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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그대의 사명은
[김상덕의 미디어와 한국교회] '기레기'로 상징되는 한국 언론의 희망
  • 김상덕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9.01.29 10:17

아마 세월호 참사 때부터였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용어가 대중화하기 시작한 것 말이다. 그 사건은 한국 사회 거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쳤지만 언론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했다. 그것은 단지 배가 가라앉은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침몰한 것과 같았다. 수많은 사람이 세월호 침몰을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네모난 TV 화면을 발을 동동 구르며 쳐다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무기력한 목격이었다. 또한 정부의 무능과 비리와 부패, 그리고 진실 은폐 과정이 언론을 통해 생중계되었다. 이 혼란 속에서 언론들은 진실이 아니라 정부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무거운 비판을 받게 되었다. 언론에 대한 사회적 불신은 겉잡을 수 없이 번져만 갔다.

이 글을 쓰는 주간에도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과 관련한 언론의 상이한 보도가 상당한 화제가 되고 있다. 그중에는 '기레기', '프레임 언론' 등의 언론을 향한 비판들도 눈에 띈다. 언론에 대한 불신이 날로 심각해져 가는 상황 속에서 언론의 제 기능을 회복하고 사회적 신뢰를 높이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지 고민해 보려고 한다.

언론의 역기능과 구조적 문제

지난 글에서 나는 공정한 언론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진실하게, 정확하게, 공정하게, 다양하게'라는 네 가지 지향점을 제안했다. 혹자는 이 제안들이 원론적으로는 옳지만 현실적으로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현실론을 꺼내 들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이 네 가지 윤리적 기준이 중요한 이유는 언론의 존재 이유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언론의 기능이란 양가적이고 그 양태는 매우 복잡하다. 만일 언론의 역기능이 순기능보다 더 크다면 언론의 생명력은 사라질 것이다.

나는 의도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언론·미디어 환경을 '생태계'에 비유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언론의 기능과 역할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언론은 신경세포와 같아서 복잡하게 얽힌 사회 관계망 속에서 정보 전달 및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언론이 제 기능을 상실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잘못된 정보와 판단은 사회에 해를 미친다. 뜨거운데 차갑다고 인식하면 화상을 입게 된다. 언론의 기능장애는 사회라는 몸을 병들게 한다. '가짜뉴스' 신드롬과 '기레기'로 대변되는 주류 언론에 대한 불신은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해 병들고 있다는 이상 신호이다.

한국 언론·미디어 생태계가 이토록 병들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여러 진단이 가능하겠지만, 핵심은 결국 '언론의 상업화'라는 구조적인 한계를 들 수 있겠다. 언론의 생존이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해, 현대사회는 더 이상 하나의 이념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니콜라스 월터스토프가 바르게 분석하듯이, 세계는 다원화한 사회로 세분화하는 경향성과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일원화하는 두 상반된 경향성 사이에 놓여 있다.1) 자본주의는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거대하고 거의 유일한 이념이 되었고, 언론도 이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향후 언론 개혁의 본질은 '자본으로부터의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라는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2) 언론이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공영방송의 개혁, 다양한 방송 구조 확대, 그리고 독립 언론 및 시민 언론 등의 구조적 변화들이 제시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자본 위에 존재하는 언론의 구조적 한계 자체를 극복할 수는 없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언론의 구조적 개혁을 추구해야 함과 동시에 어쩔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논하는 것은 모순되는가.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라인홀드 니버의 조언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그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도덕적 개인이라도 집단의 구조 속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비도덕적 생태계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비도덕적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개인적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서, 개인이 아무리 도덕적이라도 사회구조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비도덕적인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는 것도 개인인 것이다.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사회제도를 개혁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 개혁의 원동력은 더 선한 사회제도라기보다 그 사회 구성원인 개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 행위자(agent)를 무시한 채 사회제도 개혁만을 주장하는 것은 반쪽짜리 개혁이거나 구호에서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2017년 광화문 광장에서 시작된 '촛불 혁명'은 선거제도 개혁의 당위성에 힘을 불어넣었다. 기존 체제에서는 민심이 잘 반영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개혁 과정을 들여다보면, 결국 각 정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려는 것이 현실이다.

