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대한민국에서 군 복무를 마친 남자라면 제대 혹은 공익 근무를 마친 후 8년 차까지 예비군 소집에 응해야 한다. '예비군'은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만든 제도다. 박 대통령은 '향토예비군'을 만들어 유사시 현역 군부대 동원에 응할 수 있도록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1년 대선에서 예비군이 "국방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박정희 씨 독재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민주주의에서는 필요 없는 것"이라며 예비군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 뒤로도 한국에서 예비군은 당연한 제도로 유지돼 왔다. 오히려 예비군법은 개정을 거칠 때마다 강화됐다. 헌법에 명시된 '국방의 의무'를 마친 젊은 남성은 이 때문에 다시 한 번 군사 문화에 노출된다. 예비군은 개인마다 조금씩 편차가 있는데 동원 지정자는 4년 차까지 2박 3일 동안 받는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용직 노동자에게도 법은 똑같이 적용된다. 국가가 불렀기 때문이다.

국가가 부른다고 무조건 가야 하는지, 예비군은 국방의 의무에 포함되는 것인지 의문이 있을 법도 하다. 풀리지 않는 의문을 숙제처럼 떠안은 두 남자를 만났다. 김형수 씨(28)와 조성현 씨(29). 두 사람은 '양심적 예비군 훈련 거부자'다. 자의로 예비군 소집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예비군 소집에 응하지 않는 이유를 그들의 입을 통해 들었다.

'양심적 예비군 훈련 거부자' 김형수 씨(왼쪽)과 조성현 씨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벌금 아무리 내도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말을 들으면 여호와의증인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다. 조성현 씨와 김형수 씨는 같은 대학 선후배 사이로 대학생 선교 단체 IVF(한국기독학생회)에서 활동했다. 두 사람이 예비군 소집에 응하지 않은 시점은 2014년경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은 성현 씨는 제대 후 2년은 예비군 소집에 응했지만 3년 차부터 거부했다. 형수 씨는 제대 뒤 첫 해부터 예비군을 거부했다.

예비군을 거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좀 더 나은 이해를 위해 형수 씨 경우만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형수 씨는 2014년 소집 훈련에 응하지 않았다. 1년에 한 차례씩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2014훈련'이라고 부르자. 2014훈련에 응하지 않으면 그 훈련은 다른 날짜로 편성, 1차 보충이라는 이름으로 부과된다. 이마저 응하지 않으면 또 다른 날짜에 편성되고, 이게 2014훈련에 해당하는 마지막 기회다.

마지막 훈련에도 응하지 않으면 경찰에 고발된다. 형수 씨는 예비군 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고발돼 벌금 30만 원을 부과받았다. 벌금을 받았으니 2014훈련은 없어질까? 천만에. 벌금형을 받았다고 해도 훈련은 없어지지 않는다. 다음 해 또 한 번 배정된다. 벌금까지 냈는데도 2014훈련은 없어지지 않았다. 여기서 무한 반복이 시작된다. 2015훈련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벌금을 낸 2014훈련은 아직 살아 있고, 2015훈련을 거부하면 전자와 같은 전철을 밟는다. 무한 반복되는 현실이 그나마 끝날 수 있는 시점은 제대 후 9년째 되는 해다. 예비군 소집 기간이 끝나야만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형수 씨에게 5년이, 성현 씨에게 3년이 남았다.

형수 씨는 올해만 벌써 다섯 차례 경찰서에 다녀왔다. 경찰에 고발 조치가 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서 조사에 응해야 했다. 딱히 심각한 내용을 물어보는 것도 아니다. 소집 통지서 받았느냐, 왜 안 갔느냐 등 형식적인 질문을 받았다. 예비군 소집, 불응에 대한 것은 법리를 가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약식기소된다. 처음에는 30만, 50만 원 벌금형으로 시작하지만 이것이 반복되면 수백만 원까지도 간다.

형수 씨는 올해만 다섯 차례 넘게 경찰서에 다녀왔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형수 씨는 정식재판을 청구해 재판 날짜를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제 시작일 뿐이다. 지금은 소집 기간이 아니라 조금 한가하지만 내년 봄이 되면 또다시 소집에 응하라는 전화, 경찰 조사, 재판 등에 응해야 한다. 예비군 훈련 여섯 시간을 거부했을 뿐인데 돈·시간·에너지는 훨씬 많이 든다. 언제 또 벌금이 부과될지 모르고 몇 번을 더 경찰서에 불려 가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형수 씨는 이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일상이 거대한 감옥 같다. 8년짜리 감옥 생활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북한은 사랑하면 안 되는 원수인가

성현 씨는 올해 자신이 가르치는 대안 학교 학생들과 베트남에 갈 일이 생겼다. 베트남전쟁이 끝난 지 벌써 50년이 지났지만 현장에서 목격한 전쟁의 상흔은 참혹했다. 역사적으로 누가 전쟁에 책임이 있는지 묻는 게 아니다. 전쟁은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가혹하게 할퀴고 지나갔다.

예비군을 거부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군대에 다녀왔다는 것을 뜻한다. 성현 씨는 카투사로 복무했다. 용산 미군 기지에서 근무했는데 오히려 부대 안에서 더 전쟁의 위험성을 느꼈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는 접는 것이 좋았다. 천안함·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했다. 연평도 사건이 일어난 뒤 미군은 실제로 가족들을 미국으로 보낼 준비를 하고 군장을 쌌다.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미군이 진지하니까 진짜 전쟁 날 것 같았다. 실제로 전투가 벌어지면 누군가를 죽여야 하고 포를 쏘고 사격도 해야 한다. 만약 당장 전쟁이 일어난다면 나는 거기서 '양심에 따라 총을 쏠 수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군대 있을 때 내 몸은 철저히 통제받는 느낌이었다. 잘못됐다고 생각해도 말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에서 경험은 오히려 더 큰 고민으로 이어졌다. 병역을 거부한 친구를 보면서 더 이상 고민을 외면할 수 없었다. 직면한 문제에 대답을 하고 결정을 내려야 했다.

