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처음부터 평신도 운동이었다. 교회 역사에 있었던 교회 갱신이나 부흥은 성직자의 권력 독점에 대항해 평신도의 권리와 의무를 되찾으려 했던 운동이었다." - <존 스토트가 말하는 목회자와 평신도>(아바서원)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 봉사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뉴스앤조이>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진격의 교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 진격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한국 사회에 보여 줘야 할 진정한 기독교의 역할과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삶의 기로에서 소명과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 전문 영역에서 기독교인으로서 고군분투하며 사는 집사님·권사님·장로님, 성경에서 가르치는 모습을 좇아 약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교인분들을 소개합니다. 제보도 환영합니다. 주변에 '진격의 교인'이 있다면 언제든지 <뉴스앤조이> 홈페이지이메일페이스북카카오톡 등으로 알려 주세요. - 편집자 주

"가족 같은 직원을 모집합니다."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구인·구직 사이트를 뒤지다 보면 기업 채용 공고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문구다. 곧이곧대로 믿고 입사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가족 같다며 야근을 강요하고, 수당을 안 주고, 사생활을 보장해 주지 않는 회사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깨닫는다. '가족'이라는 말은 회사가 유리할 때만 꺼내 쓰는 말이라고.

무늬만 가족 같은 회사가 아닌, 전 직원이 행복한 일터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 있다. 백승주 대표가 운영하는 8년 차 중소기업 '행일미디어'다. 주로 디자인·인쇄·출력·출판 사업을 한다. 행일은 '행복한 일터'의 준말이다. 창업을 위해 백 대표와 직원 6명이 의기투합할 때, 모든 직원이 꿈꾸는 회사의 모습을 이름에 담았다.

직원들이 직장에서 만족감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수준의 월급과 복지를 제공하고, 이들의 자율성을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백 대표는 생각했다. 그는 대표와 직원들 간 월급 편차를 줄이고, 모든 직원을 회사 내 의사 결정에 참여시켰다. 백 대표는 "사장이 배당금을 적게 받고 포기하는 게 많을수록, 직원들 행복도는 높아진다. 그러면 기업에도 활력이 돈다"고 말했다.

백승주 대표를 1월 10일 서울 강동구 천호옛길에 있는 행일미디어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하 1층에서 승강기 문이 열리자, '행복한 일터'라고 적힌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밑으로 '우리의 약속' 12조항이 적혀 있었다. 직원들이 창립 이후 지금까지 매년 의견을 모아 갱신하고 있는 행일미디어 사훈이다. 몇 개를 옮겨 본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일한다."
"회사의 주인은 직원임을 명시하고, 직원을 위해 좋은 것을 제공한다."
"우리는 불완전하기에 실수할 수 있음을 알고 실수보다는 수습에 집중한다."

행일미디어 백승주 대표(오른쪽에서 세 번째)와 직원들. 뉴스앤조이 박요셉

전 직원 경영 참여
대표부터 신입 사원 모두 연봉 공개
"대표가 적게 가져가야 직원이 행복
직원들 업무 태도 달라져"

행일미디어는 2011년 백승주 대표가 전에 다니던 직장 동료들과 함께 만든 회사다. 현재 직원은 12명이고 연평균 매출액이 약 13억 원이다. 지난 3년간 영업이익이 매년 30% 이상 성장한 건강한 기업이다. 주로 기업과 공공 기관을 상대로 인쇄물·홍보물 등을 제작하고 있다.

행일미디어의 특징은 모든 직원이 경영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백승주 대표는 회사를 종업원지주제 형태로 운영하며, 직원들이 회사에 일부 지분을 두게 했다. 창립 초기에는 자본금을 확보하려는 목적이 컸지만, 지금은 직원들이 회사 경영에 관심을 두고 참여하게 하는 수단이 됐다. 회사가 수익을 내면, 연말에 그만큼 직원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한다.

백 대표는 "배당금은 일종의 성과급이라고 볼 수 있다. 전 직원이 월급 수준으로 받는다. 지분율을 계산하면 더 적게 받아야 하지만, 최대한 많이 주려고 한다. 대신 대표는 지분보다 적게 받는다. 어떤 책을 보니까 대표와 직원과 급여 차이가 적어야 모두가 행복하다고 나와 있더라.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릴 때도 모든 직원이 함께한다. 행일미디어가 추구하는 가치와 정신이 담긴 '우리의 약속'도 매년 직원들이 워크숍과 회의에서 의견을 모아 갱신하고 있다. 사내 복지 제도나 직원 인사 문제, 각종 행사 등도 함께 논의한다. 연말에는 대표부터 신입 사원까지 전 직원 연봉을 공개하고, 당해 회사 실적에 따라 이듬해 연봉을 결정한다.

백 대표는 "새로운 정책이나 제도를 시행할 때, 주로 대표나 부서장이 처음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긴 하다. 하지만 이를 이행하고 정착시키는 데는 직원들 몫이 크다. 그래서 먼저 직원들과 소통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연봉 협상도 쉬운 주제는 아니다. 사실 회사 재정을 직원들에게 공개하면, 대표가 독식하기 어렵다. 하지만 잃는 게 있다면 얻는 것도 있다. 모두가 회사 내부 사정을 알고, 일한 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되니, 일에 임하는 자세부터 달라진다. 대표와 직원 관계도 수평적으로 형성된다. 이건 돈으로 살 수 없는 큰 유익이다"라고 말했다.

