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잘 믿으면 복 받고 성공한다"는 믿음은 수십 년간 한국교회를 지탱해 왔습니다. 이 믿음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복을 좇아 교회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에게, 목회자는 "잘 믿고 복 받으라"고 외칩니다.

홍익교회 김태복 원로목사도 한때 '성공'과 '복'을 강조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예화를 들어가며, 잘 믿고 복 받으라고 했습니다. 김 목사는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기복신앙 설교는 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신앙과는 무관하게, 현실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40년간 목회해 온 목사가 신념을 바꾸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김태복 목사를 10월 13일 경기도 남양주에서 만났습니다. 김 목사는 팟캐스트 '나는꼼수다'로 유명한 김용민 PD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 기자 주

홍익교회 김태복 원로목사는 농촌과 빈민촌에서 40년 동안 목회했다. 2008년 교인들 만류에도 조기 은퇴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김태복 목사는 1975년 서울 빈민촌 홍익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부임 당시 교인은 50여 명. 예배당 크기도 30평에 지나지 않았다. 시골에서 상경한 김 목사는 교회를 키우기로 다짐했다. 기도와 섬김으로 전력투구했다. 5년 만에 교인 수는 300명으로 증가했다. 교인은 꾸준히 증가했고, 은퇴할 즈음에는 1,000명이 됐다.

농촌 교회 부임 기간까지 더해 총 40년을 목회했다. 김 목사는 교인들과 함께한 추억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좋은 기억도 많지만, 안 좋은 기억도 있다. 김 목사는 성공과 복을 강조한 설교를 한 게 부끄럽다고 했다. 다시 돌아간다면 '사회적 약자'를 위한 목회를 하고 싶다고 했다.

교인들의 만류에도 2008년 조기 은퇴했다. 김 목사는 "30년 이상 목회를 하니까, 설교는 반복되고, 열심은 줄어들었다. 전보다 못한 판단력과 포용력을 발견하면서 교회 발전을 위해 은퇴를 결심했다"고 했다.

갈수록 개신교 교세가 줄어들고 신뢰도도 바닥을 치지만, 김태복 목사는 아직 희망을 버리기에는 이르다고 진단했다. 그는 "하나님이 한국교회를 치유하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촛불 혁명을 일으켰던 이들이 한국교회 안에도 많아지면 '무혈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김태복 목사는 현재 유경재 원로목사(안동교회)와 함께 팟캐스트 '한국교회 길을 묻다'를 진행하고, 웹진 '소리'를 운영하고 있다.

김태복 목사와의 인터뷰를 정리했다.

교인들 만류에도 조기 은퇴
판단력, 포용력 이전보다 떨어져
"다시 목회한다면 약자들과 함께"

- 2008년 4월, 정년(70세)보다 4년 일찍 조기 은퇴했다. 장로들이 은퇴를 만류했는데도, 결국 뜻을 관철했다.

공식적인 은퇴는 2008년 4월이지만, 실제는 2007년 말이다. 원래는 만 65세가 되는 2006년 말 은퇴할 예정이었는데, 교회가 간곡히 요청해 만 66세에 은퇴했다. 나뿐 아니라 전임자 김관호 목사님도 65세에 은퇴했고, 노회 안에서 유경재 목사님(안동교회)과 이정일 목사님(광장교회)도 그 나이에 은퇴했다. 그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단지 그런 모습을 따라 하려고 한 건 아니다. 30년 이상 목회하니까, 설교는 반복되고 열심은 줄어들었다. 전보다 못한 판단력과 포용력을 발견하면서 교회 발전을 위해 은퇴를 결심했다.

- 지난 목회 여정을 돌아봤을 때, 교인들에게 '성공'과 '복'을 강조한 게 가장 후회된다고 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목회 40년간 성공과 복을 너무 강조하지 않았나 싶다. 1975년 35세에 부임한 홍익교회는 개척교회나 다름없는 교회였다. 교회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들었다. 우리 교회 교인은 대부분 가난했다. 이 사람들도 일으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긍정적인 삶을 살도록 설교 시간마다 성공한 사람들 예화를 많이 하며 복을 강조했다.

