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심의자유 vs. 국방의 의무.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다시 한 번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청주지방법원 이형걸 판사는 8월 12일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여호와의증인 신도 장 아무개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6월 9일 인천지방법원에서 두 사람에 대한 무죄판결이 나온 후 올해만 벌써 세 번째다.

법원은 "입영 또는 소집을 거부하는 사람이 그 거부 사유로 내세운 권리가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것인데도, 그 사람을 병역법에 따라 처벌한다면 그의 헌법상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 된다. 이런 위헌적 상황을 배제하기 위해 그에게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가 존재하는지 봐야 한다"고 했다.

양심의자유가 침해됐다고 판단하려면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 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정도의 진지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장 씨의 경우, 8세부터 여호와의증인 신도인 부모를 따라 성서 공부를 했고, 16세에 침례를 받아 집회와 전도 활동에 참여해 왔다. 그는 교리에 따라 '전쟁 연습을 위해 총을 들 수 없다'는 결정을 하게 되었고, 같은 신앙을 가진 아버지와 친척, 주변 선배가 병역거부로 징역형을 받은 것을 알면서도 병역을 거부했다.

법원은 "장 씨의 병역거부는 신앙 또는 내심의 가치관, 윤리적 판단에 근거해 형성된 진지한 양심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 양심의자유 중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요받지 않을 자유 또는 양심의 결정을 행동으로 실현할 수 있는 자유에 해당한다"고 했다.

병역법에 명시된 '정당한 사유'를 판단할 때는, 서로 충돌하는 두 헌법 가치 '양심의자유'와 '국방의 의무'의 관계를 어떤 관점에서 해석할지가 중요하다. 북한과 대치 관계에 있는 한국은 국방의 의무, 국가 안보를 성역으로 여겨 왔다. 법원의 판단을 보자.

"국방의 의무는 국가의 안전보장이라는 중대한 헌법적 법익을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국가의 안전보장도 궁극적으로는 기본적 인권의 보장이라는 국가의 존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 의의가 있다고 봐야 한다.

현실적으로 국가의 안전보장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국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도 보장될 수 없다는 점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를 근거로 국가의 안전보장을 강조하면서 기본권 보장을 쉽게 외면하는 결론을 내린다면, 사실과 당위의 문제를 혼동하고 목적과 수단을 거꾸로 보는 것으로 우리 헌법 이념에 비춰 볼 때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양심의자유와 국방의 의무 또는 국가의 안전보장이라는 헌법 가치들이 갈등 관계에 있을 때, 단순히 국가의 안전보장이라는 가치만을 쉽게 선택하고 양심의자유를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특수한 안보 상황이라고 해서 위와 같은 헌법적 요청을 외면할 수 없다. 오히려 당과 국가의 존립과 이익을 명분으로 개인의 인권을 희생시키는 전체주의 북한에 맞서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수호해야 하는 현실에서, 양심의자유와 같은 기본적 인권 보장에 관해 더욱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면 병력이 줄어들고 안보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법원은 "군의 전체 병력 수, 과학화·정보화해 가는 현대전의 추세 등에 비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현역 집총 병역에 종사하지 않는 것 자체가 전투력의 감소를 초래한다고 볼 수 없다(연간 징집 인원 약 30만 명 중 양심적 병역거부자 비율은 0.2% 정도로 추산된다)"고 했다.

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서는 병역의무를 기피하려는 경우와 달리 취급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데도, 가장 강력한 제재 수단인 형사처벌이 가해지고 있고 최소 1년 6개월 이상의 실형이 선고되고 있다"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관한 한 형사처벌을 통한 일반 예방 및 특별 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지난 반세기 동안의 역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형사처벌이 이들의 병역의무 이행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병역의무 자체를 회피하려는 게 아니다. 법원은 "피고인은 병역의무를 기피하겠다는 게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연습을 해서는 안 된다는 양심에 비춰 집총 병역의무는 도저히 이행할 수 없으니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법원은 양심의자유와 병역의무의 형평성이라는 충돌하는 법익을 조화롭게 해결하기 위해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시행하는 나라를 열거했다. 독일, 덴마크,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핀란드, 헝가리, 노르웨이, 스웨덴, 브라질, 대만 등이 대체복무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유엔 인권위원회도 각국에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하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국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이들이 상당한 기간 집총 또는 전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업무를 담당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거나, 적어도 의무 위반에 대한 처벌이나 징계의 경감이나 면제를 허용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등, 대안 모색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중대한 헌법적 갈등 상황을 외면한 채 징병제도가 실시된 이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이런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이와 같이 기본권 보장을 위한 대안 마련이 필요하고 그것이 가능함에도, 국가가 이를 위한 아무런 노력 없이 일방적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병역법 제88조 제1항을 적용해 오로지 형사처벌만을 감수하도록 한다면, 헌법 제37조 제2항의 과잉 금지 원칙에 반해 양심의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결과가 된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올해 헌법재판소 심판이 예정되어 있다. 2004년·2011년에 이어 세 번째다. 헌재는 지금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유죄를 선고한 판결이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1심 법원에서 잇따른 무죄판결이 나와 헌재 심판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 7월 초에는,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대체복무제 법률 도입에 찬성한다"는 설문에 찬성한 변호사가 80.5%(1,044명)에 달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권리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66.2%(859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대체복무제를 허용하지 않은 채 병역의무만을 요구하는 게 헌법위반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도 63.4%(822명)가 긍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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