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국 사회 반동성애 운동 최전선에는 개신교가 있다. 성소수자 그리스도인과 함께하는 극소수 교회를 제외하고, 한국교회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한결같이 '동성애 반대'다. 반동성애 운동에 '올인'한 이들은, 동성애를 반대하지 않으면 교회를 망치는 불순분자, 이단, 가짜 기독교인으로 취급한다.

성소수자 이슈를 찬반 논리로 보면,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 목소리만 크게 들린다. 하지만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채 중간자적 태도를 보이는 개신교인도 많다. 퀴어 문화 축제가 다가오고 양쪽의 움직임이 격화할 때도, 가운데에 낀 개신교인들은 어느 한쪽 편도 들지 않고 방관자 자세를 취한다.

성소수자를 극렬하게 반대하지 않으면서, 그들을 환대하지도 않는 집단. 이 중에는 그동안 사회 이슈에 꾸준하게 목소리를 내 온 사람 혹은 단체도 있다. 이라크 파병, 광우병 사태, 한미 FTA, 4대강 사업, 세월호 참사, 국정 농단까지, 그리스도인의 '복음 전도'와 '사회참여'의 균형을 강조해 온 이른바 '복음주의 운동 진영'이다.

이들의 침묵이 오히려 반동성애 진영에 힘을 보태 줬다고 분석하는 사람이 있다. 성소수자 그리스도인 당사자인 문화 연구가 시우 씨는 최근 출간한 <퀴어 아포칼립스>(현실문화)에서, 사회참여적 복음주의권이 성소수자 이슈에 침묵해 왔고, 이 침묵이 소수자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지적한다. 그동안 한국교회와 동성애를 논하면 반동성애 운동의 폭력성만 조명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책은 사회참여적 복음주의 진영의 부재를 언급한다.

문화 연구가 시우 씨는 저서 <퀴어 아포칼립스>에서 한국교회가 어떻게 반퀴어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지 지형도를 그렸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흔히 사회참여적 복음주의권 혹은 개혁적 보수라고 불리는 이들은 제도적 민주화가 달성된 1980년대 후반부터 보수 개신교회 내부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사회참여적 복음주의권은 보수 개신교회가 기복신앙과 성장주의에 몰두해서 사회문제를 외면해 왔음을 비판하면서 그리스도인의 공적 책임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 냈다. 이 과정에서 설립된 대표적인 단체로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1987), 복음과상황(1991), 새벽이슬(1997), 뉴스앤조이(2000), 성서한국(2002), 교회개혁실천연대(2002) 등이 있다(괄호 안은 창립 연도)." (83쪽)

<퀴어 아포칼립스>는 전반부에서 한국교회 반동성애 운동 지형도를 그린다. 대형 교회, 주류 교단과 손잡고 움직이는 대규모 '반퀴어 운동', 반퀴어 운동과는 결을 달리하는 '탈동성애 운동', 그리고 성소수자와 함께하는 그리스도인들. 저자는 이 지형도에서 사회참여를 강조해 온, 신학적으로 보수 성향을 띠는 복음주의권의 자리는 없다고 설명한다.

학부에서 심리학과 사회과학을 전공한 시우 씨는 '한국 퀴어 장의 형성'이라는 주제로 2016년 석사 학위를 받았다. 처음부터 이 주제를 연구할 생각은 없었다. 2014년, 한국교회가 서울 신촌에서 열린 퀴어 문화 축제에 반대자로 급부상하는 모습을 보며 주제를 바꿨다. 사회 전반에서 개신교와 퀴어(Queer)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는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끄는 주제였기에 연구 욕심이 났다.

<퀴어 아포칼립스>는 시우 씨의 논문을 다듬어 낸 책이다.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8월 28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저자를 만났다. 그는 '복음주의'를 강조하는 대학생 선교 단체에서 수년간 신앙생활하며, '성소수자'와 '그리스도인' 두 정체성을 잇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시우 씨는 한국교회에서 퀴어 이슈를 꺼내 논의할 수 있는 조금 더 안전한 공간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했다.

- 퀴어 당사자이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대학교 선교 단체 활동 경험을 책에서 언급했다. 사회참여도 강조하는 선교 단체로 알고 있는데, 단체 구성원들에게도 커밍아웃을 했나.