믿음의 능력을 체험한 교인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거지 나사로처럼 사는 교인들이 적지 않았는데, 설교를 듣고 낙심하고 좌절하더라. 어떤 교인은 "열심히 믿고 충성해도 삶이 달라지지 않아서 부끄럽다. 목사님 말씀대로 성공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얼마나 부끄럽고 가슴이 아프던지.

목적은 좋은 데 뒀지만, 나도 모르게 기복신앙을 강조했던 것이다. 반성하고 반성했다. 조용기 목사의 '오중 복음'과 '삼중 축복'을 비판해 왔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번영신학'과 '기복신앙'에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딸아이가 영국 공동체 '브루더호프'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 아이를 낳았는데 지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이 소식을 접한 순간 깨달은 게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고통받는 사람'이 있고, '어쩔 수 없이 낮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 만약 시간을 되돌려 목회 현장으로 돌아가면, 어떤 목회를 하고 싶나.

마태복음 25장 40절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는 말씀이 있다. 약자들과 함께 목회를 하고 싶다. 지금 벙커원교회에 출석하고 있는데, 이 교회에서는 계속 "사회적 약자, 소외된 사람을 위해 봉사하라"고 강조한다. 아들(김용민 PD)이 매번 설교에서 강조하는데, 지난 나의 목회를 반성하게 된다.

"원로목사, 교회 일에 과감히 손 떼야
'후임 목사,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라 생각"

김 목사는 "성공과 복을 강조하는 설교를 한 게 가장 후회된다"고 말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는 목회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은퇴와 함께 원로목사로 추대됐다. 원로 신분이지만, 홍익교회에는 1년에 2번 정도 나가는 걸로 안다. 오랫동안 함께해 온 교인들을 더 마주하고 싶지 않은가.

33년 목회하면서 교인들 결혼 주례를 포함해 돌, 유아세례, 병문안, 장례 등 온갖 일을 함께했다. 깊고 끈끈한 정이 들게 마련이다. 나라고 그렇게 정들었던 교인들과 자주 만나 교제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원로목사는 교회 사역에서 손을 떼고 후임 목사에게 전적으로 맡겨야 교회가 새로워진다. 원로목사가 과감히 손을 떼야 후임 목사가 자기 능력을 마음껏 꽃피울 수 있다.

지금 한국교회 안에 많은 교회가 원로목사와 담임목사 간 갈등으로 분규를 겪고 있다. 원로목사와 담임목사 간 갈등의 원인 중 하나가 '인정'(人情)이다. 한국 사회는 공의보다 인정에 약하다. 표면적으로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데, 사실 큰 영향을 미치는 정서가 지연·학연·혈연이다. 교회에 문제가 있을 경우 원로목사가 개입하기도 하는데, 본질을 보지 못하고 인정에 이끌릴 수 있다. 은퇴한 원로목사는 교회 문제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만약 모세가 가나안 땅에 함께 들어갔다면, 모세의 권위에 눌려 여호수아는 지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여호수아의 지도력이 부진할 때마다 모세를 향한 민중의 쏠림 현상이 강하게 나타났을 것이다.

나는 후임자를 세운 뒤, 당회원과 중직들에게 강조했다. "목회자는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니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나 역시 후임 목사를 만날 때마다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진다. 그러면 경건한 마음이 생기고 함부로 하지 못하게 된다.

엄인영 목사(들꽃푸른샤론교회)가 홍익교회 부교역자로 지내면서 목사님께 많은 걸 배웠다고 한다. 특히 부교역자를 인격적으로 대우해 준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하는데.

나는 부교역자 경험이 없다. 부교역자의 애환을 잘 모른다. 다만, 부교역자로 있던 동기들이나 다른 교회를 통해서 부교역자들의 형편이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느 담임목사는 부교역자들에게 교구 간 경쟁을 시켰다. 그 교회 부교역자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또 어느 담임목사는 부교역자의 공(功)은 자기에게 돌리고, 자기의 과(過)는 부교역자에게 돌리는 얌체 짓을 하더라.

