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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에게 '페미니즘과 기독교'란?
[인터뷰] 이우고등학교 3학년 권나민·김가윤 학생
  • 이은혜 기자 (eunlee@newsnjoy.or.kr)
  • 승인 2018.04.17 13:57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페미니스트'가 일각에서는 욕처럼 사용되는 시대다. 페미니즘 관련 서적을 읽은 여자 아이돌 가수는 남성 팬들에게 지탄을 받고, 소셜미디어에서 여성 단체 페이지를 팔로우하고 관련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 위기에 몰리는 일이 발생한다.

일부 보수 기독교인에게 페미니즘은 "인본주의의 최고봉"이라고 불린다. 이들은 페미니즘이 교회를 파괴하기 위해 고안된 사상이라고 주장한다. 기독교인 중에는 "페미니즘에 반대한다"를 넘어 "기독교와 페미니즘은 함께 갈 수 없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사람도 있다.

'페미니스트'와 '기독교인'. 누구보다 열심히 두 가지 정체성을 고민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권나민·김가윤 학생은 고등학교 3학년이다. 도시형 대안 학교 이우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들은, 지난 3월 학교에서 열린 학년 회장단 선거에서 '페미니즘'을 앞세워 출마했다. 권나민 학생은 회장으로, 김가윤 학생은 대의원(반장)으로 선출됐다.

두 학생은 기독교인으로서 정체성도 한창 고민 중이다. "너희 기독교인들은 왜 페미니즘 싫어하고 동성애를 반대해?"라는 친구들 질문에 제대로 답하고 싶어, 학교 안에서 '신학자들'이라는 기독교 소모임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권나민(왼쪽), 김가윤 학생과 나눈 대화는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 가운데 진행됐다. 뉴스앤조이 유영

두 사람을 4월 14일 서울 청담동에 있는 페미니즘 북카페 '두잉'에서 만났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자신을 긍정하게 되고, 기독교를 더 자세히 공부하면서 믿음이 깊어졌다는 두 학생과 대화를 나눴다. 부끄러움 많은 두 학생과 시작한 인터뷰는 유쾌하면서도 때로는 진지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 '페미가 있어야 학교가 산당 - 페미당'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회장에 당선됐다고 들었는데요. 과정을 소개해 주세요.

권나민 / '페미가 있어야 학교가 산당'을 줄여 '페미당'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친구들끼리 '미투 운동' 관련 집회 참석했다가 집회에서 느낀 것들 이야기하면서, 그 좋은 기운을 학교에서도 계속 이어 가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어요. 학교 복도에 페미니즘 그림과 포스터를 걸고 곳곳에 스티커도 붙이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좋더라고요.

마침 학년 회장 선거가 있었는데 선거 준비 과정에서 담론만 형성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가볍게 '페미당' 외치면서 나간 건데요. 우리끼리 대화하고 담론을 구축하는 과정이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멋진 거예요. 다들 고3이 되면서 사회가 정한 고3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상처받고 힘들어하면서 진짜 나의 모습과 균열을 느끼고 있었는데, 우리끼리 선거 준비하면서 회복되는 것 같았어요.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감각을 되찾는 느낌이었어요. '고3을 살아갈 힘을 얻은 것 같다'는 말이 모아지면서 "이대로 그냥 끝내면 아쉽겠다. 당선까지 노려 보자" 으쌰으쌰 했는데 당선까지 됐어요.

- 특별한 공약 같은 게 있었나요.

권나민 / 선거에서는 누가 공약을 가장 세련되게 뽑는지, 얼마나 감각적인 말로 시선을 끌고 가는지가 중요하잖아요. 저희는 오히려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꼈어요. 페미당 모토가 '각자를 인정하면 각자의 개별성을 인식하게 된다. 개인의 파편화·고립화를 지양하고 개별화를 지향한다'였어요. 우리는 개별적 영역에서 개별적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에요.

예를 들면 우리 학년이 14기인데, 14기 전체를 한 집단으로 보고 "아 요새 14기는 이래" 하면서, 뭔가를 예측하고 결과를 제시해 준다는 태도가 오만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개인을 생각하지 않고 집단만 바라보면 안 되겠다 싶어서 저희는 '공약이 없다'는 게 공약이었죠. 대신 매주 월요일 두 시간, 각 학년회가 '학급 자치'라는 시간을 꾸려 나가는데요. 1년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두 시간을 어떻게 꾸려 나갈 수 있을지 정도만 제안했죠.

- 회장까지 당선된 거 보면 학년에서 골고루 지지를 받았나 봐요.

김가윤 / 페미당은 페미니즘에서 기본적으로 주장하는 것과 고3의 정체성을 연결했어요. 저는 페미니즘이 자기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긍정하는 거라고 받아들이고 있거든요. 사회에서는 "여자는 여성스러워야 해. 남자는 남성다워야 해"라고 하잖아요.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난 여성스럽지 않지? 왜 난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남성과 다르지?"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부정하거든요.

