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삼성에 '노조'를 세워 보겠다고 나섰다가 지금까지 모진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다. 25년간 복직을 바라며 삼성과 싸우다 마침내 철탑에 오른 김용희 씨다. 그는 만 60세 정년 퇴임을 앞두고 형식적으로라도 복직하고 싶다며 강남역사거리 상공 CCTV 철탑에 올랐다. 그가 오른 철탑은 사람이 누울 자리조차 확보되지 않는 곳이다. 신장 180cm인 김 씨는 새우처럼 몸을 구부려야 잠을 잘 수 있다.

오늘(7월 22일)은 그가 고공 농성을 시작한 지 43일, 단식을 시작한 지는 50일째다. 연이은 폭염으로 언제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이지만, 삼성 측은 김 씨와 대화조차 시도하지 않고 있다. 정의평화를위한기독인연대·예수살기·향린교회·촛불교회는 7월 21일 김용희 씨가 있는 철탑 앞에서 기도회를 열었다. 기독교인 50여 명이 모여 김 씨가 살아서 내려오기를 기도했다.

김용희 씨는 25년 전 삼성에서 쫓겨났다. 노조 설립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모진 고통을 겪었다. 7월 10일 정년 연한 전에는 복직되리라 희망하고 철탑에 올랐지만, 삼성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김용희 씨가 겪은 일을 들으면 실화가 맞나 의심이 생길 정도다. 1982년 삼성시계에 입사한 그는 1990년 경남 지역 노조설립준비위원장을 맡은 직후부터 원인 모를 비극에 휘말렸다. 노조 설립 추진 직후, 신원 미상 청년들에게 폭행당해 중상을 입었고, 삼성 직원들에게 보름간 감금돼 노조 설립 포기를 종용받았다. 1991년에는 회사 여성 직원을 성폭행하려 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해고됐다.

가족들도 고통을 겪었다. 삼성이 김 씨의 노조 설립을 탄압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90년, 그의 아버지는 유언장을 남기고 홀연히 종적을 감췄다. 김용희 씨는 지금까지 아버지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 1992년에는 한 경찰관이 김 씨 아내를 성폭행하려던 일이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성추행을 주장한 여성 직원은 자신의 진술을 번복하고 이를 공증해 김 씨에게 넘겼다. 경찰의 아내 성폭행 미수 사건은 <부산일보>에 짧은 기사로 실렸다. 이런 증거가 없었다면 아무도 김용희 씨 주장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김용희 씨가 삼성에 돌아갈 기회는 있었다. 삼성은 1994년 대법원 상고심 결심을 보름 앞두고 김 씨에게 합의를 요구했다고 한다. 해고 무효 확인소송을 취하하면 복직시켜 주겠다는 것이었다. 해고 사유였던 '성추행' 사건 당사자가 진술을 번복했으니 김 씨의 승소 가능성이 높았다. 김용희 씨는 제안을 받아들여 대법원에 소 취하서를 내고 복직했다.

곧바로 1년간 해외에 파견된 그는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대사관에 구금되는 등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었다. 1995년 한국으로 돌아온 김용희 씨는 삼성에서 또다시 쫓겨났다. 이후 김 씨는 지금까지 '해고 노동자' 신분으로 25년간 복직 투쟁을 하고 있다. 끝내 7월 10일 만 60세 생일과 정년 퇴임일을 철탑에서 맞았다.

김용희 씨를 위한 기도회가 7월 21일 강남역에서 열렸다. 기독교인 50여 명은 김 씨를 응원하며 건강히 내려오라고 당부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강남역 천막 농성장에서 김용희 씨와 연대하는 박미희 씨는 이날 기도회에 모인 이들에게 "삼성은 김 씨에게 1995년 10억 원을 주겠다면서 사직서와 노조 포기 각서를 쓰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뼛조각도 찾지 못하는 마음의 짐이 있어서 이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만 60세 정년 전 명예적으로나마 복직 처분을 받고 싶어 고공 농성을 시작했지만, 삼성은 김 씨가 근무했던 삼성시계와 삼성항공(삼성테크윈)이 없어지거나 한화그룹으로 인수되는 등 대응할 곳이 없다며 이를 거절했다.

박미희 씨는 "철탑 위는 사람이 누울 수도 없는 곳이다. 잘 때도 기둥을 붙잡고서 자야 한다. 의사들이 계속 '위험하다. 내려가야 한다. 이런 고공 농성 환경은 처음이다'고 얘기하니, 김 씨는 이제 진료마저 거부하고 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을 겪고 있다. 김 씨는 원직 복직을 위해 세상 사람들이 삼성을 규탄해 주길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불의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김 씨와 연대하자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김준표 목사(촛불교회)는 김용희 씨를 바라보며 "이제야 왔다. 그동안 무관심해서 죄송하다"는 말로 설교를 시작했다. 김 목사는 "본문 시편 94편을 보면 하나님은 세상의 불의를 심판하시는 분이며,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내리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사악한 자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이 땅에 정의와 평화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일할 자를 찾고 계신다. 김용희 씨는 시편 94편 16절,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들을 칠까'라는 부름에 응답해 나선 사람이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우리가 깨어서 연대하고, 삼성과 맞서야 한다. 김용희 씨가 저 높고 좁은 철탑에서 내려와 당당히 복직하고 떳떳한 노동자로 여생을 회복하고 살아가게끔 힘을 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단식 중단 요청과 의사 진료를 거부하는 김용희 씨에게 "부디 제발 죽지 말고 살아 내려와 달라. 우리를 믿고 제발 목숨을 지켜 달라"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삼성이 '무노조 경영' 원칙을 내세워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다며 "삼성은 김용희 씨를 복직하라", "김용희 씨 힘내라"고 외치고 함께 기도했다. 김용희 씨는 기도회 내내 휴대전화 플래시 라이트를 비추며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기도회 후 의료진과 목회자들이 철탑 위에 올라 김용희 씨를 면담하려 했으나, 김 씨는 전화로만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전하겠다고 했다. 기도회 말미 김용희 씨는 전화를 통해 "삼성의 탄압에 관심 가져 주어 고맙다.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삼성의 잘못된 문화를 개선하는 데 앞장서겠다. 오늘 일요일인데도 목사님들이 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극한 상황에서도 김 씨는 "할렐루야"라고 외쳤다. 참석자들은 박수로 응답했다.

인근 빌딩에서 본 고공 농성 철탑.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철탑 아래에는 노란색 에어 매트가 설치돼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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