성현 씨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에 꽂혀 여기까지 왔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성현 씨는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이 오히려 '양심적 예비군 훈련 거부'에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지금도 자신이 기독교인이 아니었다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더라면, 군대나 전쟁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성현 씨에게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이 인생 말씀처럼 가슴에 깊게 박혔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에서 '원수'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예비군 훈련 가서 듣는 안보 교육에서 북한은 주적이고 때려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보면 북한을 원수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전쟁 때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 지금도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이지 않나. 배우기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배우는데 정작 북한과는 싸워야 한다고 가르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빨갱이까지도 사랑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사랑의 방식은 절대 총을 들고 서로 대적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거다. 총을 쓰기 위해 연습하고 실전에 행하기 위해 훈련받는 것인데 신앙이 없다면 차라리 고민 없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메시지는 나에게 영혼의 낙인 같은 것이라 떨치고 싶어도 떨칠 수가 없다."

"깨진 관계 회복 보여 주는 예수님 삶 따르겠다"

사람마다 신앙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 다르다. 형수 씨에게는 전쟁 문제가 가장 시급하게 다가왔다. 그는 전쟁이 하나님나라 가치와 충돌하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역시 기독교인으로서 예수님을 롤모델로 설정하고 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삶이야말로 깨어진 모든 관계를 회복하는 열쇠라고 믿는다. 억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눈 먼 자를 눈 뜨게 하는 삶 말이다.

형수 씨에게 기독교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총체적으로 그릴 수 있는 단어는 '평화'였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평화 즉 샬롬을 방해하는 여러 요소 중 군대가 주는 영향이 크다고 판단했다.

"한국 사회에는 전쟁-반공주의-군대라는 연결 고리가 파생한 부작용이 많다. 전쟁이 체제를 보호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전쟁은 자본주의를 보호한 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형성한 거다. 한국전쟁은 지금 한국 사회를 형성했다. 하나님나라를 방해하는 근본 원인 중 하나인 전쟁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 것이 나는 오히려 궁금하다. 여기에 문제 제기하고 질문하고 싶었다."

형수 씨는 상근예비역으로 예비군 관련 업무를 보며 군 복무를 마쳤다. 이때 예비군을 운영하는 목적과 예비군법이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일용직은 일당을 포기하면서 예비군 복무를 마쳐야 하고 영업직에 종사하는 사람은 하루 종일 전화를 받지 못해 영업에 지장을 받기도 한다. 한국에서 예비군은 정규직으로 사무 업무를 보는 남성에게 맞춰진 제도였다.

성현 씨와 형수 씨는 얼마 전 공개적으로 예비군 거부를 선언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한국 사회에 만연한 다양한 문제점의 근원이 군대에서 시작된다는 점도 말하고 싶었다. 물론 군부대에서도 전우애가 있고 사람 사이에 관계가 있고 즐거움이 있다. 하지만 반대 작용도 만만치 않다. 형수 씨는 여성 혐오 대화가 아무렇지 않게 나오고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 책임감을 최소화하고, 사람을 공격하는 기술을 연마하고 잘했을 때 쾌감을 느끼게 하는 군대 문화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모두 함께 이 길을 가자는 건 아니다

일상생활에 제약받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신념을 행하는 두 사람. 두 사람은 어떠한 확신에 차서 '양심적 예비군 훈련 거부'에 임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신앙인으로서 자신들이 믿는 바를 다른 이들에게 설득하고 싶지만 이 길만이 옳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성현 씨가 불확실한 길을 가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기독교인들도차 양심적 병역거부를 바라보는 시선은 세상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기독교인이니까 거꾸로 이런 의견에 귀 기울여 주면 좋겠다. '기독교인으로서 군대에 왜 갈까?'라는 질문을 해 보면 어떨까. 나는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예비군 거부를 하는 것이다. 8년 끝날 때까지 거부할 수 있을지,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예비군 훈련에 가게 될 지 아무도 모른다.

고민의 결과라기보다 과정에 있다는 점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다. 기독교인 여성들도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 한국 사회 뿌리 깊은 남성주의는 어디에서 오는지 함께 고민할 수 있을 것 같다. 구약에는 전쟁이 많이 나오는데 하나님은 계속 전쟁을 하라고 하신 걸까 등등 무수한 질문이 파생될 수 있다. 정해진 답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같이 질문하고 같이 고민해 보면 좋지 않을까."

형수 씨도 성현 씨와 비슷한 생각이다. 자신이 선택한 '양심적 예비군 훈련 거부'가 온전히 옳은 길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이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여호수아서에 전쟁 이야기가 많다. 그 많은 전쟁이 끝난 후에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는 구절이 나온다. 나는 신학적으로 정밀하지 못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하나님의 큰 그림은 전쟁을 그치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힘의 균형을 이뤄서 전쟁을 멈출 수도 있지만 전쟁을 하지 않는 방향을 논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행동은 조금 다른 방향,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무엇이 딱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최소한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평화적 행동이나 실천, 비폭력 운동에 날이 서 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목소리만 요구하는 것 같다. 조금 다르고 이질적인 목소리가 내는 균형과 긴장으로 사회 공동체가 굴러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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