니버는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현대사회 정치 구조 속에서는 결국 일종의 '집단 이기주의'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결국 세계는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고, 정당은 각 정당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 정치란 공공의 선을 함께 추구한다기보다 각자의 입장을 주장하고 획득하는 과정에 가까워 보인다. 이와 비슷하게, 언론도 전체를 대변하기보다 각자의 입장에 충실할 뿐이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나면, 결국 두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나는 '그래서 다양한 언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도덕적인 개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행위자(agent)에 대한 강조는 기독교적 시각에서도 의미를 가진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완전한 '하나님의 도성'과는 달리 우리가 사는 '지상의 도성'에는 인간의 타락으로 구조적 모순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은 인간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극단적인 낙관론(유토피아)이나 근대 세속주의적 관점과의 대화에서 여전히 유용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단 한 순간이라도 이 세상이 낙원인 적은 없었다. 반면,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을 제도적인 폭력에 순응하고 불의에 타협하도록 이해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오독일 것이다. 우리는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나라가 임하도록 개인적으로나 제도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미로슬라브 볼프 또한 <배제와 포용>(IVP)에서 제도적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사회적 행위자(social agent)를 설득하고 길러 내는 것이 종교의 공적 역할이라고 주장한다.3) 다시 말해, 비도덕적인 이 사회 속에서라도 그것을 비관하거나 그 시류에 휩쓸리지 않으며 저항하고 개혁하는 주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록 오늘 언론의 구조적 모순과 한계가 심각한 상황이라도 그 구조적 모순과 맞서 싸우며 제 기능을 감당할 개인이 우리에겐 여전히 필요하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하다

이러한 긴장 관계는 영화 '스포트라이트'에도 잘 묘사되고 있다. <보스턴글로브> 기자들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2016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화는 미국 가톨릭 보스턴 대교구의 게오건 신부가 80여 명의 어린아이들을 성추행한 사건을 파헤치는 기자들과 그들이 당면한 구조적 문제와 현실적 고민들을 긴장감 있게 재현하고 있다. 특히 <보스턴글로브> 구독자 중 무려 53%가 가톨릭 신자라는 것이, 이들이 그 사건을 파헤치는 데 커다란 장애물이 되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각종 로비와 회유가 들어온다. 이 사건을 덮을 더 자극적인 사건의 정보를 제공하거나 선량한 가톨릭교회의 이미지는 어떡하느냐 묻는다. 무엇보다 이 사건을 드러내는 것이 구독자 절반을 적으로 돌려야 할 만큼 중요한가 묻기도 한다. 그럼에도 스포트라이트 보도팀은 진실을 드러내는 길을 택한다. 마침내 그들은 게오건 신부 외에도 유사한 성범죄를 저지른 신부가 보스턴에만 최소 70명이나 더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내는데 성공한다. 그들의 용기 있는 선택과 헌신이 없었다면 이 끔직한 사실이 세상에 밝혀질 수 없었을 것이고 또 다른 피해자도 계속 생겨났을 것이다.

'가짜 뉴스'와 '기레기'로 상징되는 한국 언론에 희망은 있는가. 한국 언론은 자본과 권력 앞에 자유로울 수 있는가. 나는 그렇다고 본다. 그 이유는 바로 역설적이게도 한국의 언론인들에게 있다. 한국 언론 역사 속에서 언론 통제와 구조적 한계들은 항상 존재해 왔다. 그러나 동시에 이 구조에 저항하며 언론을 지켜 온 원동력 또한 언론인들이다. 비도덕적 언론 현실에 타협하면서도, 반대로 저항하며 진실을 드러내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광주항쟁 속 35명의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이 남긴 공동 사직서는 시간이 지나도 커다란 울림이 된다.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끌리듯 끌려가 죽어 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4)

한국의 민주화 운동의 역사 가운데 언론의 역할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세월호 참사부터 박근혜 탄핵 정국 과정까지도 마찬가지다. 특정 언론을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라, JTBC 뉴스룸이 신뢰도 조사에서 3년 연속 1위인 것은 손석희라는 한 언론인의 의지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 탐사 보도의 중요성을 알린 <뉴스타파>는 MBC에서 해고된 기자들이 이뤄 낸 결과다. 세월호 이후 한국 언론들은 '기레기'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지만, 동시에 세월호의 진실을 밝혀낸 것 또한 기자들이다. 비도덕적 사회 속 구조적 한계는 분명하다. 그러나, 발상을 전환하면, 개인은 그 사회보다 더 강하다. 오랫동안 구조적 문제 가운데에도 굴하지 않는 도덕적 개인, 즉 언론인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기자 정신. 나는 이 오래되고 진부한 단어를 다시 꺼내 든다. 언론인 보호위원회(Committee to Protect Journalists·CJP)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분쟁이나 위험 지역에서 취재하다가 목숨을 잃은 기자 수가 600명에 이른다. 한 해 평균 60여 명의 기자들이 진실 보도와 목숨을 맞바꾼 셈이다.5) 보스니아 내전의 상황 속에서 세르비아 용병들에 의해 자행된 인종 청소(ethnic cleansing)의 결정적 증거 사진을 남긴 론 하비브(Ron Haviv)는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용병대의 살생 명부에 오르게 되고 약 8년 동안 살인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훗날 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행동을 후회하지않느냐고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나는 20년 전 어렸고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 내 사진으로 전쟁을 멈추고 세상을 바꿀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그럼에도, 나는 기자로서 한 명의 생각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갈등의 현장에 갈 것이고 내 일을 할 것이다.6)