3학년 때 리더가 됐는데, 본격적인 활동 전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해 커밍아웃했다. "성 정체성이 중요하긴 한데, 선교 단체 활동이나 신앙생활에 걸림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포용적으로 말해 준 사람도 있었고, "죄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른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그 다음 단계"라는 말로 합의를 이끌어 가려던 사람도 있었다. "네가 그렇다니 뭐라 할 말은 없다만, 나는 조금 더 기도해 봐야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에도 선교 단체에서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단체를 나가는 방식으로 처리하는 움직임은 분명 있었다. 다만 지금처럼 교단과 신학교에서 성소수자의 출교를 제도화하거나 징계 수위를 논의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지만, 지금과 같지는 않았다.

매해 서울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는 서울광장에는 한국교회가 주도하는 반동성애 국민 집회가 열린다. 사진에서도 파란색 천막을 기점으로 양쪽이 나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교계에는 여전히 "당신이 그렇게 사는 것을 뭐라고 하지는 않지만, 나에게 동의를 구하려 하지 말라"며 판단을 유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당사자들은 어떤 영향을 받는가.

물론 모든 사람에게 퀴어가 가장 중요한 이슈는 아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과 환경이 다 다른데, 모든 기독교인이 퀴어 이슈를 놓고 똑같은 온도, 똑같은 방향으로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교회가 처한 상황을 봐야 한다. 대부분 교회는 퀴어 집단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경험이 전혀 없고, 이런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공간도 없다. 다양한 방식의 반퀴어 운동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상황이다. 이런 환경에서 "나는 판단을 유보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비교적 안전한 위치에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더 비판적으로 말하면, 주류 교회가 격렬하게 반퀴어 운동에 동참하는 상황에서 "나는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빠지는 것은, 결과적으로 반퀴어 운동에 힘을 실어 주는 행동이다. 반퀴어 운동은 성소수자에 대한 논의 자체를 봉쇄해 버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신뢰를 바탕으로 대화할 수 있는 '사이 공간'을 파괴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고민·생각할 필요도 없이 반퀴어 운동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반퀴어 운동에 적극 동참하지 않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부도덕하고 신앙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매도한다. 이렇게 격렬한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데 "나는 판단을 유보하겠다"는 것이 정말 중립적인가 고민해 봐야 한다. 여기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미 기울어진 판 위에서 의견을 표명하지 않겠다고 한 발 물러서는 게 공평한 태도인지 묻고 싶다.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퀴어 현장에서 복음주의권 단체를 마주한 적은 없었다. 소수의 복음주의권 활동가들이 퀴어 현장에 개별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단체 차원에서 연대를 모색하는 일은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퀴어 집단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올바르지 않으며 퀴어 집단을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원칙마저도 분명하게 제안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복음주의자들에게 퀴어 이슈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무관심하게 방관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보수 개신교회가 신앙을 명분으로 내세워 사회적 소수자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89쪽)

- 책에서는 '사회참여적 복음주의권'의 부재를 짚는다.

나도 그쪽에서 활동해서 그런지, 사회참여적 복음주의권에 성소수자 인권에 있어 기성 교회와 다른 목소리를 낼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다고 봤다. 이들은 보수 개신교회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왔기 때문에, 성소수자 이슈에서도 일정 부분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지금 사회참여적 복음주의권은 손 놓고 남의 집 불구경하는 듯한 태도다. 결국 자기 집이 타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침묵도 신호고 메시지다. 그들의 침묵은 '교회는 당신의 문제에 관심 없다', '그건 당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지 우리 문제가 아니다', '그 고통은 우리의 고통이 아니고, 당신은 우리의 이웃이 아니다'는 메시지다. 자신을 숨기고 교회에 헌신한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의 존재를 모두 지워 버리는 행동으로 보일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만난 사람 중, 판단을 유보하는 이들은 학습과 배움의 과정이 남아 있기에 입장을 유보하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나는 더 이상 이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는 당연히 적대와 차별을 강화하는 효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소수자들에게는 상처, 고통, 분노가 된다. 길에서 반동성애 구호를 외치고 설교하는 이들만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우는 게 아니다.

