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국 사회에서 군대는 성역이다.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 한국에서 군대를 비판하는 사람은 '종북' 소리 듣기 십상이다. 분단국가라는 현실은 사회가 별다른 거부감 없이 '군사 문화'를 습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학교와 직장, 심지어 가정에도 서열·명령 중심의 군대식 문화가 깊숙이 파고들었다.

한국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군대. 군대가 당연하지 않다고 외치는 이들은 늘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대중은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나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을 하는 평화 운동가를 향해 날카로운 말을 내뱉는다. 아래는 평화 운동가들의 활동을 소개한 기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댓글이다.

"(군대) 가기 싫은 핑계도 가지가지다. 이럴 시간에 그냥 가서 때우고 와라. 너네가 그런다고 해도 전쟁나면 총알이 너희들만 피해 가지 않는다."

"요즘은 총칼로 평화를 지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해군기지를 지어 총칼 대신 함포와 미사일로 평화를 지키는 겁니다."

"평화의 필수 요소는 강한 군대다. 무기를 내려놓음은 곧 적에게 나라를 내어 주는 것이다."

전쟁 없는 세상 꿈꾸는
반전 활동가와 양심적 병역거부자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

거대한 군사 문화가 자리 잡은 한국 안에서 반전反戰을 외치며 평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1월 19일 출간한 <강정 평화 서신>(짓다)은 평화 운동가 두 명이 편지로 나눈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강정 평화 서신> / 송강호·박정경수 지음 / 짓다 펴냄 / 394쪽 / 1만 6000원. 뉴스앤조이 이은혜

송강호 박사(개척자들)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현장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2012년 4월 체포돼 181일 동안 감옥에서 생활했다. 그는 수감돼 있을 때 양심적 병역거부자 박정경수 씨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서신 교환은 2년 가까이 지속했다. 박정경수 씨는 2006년 개신교 신앙 양심에 따라 병역거부를 선언했고, 이듬해 병역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아 1년 6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두 사람은 '평화 수감자'다.

기독교 평화주의자로서 감옥 생활을 한 이들이 말하는 '평화'. "살인하지 말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 가르침을 따라 군 복무와 집총을 거부했고, 무기와 군사력 증강이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없음을 주장하며 저항한 활동의 기록이기도 하다.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들의 평화운동은, 같은 '개신교인'에게조차 환영받지 못한다. 일부 개신교인이 자유한국당 등과 합세해 '양심적 병역거부' 반대를 외치고, 군에 가 있는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한국교회는 그 '당연함'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늘날의 국가는 더 이상 예배드리고, 기도드리고, 성경 보고 교회 다니는 일을 금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기도드린 내용과 성경으로부터 배운 바, 예배를 통해 결단한 바를 실천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신앙의 실천은 개인적인 차원의 시혜나 봉사를 넘어서 훨씬 더 복잡다단한 사회관계망 속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29쪽, 송강호)

해군기지 완공으로 끝?
평화운동, 이제 시작

마을 주민, 평화운동가들의 저항에도 해군기지는 끝끝내 강정마을에 들어섰다. 많은 사람이 허탈해하고, 이제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처럼 말한다. 실제로 강정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도 더 이상 반대 운동, 평화운동은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강정 평화 서신>은 박정경수(왼쪽)와 송강호가 나눈 대화 기록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두 사람은 해군기지가 들어선 강정마을에 군사 문화가 스며드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이미 마을이 있는 곳에 들어선 해군기지. 분명 해군기지에서 생업을 이어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곳에 근무하는 군인을 상대로 장사하는 사람도 들어설 것이다.

"군산의 경우 기지 바로 옆에 마을이 있는데 대부분 군대와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수십 년 동안 그렇게 사신 분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중략) 실제로 군대가 고맙다고 하는 주민들도 많거든요. 강정도 이런 사안에서부터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42쪽, 박정경수)

혹자는 저자들 주장을 국제사회 현실을 무시한 순진무구한 활동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기독교 평화주의,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라면 이런 길도 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 준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으로 만드는", 전쟁 없는 세상이 실제로 이 땅에서 실현될 것이라 믿고 희망하는 이들은 해군기지가 완공됐다 해서 마냥 좌절하고 절망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강정마을의 평화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 차례 좌절했다고 '전쟁 없는 세상'을 향한 희망을 저버릴 수는 없다. 송강호 박사는 제주도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일본의 오키나와, 대만을 잇는 공평해(공존과 평화의 바다) 운동을 지속할 예정이다. 박정경수 씨는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로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을 알리고, 대한민국 군의 대량 살상 무기 구입 저지 활동을 하는 등 이 땅에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예정이다.

"저는 계속되는 그 발걸음이 희망이고 우리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목소리보다 우리의 발걸음이 힘이 있습니다. 평화의 강물은 어느 초인의 힘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의 길은 그렇게 낮은 발걸음으로 낮은 목소리로 계속 흘러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325쪽, 박정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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