고3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고3은 공부해야지, 독서실에 가야지, 대학교 입학 준비해야지" 등 사회의 시선이 있어요. 페미니즘은 그 사회적 시선이 아닌 '나'를 긍정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아요.

권나민 / 고3은 분명 학교에서 소외되는 부분이 있어요. 고등학교 입학해서 1·2학년 때는 열심히 활동하고 달려 온 친구들이 "고3은 체육대회 준비위원 하지 말고 가서 공부해", "고3은 축제 보지 말고 가서 공부해야지"라는 이야기를 들어요. 이런 데에서 공허한 느낌을 받는 친구가 많았죠. "여자는 이래야 하고 남자는 항상 이래야 해"라는 시선에 갇혀 있다가 고3도 비슷한 시선으로 평가받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정된 이미지로 나를 평가하면서 "너 고3이잖아"라는 말을 듣죠. 이런 고정관념을 페미니즘으로 풀어 생각한 거예요.

우리가 선거 과정에서 '스스로의 감각'을 중요하게 이야기했는데요. 가령 내가 머리가 길고 치마를 입고 화장했다고 해서, 사회가 내게 기대하는 여성성에 순응한 건 아니에요. 스스로 내가 원하는 모습을 주체적으로 구성해 낸 거죠. 같은 맥락에서 내가 독서실에 가서 공부하고 축제에 참여하지 않는 건 공부에 몰입하는 감각이 좋아서인 것이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머리가 뜨거워지고 볼이 빨개지는 느낌이 좋기 때문이지, 고3이어서가 아니라는 내용을 접목했어요. 친구들이 고3이 되면서 과거의 나와 지금 고3의 나 사이의 괴리감을 느끼면서 많이 두려워했거든요. 사실 그런 건 없고 그 모든 일상이 나였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김가윤 학생은 "페미니즘을 배우면서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심이 더 깊어졌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유영

-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김가윤 / 2016년 강남역 사건 때, 저희는 막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요. 그때 고3 선배들이 학교에 대자보도 써 붙이고, 영상도 제작해서 함께 보고 그랬어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페미니즘 이야기가 나왔죠. 다들 제대로 알기 위해 공부해야겠다는 분위기가 있었고, 그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접한 것 같아요.

권나민 /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학년 친구들과 페미니즘 소모임에서 <나쁜 페미니스트>·<빨래하는 페미니스트>·<양성평등에 반대한다>·<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등 관련 책을 읽고 발제하면서 페미니즘을 배웠어요.

- 사회에서는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메갈'이라 욕하면서 비난하는 일이 잦은데요. 두 분은 이제 막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키워 가고 있잖아요. 두려운 마음은 없나요.

권나민 / 지금은 제 삶의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보내요. 학교에는 페미니즘 관련 전시회 포스터가 붙어 있고, 페미니즘이 궁금하면 달려와서 물어보는 친구들이 있고, 학교 곳곳에 페미니즘 스티커가 붙어 있어요. 아직은 두렵다는 마음보다는 즐거운 작업이라고 생각하며 배우고 있어요.

김가윤 / 저는 두려운 지점이 조금 다른데요. 나민이가 말했듯이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저를 긍정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학교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하지만 곧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그 친구들과 떨어지게 될 거고, 다른 사람들과 섞이다 보면 내 생각이 다시 사회 통념에 가깝게 바뀌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 학교에서 '신학자들'이라는 기독교 소모임도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어떤 계기로 모이게 됐나요.

권나민 / '윤리와사상' 시간에 기독교 관련 주제로 자유 에세이를 쓸 일이 있었어요. 그때 가윤이도 다른 친구들과 함께 한국사 프로젝트 일환으로 기독교가 한국에 와서 어떻게 변화했는지 소책자 형태로 만든 게 있었거든요. 가윤이가 페이스북에 올린 걸 보고 같이 '신학자들'이라는 소모임을 만들자고 했어요. 우리 학교는 페미니즘·동성애 등을 주제로 종종 토론하는데, 일반 학문적 관점이 주를 이뤄요. 저희는 기독교 관점으로 이야기 나누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냥 '학자들'이 아닌 '신神학자들'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김가윤 / 학교에서 기독교를 믿는 학생은 소수예요. 기독교인은 소수인데, 사회에서 기독교 영향력은 크거든요.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놓고 토론하는 시간이 많은데 그럴 때 친구들이 저희에게 많이 물어봐요. "왜 기독교는 동성애를 반대해?", "왜 기독교는 페미니즘과 다르게 말해?"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우리는 교회에서 그런 걸 배우지 않잖아요.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 몫이라 생각했어요. 교회 다니는 친구 중에는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었는데, 마침 학교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들을 만났어요. 나는 기독교가 좋고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잃고 싶지 않은데, 그런 걸 (학교에서) 부정당하다 보니까 기독교를 긍정하고 싶어 모이게 됐어요.

- 교회에서는 페미니즘과 동성애를 다뤄도, 철저하게 반대하는 입장에서 다루는 경우가 많죠.