반퀴어 운동의 부정적 효과 중 하나가 전체 인식의 하향 평준화다. 성차별·인종차별 등 모든 소수자 차별의 핵심은 권력 관계다. 내가 지닌 권력 정도에 따라 삶의 풍경이 완전히 달라진다. 똑같은 이슈를 논의한다 해도, 논의 주체가 지닌 권력과 영향력에 따라 그 주장이 미치는 사회적 효과도 당연히 다르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배타적이고 위계적인 관계 너머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사이 공간'이 꼭 필요하고 그 경계를 더 확장해야 한다. 하지만 사이 공간은 차별과 폭력은 용인할 수 없다는 명확한 합의가 있을 때 만들 수 있다. 차별과 혐오, 폭력을 표현하는 이들의 문제를 명확하게 지적하지 않고 가운데 진영에서 논의를 확장하자는 말은, 폭력이 발생하는 구조를 바꾸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교회에서는 '탈동성애 운동'도 소수에 속한다. 주류 교단과 손잡은 반동성애 진영은 '탈동성애'처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진영과도 따로 집회를 진행해 왔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책 2장 '따로 또 같이'에서는 한국교회 반동성애(반퀴어) 집단과 탈동성애 집단의 간극을 보여 준다. 책에서는 탈동성애 집단이 주최하는 집회의 메시지가 조금 더 이성적이고 알아듣기 쉽기 때문에, 개신교 집단이 더 받아들이기 쉬울 것이라 진단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반퀴어 진영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한다. 왜 그렇다고 보는가.

퀴어 집단을 함부로 대해도 됐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퀴어 집단을 직접 만나 본 경험도 없고, 과학적 연구도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고,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비논리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퀴어 집단이 그런 소리를 들어도 괜찮다고 믿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개신교 내에 건강한 공론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교회가 내적으로 굳건할 때에는 사회에 낯선 변화가 찾아와도 이 문제를 어떻게 신앙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지 다양하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그렇게 발전해 왔으니까. 하지만 지금 한국교회는 내부적으로 전혀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반퀴어 집단이 교회를 한쪽 방향으로만 밀고 있는 모습이다.

신학계에는 동성애와 관련한 성경 구절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논의가 이미 많이 축적됐다. 다른 설명이 가능하다는 걸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성경에 쓰인 문자 그대로만 보길 원한다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 한 가지는 같이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소수자를 향한 사회의 차별과 폭력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다양성 속에서 어떻게 일치를 만들어 갈 수 있을지, 평등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그 과정에서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해 보자는 거다.

동성애와 관련한 논의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말은 중요하지 않다. 개인 입장을 밝히는 게 아니라, 지금 벌어지는 이 사회적 고통에 교회가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 답해야 한다. 소수자가 구조적 어려움에 고통을 받고 현실의 부조리를 마주하고 있는데, 교회가 어떻게 이들의 아픔에 응답할 수 있을지 좀 더 확장된 논의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있다.

"성서는 벽을 쌓는 일이 아니라 다리를 놓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서로 원수가 되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하느님의 한 가족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에베소서 2장 14절에 '담을 헐어 버렸다'는 표현은 십자가 사건이 '우리'와 '그들'을 구분 짓는 경계를 무너뜨렸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이 화해하고 평화를 이룬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기억할 때, 보수 개신교회가 퀴어 변화를 막는 최후의 벽이 된다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95~96쪽)

<퀴어 아포칼립스> / 시우 지음 / 현실문화 펴냄 / 312쪽 / 1만 6000원. 뉴스앤조이 이은혜

- 책 내용 중 교회 이야기가 꽤 많이 들어갔는데, 제목에서는 교회를 언급하지 않았다. <퀴어 아포칼립스>라는 제목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교회가 이 이슈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주체라고 상정하고 싶지 않았고, 교회와 퀴어가 서로 대척점에 있는 구도로 보이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종말은 모든 시스템이 다 붕괴한 뒤 폐허에서 산다는 맥락이 아니다. 종말이 오면 새 하늘과 새 땅을 주신다고 하지 않았나. 새로운 세상은 우리가 마주한 현실과 가치가 무너질 때에야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해, '아포칼립스'라는 제목을 선택했다.

- 이 책은 어떤 독자를 염두에 두고 썼는가.

우선 연구 참여자들이 잘 읽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다. 또 하나는 지금 변화를 마주하는 그리스도인들이다. 현재 교계에는 반퀴어, 반동성애 운동을 정당화하는 책이 훨씬 많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퀴어 이슈에 대해 의미 있는 고민을 하면 좋겠다. 나와 내가 속한 교회가 차별과 혐오의 문제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지 성찰하는 계기가 된다면 바랄 게 없겠다.

또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는 퀴어 집단이 읽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의 오늘이라 생각하고 썼다. 한국 사회에서 퀴어 집단이 경험하는 사회적 배제, 혐오, 폭력은 사회 불평등을 바꿀 수 있는 통찰을 제시한다고 본다. 지금 이 과정을 성찰하면서 앞으로 또 다른 선택의 순간이 올 때 어떤 고민을 할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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