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동대학교(장순흥 총장)가 학교 방향성과 맞지 않는 강연을 주최했다는 이유로 학생들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강연을 주최한 학내 모임 '들꽃' 회원들과 일부 학생이 대상이다. 김대옥 교수 재임용 거부와 맞물려, 한동대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구성원들을 밀어낸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들꽃은 지난해 12월 8일, 한동대 캠퍼스 내 카페에서 임옥희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와 홍승은·홍승희 작가를 초청해 '흡혈 사회에서 환대로 – 성노동과 페미니즘, 그리고 환대'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열었다.

<주디스 버틀러 읽기>·<페미니즘과 정신분석>·<채식주의자 뱀파이어> 등을 쓴 임옥희 교수 강연은 원래 11월 24일 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11월 초 포항 지역을 강타한 지진 때문에, 2주가 지난 12월 8일 열리게 됐다.

강연을 준비한 들꽃은 한동대 공식 동아리가 아닌 학생들의 자발적 모임이다. 들꽃은 2014년, 교내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모임으로 시작했다. 2016년에는 한동대 청소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을 위해 함께 투쟁하고, 청소 노동자들을 돕기 위한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했다.

들꽃은 봄·가을마다 'We-Week'이라는 행사를 열어 외부 강사를 초청했다. 그동안 박득훈 목사(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 김근주 교수(기독연구원느헤미야), 은수미 전 국회의원, KTX 해고 승무원 김승하 지부장, 하종강 교수(성공회대) 등이 들꽃의 초청으로 한동대를 찾았다.

한동대학교가 지난해 12월 페미니즘 관련 강의를 연 학생들에게 진술서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번 강연도 'We-Week'의 일환이었다. 강연 일정이 연기되면서, 주최 측은 포항에서 활동하는 홍승은·홍승희 작가도 함께 초청했다. 두 사람 역시 과거 'We-Week'에 강사로 참석한 적이 있다.

행사 당일 불허 통보
"학교 방향과 어긋난 모임은
학교가 막을 수 있는 것"

강연 홍보 포스터를 학내에 게시하기 위해서는 학생지원팀의 허락이 필요하다. 들꽃은 12월 5일 포스터 게시를 허락받고, 다음 날 학내에 게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학교는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학생지원팀은 강연 당일 오전, 학교 규정을 언급하며 들꽃의 강연을 불허한다고 했다. 학교는 '학생 단체 등록과 활동에 관한 규정' 제9조 6항 "매 학기 기말시험 개시 1주일 전부터 시행 종료 시까지는 각 단체의 행사 및 집회는 허가하지 아니한다"는 항목을 들어 행사를 열 수 없다고 했다.

들꽃 학생들은 납득할 수 없었다. 포스터 게시를 허락할 때 아무 말이 없었던 데다가, 이 조항은 사문화한 조항으로 다른 단체들 역시 같은 시기에 행사·집회를 연 경우가 있었다. 학생들은 이런 이유를 들며 반발했다.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강연 불허 이유를 납득하지 못한 학생들은 강연이 열리기 약 다섯 시간 전에 조원철 학생처장을 만났다.

조원철 처장은 이 자리에서, 들꽃은 어차피 정식 등록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규정을 적용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그는 "학교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다른, 심히 염려되는 모임을 하는 것을 학교가 막을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몇 시간 남지 않은 강연을 취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조원철 처장은 "안 된다고 해도 할 거니까 강연에 참석해 모니터링하겠다. 단순히 (페미니즘을) 알아 가고 배우자는 측면인지 아니면 학교의 주장에 반하는 표현을 할지 알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강연 끝난 후 학생지도위원회 열어
주최 학생들에게 해명 요구
학생들 "학교 움직임 황당하다"

12월 8일 오후 7시, 강연은 예정대로 열렸다. 이 자리에는 약 스무 명이 모니터링을 한다는 의도로 나타났다. 말이 모니터링이지 실제로는 반대 시위에 가까웠다. 조원철 학생처장을 비롯해 최정훈 교목실장, 제양규 교수(기계제어공학부) 등 교직원과 몇몇 학생은 '자유 섹스 권장하는 페미니즘 거부하라',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 윤리 파괴하는 페미니즘 반대한다'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강연에 참석했다.

