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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과 그리스도인] "너무 늦게 찾아온 것 같습니다"
교회협 부활절 맞이 4·3 평화 기행 "한국교회, 비판적 성찰 필요"
  • 박요셉 기자 (josef@newsnjoy.or.kr)
  • 승인 2018.03.16 17:54

제주 4·3 사건이 70주년을 맞습니다. <뉴스앤조이>는 올 한 해 이 비극적인 사건을 구체적으로 돌아보며, 특별히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이 4·3 사건과 어떻게 관련돼 있는지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많은 이가 제주 4·3 사건을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잘 모릅니다.

한국교회는 이 사건과 깊이 연루돼 있는데도 그동안 4·3의 진실을 규명하거나 아픔을 어루만지는 데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외면해 온 역사를 직면하면서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며, 우리 신앙을 어떻게 재정비할지 함께 성찰하고자 '4·3과 그리스도인'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 4·3특별취재팀


[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의 2녀', '○○○의 3남'…. 이름 없는 위패들. 희생자 이름을 떠올리지 못한 유족들은 숫자로 이름을 대신해야 했다. 그중에는 미처 이름 짓지 못한 갓난아이도 있었다. "학살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4·3 위령 제단을 안내하면서 송영섭 목사(서린교회)가 말했다. 1만 4231개의 위패 앞에서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한 노목사는 추모 비석 앞에 무릎을 꿇고 정성스레 향을 피웠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이홍정 총무)와 제주 교회협,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윤세관 총회장) 제주노회가 3월 14일 '부활절 맞이 제주 4·3 평화 기행'을 공동 주최했다. 서울·경기·대전·광주 등 전국에서 50여 명의 기독교인이 참석했다. 제주4·3평화공원 방문을 첫 일정으로, 이틀간 제주도 내 학살터를 돌아봤다.

제주4·3평화공원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발목만큼 쌓인 눈이 모두 녹고, 푸른 잔디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따뜻한 햇살과 바람이 육지에서 온 평화기행단을 맞았다. 제주4·3평화재단 양조훈 이사장과 제주에서 목회하는 이정훈 목사(늘푸른교회), 김인주 목사(봉성교회), 송영섭 목사가 공원 입구에서 기행단을 환영했다.

제주 4·3 사건 위령비 앞에서 조의를 표하고 있는 참가자들. 뉴스앤조이 박요셉

행방불명된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설치된 비석들. 뉴스앤조이 박요셉

제주 지역 목사들은 육지에서 4·3 사건을 마주하러 온 평화기행단이 특별히 반가웠다. 제주 교계에서 4·3은 주요하게 다뤄지는 주제가 아니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기도 했다. 무장대·토벌대 후손과 희생자 후손이 한 교회, 한 노회에 공존했다. 어떤 이는 4·3을 '폭동'으로 어떤 이는 '봉기'·'항쟁'으로 불렀다. 누군가에게 전하는 위로가 자칫 다른 이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었다. 복잡하게 얽힌 4·3 앞에서 제주 교계는 늘 침묵했다.

"사람마다 4·3에 대한 이해가 다르니 공개적으로 거론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기장 제주노회에 속한 이정훈 목사가 말했다. 결국 몇몇 뜻있는 목사들이 나섰다. 이정훈 목사, 송영섭 목사 등 기장 소속 목사들이 10년 전부터 매년 평화 순례를 하고 있다. 4·3 사건 당시 수많은 민간인이 목숨을 잃은 학살터를 방문해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족들을 만나 서로 위로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올해는 4·3 사건 70주년을 맞아, 기장 제주노회를 중심으로 진행하던 평화 순례를 교회협이 특별히 함께 주최했다. 이날 참석자들에게 4·3 사건 개요를 강의한 양조훈 이사장은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이웃 종교들은 모두 4·3 사건을 기억하고 진상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특히, 천주교는 올해 교황의 부활절 메시지에 4·3 사건을 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감스럼게도 개신교는 관심이 저조하다.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안타깝다. 여러분들이 이번에 보고 겪은 것을 주변에 많이 알려 줬으면 좋겠다."

