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3월 31일이면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한 지 1년이다. 브라질에서 철광석을 싣고 중국으로 항해하던 스텔라데이지호는 우루과이 앞바다에서 갑자기 가라앉았다. 승무원 24명 중 필리핀 선원 2명만 구조되고, 나머지 선원은 찾지 못했다. 정부는 3개월 만에 집중 수색을 종료했다. 실종 선원 가족들은 사라진 구명벌 2척에 선원들이 있을 것이라 추정하며, 정부에 수색 재개를 요구하고 있다.

실종된 가족을 찾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또 하나 있다. 사고 원인을 규명해 재발을 막는 것이다. 스텔라데이지호는 화창한 날 대낮에 선체가 두 동강이 난 채로 침몰했다. 스텔라데이지호가족대책위원회(가족대책위·공동대표 허경주·허영주)는 "기상 악화가 사고 원인이 아니다. 스텔라데이지호는 건조된 지 25년이 지난 노후 선박이다. 심해 수색 장비를 투입해 블랙박스를 수거하고 정확한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족대책위는 침몰 1년를을맞아 3월 26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416연대 대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침몰 이후부터 지금까지 1년간 경과와 향후 계획을 설명했다. 삼등기관사 문원준 씨 아버지 문승용 씨는 취재진 20여 명에게 "애타는 심정으로 지난 1년을 보냈다. 0.1%의 가능성이 있더라도 가족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계획이다"고 말했다.

스텔라데이지호가족대책위는 수색 재개와 심해 수색 장비 투입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정부·선사 초기 대응 미흡
"지옥 같은 시간" 보낸 가족들

스텔라데이지호시민대책위원회 나승구 신부(천주교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1년 경과를 설명했다. 그는 사고 초기 정부와 선사 폴라리스쉬핑 대응이 서툴렀다고 지적했다. 선원 가족들에게 알린 시간도 침몰한 지 12시간을 훌쩍 넘겼고 수색도 뒤늦게 시작했다고 했다. 나 신부는 "두 기관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고 했다.

실종 선원 가족들은 몇 번이나 참담한 심정을 겪었다. 미군 초계기가 발견한 구명벌 추정 물체를 국내 언론이 정확한 사실 확인도 없이 '기름띠'라고 보도했을 때, 정부가 사라진 구명벌 2척을 찾지 못한 채 수색을 종료했을 때, 국회의원 100여 명이 동의한 심해 수색 장비 투입 예산이 기획재정부 최종 논의에서 누락됐을 때였다. "가족들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나 신부는 말했다.

이등항해사 허재용 씨 누나 허경주 공동대표는 "우리가 생각해도 정말 치열하게 싸워 온 것 같다. 칠순을 넘긴 부모들이 1인 시위를 하고 노숙 농성을 자처했다. 1년이 지난 지금 크게 진전된 건 없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문재인 정부가 이번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14개월 만에 발견한
안타이오스호 구명정, 상태 양호
"스텔라데이지호 구명벌도
온전하게 표류하고 있을 것"

칠순 넘은 부모들이 자식을 찾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올해 2월에는 놀라운 일이 있었다. 남대서양에서 구명정 1척이 발견된 것이다. 발견 지점은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한 해역에서 300마일 떨어진 곳이었다. 실종 선원 가족들은 스텔라데이지호 구명정이 아닐지 기대했다. 수색 결과, 2016년 12월 화재로 조난당한 그리스 선박 안타이오스호(ANTAIOS)의 구명정으로 밝혀졌다.

가족들은 속상해하면서도 한편으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구명정이 14개월간 남대서양을 표류했는데도 상태가 멀쩡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외부에 파손된 흔적도 없었고 내부에는 구명조끼를 비롯한 각종 물품이 잘 보존돼 있었다.

허경주 대표는 "가족들이 희망을 갖게 됐다. 남대서양은 다른 해역보다 비교적 고요한 바다로 알려져 있다. 아직 찾지 못한 스텔라데이지호 구명벌 2개도 온전하게 떠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안타이오스호 구명정이 이를 증명한다.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수색을 재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개조 노후 선박 27척
사고 재발 막기 위해
블랙박스 수거 필수

지난 2월 남대서양에서 발견된 안타이오스호 구명정. 사진 제공 스텔라데이지호가족대책위

가족대책위는 현재 침몰 해역에 심해 수색 장비 투입을 놓고 정부와 논의하고 있다. 정부와 가족대책위가 TF를 구성했다. 허경주 대표는 "가능하면 올해 안에 심해 수색 장비 투입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종 선원 가족이 심해 수색 장비를 투입하려는 이유는 사고 원인 규명에 있다. 이들은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에 있는 블랙박스 2개를 모두 회수해야, 배가 갑자기 가라앉은 이유를 파악할 수 있고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허경주 대표는 심해 수색 장비를 투입해 선박·비행기 사고 원인을 밝힌 해외 사례가 많다고 했다. 영국 선박 더비셔호가 대표적이다. 더비셔호는 1980년 일본 인근 해역에서 침몰했는데, 당시 정부는 기상 악화를 사고 원인으로 단정했다. 유가족들은 20년 동안 정부와 다퉜고, 2000년에야 심해 수색 장비가 투입됐다. 그 결과 선박에 결함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허 대표는 "국내에는 스텔라데이지호와 같은 개조된 노후 선박이 27척이 있다. 선원 1000명이 낡은 배에 목숨을 담보하고 항해에 오른다. 스텔라데이지호보다 수명이 많은 배도 아무런 제재 없이 운항 중이다. 이번 기회에 사고 원인을 제대로 밝혀 노후 선박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비슷한 일이 언제 또 생길지도 모른다"고 했다.

가족대책위는 3월 31일 광화문광장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1년 시민 문화제를 연다. 국내외에서 연대하는 시민단체와 함께, 정부에 수색 재개와 심해 수색 장비 투입을 촉구할 계획이다. 4월에는 국회에서 심해 수색 장비 투입과 관련한 공청회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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