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교회, 지자체, 교육청과 함께 교육 안전망을 만드는 '사단법인 더불어배움'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까닭에 교육 문제에 관심이 커졌습니다. 자신의 결핍을 채우고자 자식 교육에 목숨을 건 강남 상류층을 풍자한 드라마 'SKY캐슬' 신드롬 덕에 19회와 마지막 20회를 시청했습니다. 교육 불평등과 무한 입시 경쟁으로 공교육이 붕괴되고 사교육 만능 세상이 된 한국 교육 현실의 민낯이었습니다.

자식을 명문 대학에 보내기 위해 물불 안 가리던 엄마들이, 최적의 교육 환경이라고 하기에 본격적으로 입시를 준비하려고 SKY캐슬로 이사 왔다는 중1 엄마에게 개과천선한 듯 말하는 최종회의 한 장면에서 변화 가능성을 봤다면 과장일까요.

"우리 딸은 고졸이고, 고3 쌍둥이 아들들은 친구들과 스터디해요."
"우리 아들은 고3인데 자퇴하고 여행 중이랍니다."
"우리 애는 중3인데 학원은 꼴릴 때만 나가요."

이에 이사 온 엄마의 응답은 "이 엄마들 천연기념물이네!"였습니다. 입시 제도 개혁만으로 실타래처럼 엉킨 교육 문제를 풀지는 못할 것입니다. 국민의 무한 욕망 가치관이 바뀌고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지 않고서는 말이죠. 여기에 선교 초기, 교육을 위해 앞장섰던 한국 개신교의 역할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교육도시로 유명한 청주에서 교육과 교회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한 청주제일교회를 찾았습니다. 충북 청주 최초 교회 청주제일교회는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사 민노아(Frederick S. Miller)와 전도인 김흥경이 1904년 11월 초가집에서 시작했습니다. 지역민들이 유달리 배움을 향한 열정이 크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교육 선교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청천교회에서 청동학교, 신대교회에서 청서학교, 청주읍교회(현 청주제일교회)에서 청남학교와 청신여학교(현재 두 학교가 청남초등학교 병합), 청신야학, 상당유치원을 운영했습니다. 묵방교회에 청북학교, 괴산읍교회에 곽신학교를 세워 근대적 교육을 시작한 까닭에 청주가 교육 선교의 모델이 됐습니다. 청주제일교회가 교육 선교를 일관하게 추진한 전통은 1949년 세광중학교 개교, 1953년 세광고등학교 개교로 이어졌습니다. 청주제일교회는 교육 운동도 했지만, 더불어서 YMCA와 YWCA를 조직해 기독교 시민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교인이 늘어나자 교회는 청주 영장營將의 관아와 옥사가 있던 장소로 이전했는데, 이곳은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천주교 신도가 처형당한 순교 성지입니다. 그날 세 중년 여성이 '청주진영터' 기념비(순교지 표지) 앞에서 기도하고 경건하게 성호를 긋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일제 박해가 심했던 1941년에 교회 종을 빼앗기고 여러 어려운 시련에 부딪쳤지만, 청주 최초로 500석 규모 서양 고딕식 2층 벽돌 예배당을 완성했으며 1951년 증개축해 오늘에 이릅니다.

청주제일교회 예배당. 이근복 그림

붉은 벽돌은 오래된 역사와 한국전쟁 당시 총탄 흔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2층 전면 중앙 '淸州第一敎會禮拜堂'(청주제일교회 예배당)이라는 석조 글씨가 아치형으로 붙어 있습니다. 2001년에는 교회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밀러기념관을 준공했습니다. 유달리 교회 마당에 기념비가 많습니다. 청주 최초(1921년) 한글 비석으로 유명한 '로간 부인(Mary Lee Logan 선교사) 기념비', '교회 창립 100주년 기념비', '기독 청년 운동, 기독 여성 운동, 민주화 운동 기념비', '6월 민주 항쟁 기념비', '기장 총회 유적 교회 지정 기념비' 등에서 민족과 교회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배당 마당은 교회와 붙어 있는 육거리 시장 주차장과 통로로 이용돼 명실공히 마을의 교회가 됐습니다.