참석자들이 희생자들의 위패를 보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제주4·3평화재단 양조훈 이사장. <제민일보>에서 4·3취재반장을 맡고, 제주4·3사건진상조사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하루아침에 400명
가장 많이 희생된 북촌리 주민

제주4·3평화공원 다음으로 기행단이 방문한 곳은 너븐숭이기념관이었다. 4·3 사건 당시 단일 사건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북촌리 학살'의 참상을 알리는 곳이다. 토벌대의 보복 학살로 주민 400여 명이 한날한시에 목숨을 잃었다. 북촌리는 주민 모두가 명절처럼 매년 같은 날 제사를 지낸다. 1970년대 4·3 사건의 참상을 알린 소설 <순이삼촌>(현기영)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1949년 1월, 북촌리 인근에서 무장대가 군 차량을 기습해 군인 2명이 사망한다. 군경은 북촌리 주민들이 무장대와 내통했다고 봤다. 이를 보복하기 위해 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북촌초등학교 마당에 집결하게 해 학살을 자행했다. 40~50명씩 끌고 가 무차별 사격으로 총 400여 명의 목숨을 앗았다. 다섯 채를 뺀 마을의 모든 건물이 전소됐다.

군경은 살아남은 주민들을 다른 마을로 소개했으나, 그곳에서도 수십 명이 희생됐다. 살기 위해 가까운 야산 숲 속과 동굴로 대피한 주민들도 토벌대 총에 맞아 죽었다. 귀순하면 살려 준다는 전단을 보고 손 들고 내려왔다가 잔혹한 고문을 받고 집단 처형당하거나 바다에 던져져 수장되고 혹은 육지 형무소로 보내져 불귀가 되기도 했다.

학살극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고완순 씨(80)는 당시 9세 소녀였다. 그는 너븐숭이기념관 강당에서 그때 참상을 떠올렸다.

"대장 같아 보이는 사람이 뭐라고 얘기한 뒤 갑자기 총을 쏘아 댔다. 그러자 앞에 서 있는 사람이 고꾸라지며 쓰러졌다. 뒤에 보이는 트럭에는 포승줄에 묶여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얼마 뒤 기관총이 막 쏘아 대서 우리는 개미처럼 땅바닥에 엎드려 기어서 도망갔다. 나중에 보니 어른들을 포함해 세 살 먹은 갓난아기까지 다 쓰러져 있었다."

고완순 할머니. 북촌리 학살을 알리기 위해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북촌리에 설치된 희생자 위령비. 뉴스앤조이 박요셉

참석자들이 북촌리 학살터를 돌아보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너븐숭이기념관 앞에는 이때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주민들이 세운 위령비가 있다. 북촌리마을원로회는 언젠가 4·3 사건 진상이 밝혀질 것을 희망하고 1993년에 자체적으로 희생자와 재산 피해 상황을 조사하고 합동 위령제를 봉행하고 있다.

"그 당시 일주 도로변에 있는 순이 삼촌네 밭처럼 음팡진 밭 다섯 개에는 죽은 지체들이 허옇게 널려 있었다. 담에고 지붕에도 듬북눌에도 먹구슬나무에도 어디에나 앉아 있던 까마귀들. 까마귀들만이 시체를 파먹은 게 아니었다. 마을 개들도 시체를 뜯어먹고 다리토막을 입에 물고 다녔다. 사람 시체를 파먹어 미쳐 버린 이 개들은 나중에 경찰 총에 맞아죽었지만 그 많던 까마귀들은 모두 어디 갔을까?" -<순이 삼촌>에서

가해자들을 용서한
의귀마을 유족들

다음 날, 제주 전역에는 비가 쏟아졌다. 아침부터 평화기행단이 찾아간 곳은 서귀포시 남원읍에 있는 의귀 마을. 원래는 순례길을 걸을 예정이었지만, 기상 악화로 마을 복지 회관에서 양봉천 전 유족회장(협의합장묘4·3유족회)을 만났다. 양 전 회장은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한때 토벌대를 향한 원한과 적의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성경을 필사하며 분을 풀었다고 한다.

의귀마을은 4·3 사건 당시 250여 명이 희생됐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의귀리 전투다. 1949년 1월 10일, 무장대 핵심 부대가 의귀초등학교에 있는 토벌대를 공격했다가 도리어 50여 명이 사망하는 등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고 패퇴한 사건이다. 이후 토벌대는, 무장대 습격에 대한 보복으로 의귀초등학교에 감금하고 있던 주민 80여 명을 학교 동쪽으로 끌고 가 학살했다.

"(희생자들은) 양민으로 구분되어 다음 날 남원으로 소개될 예정이었으나 전날 무장대 습격에 대한 보복으로 학교 옆 밭으로 끌려가 집단 총살을 당했다. 이날 죽어 간 사람들 중에는 아이 안은 어머니, 임신한 여성, 오몽 못하는 노인, 10대 학생들도 포함되어 있다." - 의귀마을 복지 회관 자료에 실린 고운희 할머니 증언

군경은 시신 수습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희생자들은 흙만 대충 덮인 채로 몇십 년간 방치됐다. 이후 유족들은 유골 발굴과 이묘 계획을 세우고 자체적으로 돈을 모았다. 2003년 9월, 유골 39구를 발굴해 화장하고 세 개의 묘를 조성했다. 현의합장묘로 현재 의귀마을 복지 회관 앞에 있다. 현의합장은 '의로운 넋들이 함께 묻혔다'는 의미다.

