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의무를 다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는 사람"으로 조롱받기 십상이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한 평화 활동가들에게는 '전문 시위꾼'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거대한 군사 문화에 저항하는 이들의 행동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국 교계에서 극히 소규모인 아나뱁티스트 교인들은 '개신교 평화주의'를 고수한다. 이들 중에는 자신의 신앙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이도 있고, 군사주의에 대항하며 평화운동을 이어 가는 이들도 있다. 삶의 현장에서 평화교육, 갈등 해결 등의 방법으로 평화를 실천하는 사람도 있다.

평화를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KAC)는 '평화를 이야기하자' 컨퍼런스를 1월 20일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열었다. 개신교 평화주의에 관심 있거나, 한국에서 메노나이트 교회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 80여 명이 참석했다.

한국아나뱁티스트가 주최한 '평화를 이야기하자' 컨퍼런스에 약 80명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신앙 양심 따라
병역거부한 사람들

재세례파, 메노나이트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분야가 '양심적 병역거부'다. 컨퍼런스에서는 유대 개신교인이 참석해 이스라엘의 개신교 신앙 공동체 이야기를 전했다. 오래전 신앙 양심에 기초해 병역을 거부한 다니엘(가명)은 현재 이스라엘에서 전쟁과 폭력 대신 평화로운 대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신앙 공동체에서 생활한다.

이스라엘은 평화로운 나라가 아니다. 북한이 핵무기로 우리나라를 위협하듯이, 핵으로 무장한 이란의 그늘 아래 있다. 이스라엘은 국가 설립부터 지금까지 주변국들과 끊임없이 전쟁해 왔다. 또 팔레스타인 땅에 자리 잡고 살던 민중을 군사력으로 억압했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은 남녀 상관없이 18세가 넘으면 징집 명령을 내린다.

다니엘처럼 개신교 평화주의 전통을 간직한 이스라엘의 신앙인들이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주의에 동참할 수 없기 때문에 총을 들지 않는 길을 택한다. 다니엘은 "이스라엘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나뱁티스트 운동이 '강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았던 예수의 길을 따르면 좋겠다"는 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박정경수 씨(왼쪽)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로서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상황을, 송강호 박사는 해군기지 완공 이후의 평화운동을 소개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세계 유일의 분단국 한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일부 종교인의 문제로 인식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1만 9000여 명 가운데 99%는 여호와의증인 신도다. 나머지 1%는 '정치적 병역거부자'라 부른다. 이들이 병역거부를 하는 데는 종교를 비롯해 여러 이유가 있다.

몇 안 되는 개신교 양심적 병역거부자 박정경수 씨가 자신의 경험을 증언하며 한국 상황을 설명했다. 한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가장 큰 이유는 4주간 행하는 군사훈련에 있다. 몇몇 대체복무제가 있긴 하지만 여전히 군사훈련은 의무다. 4주 군사훈련 없이는 대체 복무가 가능하지 않기에,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계속 발생한다.

최근 들어 지방법원·고등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박정경수 씨는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판결이 지난해만 44건이다. 판사들이 갑자기 진보 성향을 보여서가 아니다. 법원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급심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무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에서는 잇따라 유죄판결이 나는 중이다. 박정경수 씨는 "UN은 수년째 한국 정부에 대체복무제를 허용하라고 권고해 왔다. 문재인 정부도 대체복무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이 문제를 빠른 시일 내에 다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력한 군사주의에
대항하는 방법

마을 주민, 평화 활동가들의 극렬한 저항에도 정부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했다. 2016년, 해군기지가 강정마을에 들어섰지만 평화운동이 끝난 건 아니다. 여전히 그 자리에서 평화 활동에 힘쓰는 이들이 있다. 송강호 박사(개척자들)도 그중 한 명이다.

싸움이 모두 끝난 것처럼 보이는 강정마을에서 여전히 할 일이 있다는 송강호 박사. 그는 지난 싸움에서 한 가지 배운 사실이 있는데, 평화운동에서도 미리 전략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를 상대로 군사기지 건설 반대 등 저항운동을 할 때 좀 더 장기적으로 보고 각오를 다져 나가야 한다며 일본 오키나와를 예로 들었다.

송강호 박사는 "오키나와는 오래 열심히 투쟁했는데 자라나는 세대를 평화운동가로 길러 내지 못했다. 우리도 아이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강정 해군기지가 이대로 끝나는 게 아니라 국제적인 평화운동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설득·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 노래꾼' 홍순관 씨가 평화운동을 하는 가수의 삶을 증언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강정마을 투쟁은 한국 정부와 그곳에 살고 있는 한국 국민 사이의 문제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던 땅에 느닷없이 이방인이 들어와 총을 겨눈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서구 여러 나라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상황을 '분쟁'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뎡야핑 씨(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군사점령'한 것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민중이 살던 땅에 들어와 무력으로 이들을 진압하고 선을 긋는 과정에서 난민 700만 명이 발생했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막강한 군사력으로 점령을 강화하고 있다는 게 뎡야핑 씨 설명이다. 그는 이스라엘이 군사점령을 포기하도록 국제사회가 강제해야 한다며, 이 일에 관심 있는 시민의 BDS 운동 참여를 제안했다. BDS는 보이콧, 투자 철회, 제재의 약자로 각자 자신이 선 곳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건축물을 파괴하는 데 현대중공업 굴삭기를 사용한다. 미국장로교회, 미국연합감리교회 등은 이미 이스라엘 기업에 투자한 자본 철회를 총회에서 결의했다. 단순히 기업 CEO가 유대인이라고 해서 보이콧하는 게 아니라, 기업이 점령 문제와 연루돼 있는지 파악하고 운동을 진행한다.

뎡야핑 씨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것은 유대인 대 아랍인의 대결 구도로 보면 안 된다. 팔레스타인에 크리스천 인구가 15%나 된다. 유대교와 이슬람의 갈등도 아니다. 이스라엘은 황무지 팔레스타인 땅에 나라를 건설했다고 하지만, 이는 이미 유대인 역사학자들이 반박했다. 이스라엘은 군사점령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 갈등 해결 위해
활동하는 평화 단체들

서동욱 교육팀장(왼쪽부터, 한국평화교육훈련원), 박지호 센터장(갈등전환센터), 이병주 선생(회복적학생생활교육센터)이 나와 일상생활에서 구현하는 평화운동을 설명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평화 노래꾼' 홍순관 씨 노래로 시작한 2부에서는, '평화주의'를 다양한 모습으로 실천하는 단체들이 나와 활동을 소개했다.

한국평화교육훈련원(KOPI)은 '회복적 정의' 개념을 바탕으로 다양한 단체를 운영한다. 물리적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문화를 바꾸는 일에 관심이 많은 곳이다. '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받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잘못을 저지르면 누군가가 다치고 아프다'는 개념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교육·사법 분야에서 활동한다.

갈등전환센터는 주로 사회 갈등 현장에서 분쟁을 조정한다. 갈등을 법과 힘으로 해결하지 않고, 대화하면서 대안 찾는 일을 돕는다. 박지호 센터장은 "갈등이 발생하면 누구의 잘못이 먼저인지 묻지 말고,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왔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잘못을 지적해서 책임을 지우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살펴보면 갈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