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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이 빛낸 강화중앙교회
[그림으로 만나는 한국교회] 강화중앙교회
  • 이근복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8.11.30 22:28

1970년 11월 13일, 오후 2시 경, 청계천 국민은행 앞길.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기독 청년 전태일의 마지막 절규였습니다.

창동 창현교회에 출석하던 어머니 이소선의 소개로 삼각산 기슭 임마누엘수도원 신축 공사장에서 일하며 지내던 전태일은 죽음을 염두에 두고 갈등 끝에 오랜만에 일기를 썼습니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 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중략)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 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 치오니, 하나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1970년 8월 9일)

전태일 분신 사건은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 시절, 우리 사회, 특히 대학생들과 지식인, 종교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민중 선교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22세에 분신한 아들이 하지 못한 일들을 실현하기 위해 평생 노동자들의 대모로 치열하게 살다가 2011년 9월 3일에 별세하였습니다. 많은 이가 애도한 대학로의 추모 행사에서 추모사를 한 저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의 아들 곁에 안장할 때 설교를 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기독 청년 전태일'이란 묘비가 참 자랑스럽습니다.

10월 20일, 제3기 한국 기독교 문화유산 해설사 양성 과정으로 강화 지역 기독교 유적을 답사하였습니다. 강화중앙교회에서 강화기독교역사연구소장 이은용 장로께서 이 교회 교인이었던 이동휘 선생과 조봉암 선생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해마다 11월이면 노동자들이 추모하는 전태일 기독 청년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한국교회의 자존심입니다.

강화중앙교회 예배당. 이근복 그림

강화도는 기독교인 비율이 주민 6만 8000명 중 2만 1000명으로 31%나 된다는데, 마을 이장보다 목회자가 더 많은 것으로는 설명이 안 되고 신실했던 평신도들의 존재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동포여 예수를 믿으라. 나라를 구할 수 있는 길은 이 길밖에 없다. 그리고 자식을 교육시키라. 교육을 안 시키려면 차라리 낳지를 말라."

이동휘 선생이 연설을 할 때, 군중은 눈물을 흘리며 공감했다고 합니다. 1902년 강화도 진위대장으로 부임한 그는 일제에 대응하지 못하는 대한제국 군부에 대한 회의와 깊은 좌절 가운데 지휘관직을 사임하고, 궁극적인 관심이었던 민족 해방의 방편으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습니다.

강화중앙교회에 재산을 헌납하고 '강화의 바울'이 된 그는 1904년, 민족운동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보창학교를 설립하여 학생들에게 군사훈련을 시켰고, 강화 전 지역을 다니며 민중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72개 학교를 세웠는데 32개는 교회 내에 자리 잡았습니다. 1907년 7월 일제가 군대를 해산하자 진위대원들과 잠두교회 교인들과 함께 의병 운동을 이끌었는데, 이때 잠두교회의 김동수, 김남수, 김영구 세 형제가 일제에 의해 처형당합니다.

서울에서 잡혀 4개월간 옥고를 치르던 중 미국 선교사 벙커의 주선으로 석방된 이동휘 전도사는 1908년 서북학회에 참여하였고, 안창호 등과 더불어 비밀결사 '신민회'를 조직하였으며, 105인 사건으로 3년간 황해도 무의도에 유배됩니다.

1912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한인사회에서 독실한 전도사로 활동하였고, 연해주에서 신채호 등과 함께 민족 해방 투쟁에 적극 나서다가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에는 민족운동에 사회주의를 접목하기 시작했습니다. 1919년 3·1 만세 운동 후 상해임시정부 국무총리가 되었지만 이승만 등과 갈등하다가 임시정부에서 이탈하여 고려공산당을 창당하였고, 시베리아에서 활동하다가 1935년에 병사합니다.

죽산 조봉암 선생은 1898년 강화에서 태어나 강화군청에서 잠시 일하였습니다. 강화중앙교회 교인이 된 그는 교회 청년들과 1919년 3·1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했고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을 복역하였습니다. 1919년 3월 18일, 이진형 목사와 유봉진 권사 등의 지도하에 주민 1만여 명이 참여한 만세 시위 운동은 한 달 넘게 강화 전역을 휩쓸었으며, 재판에 회부된 43명은 대부분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서울 경성YMCA에서 1년 동안 공부할 때 여운형, 이승만, 김규식 등을 만났습니다. 소련으로 건너가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을 2년 수료하고 소련·중국·만주 등을 오가며 공산주의 노선에서 독립운동을 하였습니다. 1932년 상하이에서 체포되어 국내로 송환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7년간 복역한 후 인천에서 노동단체를 조직하다가 검거되었지만 해방으로 석방되자 사상 전향을 하였습니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헌법기초위원장으로 헌법 제정에 참여하였고, 대한민국 초대 농림부장관이 되어 농지개혁을 성사시켰습니다. 제2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30% 지지를 받아 파란을 일으킨 결과, 이승만 정권의 음모로 사형선고를 받고 교수형에 처해집니다. 2011년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복권되었습니다.

강화도 감리회의 씨앗은 제물포에서 주막을 운영하던 이승환이 뿌렸습니다. 1892년 존스(George H. Jones) 선교사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그는 어머니를 전도하였습니다. 그는 이듬해 존스 선교사를 초청하여 보름달이 빛나는 밤에 배 위에서 어머니와 함께 세례를 받음으로 교산감리교회를 시작하였습니다.

권사 이승환은 매서인이 되어 인근 도서 지역을 돌면서 복음을 전하였는데, 성리학이 성행하고 왕실과 관계가 밀접한 봉건적인 강화도였지만 들불처럼 복음이 확산됩니다. 민족 독립운동에 교회가 앞장섰고, 존경받은 평신도 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화중앙교회를 개척한 이들은 강화의 두 번째 교회인 홍의교회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주선일, 박성일, 허진일, 김봉일 등에 의해 1900년 9월 1일, 강화성 내 최초 교회인 잠두교회(강화중앙교회의 옛 이름)를 창립한 것입니다.

이들의 '일'이란 돌림자 이름은, 아직 양반 의식이 남아 있고 가문과 족보를 중시하던 시절에 예수 안에서 한 가족, 한 형제임을 결의한 것입니다. 거듭남과 헌신, 결연한 의지와 공동체성이 담겨 있습니다. 교회가 세운 '잠두의숙'과 '제일합일여학교'는 나중에 통합되어 오늘의 합일초등학교로 존재합니다. 강화중앙교회는 월곶교회 등 26개 교회를 개척하거나 설립을 지원하여 강화의 예루살렘 교회라고 일컬어집니다.

1914년에 강화 최초의 서양식 벽돌 교회를 신축한 강화중앙교회는 2000년, 노트르담성당풍으로 예배당을 건축하여 민족사에 기여한 찬란한 역사를 품고 언덕 위에 아름답게 서 있습니다.

*'그림으로 만나는 한국교회'는 매월 2차례 업데이트됩니다.

이근복 / 목사,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을 거쳐 현재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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