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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출한 작품, '전주서문교회'
[그림으로 만나는 한국교회] 전주서문교회
  • 이근복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8.11.16 16:47

전주서문교회를 만나는 두 길이 있습니다. 전주 예배당에 가거나, 정림건축문화재단에서 나온 건축가 김정철 선생의 책에서 건축 철학과 사진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둘 다 참 좋습니다.

10월 12일, 전주역에서 버스를 타고 전주서문교회로 갔습니다. 화창한 가을, 넓은 교회 주차장을 가로질러 우람한 종탑을 지나 정문 앞에 서니, 걸출한 벽돌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당의 고풍스런 종각에서 예배당을 바라볼 때, 이정구 교수의 말이 실감 났습니다.

"교회 건축물과 세속적인 건축물과의 차별성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영성이 촉발하도록 설계된 양식과 공간인 것이다." (이정구, <한국교회 건축과 기독교 미술 탐사>, 140쪽)

때마침 교회 탐방을 온 이들 틈에 끼어서 '서문역사관'에서 긴 역사를 더듬어 보았습니다. 1893년 미국 남장로교 레이놀즈 선교사가 파송한 정해원 씨가 은송리에 예배 처소를 마련하고 복음 전파를 시작하면서, 호남의 첫 교회인 전주서문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한국교회사의 특징인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복음 수용과 전도 활동이 그대로 구현되었고, 초기 선교 모델인 교회-학교-병원 사역이 충실히 이루어져서, 1897년 예수병원, 1900년 신흥학교, 1902년 기전여학교가 세워졌습니다. 나중에는 선교사 묘역도 조성되었습니다.

1908년 전킨 담임목사가 별세하자 레이놀즈 목사가 부임하였습니다. 전킨 목사의 아내 메리 레이번이 미국에서 남편을 기념하는 종을 보내자 교회는 종각을 건립하여 달았습니다. 한옥 종각은 잘 보전하였지만 종은 일제 말기 공출로 빼앗겨 다시 만들어 달았고 서문교회 상징이 되었습니다. 주보 겉장에 종각 사진이 있고, 서문교회 아이콘도 종각이었습니다.

전주서문교회 예배당. 이근복 그림

일제강점기에 교회를 빛낸 분은 김인전 목사와 배은희 목사입니다. 1914년, 담임목사로 부임한 김인전 목사는 전주 지역의 3·1 운동을 총지휘한 후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에서 의정원 의장을 맡았습니다. 1921년 부임한 배은희 목사는 평양신학교 만세 운동을 주도했고, 부임 후 교육과 농촌 부흥 운동에 힘쓰며 신간회 전주지부장을 했고, 해방 후 1946년에 예장 총회장으로 수고하였습니다. 지금 크리스챤아카데미에서 함께 일하는 배경임 실장은 증손녀입니다.

평신도 거목들이 많았습니다. 이보한 집사는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양반 사회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앞장섰고, 평생 봉사하며 살았습니다.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라는 찬송가 후렴을 부르며 노방전도에 힘써 '자유인 이거두리'라고 불렸고, 3·1 만세 운동을 이끌어 옥살이를 했습니다. 60세에 세상을 떠났을 때 나무꾼, 걸인들이 돈을 모아 묘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방애인 선생은 기전여학교 교사로 평일에는 방과 후 거리에서 빈민들을 돌보았고, 전주고아원을 설립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달하는 모범이 되었습니다. 몸을 돌보지 않고 고아를 사랑하다가 장질부사에 걸려 1933년에 별세하였을 때, 전주 역사상 초유의 '여성장'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현재명 선생은 찬양대에서 헌신하였고,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학내 데모 진압 과정에서 희생당한 전북대 2학년 이세종 학생은 대학부 회원이었습니다. 복음 전도에 열정적인 서문교회는 남문밖교회, 전주완산교회 등 10개 이상의 교회를 분립 개척하였습니다.

11월 2일, 정림건축문화재단으로 가는 자하문로는 은행잎이 곱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8길로 접어들자 노랗게 단장한 자작나무와 짙푸른 대나무가 맞아 주었습니다. 책으로 가득 차 있는 1층에서 찾아온 뜻을 전하니, 직원이 친절하게 <김정철과 정림건축 1967~1987>(프로파간다)을 가져왔습니다. 알고 보니 전주서문교회는 외환은행 본점과 더불어 김정철 선생의 대표작이었습니다.

"호남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였던 전주서문교회는 김정철의 교회 작업 가운데 가장 자유로운 형태를 취하고 있다. 여유로운 대지 규모는 건물의 형태와 규모를 제약하지 않았다. (중략) 이전 교회 작업과 가장 다른 점은 빛의 조작이다. 세심하게 고려된 음향과 빛의 상징적인 효과를 더한 것이다. (중략) 서문교회의 빛은 대부분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거친 벽돌 벽을 비춘다. 이 빛은 조도를 위한 빛이 아니라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서문교회는 건축가이자 신앙인으로서의 개인을 읽어 낼 수 있는 대표적인 작업이다."

1993년 완공한 교회 사진을 살펴보다가 지난 방문에서 예배당 안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건축에는 문외한이지만 정시춘 선생이 소개한 '롱샹성당'의 빛과 비교되었습니다. 이 성당을 설계한 르 꼬르뷔제가 1955년 한 주교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이 예배당을 건축함에 있어 침묵의 장소, 기도자를 위한 장소, 평화의 장소 그리고 영적 기쁨의 장소를 창조해 내기를 원했다." (정시춘, <세계의 교회 건축 순례>, 70쪽)

전주서문교회 건축에 대한 김정철 선생의 의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전주시의 전통적이고 정정한 가로 분위기와 친화감을 갖도록 특별한 축선과 정면성이 없는 조소적 형체의 건축을 시도했다. 벽돌이 모여 작은 매스를 이루고, 이 작은 매스가 모여 하나의 교회 공동체의 형태를 이룬다. 이러한 조형은 8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이 교회의 고난의 발자취를 상징한다. 내부는 강단 상부의 종탑에서 쏟아지는 빛이 예배 공간의 정점인 말씀의 자리를 더욱 신성화시키고, 창에서 흘러들어 온 부드러운 채광과 더불어 신앙적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광장에 복원 배치된 옛 종탑은 친교의 외부 공간을 더욱 구심화시킨다."

20년간 지은 후암장로교회, 인천제일교회, 노량진교회, 연세대학교 100주년기념관, 기독교순교자기념관 등은 대부분 가 본 곳이었지만, 누가 건축했는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예배했다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책에 아는 분 글이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정림건축문화재단 이사장 나들목교회 김형국 목사인데 '선대의 어깨 위에 서서'란 서문을 썼습니다.

"나의 선친이신 건축가 김정철과 정림건축이 1967년부터 20년 동안 남긴 유산을 정리한 이 책이 나오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아버님은 늘 '건축은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건축은 홀로 빛나는 작업이 아니라 함께하는 일이다'라는 말씀을 해 오셨는데, 당신의 인생을 바친 건축 작업과 '정림'이라는 건축 집단을 세워 간 이야기가 처음으로 제대로 정리되고 조명을 받게 되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중략)

30가지 음식 재료를 넣어 맛을 내는 전주비빕밥처럼 전주서문교회가 '온 문화'로 불리는 문화도시에서 다른 교회들과 더불어 전주시민들을 진정으로 섬기면, 김정철 선생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림으로 만나는 한국교회'는 매월 2차례 업데이트됩니다.

이근복 / 목사,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을 거쳐 현재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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