어쩌면 자본화한 언론 생태계 자체를 바꿀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개별 언론사나 혹은 그 내부적 저항은 여전히 가능하다. 젊은 시절 론 하비브는 낙관적으로 세상의 변화를 그렸다. 그러나 언론과 이 세상의 구조적 한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도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기자 정신이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의 생각이라도 바꿀 수 있고 진실을 전할 수 있다면 말이다. 언론인은 진실의 목격자이고 증언자이다. 그의 사진집 제목이 <Testimony>(증언 -편집자 주)인 점도 의미심장하다.

증인의 목소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생태계가 무너지고 오작동한다. 언론인의 기자 정신은 우리 몸을 맑게 하는 산소요, 백혈구이다. 그러므로 호소한다. 우리는 여전히 기자 정신으로 투철하고 막중한 책임 의식을 가진 당신이 필요하다.

기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진실을 알릴 의무를 가진 언론의 최일선 핵심 존재로서 공정 보도를 실천할 사명을 띠고 있으며, 이를 위해 국민으로부터 언론이 위임받은 편집-편성권을 공유할 권리를 갖는다. 기자는 자유로운 언론 활동을 통해 나라의 민주화에 기여하고 국가 발전을 위해 국민들을 올바르게 계도할 책임과 함께, 평화통일·민족 화합·민족의 동질성 회복에 기여해야 할 시대적 소명을 안고 있다. 이와 같이 막중한 책임과 사명을 갖고 있는 기자에게는 다른 어떤 직종의 종사자들보다도 투철한 직업윤리가 요구된다. 이에 한국기자협회는 회원들이 지켜야 할 행동 기준으로서 윤리강령과 그 실천 요강을 제정하여 이의 준수와 실천을 선언한다.7)

1. 언론 자유 수호: 우리는 권력과 금력 등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내·외부의 개인 또는 집단의 어떤 부당한 간섭이나 압력도 단호히 배격한다.
2. 공정 보도: 우리는 뉴스를 보도함에 있어서 진실을 존중하여 정확한 정보만을 취사선택하며, 엄정한 객관성을 유지한다.
3. 품위 유지: 우리는 취재 보도의 과정에서 기자의 신분을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지 않으며, 취재원으로부터 제공되는 사적인 특혜나 편의를 거절한다.
4. 정당한 정보 수집: 우리는 취재 과정에서 항상 정당한 방법으로 정보를 취득하며, 기록과 자료를 조작하지 않는다.
5. 올바른 정보 사용: 우리는 취재 활동 중에 취득한 정보를 보도의 목적에만 사용한다.
6. 사생활 보호: 우리는 개인의 명예를 해치는 사실무근한 정보를 보도하지 않으며, 보도대상의 사생활을 보호한다.
7. 취재원 보호: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취재원을 보호한다.
8. 오보의 정정: 우리는 잘못된 보도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시인하고, 신속하게 바로잡는다.
9. 갈등·차별 조장 금지: 우리는 취재의 과정 및 보도의 내용에서 지역·계층·종교·성·집단 간의 갈등을 유발하거나, 차별을 조장하지 않는다.
10. 광고·판매 활동의 제한: 우리는 소속 회사의 판매 및 광고 문제와 관련, 기자로서의 품위를 손상하는 일체의 행동을 하지 않는다.

1) 월터스토프,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 홍병룡 옮김, IVP, 2007, 2장 참조.
2) 언론이 상업화한다는 것은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성경은 자본의 지배에 관하여 단호한 태도를 보인다. 예수는 돈과 하나님 가운데 선택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맘몬을 숭배하는 것은 결국 자기를 사랑하는 이기심이 형상화한 우상이다.
3) 볼프, <배제와 포용>, 박세혁 옮김, IVP, 2012, 29-31쪽.
4) 나경택, <앵글과 눈동자> 1967-2007, 사진비평사, 2007.
5) 언론인보호위원회 자료 참고. https://cpj.org/data/killed/?status=Killed&motiveConfirmed%5B%5D=Confirmed&type%5B%5D=Journalist&start_
year=1992&end_year=2019&group_by=year

6) <뉴욕타임스>(2013. 4. 2.)
7)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참조. http://www.journalist.or.kr/news/section4.html?p_num=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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