청주제일교회 교인들은 일제 침략에 반대하는 의병 활동에 가담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항일 민족운동을 주도했습니다. 특히 김태희 선생은 상해임시정부의 국내 비밀 조직 충북책임자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는데 나중에 장로가 됐고, 일제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망선루(고려 시대 세워진 목조건물)를 보존 운동을 해서 지켰습니다. 이후 망선루는 청남학교와 상당유치원, 야학 등의 민족 교육 운동과 각종 집회, 강연회 등의 사회운동 장소로 사용했습니다.

3·1 만세 운동 당시 3년 옥고를 치른 함태영 목사(1923년 총회장, 1952년 부통령 당선)가 1921년부터 1928년까지 청주제일교회에서 사역했습니다. 신사참배 거부로 청남학교가 문을 닫는 와중에 박상건 담임목사가 경찰의 사찰을 받다가 만주로 망명하는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청주제일교회는 해방 혼란기에 반공 투쟁을 벌였고, 1970~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는 유신헌법 철폐 및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산실로 큰 버팀목 역할을 했습니다. 각종 강연 등 많은 반정부 집회와 문화 행사장 역할을 톡톡히 했고, 청년들은 구하기 힘든 서적과 문건, 자료를 몰래 돌려 보고 확산시켰습니다. 반정부 집회와 시위를 많이 해 '빨갱이 교회'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교인들의 지지와 뒷받침 속에서 선교의 사명을 수행했습니다.

자료를 보니, 뜻밖에 저와 같이 일한 고 유구영 선생이 이 교회 출신이었습니다. 청주고를 나와 고려대에서 학생운동을 하다 구속됐고, 이후 공장에서 일하며 노동운동을 시작하고 1985년부터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노동자들을 교육하고 조직했습니다. 너무 무리를 해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민주노총 출범의 산파역을 했습니다. 또 청주제일교회는 묵방교회, 화죽교회, 청안교회, 덕촌교회, 보은교회, 옥천읍교회, 우암교회, 부강중앙교회, 용정교회, 용암교회, 외평교회, 대전제일교회, 북문교회, 동부교회, 남산교회, 장암교회 등을 개척한 충북의 모교회입니다. 우연히 읽은 청주제일교회 소식지 <육거리 편지> 24호(2018년 12월 발행)에 미래 교회의 좌표가 잘 제시돼 있었습니다.

"(전략) 그럼 우리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그 핵심이 바로 '마을(지역사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동네 사람과 동네 이야기가 모이는 마을'의 플랫폼(소통의 공간)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회당'이나 마을 공터와 같은 역할이겠죠. 그리고 교회는 마을 속 놀이터가 되고 쉼터가 되고 상담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마을에서 지역사회에서 그러한 역할을 외면한다면 우리 교회는 결코 건강한 교회, 지속 가능한 교회로 발전해 가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략)"

우리 크리스챤아카데미가 목회자를 교육하는 관점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글쓴이를 보니 세상이 참 좁았습니다. 민주화 운동 시절 만났던 후배 박종희 권사였습니다. 전화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습니다. 이렇게 청주제일교회는 선교적 교회로서 새로운 길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청주제일교회를 세운 민노아 선교사가 지은 찬송가 중 '공중 나는 새를 보라'(새찬송가 588장)가 있습니다. 이 찬송가 1절에는 학교 교육을 출세와 성공 수단으로 여기는 시대에 우리 모두가 깊이 음미해야 할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농사하지 않으며
곡식 모아 곳간 안에 들인 것이 없어도
세상 주관하시는 주님 새를 먹여 주시니
너희 먹을 것을 위해 근심할 것 무어냐"

*'그림으로 만나는 한국교회'는 매월 2차례 업데이트됩니다.

이근복 / 목사,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을 거쳐 현재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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