권나민 / 교회에서 가장 불편했던 부분이었어요. 저는 교회 공동체에서 성경을 '함께' 읽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권위 있는 사람이 말씀 일부만 발췌해서 위에서 아래로 전달하는 방식 말고요.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도 성경 공부를 한다고 하면 우리가 읽으려고 하는 부분이 어떤 시대 맥락에서 쓰였는지, 이를 어떻게 우리 시대에 적용해야 하는지 고민도 없이 그냥 순응과 순종만 이야기했어요. 꼭 그대로 따라 해야 한다는 것처럼요.

학교 후배가 동성애·페미니즘 관련한 주제로 목사님과 싸우고 결국 그 교회를 떠났어요. 주변에 그런 식으로 마음이 닫히는 기독교인 친구들이 많아요. 저도 사실 지금 다니는 교회에 정을 붙이고 있지 못하거든요. 예배에는 참석하는데 말씀에 대한 갈망이 있어요. 우리가 계속 던지는 실존적 고민들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교회에서는 그런 거 얘기하면 안 된다고 선을 그어 버리니까… 언어를 잃은 것같이 답답한 마음이 들어요.

권나민 학생은 지금 한국교회는 조금만 의심해도 '믿음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게 답답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유영

- 둘 다 모태신앙으로 알고 있어요. 교회에서 답답한 적은 없었나요.

김가윤 / 우리 교회 같은 경우 사회 이슈는 거의 언급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편함을 느낀 설교가 최근 한 번 있었는데요. 목사님이 고등부 예배에서 '하나님 믿는 너희가 좋은 대학 가서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시는 거예요. 저는 그게 불편했어요.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성공이라고 생각하는데. 꼭 좋은 차, 좋은 대학 이런 데만 초점을 둔 성공을 말씀하시는 게 너무 불편했어요. 적어도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그런 세속적인 성공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성장해 나갈 수 있는지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중학교 때 여름 수련회에서 반동성애 PPT 보면서 두 시간 정도 교육받은 적도 있었어요. 결국 거기서 나온 이야기는 반동성애 진영이 흔히 말하는 '동성애=에이즈' 뭐 이런 이야기였죠.

권나민 / 저는 지금은 대예배에 참석해요. 교회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게 답답해요. 신앙이 있는 다른 친구에게 저의 신앙적 고민들을 이야기하면, 꼭 제가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처럼 "어떻게 의심할 수 있어?"라는 시선으로 봐요. 하지만 전 그런 의심이 필연적이라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교회는 그런 의심의 과정을 전면 부인하고 '어떻게 감히'라는 태도로 나와 버리니까 어쩔 수 없이 입을 닫아 버리죠.

김가윤 / 이런 고민을 할수록 저는 신앙이 깊어진다고 느꼈어요. 궁금한 것에 계속 질문을 던지고 나만의 답을 써 내려가는 과정에서 믿음이 더 강해졌어요. 그걸 알기에 계속 질문하고 답을 얻고, 이 과정에서 조금 더 성장하게 되더라고요. 이전보다 기독교를 더 사랑하는 제가 됐어요.

- 사회에서 10대는 돌봐야 하고 가르쳐야 할 존재로 봐요. 두 사람처럼 이런 고정관념을 깨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있을까요.

김가윤 / 페미니즘이든 기독교 활동을 하든, 저는 이전에 저를 부정하는 일을 정말 많이 했어요. 지금 학교를 중학생부터 6년째 다니고 있는데요.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면서도 기독교에 대한 질문이 들어오면, 오히려 저를 부정했어요. 그러면서 "왜 나는 기독교를 믿고 있지?"라고 생각했죠. 내가 믿고 있는 기독교를 계속 믿으면서, 이런 저를 긍정하기 위해 페미니즘과 기독교를 공부하고 있어요. 두 활동 다 저를 긍정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공부를 해야 이런 제 모습을 인정할 수 있겠더라고요. 예를 들어 교회에서는 "동성애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여러 책을 읽으면서 다른 관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내 생각이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혼자만 하던 고민을 여러 친구를 만나 함께 나누고 "아,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걸 확인하는 게,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아요.

권나민 / 페미당과 신학자들 활동은, 제 고민을 숨기지 않고 마음껏 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어요. 저는 학교에서 이런 고민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고, 친구들은 의심하고 고민하는 저를 낯설지 않게 대해 주고, 얼마든지 다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두 학생은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기독교인으로서 정체성이 더 확고해질 수 있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 한국 기독교, 교회가 어떻게 변화하면 좋을 것 같아요.

권나민 / 목사님이 무지개 티셔츠 입고 설교하고, 여성의날에는 예배당을 온통 보라색으로 꾸몄으면 좋겠어요.(웃음)

김가윤 / 교회에 의심을 던지는 행위를 부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교회에서는 궁금해도 묻지 않는 일들이 많고, "묻지 않아서 좋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어요. 한국교회가 의심하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교회가 되면 좋겠어요. 의심하는 걸 신을 부정하는 것과 같이 여기는데, 우리는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아는 교회가 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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