부교역자를 두기 시작할 때부터 그런 담임목사가 되지 않으려고 힘썼다. 무엇보다 그들을 하나님이 보내신 동역자로 여기고 그들의 달란트나 은사를 적극 활용하려 힘썼다. 임무를 맡길 때 큰 실수가 아니면 간섭하지 않았다. 담임목사가 일일이 간섭하면 시키는 일만 하는 경향이 있지만, 전적으로 맡기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원하여 밤늦게까지 사역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아직 미숙하고 혈기가 많기에, 때로 열심히 일하다가 실수할 때가 적지 않다. 당회 도중 부교역자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종종 나왔다. 그때마다 부교역자를 적극 옹호했다. "신학생이라서 설교가 미숙하다. 그러나 앞으로 한국교회 큰 재목을 만들기 위해 자꾸 훈련시키고 격려해야 한다"고 했다.

충고나 책망을 할 때는 개인적으로, 진심을 담아 해 줬다. 두고두고 고마워하는 목회자가 많았다.

- 저서 <마라톤 목회론>(믿는책)에서 "'장거리 목회'를 향해 뛰려는 마라토너들은 목회의 비전이 분명해야 한다. 목회 철학과 목표가 분명해야 성공적인 목회를 할 수 있고, 때로 난관이 온다 할지라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신념과 용기를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은 과거처럼 교회를 세운다고 부흥하는 시대가 아니다. 목회 비전을 설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하는 목회자도 적지 않은데.

<마라톤 목회론>에서 젊은 목회자들에게 이런 글을 썼다.

"젊은 목회자들이여, 스타식 목회보다는 성자식 목회를 지향하라.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그 인격 안에 자신이 녹아들게 하라. 때로 모든 자들이 '만-만'이라고 치켜세우는 날에도 오직 주님만 높이라. 때로 모든 자들로부터 '천-천'이라고 낮춤을 당하고 '만-만'의 인기를 가진 자들에게 몰려가는 날에도, 이제 모든 자들이 등을 돌리므로 다윗처럼 광야의 삶을 사는 날이 온다 할지라도 오직 주님만 따라 좁은 길로 의연히 나가라. 그때에 하나님이 여러분의 장기 목회를 보장해 주실 것이 분명하다."

목회를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 해 주는 조언이 있다. "목회가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주일날 당회나 제직회를 하면서 어떤 비판이나 반대를 만나면 무조건 꾹꾹 참아라. 그러면 목회자에게는 일주일의 시간이 주어진다. 그때 강대상에 엎드려 손을 높이 들고 '저는 하나님만 의지합니다'라고 기도를 계속하라. 그러면 일주일 동안 하나님이 친히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주일날 혈기를 참지 못하고 화를 내거나 비판하는 자들을 마구 공박하면, 일주일 동안 사탄이 많은 가라지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조선일보> 50년 구독자가 전향(?)한 이유 
목회자 길 걷는 아들 김용민 PD, '방송 선교' 기대 
"지난 정부 비리 드러나며, 60~70대 의식도 변해"

김태복 목사는 김용민 PD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목회자의 길을 걷는 김 PD가 '방송 선교'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 아들 김용민 PD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김 PD도 목회자의 길을 가고 있는데, 아버지이자 목회자로서 아들에게 거는 기대가 있을 듯한데.

2012년 총선에서 낙선한 아들이 벙커원교회를 개척하고 설교한 지 벌써 5년이 됐다. 나는 3년 전부터 그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데, 매번 놀라는 것은 오늘 시대에 상황에 맞춰 성경을 잘 해석하고 설교한다는 점이다.(웃음) 그러다가 작년에는 한신대 신대원에 입학했다. 목회자의 길을 가겠다고 하더라. 우리 부부는 김용민 PD가 늘 방송 선교에 힘쓰기를 기도해 왔는데 응답을 주시는 것 같다.

