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이 주일이었던 2016년, 주일예배 설교 시작에서 '4·3 68주년입니다'라는 말에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집중하던 성도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중략) 예멘 난민 문제가 언론과 인터넷에서 연일 보도되고 있을 때, 우리 교회 안에서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성도와 반대하는 성도들이 서로 부딪쳐 격론을 벌였다는 것이다. 다음 주일 나는 애매한(?) 설교를 했다. (중략)

눈만 뜨면 갈등을 경험한다. 돌아서면 대립의 상황에 직면한다. 수십 년 동안 미움을 풀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중략) 그러나 현장 목회자들은 사람들을 끌어안고 결단해야 한다. 나의 행동과 결정이 누군가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고 동시에 아픔과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중략) 나는 늘 자신이 예수님과 빌라도 사이의 어느 경계선에 서 있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

이 고백은 4월 11일~13일 진행된 '3·1 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년' 제주 컨퍼런스 두 번째 분과의 발제 '3·1 운동 이후 100년의 사회변동과 한국교회'에 대한 류정길 목사님(제주성안교회)의 목회적 응답입니다. 장년의 주일예배 출석이 3500여 명이나 되는 큰 교회 목회자로서 깊은 고뇌가 담겨 있습니다. 4·3과 강정 해군기지, 예멘 난민, 거기다 제2공항 문제까지 불거져 '평화의 섬'이라는 명칭에 어울리지 않게 갈등과 대립의 현장에서 다양한 많은 교우들과 동행하는 일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이 증언은 성요셉수도원장 토마스 키팅 신부가 <세상의 중심>에서 한 말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분의 여린 심성을 통해 온전히 나타난다. (중략) 하나님처럼 여린 심성을 가진 존재는 없다. 하나님은 몽땅 내어 주기 위해 자신을 완전히 열어 놓으신 분이다."(한국살렘영성훈련원 <2019년 사순절 묵상집>에서 재인용) 담임목사로서는 여리고 약한 것 같이 보이지만, 공감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약할 수밖에 없고, 그 약함으로 큰 신앙 공동체를 건실하게 세워 가는 것 아닐까요.

크리스챤아카데미·평통연대·개척자들 등이 공동 주최하고 제주사랑선교회가 주관한 제주 컨퍼런스 마지막 날, 한라산 윗세오름에서 기념 문화 행사가 열렸습니다. 어리목광장에서 1700m의 윗세오름으로 가는 길이 참 좋았습니다. 바람은 건듯 불고 공기는 상쾌했습니다. 새소리가 자주 들렸고, 아직 꽃이 피지 않았지만 드문드문 돋은 새순이 꽃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윗세오름광장에서 3·1 만세 운동을 재현하고자 목사님들이 교복,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마, 두루마기를 입었습니다. 저도 두루마기를 받아, 졸지에 애국지사가 되었습니다. 12시경 광장에 있던 등산객들과 참가 교우들에게 곤핍한 일제강점기를 상징하는 보리빵을 나눠 주고, 함께 스코틀랜드민요 '올드 랭 사인 Auld Lang Syne' 곡으로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대한제국 때부터 전해지던 가사에 작곡가 안익태가 곡을 붙인 것과는 다른 이 애국가는 독립운동가들이 불렀던 곡입니다.

이어 3·1 독립선언서와 공약 삼장을 한글판으로 낭독하고 만세 삼창을 했습니다. 이후 여기까지 힘들게 올라온 오카리나 연주팀, 청소년 합창단, 풍물패가 공연을 하니 광장은 3·1 만세 운동 현장이 되었습니다. 일반인들 중에 울컥한 분들도 있었답니다.

이번에 제주사랑선교회의 내공을 봤습니다. 척박한 여건에서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인데도 주제와 강사, 논찬자를 적절하게 정했고 3일간의 일정을 차질 없이 진행했습니다.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의 역사적 의의를 규명한 첫째 날에 이은 둘째 날에는 '3·1 운동 100주년과 변혁적 영성', '3·1 운동에서 본 한국 분단 극복과 생명 평화 통일'을 다뤘습니다.

둘째 날의 두 주제에는, 제주도 목회자들이 수난의 역사로 상처 입은 도민들과 진정으로 동행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제주 지역 목사들이 이 주제에 목회적으로 응답한 순서는 적절했습니다. 이것이 목회 현장에서 3·1 만세 운동 정신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려는 다짐인 까닭입니다.

동행의 가치를 잘 보여 준 영화 '그린 북'도 관람했습니다. 1863년 노예해방선언으로 자유를 얻고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흑인 차별이 극심했던 1962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미국 남부를 순회공연하기로 한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와 이 피아니스트를 8주간 동안 운전하며 모시고 다니게 된 이탈리아계 미국인 토니의 이야기입니다.

출발 전 토니는 '그린 북'을 받았습니다. '그린 북'은 당시 아무 데서나 식사와 숙박을 할 수 없었던 흑인을 위한 전용 여행 가이드북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재력·학력·성격·취향·관심·말투 등 모든 것이 완전히 달랐지만, 긴 여정에 동행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감동적인 영화였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충실한 동행을 통해 타인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친밀해진 것입니다.

제주성안교회 예배당. 이근복 그림

제주 교회사의 산 역사 제주성안교회(초기 성내교회)는 1908년 이기풍 목사님에 의해 세워져 제주도의 굴곡진 역사와 동행한 어머니 교회입니다. 이기풍 목사님은 평양신학교가 배출한 한국인 첫 일곱 목사 중 한 분입니다. 1907년 한국의 첫 독자적인 노회(독노회)는 창립 사업으로 한 명을 선교사로 파송하기로 결정하고, 이기풍 목사님을 제주도로 파송했습니다. 그는 원래 평양의 불량배로, 선교사들에게 행패를 부리고 교회를 훼손하는 등 거칠기 짝이 없는 인물이었는데, 꿈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신비체험을 통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제주도에 도착한 이기풍 목사님은 말이 통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고, 이재수의 난 여파로 서양 종교를 향한 반감 때문에 애를 먹었습니다. 다행히 오래전 경성에서 세례받고 귀향한 토박이 김재원을 만났고, 함께 전도해서 홍순홍 등과 함께 김행권 집에서 예배하는 것으로 성내교회와 제주 선교가 시작됐습니다. 이 목사님은 많은 교회를 설립하고, 1917년 전라도로 옮겨 목회하다 1938년 신사참배 거부로 투옥돼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1942년 순교했습니다.

제주성안교회는 2007년 12월, 교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전을 아라동에 짓고 입당했습니다. 지하에 많은 공간을 배치해 높지 않게 지은, 친근감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현대식 예배당입니다. 예배당 강단 뒷면은 대형 유리로 돼 있는데, 유리 뒤 나무 십자가가 서 있고 야자수와 철쭉, 벚나무가 있으며 제주도 현무암으로 만든 인공 폭포가 보입니다. 강단 밖에 십자가를 설치한 것은 예수께서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음(히 13:12)을 기억하고, 가난하고 고통당한 이들과 동행하신 예수님을 삶의 현장에서 닮아 가자는 뜻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이번 사순절 마지막 고난주간에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빌 2:6-8)는 말씀을 떠올립니다.

제주성안교회가 예수님처럼 스스로 비우고 낮아져 제주도민의 아픔과 고난에 진정성 있게 동행하면, 그들의 상처 입은 마음에도 한라산의 나무처럼 평화와 화해의 새순이 돋을 것입니다.

*'그림으로 만나는 한국교회'는 매월 2차례 업데이트됩니다.

이근복 / 목사,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을 거쳐 현재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