행일미디어의 사훈. 매년 조금씩 갱신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행일미디어 한쪽 벽에 붙어 있는 사진들. 논 사진 밖에 없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다양한 취미 활동 지원
목표 달성 직원에게 상금 지급
직원 가족들과 송년회, 해외 연수

백승주 대표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직원들에게 커다란 활력과 업무 성과를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직원들이 즐거워할 만한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회의실 한쪽 벽에는 전 직원의 볼링 평균 점수표가 걸려 있다. 백 대표는 "매달 1회 전 직원이 점심시간에 인근 볼링장에 간다. 매달 점수를 기록해 연말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인 직원에게 포상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게시판에는 직원들의 2019년 목표가 적힌 표가 있다. '조달청 입찰', '체중 감량', '아이들과 놀아 주기.' 백 대표의 목표는 '아내와 산책하며 대화 시간 갖기'다. 업무와 관련 없는 내용도 상관없다. 회사는 올해 6월 중간 점검을 해서 목표에 제일 근접한 직원에게 상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사무실 한쪽에 탁구대를 설치해 탁구 경연 대회를 열고, 중년 남성 직원을 대상으로 스크린 골프장에서 골프 교육을 진행한 적도 있다. 매년 연말에는 직원 가족을 초청해 송년회를 열거나 해외 연수를 간다. 직원들의 배우자나 부모에게는 좋은 일꾼을 보내 줘서 고맙다며 격려금도 지급한다.

이쯤 되면 대표와 직원들 머릿속에는 회사를 키우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놀고먹을 수 있을지 궁리하는 것만 담겨 있는 것 같다. 백 대표는 "직원들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고 사기를 높이는 일이 연봉 인상보다 가성비가 더 높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행복하면 기업도 산다고 백 대표는 확신한다. 그는 "일터가 즐겁고 편안하면 직원들이 애사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성과를 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업 직원이 아닌 사람도 지인에게 회사를 소개하고, 거래를 따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물론, 인센티브도 뒤따른다.

백승주 대표는 "우리는 기독교 기업이 아니다. 사장이 기독교인일 뿐이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전에 경험한 회사 대표들
교회에서는 독실한 신앙인,
사회에서는 욕심 많은 기업가
기독교 기업 표방, 실상은 성서 정신에 어긋나

백승주 대표가 8년 전 행일미디어를 창업했을 때, 그의 나이는 40대 후반이었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에는 적지 않은 나이였다. 백 대표는 "그만큼 절박하고 힘들었다. 이렇게 계속 일하다가는 골병들어 쓰러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전에 근무했던 곳도 인쇄·출판 기업이었다. 50~60명이 근무하는 중견 규모였다. 백 대표는 "중소기업 사정이 대부분 비슷하다. 환경이 열악하고 분위기가 각박하다. 사주의 독단이 심하고 체계가 잘 안 잡혀 있어 구성원 간 갈등도 잦다"고 말했다.

사장은 한 대형 교회 안수집사였다. 그는 교회에서는 독실한 교인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직원들이 봤을 때는 강퍅한 사업가였다. 백 대표는 "직원들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일 중 하나가, 회사는 매년 발전하고 사옥도 커지는데 직원들 삶은 점점 팍팍해지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백 대표는 의정부 한 교회에 출석하는 독실한 교인이다. 그는 교회에서, 기독교인은 '세상'에서 신앙을 따라 정의롭고 올바른 일을 해야 한다고 배웠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고 재산을 증식하려고 할 때, 기독교인은 스스로 낮아지고 가진 것을 나누며 선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그가 회사를 경영할 때 늘 기억하는 신념이기도 하다.

백승주 대표는 일부 기독교인 경영인이 기독교 기업을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성서의 정신과 맞지 않게 경영하는 모습을 종종 봤다고 말했다. 백 대표가 이전에 경험했던 회사도 그랬고, 그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유명 기독교 대기업도 마찬가지였다. 그 기업은 비정규직 대량 해고, 높은 업무 강도, 아르바이트 임금 체납 등으로 사회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세상 논리를 따라가는 기독 경영인을 보면 화가 난다. 기독교인들이 구별된 모습을 보여 줘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다. 교회가 맘몬주의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초기 개신교는 청빈한 삶을 살았는데, 오늘날은 규모가 커지고 재물이 넘쳐 엉뚱한 일을 벌이고 있다. 사람들이 대기업을 향해 비판하는 짓을 똑같이 따라 한다. 교인들이 여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기독교 기업'이라고 표방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따로 있다. 직원들을 대상으로 예배나 기도 모임을 하는 건, 비기독교인에게는 차별과 강요로 다가온다. 차라리 직원들이 어떻게 하면 회사에서 행복하게 일할 수 있을지, 월급이나 복지 수준을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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