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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신학으로 목회하는 교회
[그림으로 만나는 한국교회] 순천중앙교회
  • 이근복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8.12.27 12:38

"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눅 4:18-19)."

성탄절은 해방자로 오신 예수님을 따라 살기로 다짐하는 날이 아닐까. 이 점에서 '해방신학'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따라 사는 길을 제시하는 신학이 아닐까. 408일 넘게 고공 농성을 하는 파인텍 노동자들 사진을 보며 우울해진 성탄절에 떠올린 생각입니다.

세계적인 해방신학자 성정모 교수(브라질 상파울루감리교대학교)는 <홍인식 목사가 쉽게 쓴 해방신학 이야기>(신앙과지성사) '추천의 글'에서 해방신학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남미의) 대도시 주변에서 발생한 가난의 현실과 고통을 보면서 많은 기독교인들, 신부, 수녀, 목회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이 상황에 대하여 어떤 응답을 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습니다. (중략) 가난한 사람들의 외침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신들의 신학을 재성찰하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이러한 질문을 갖고 있었던 이들에게 성서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성서의 하나님은 언제나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을 비롯한 모든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위한 투쟁과 연관되어 있음을 재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중략) 우리에게 하나님은 생명을 주신 분이며 따라서 그 생명, 특히 고통당하고 죽어 가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체적인 형태로 지탱하고 보호하시는 분인 것입니다. (중략) 신학자들과 교회지도자들은 사회학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고, 사회학 이론을 도입하게 됩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대다수 사람들이 겪고 있는 가난의 원인을 알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1960~1970년대 남미에서 군부독재의 억압과 불평등으로 고통당하던 민중 입장에서 주창한 신학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빨갱이 신학으로 매도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자리에서 자유와 해방의 말씀을 실천하는 신학이므로 기득권자에게 불편을 끼쳐 로마교황청과 갈등을 빚기도 하였지만, 2013년 아르헨티나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의 즉위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해방신학은 원주민 해방운동, 여성해방운동, 흑인 해방운동, 토착 문화 운동과 결합해 다차원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억압·차별받는 이들이 현존하고 불평등이 심화하는 상황이기에, 또 신학의 해방까지도 추구하는 까닭에 해방신학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요즘 전남 순천에 있는 해방신학자의 목회와 순천중앙교회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지방의 중견 교회가 세인의 편견을 극복하고 해방신학자 홍인식 목사를 청빙했고, 그분이 창의적 목회로 새 길을 열고 있는 까닭입니다. 2009년 한국에 들어온 후, 그의 신학과 실천이 좋아서 친밀해진 덕분에 저도 2017년 펴낸 <해방신학 이야기>에 추천사를 썼습니다.

부임한 지 10개월이 지난 2017년 2월 12일에 열렸던 담임목사 위임식은 참신했습니다. 선물 접수대도 없고 기념품도 주지 않았으며 예배당에는 흔한 현수막 하나 없었습니다. 순서는 더 놀라웠습니다. 노회 서기가 위임식 사회를 맡고 선배 목사님이 짧게 설교를 했을 뿐이었습니다. 노회장 등 임원이나 교계 인사가 대거 참석해 축사, 격려사, 권면 등의 순서를 맡는 일은 없었습니다.

상찬 일색인 순서 대신, 등록하지 않은 교인 등이 담임목사에게 바라는 바를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서리집사로 은퇴한 80대 할아버지 교인이 "참된 주의종, 사역자, 일꾼이 되고자 갈망하는 홍인식 목사님을 모시게 되었으니, 우리도 새 믿음과 더 크고 넓은 생각으로 낮은 곳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을 따라 민족의 양심과 시대의 등불이 되도록 열심히 기도하고 실천하도록 합시다"라고 진정 어린 제언을 할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홍인식 목사가 부임하고 교회가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담임목사는 자기 연봉을 깎고 부교역자들 급여를 올려 줄 것을 제안했으며, 고급 승용차를 사양하고 중형차로 바꾸었는데 일부 귀족화한 중형 교회 목사와 사뭇 달랐습니다. 보통 담임목사로 부임하면 먼저 장로들이나 유력한 교인들을 심방하는데, 홍 목사는 병들고 가난한 이들을 찾아다니며 위로했으며, 심방 시 1만원이 넘는 식사를 사양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약하고 가난한 이들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해 공감이 큰 설교를 하고, 청년들과 같이 공부했습니다. 사회선교사를 세워 광양의 다문화 가정과 이주 노동자들을 돌보게 했고, 작은 교회 목회자들을 위한 세미나를 열고, 양복에 세월호의 노란 리본 배지를 달고 명성교회 부자 세습 반대에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 결과, 교인들이 행복해하며 분란이 심했던 교회가 새롭게 생기를 찾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순천중앙교회 예배당. 이근복 그림

그런데 홍 목사는 자신도 젊은 시절에는 성공지향주의자였다고 고백했습니다. 가난한 가족들과 남미 파라과이로 이민 가서 행상하고 고학했으며, 명문 국립대학 경영학과에 진학해 성공의 꿈으로 나아가던 중, 대학교 2학년 때 서점에서 해방신학자 구티에레스의 <해방신학>(분도출판사)을 읽고 삶의 방향을 낮은 곳으로 바꾸게 되었답니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장신대 신대원에서 공부해 목사가 된 후, 선교사로 파송받아 남미에서 사역하며 중형 교민 교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신성교회 등에서 목회했고,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교에서 호세 미게스 보니노 지도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해방신학자로서 사회주의국가 쿠바에서 살아 보겠다며, 가난하고 불편한 쿠바신학교에서 4년간 학생들을 지도했습니다. 그 후 귀국해 강남 현대교회에서 4년간 목회하고는 자진 사임하고 열악한 멕시코장로회신학교에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봉사한 후 순천중앙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습니다.

순천읍교회(현 순천중앙교회)는 순천 지방 첫 교회입니다. 1907년 4월 15일에 처음 예배했습니다. 한국인에 의해 자발적으로 세워진 교회에 초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프레스턴(J. F. Preston, 변요한)은 1910년 매산학교를 세워 순천에 복음이 풍요롭게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 1920년에는 한국 최초의 목사 7명 중 한 분으로, 제주도에 첫 복음의 씨를 뿌린 이기풍 목사가 3대 담임목사로 부임했는데, 나중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감옥에서 순교했습니다. 7대 담임 박용희 목사가 독립운동을 하다 투옥되기도 하는 등, 교회는 항일운동의 중심이었습니다.

한국교회에 돌파구가 요구되는 시점에서 순천중앙교회가 하나의 대안이 되길 바랍니다. 홍인식 목사가 <해방신학 이야기> 서문에 쓴 기도가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간구이길 소망합니다.

"해방신학에 깃든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의 영성과 성서 속에서 샘솟는 역동적인 증거들을 통해 우리를 억압하는 모든 죄악으로부터의 해방을 모색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오늘의 우리를 진정한 복음과 하나님나라로 인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림으로 만나는 한국교회'는 매월 2차례 업데이트됩니다.

이근복 / 목사,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을 거쳐 현재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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