나라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다섯째, 왕의 통치가 철저하게 여호와 신앙과 연결됩니다. 이는 역사의 주관자가 여호와라는 사실을 고백한다는 점에서 열왕기서와 역대기서가 '신앙고백의 역사서'라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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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순 / 새들녘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신학 아카데미 에르고니아(http://ergonia.org)에서 신학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참고 문헌

1) Tremper Longman and Raymond D. Dillard, 『최신 구약 개론』, 박철현 역 (고양: CH북스, 2009)
2) J. Maxwell Miller and John H. Hayes, 『고대 이스라엘 역사』, 박문재 역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4)
3) 김성, "고대 이집트의 제 2중간기 시작 연대에 관한 논쟁," 『서양고대사연구』, 51집 (2018): 7-34.
4) 김태훈, "고대 메소포타미아 역사 기록과 시리아-팔레스틴 역사," 『헤르메네이아투데이』, 10집 (1999): 18-35.
5) 박신배, "앗시리아의 유다 침공 연대 문제와 신학," 『신학과목회』, 29집 (2008): 181-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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