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이은혜 기자] 지금 한동대학교(장순흥 총장)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일련의 사건은 갑자기 일어난 게 아니다. 동성애와 이슬람에 대한 교수의 사상을 문제 삼아 재임용을 거부하고,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동성애와 낙태에 대한 다른 관점을 이야기했다고 관련 학생들을 압박하는 일은, 진보하는 사회에서 우클릭을 거듭해 온 한동대의 자연스러운 행보다.

한동대는 '하나님의 학교', '기독 지성의 요람'을 표방해 온 대학이다. 한국교회에서 입지가 남다르다. '지잡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방대학을 무시하는 한국 사회 풍조에서도, 기독교인 중에는 수도권 유명 대학에 진학할 성적이 되는데도 일부러 경북 포항에 있는 한동대를 택하는 학생이 많다.

한동대학교는 '하나님의 대학', '기독 지성인 양성의 요람' 등으로 스스로를 부른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한동대는 '한국교회 축소판'이라고 할 정도로 교수나 학생이나 신학적·사회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 지난해 5월, 한국 대학 최초로 '동성애 반대'를 천명한 게 대표적인 예다. '아무나 대학 간다'는 말이 나오는 시대지만, 지성의 요람이라는 대학이 사상의 자유를 제한한 것이다. 게다가 한동대를 다니는 학생 중 LGBT(성소수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도 학교는 이런 발표를 강행했다.

언론에서는 '대학'이라는 정체성을 포기할 정도의 일이라고 규탄했지만, 정작 한동대 안에서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한국교회에 진보적인 시각을 가진 기독교인이 소수 존재하는 것처럼, 한동대도 그렇다. 성명이 발표된 후 일부 교수와 학생이 우려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학교는 성명을 철회하지 않았다.

동성애·이슬람 유보 입장도 수용 거부
일부 교수, 극렬 반대
"모임 자체가 하나님 영광 가려"

이런 분위기상, 김대옥 교수의 사상이나 이번에 들꽃이 주최한 강연 내용은 한동대 구성원 다수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번 들꽃의 강연은 여성과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내용이었고, 강사들은 여성의 임신중절(낙태) 권리를 지지하는 사람, 성노동 경험이 있는 사람, 폴리아모리(비독점적 다자 연애)라고 정체성을 밝힌 사람이었다.

동성애에 조금이라도 유보적인 입장만 취해도 반대하는데, 이 정도 강연 내용과 메신저는 이들에게 경악할 노릇인 것이다. 학문과 사상의 자유, 이런 것은 '하나님의 대학'에서는 유명무실하다.

한동대 교수 중에는 극렬하게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해 발표한 동성애 반대 입장문은 최정훈 교목실장, 교무처장을 지냈던 제양규 교수, 한동대 학보 <한동신문> 주간 허명수 교수, 조원철 학생처장이 함께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들꽃의 강연이 끝난 뒤, 이들이 쓴 글을 보면 한동대 대다수 구성원이 이번 강연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짐작할 수 있다.

조원철 학생처장은 교수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이 강연은 페미니즘에 대한 특강인듯 선전했지만 염려대로 동성애 내용이 가득한 모임"이라고 설명했다. 강연 전 학생들과 면담 자리에서는 학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강의를 불허한다고 했지만, 진짜 문제는 역시 동성애였다.

12월 8일 열린 강연에서 임옥희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가 말하고 있다. 페이스북 동영상 갈무리

제양규 교수는 교수협의회 회장단에 "최근 들꽃이 주관한 모임은 한동대의 정체성과 구성원들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했다. 동성애는 물론 다자난교(제 교수의 표현이다. 폴리아모리는 이런 뜻이 아니다. -기자 주) 등을 옹호하는 들꽃의 모임이 하나님의 대학을 표방하던 한동대학교 내에서 진행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가린 것은 물론 한 대학교를 기대하고 지지하는 많은 사람을 실망시켰다"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이어 제양규 교수는 "동성애가 단순히 여러 죄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법과 제도, 나아가 사회와 문화를 바꾸고, 특히 차세대 우리 자녀들을 변질시키려 하는 것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죄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한동대와 한국교회를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심각한 도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허명수 교수(국제어문학부) 역시 이번 사건으로 학교 정체성과 교육 철학이 도전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학교 리더십에서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학교의 정체성과 교육 철학에 관해 학생과 교수, 직원에 대한 선언문 혹은 이에 준하는 명문화된 지침이 세워지기를 탄원한다"는 글을 학교 인트라넷에 올렸다.