학교는 강연 다음 주인 12월 14일에 학생지도위원회를 열어, 학내에서 페미니즘 강연이 열리게 된 과정을 파악하기에 나섰다. 학교는 들꽃 소속 학생 3명과 관련 학생 2명에게 경위서를 작성해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학생들은 학생지원팀에 찾아가 경위서를 작성해야 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몇 가지 항목을 더 설명하라는 진술서를 요구했다. 학생마다 사유는 제각각이었다. 들꽃 관련자들에게는 강연을 열지 말라고 했는데 왜 강행했는지 설명하라고 했다. 강연 후기를 남긴 학생에게는 학생처장에게 불손한 태도를 보인 점을 문제 삼았다. 또 다른 학생은 사생활을 문제 삼아 이를 설명하라고 했다.

2016년 4월 진행한 'We-Week' 안내 포스터. 얼마 전 재임용이 거부된 김대옥 목사도 당시 강사 중 한 명이었다. 들꽃 페이스북 갈무리

학생들은 학교가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고 했다. '학생 상벌에 관한 규정' 제10조에는 "사건 경위서, 징계 대상 학생의 진술서 담임교수 및 학과(부)장 의견서를 구비해 징계를 발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진술서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진술서 작성을 요구받은 학생 A는 이 같은 학교의 움직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A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주제가 성노동과 페미니즘이었다. 동성애보다는 페미니즘을 논하는 시간이었다. 임옥희 교수는 다른 학교에서 가르치는 학자이고, 다른 강연자들은 이미 학교에 온 적이 있는 사람이다. 공부하고 싶어 강연 하나 연 게 전부인데 학교가 이렇게 나와 당황스럽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 B는 이번 강연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는데도, 학교는 그가 과거 들꽃 활동으로 현재 구성원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이유를 들어 진술서를 요구했다. 강연 전 학생처장 면담 자리에 함께 있었던 B는, 학생처장과 학생들 사이에 있었던 일을 글로 작성해 강연 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학교 측은 이것이 사실과 다르다며 왜 이런 글을 올렸는지 설명하라고 했다.

일련의 사태를 겪은 학생들은 일부 교수가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강연을 주최한 학생들을 부당하게 압박하고 있다고 했다. A는 "한동대에 와서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배운 것 중 하나가 다른 사람을 함부로 정죄하면 안 된다는 거였다. 그런데 지금 기독교가 학생들을 압박하는 수단이 되고, 자기들 생각과 다른 사람을 무조건 틀리다고 하는 일이 너무 쉽게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징계 절차 진행은 오해
"학생들 아끼는 마음으로 
지도 차원에서 조사하는 것"

학교는 학생들이 오해하고 있다는 입장이었다. 학교에서 왜 이 같은 강연이 열렸는지, 과정의 문제는 없었는지 알아보는 차원이지, 징계를 염두에 두고 학생지도위원회를 연 것은 아니라고 했다.

조원철 학생처장은 1월 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자꾸 징계라고 하는데 징계가 아니다. 학교 교육 방향과 다르게 가는 학생들이 안타깝기 때문에 그들을 아끼는 마음으로 어떻게 지도할까 싶어 학생지도위원회를 연 것"이라고 말했다. "페미니즘이 학교 방향성과 맞지 않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페미니즘의 울타리를 어디까지 두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답했다.

하지만 징계 가능성은 열려 있다. 한동대 대외협력처 관계자는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개념이다. 결과를 정해 놓고 절차를 밟는 게 아니다. 사실 확인 후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원철 처장은 "지도의 영역으로 들어온다면 좋은 일이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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