아들이 어느 때는 위험 선을 넘어서는 느낌이 들어 조바심이 날 때도 많다. 그러나 신학 훈련을 제대로 하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내가 다하지 못했던 한국교회 갱신을 위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대견할 때가 많다.

- 김용민 PD를 보고, 아버지도 진보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실제로 그런가.

나는 <조선일보> 50년 독자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딱 <조선일보>스러웠다.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내란'이 일어난 것으로 생각했다. 교도소에 있는 모든 사람이 뛰쳐나와서 경찰서 총기를 탈취해 시가전을 벌이는 것으로 인식했다. 요즘처럼 기술이 발달해 모든 게 드러나는 상황이라면, 거짓 뉴스를 분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계속 <조선일보>만 봐 오다가, 대학에 간 자녀들이 끊자고 해서 절독했다. 자식들 이기는 부모 없지 않은가.(웃음) 대신 <한겨레>, <경향신문>을 구독했다. 그런데도 보수적인 성향은 존재했다. 장로 대통령 MB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나꼼수'를 들으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웃음)

사실 아들도 어렸을 때만 해도 <조선일보> 독자였다. 한문을 잘 읽고, 신문 사설을 꼼꼼히 봤던 게 기억에 남는다. 아들은 교계 언론사에 들어가면서 변화됐다고 하더라. CTS 감경철 회장이 여러 비리에 연루된 걸 봤고, 그 뒤로 (가치관이) 바뀌었다고 그러더라. 소위 보수적인 사람들, 신앙을 가졌다는 사람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보면서 '이게 아니구나' 하고 눈을 뜬 셈이다.

- 박근혜 탄핵 정국 당시 '태극기 집회' 참가자는 60~70대가 주를 이뤘다. 비슷한 연배로서 어떤 느낌이 들던가.

처음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사람을 봤을 때 지라시를 보고 나가는 줄 알았다. 정부의 돈을 받고 집회에 나가는 집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순수한 생각으로 나가는 이도 적지 않았다. 저들은 6·25전쟁을 통해 반공주의에 물들었다. 그래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문재인이 집권하면 나라가 공산화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자, 그런데 저들 주장처럼 지금 공산화됐는가.

새 정부 들어 지난 정부의 비리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내 주위에 있는 60~70대 의식이 변화하고 있다. 전 정권을 지지했던 이들이 "잘못 알았다"고 하더라. 도무지 고쳐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윗물이 맑아지니 차츰차츰 의식도 변화되는 것 같다. 정부가 좋은 방향으로 나가니 얼었던 마음이 녹아지며 사람들 간 대화가 이뤄지는 것 같다.

"성장제일주의에서 성숙제일주의로
대형 교회 위주에서 중소 교회 위주로
목회자 위주에서 평신도 위주로 변환돼야"

한국교회가 비록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지만 '희망'이 있다고 했다. 김 목사는 "촛불 혁명으로 새 정부가 탄생했듯이, 교회 안에서 혁명이 일어나면 한국교회도 변화할 것이다.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2012년 10월 '한국교회, 지금이 변화할 때'라는 칼럼에서 "한국교회는 예언자 역에서 화해자 역으로 대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해자 역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예언자 역이 아직 많이 필요하지 않나. 지난 보수 정권 9년간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제대로 된 예언자 역을 하지 못해 '국정 농단'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나 싶다.

물론이다. 한국교회가 예언자 역할을 다하지 못하다 보니, 대한민국은 엄청난 적폐가 쌓인 나라가 됐다. 한국교회 병도 깊어졌다. 내가 '예언자 역 대신 화해자 역'을 지적한 것은 '거짓 예언자', '심판자로서의 예언자'에 대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교회의 병적인 현상은 의인 상석에 앉아 세상을 향해 단호한 심판을 중심으로 예언하기를 즐길 뿐, 속된 세상 가운데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향해 나아가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으려는 점이다.