박영춘 교수(전산전자공학부)는 "개인의 생각은 개인의 자유지만 그 사상과 생각이 공동체에 큰 해가 되고 문제가 될 때에는 더 이상 개인의 생각은 아닌 것 같다. 한동은 하나님의 대학을 추구하는 분명한 존재 목적과 사명을 갖고 있다. 이들의 생각과 삶이 한동의 존재 목적과 사명을 위태롭게 할 때 우리는 이것을 좌시하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생각은 교수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12월 12일, 한동대에는 학생 두 명이 작성한 대자보가 붙었다. '기독 지성의 요람 한동이여, 페미니즘의 탈을 쓴 동성애의 음모를 직시하라'는 제목의 글에서, 두 학생은 들꽃 강연을 주최한 학생들과 관련 교수들을 징계하라고 요구했다.

'동성애 독재'의 마지막 보루?
1년에 세금 177억 지원받으면서
성소수자 거부할 권한 있나

성소수자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런 생각을 나누는 자리를 "한동대의 존재 목적과 사명을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교수와 학생. 이들의 사고대로라면 '하나님의 대학', '기독 지성의 요람'이라는 정체성은 동성애에 대한 확고한 반대 입장을 가지는 것이다. 내부 구성원은 물론, 한국교회 반동성애 진영은 대부분 이와 생각을 같이한다.

2017년 퀴어 문화 축제 반대 집회에서는 기독교 대학 반동성애 동아리들이 모여 부스를 열었다. 사진 제일 왼쪽에 있는 책이 한동대에서 무료로 배포한 <동성애와 동성혼에 대한 21가지 질문>이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반동성애 진영은 한동대를 '마지막 보루'라고 이야기한다. 이들은 채팅방에서 "지금 대학가에서는 동성애를 반대하면 안 되는 동성애 독재가 일어나고 있다. 신학교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대학'이라는 슬로건을 갖고 있는 한동대학교에도 이런 사상이 침투하려고 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퍼 날랐다.

교계 반동성애 진영과 한동대 교수들은 뜻을 같이하며 '한동의 정체성'을 만들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한동대는 일반 대학과 다른 하나님의 대학이며, 그렇기 때문에 초법적인 곳이다. 강연 취소 통보에 "헌법을 위배하는 인권 탄압이자 사상 통제"라고 반발하는 학생들을 향한 "너희는 대한민국 국민 해. 나는 한동대 교수 할게"라는 조원철 학생처장의 말이 이를 증명한다.

'한동대 교수'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초법적 존재인 것처럼 말하지만, 한동대는 엄연히 사립학교법의 적용을 받는 기관이다. '학문의자유'까지 논하지 않아도, 당장에 사학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금을 받는다.

한동대가 공개한 2016년 3월 1일부터 2017년 2월 28일까지의 자금 계산서 세부 내역을 보면, 이 기간 한동대가 교육부에서 받은 지원금은 156억 7760만 2131원이다. 여기에 기타 국고 지원으로 19억 4211만 8456원, 지자체에서 추가로 1억 6411만 6860원을 지원받았다. 나라에서 지원받는 돈만 해도 연간 177억 8383만 7447원에 달한다. 이것은 다 국민 세금이다.

동성애 반대가 하나님의 대학 정체성이라고 믿는 이들은, 김대옥 교수나 들꽃과 같은 학생들이 눈엣가시 같았을 것이다. 이런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한동대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도, 혹은 성소수자라도 '한동대 교수'와 똑같은 대한민국 국민이며, 대한민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대학에서 일·공부할 권리가 있다.

한동대 사건이 언론에서 다뤄지고 이슈가 되자, 페이스북 페이지 '한동대학교 대나무숲'에는 1월 8일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바이섹슈얼'(양성애자)이라고 하는 한 한동대 학생의 사연이 올라왔다. 이 학생은 교수들과 학생들의 혐오가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며 "죽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하나님의 학교'에도 성소수자가 있다. 한동대는 이 학생도 색출해 징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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