양봉천 전 유족회장은 "유족회는 비통한 심정으로 가해자들을 용서했다. 비록 그들이 우리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지만 다시는 이러한 사건이 발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궂은 결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의합장묘 역시 이러한 의미에서 건립됐다. 당시 현의합장 위령제에서 유족회장은 이렇게 주례했다.

"오늘 이 자리로 묘역을 새로이 단장하여 님들을 모시는 것은 우리 형제자매들이 한과 미움을 넘어선 성숙한 자세로 우리 제주가 평화가 가득한 행복한 섬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하기 때문이다."

의귀마을 주민들은 토벌대에 사살된 무장대의 넋도 함께 달래고 있다. 의귀리 전투에서 전사한 무장대 시신은 몇 년째 의귀초등학교 근처 밭에 방치되어 있었다가 마을 인근 송령이골에 매장했다. 현의합장묘4·3유족회는 학살된 민간인뿐 아니라 군인, 경찰, 무장대 모두를 이념 대립의 희생자로 여겼다. 2004년에 무장대를 위한 천도제를 올리고 매년 묘소를 관리하고 있다.

양 전 회장은 "진정한 화해와 상생을 논하기 위해서는 민간인·군경 희생자뿐만 아니라 무장대 역시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 기관이나 시민단체 중 이들의 넋을 기리고 기억하는 곳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참석자들이 의귀마을 복지 회관에서 의귀리 학살을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현의합장묘4·3유족회 양봉춘 전 유족회장. 그의 가족과 친지 10여 명이 희생됐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현의합장묘. 의로운 넋들이 함께 묻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참사 앞에서
고개 숙인 교인들

평화 기행에 참가한 기독교인들은 참사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이들은 다시는 이와 같은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국교회가 4·3을 기억하고 알려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주민교회(이훈삼 목사)에서 온 한 교인은 기행을 통해 제주 4·3 사건을 자세히 알았다고 했다. 그는 "4·3이 어떤 배경에서 발생했고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희생됐는지 이전까지는 몰랐다. 유족들을 만나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너무 늦게 온 것 같다"고 했다.

대전에서 온 한승남 목사(새영남교회)는 앞으로 교계가 4·3 사건을 계속 기억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가해자가 대부분 죽고 없는 상황에서 이런 기행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했다. 이념 간 대립으로 많은 사람이 무고하게 희생됐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에도 보수 교계가 반공주의를 내세우며 혐오와 차별을 재생산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완전히 끊을 계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회가 가해자를 용서하고 상처를 극복하는 주민들 모습을 닮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광주에서 5·18 기념 사역을 하는 강스엘 목사(기독교대한복음교회)는 "군경을 용서하고 무장대 무덤까지 관리하고 있는 의귀 마을 주민의 성숙한 모습을 보며 부끄러웠다. 한국교회는 여전히 이념을 내세우며 4·3 사건 진상 규명을 방해하고 있지 않나. 개신교가 제주에서 저지른 잘못을 참회해야 한다"고 했다.

무장대 시신이 매장된 송령이골. 주민들이 매년 벌초를 하며 관리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교회협 총무 이홍정 목사는 "4·3 사건은 한국교회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건이다. 단독정부와 자주독립, 평화통일을 염원한 이들이 무고하게 희생된 사건임을 다시 조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 사회가 상처를 극복하는 도민들 모습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희생자들은 모두 냉전 시대가 낳은 이념 대립의 피해자들이다. 하지만 제주도민들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도식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이 구조적인 폭력에 희생된 사실을 자각했다. 이들이 먼저 용서와 화해의 손을 내밀며 성숙한 자세로 상처를 극복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점이다"고 말했다.

제주 4·3 사건 앞에서 한국교회는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목사는 "개신교는 이념에 젖어 피아를 구분하며 자기 정체성을 강화했다. 제주 4·3 사건 당시 교회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화해의 역할을 했는지 가해자 입장에 서지 않았는지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교회협은 올해 4·3 사건 70주년을 맞아 4·3평화재단과 협약을 체결해 유족들을 지원하는 일을 확대할 계획이다. 3월 말에는 사순절 평화 기도회를 열고 평화 기행을 정례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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