때로 일부 대형 교회 목사가 북한의 기근이나 일본 지진, 서남아시아 쓰나미, 미국 허리케인 피해를 하나님의 징계라고 목소리 높여 예언하기를 얼마나 자주 하고 있는가. 특별히 지난 정권에서는 정의와 평화, 사회적인 약자를 위해 희생적으로 일하는 자들을 '종북 좌파'로 몰아세우고 저주 비슷한 예언하기를 얼마나 힘써 왔는가. 그러면서도 처참한 상황에 처한 그들을 향해 구호의 손길을 내미는 데는 얼마나 인색한 모습을 보였는가.

예수님이 지적하셨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의 행동 아닌가. 마태복음 23장 25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는 말씀을 새겼으면 한다.

일부 대형 교회 목회자는 심판자의 상석에 예언자로 앉아 복과 저주의 쌍칼을 들고 외치는데, 이런 위선자의 모습을 버려야 한다. 눈물이 없는 예언자, 십자가를 지지 않고 외치는 것은 거짓 예언자의 모습이다. 어쩔 수 없이 예언할 때는 예레미야처럼 쇠 멍에를 메고 눈물로 해야 한다. 그래야 그 예언이 날선 검이 되어 한국교회와 한국을 살리는 메스가 될 것이다.

-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는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개혁해야 할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첫째, 성장제일주의에서 성숙제일주의로 변환되어야 한다. 이제는 끝없이 은혜와 복만 받으려는 개교회 성장 위주에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려는 신앙의 생활화, 섬김과 나눔으로 나타나는 성숙한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면 한국교회는 또 한 번 도약할 게 분명하다. 이제는 농어촌의 미자립 교회들과 불우 이웃들, 그리고 북한 선교와 세계 선교를 향해 나누어 주고 섬기는 교인들과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둘째, 대형 교회 위주에서 중소 교회 위주로 변환되어야 한다. 한국은 대기업들이 세계 경쟁에서 빛을 내면서 경제를 이끌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빈약하다. 한국 경제가 발전하려면 중소기업들을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국교회가 건강하려면 중소 교회들이 튼튼해야 한다. 이제는 나누어서 목회할 때이지, 작은 교회 교인들을 끌어 모아 대형 교회 만들 때가 아니다.

셋째, 목회자 위주에서 평신도 위주로 변환되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큰 문제점은 '모이는 교회'는 있으나, 파송을 받고 사명자로 사회 속에 나가 빛과 소금으로 사는 '흩어지는 교회'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모이는 교회가 주일 교회라면, 흩어지는 교회는 '6일 교회'이다. 이 흩어지는 교회를 잘 육성해야 신앙의 생활화가 이루어지고 사회가 변화되는 것이다. 이제는 목회자 양성 위주에서 평신도 지도자 양성 위주로 대전환해야 한다.

넷째, 기복 중심에서 나눔 중심으로 변환되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1970~1980년대 급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기복주의에 깊이 빠졌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진정한 신앙은 나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제는 교회 창고 문을 열고 불우한 이웃과 기관들, 농어촌 교회와 북한 지역, 기아선상에 있는 나라들과 세계 선교를 위해서 힘을 다할 때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형 교회가 참 문제다. 너무 왕 노릇을 하다 보니까, 한국교회가 쑥대밭 됐다. 문 닫는 교회는 늘고, 신학생은 쏟아져 나오는데, 갈 데가 없다. 매우 난감한 상황이다. 다만 나는 하나님이 한국교회를 치유하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케케묵은 기득권층 말고, 촛불 혁명을 일으켰던 이들이 한국교회 안에도 많아지면, '무혈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 특히 젊은 목회자들이, 대형 교회 목회자들 따라 하지 말았으면 한다. 비록 작은 교회라도 하나님이 원하는 교회를 세우겠다는 목회 정신을 갖는다면 언젠가는 큰 물결이 일어날 것이다. 한국 사회처럼 한국교회도 되살아나리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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