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부끄러운 줄 아세요. 본인 자식이 당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모른 척하지 마시라고요. 진짜 부끄러운 줄 아세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최기학 총회장) 부산동노회(정일세 노회장) 봄 노회가 열린 창대교회 주차장에서 한 청년이 소리쳤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휴식 시간에 나온 부산동노회 소속 목사·장로들은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서로 웃으며 대화하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증발했다. 교회 소속 장로가 나와 "여기서 시끄럽게 하면 절대 안 된다"며 청년을 서둘러 말렸다.

부산동노회 봄 노회가 열린 4월 17일, 청년 6명은 피켓 시위를 진행했다. 피켓에는 '사직 처리 허락해 준 부산동노회 사과하라', '사직하면 그만이냐! 목사 직분 파면해라', '예장통합 장청 임원 2차 가해 사과하고 사퇴하라', '부산동노회는 성범죄자 제대로 치리하라'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부산 이 아무개 목사 성추행 사건 피해자와 그 조력자들이 피켓을 들었다. 사진 제공 기독교반성폭력센터
노회원 300여 명은 청년들 요구에 큰 관심이 없었다. 사진 제공 기독교반성폭력센터

청년 6명은 부산동노회 소속이었던 성폭력 가해자 이 아무개 목사 사건의 피해자와 그 조력자들이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는 <뉴스앤조이> 최초 보도 무렵부터 피해자들을 지원해 왔다. 심리 상담 및 법률 지원을 했고, 이번 피켓 시위에도 참여했다.

피해자가 얼굴을 드러내고 시위를 진행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들은 노회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이 말을 전달하기 위해 꼬박 12시간 자리를 지켰다.

현재 피해자 4명에게 형사 고소를 당한 이 아무개 목사는, 언론을 통해 사건이 드러나자 노회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노회는 이 목사를 사직 처리했다. 노회장은 사건을 빠르게 처리해 달라는 요구가 있어서 사직서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사직 처리는 피해 당사자들이 원하는 치리 방식이 아니었다. 청년들은 이 목사가 '사직'이 아닌 '면직' 처분을 받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본인이 목사직을 그만두는 것과 공적 기관이 면직 처분을 내리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노회는 사직이나 면직 모두 목사직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라며 선을 그었다. 이미 사직한 사람에게 면직 처분을 내리는 것은 어렵다고 반응했다. 이 목사 징계 과정에 피해자 목소리는 없었고, 이들은 결국 요구 사항을 적어 봄 노회가 열리는 교회까지 오게 됐다.

피해자와 조력자들은 노회가 이 목사를 면직 처리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사진 제공 기독교반성폭력센터

피켓 시위를 하면서 만난 일부 노회원 역시 청년들에게 "이 목사가 구속되면 다 된 거 아니냐. 굳이 노회에 '면직'을 요구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다.

피해자와 조력자들은 "이 목사가 사회 법으로 판결을 받는 것과 별개로 교회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 또 다른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도록 교회가 움직여야 한다"고 답했다.

당사자들은 피켓 시위 전까지 여러 상황을 겪었다. 고민 끝에 직접 피해 사실을 소셜미디어에 올렸고, 사건 공론화를 위해 언론사 기자들을 만났다. 상담을 받으러 다녔고, 변호사를 만나 형사 고소를 준비했다. 이 목사는 구속됐다. 피해자와 조력자들의 노력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피해자와 조력자들이 사건 처리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교회와 노회는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 성범죄 목사가 발생한 데는 그가 속한 노회 책임도 있다고 생각해, 당사자들은 노회에 사건 해결을 요청했다. 직접 전화해 개인 번호를 남기는 등 적극 도움을 구했다. 그러나 노회는 반응하지 않았다.

노회는 3월 13일, 피해자들과 면담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봄 노회가 열린 4월 17일까지 피해자들은 노회 임원들에게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노회 안에 처리할 일이 많다는 이유였다. 한 달 넘게 지연된 피해자 면담보다 노회가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사안은 무엇이었을까. 가해자 이 목사가 "일신상의 이유로 목사직을 수행할 수 없다"며 사직서를 제출하자, 긴급회의를 열어 3일 만에 처리한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피켓 시위를 시작하고 10시간이 지나자 정일세 노회장이 나왔다. 청년들에게 조만간 만나자고 말했다. 사진 제공 기독교반성폭력센터
청년들은 봄 노회가 끝날 때까지 피켓을 들었다. 사진 제공 기독교반성폭력센터

임원들은 청년들이 노회원들 앞에서 10시간 넘게 피켓 시위를 진행하자, 그제서야 찾아와 대화를 시도했다. 노회장과 한 임원 목사는 빠른 시일 안에 날짜를 잡고 피해자들 이야기를 듣겠다고 제안했다.

피해자와 조력자들은 부산동노회 노회장을 만나기로 했다. 노회에 사건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한 지 약 2달 만이다. 대화의 장에 화자만 있고 청자는 없을 수 있지만, 이들은 노회가 이번 사건을 처리하면서 놓친 것들을 전하려 한다. 교회 내 성폭력을 해결할 때 노회가 피해자들 의견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이야기할 예정이다.

최유리 / 기독교반성폭력센터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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