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와 만나다 - 예수를 그린 네 편의 초상화> / 리처드 버릿지 지음 / 손승우 옮김 / 비아 펴냄 / 344쪽 / 1만 5,000원

저자는 처칠의 초상화 이야기로 본서를 시작한다. 저자가 영국인이기 때문이고, 여러 사람이 다양한 각도에서 그린 처칠의 초상화가 있기 때문이다. 처칠은 한 사람이지만 다양한 초상화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예수는 한 분이지만 복음서는 4개다.

고대 그리스도교 고부들이 복음서를 4개로 확증하면서 상당한 혼란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10대에 어머니 권유로 성경을 읽다가 마태복음 족보와 누가복음 족보가 일치하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성경을 집어던지고 마니교에 빠졌다는 전설이 있다. 오늘날과 달리 고대 그리스도교에서는 이처럼 4개 보음서가 많은 혼란을 야기했다. 그리고 사복음서 외에도 '복음서'라는 이름을 가진 다양한 영지주의 문서와 예수님의 어록처럼 구성된 복음서가 존재한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도교 교부들은 복음서 1개가 아닌 4개를 정경으로 확정했으며, 그 외 복음서 이름을 가진 다수 문서를 목록에서 제외했다. 사실 복음서는 신학적으로 많은 숙제를 가지고 있다.

준비 작업

본서 원제는 'Four Gospels, One Jesus?: A Symbolic Reading'이다. 복음서에 관한 연구물이 다 그렇듯 이 책은 한 분 예수에 관한 복음서가 4개라는 사실과 각각 차이에 대해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사복음서의 특징들은 이미 고대 그리스도교 때부터 상징적 그림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이 상징적 그림들은 각각의 복음서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한 분 예수에 관한 4개의 초상화라고 표현된다.

1장에서는 복음서의 본질을 살핀다. 각각의 복음서를 다루기 위해서다. 복음서의 문학적 장르, 복음서 기록 배경과 과정에 대한 자료, 복음서가 담고 있는 자료 양식, 각각의 복음서가 차이를 보이는 이유의 근거가 되는 편집과 구성, 복음서의 내러티브와 독자, 성서 비평, 사복음서 각각의 특징이 묻어나는 상징, 그 상징이 시각적 도구였던 근거, 교회사 안에서 복음서 해석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간략히 간략히 설명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저자는 복음서가 고대 전기문학적 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그 양식을 취한 목적과 그 양식을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문학비평 방식으로 복음서를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네 개의 초상화

2장부터 5장까지는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순서로 사복음서를 살핀다. 마가의 초상은 사자다. 사자는 매우 신속하다. 은밀하게 숨었다가 갑자기 쏜살같이 튀어나와 먹이를 사냥한다. 마가복음의 예수 모습이 이와 같다. 마가복음은 예수라는 이름만으로 시작하는데, 탄생 이야기도 없고 베들레헴은 언급조차 하지 않으면 족보나 다윗의 혈통에 대한 언급도 없다. 마가복음은 준비하는 데 시간을 지체하지 않는다. 마가의 예수는 시작부터 초자연적 능력을 행하는 분으로 나타나 시종일관 강력한 능력을 보여 준다.

마태복음의 예수는 인간의 초상을 하고 있다. 마태복음의 예수는 아브라함과 다윗 혈통에서 나시며, 새로운 율법의 교사로서 유대교와 갈등을 일으킨다. 누가복음에 그려진 예수의 초상은 소다. 누가복음의 예수는 묵묵히 자신에게 맡겨진 일과 사역에 순종한다. 요한복음에 그려진 예수의 초상은 독수리다. 독수리는 하늘 위에서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조망한다. 하늘을 유유히 비행하다가 신속하게 급강하해 먹잇감을 잡는다. 요한복음의 예수는 매우 심오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묘사된다.

저자는 복음서가 고대 전기문학이라는 사실을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우리는 고대인들이 진리와 신화, 거짓과 허구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고려하지 않은 채 현대적인 개념들을 고대 문서에 들이대서는 안 된다. 현대적인 사고방식으로 볼 때 '신화'는 진실이 아닌 '옛날이야기'를 뜻한다. 그러나 고대 세계에서 신화는 심오한 진리, 다시 말해 단순한 사실보다 훨씬 더 참된 진리를 전달하는 매개였다. 진리의 반대말은 허구가 아니라 거짓과 기만이다. (중략) 기억해야 할 점은 고대인들이 특정 진술의 논리적 중요성보다 그 진술이 담고 있는 도덕적 가치와 철학적 유용성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고대인들은 사실보다 진리에 관심했다." (292~293쪽)

저자는 위와 같이 말하면서 고대에 쓰인 전기와 현대에 쓰인 전기가 기술 방식이나 부분적인 목적에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전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대 그리스도교 교부들이 복음서를 4개로 정한 것은 복음서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역사적 사실만 기술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통해 진리에 대한 다양성을 열어 놓는 측면에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복음서는 사건과 사실의 일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역사 속 예수의 변천

복음서는 4개지만 복음서의 핵심인 예수는 한 분이다. 복음서가 4개라는 다양성 가운데 한 분 예수라는 연속성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초기 교회 모자이크화에 그려진 예수는 수염을 말끔하게 밀어 내고 곱슬머리를 한 채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을 돌보는 젊은 목자 모습으로 나온다. 콘스탄티누스 치하에서 예수는 처음으로 로마의 통치자가 되었다. 비잔틴 시대에는 '판토크라토르'(우주의 지배자)가 됐다. 로마 시대 예술 작품을 보면 예수는 황제의 자색 토가를 입었다. 중세 프레스코화와 성상의 예수는 하얀 예복을 입고 사람들을 준엄하게 바라보고 있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예수는 '보편 인간'이 되었고, 이성의 시대인 17~18세대에는 계몽주의를 바탕하고 있는 합리적 예수가 등장했다. 데이비드 흄은 기적 이야기를 일축했고, 라이마루스나 레싱은 인간 선생인 예수를 찾았다. 19세기에는 낭만주의 관념론 영향을 받은 이들이 예수 일대기를 썼으며, 자유주의 세대에는 '해방자 예수'라는 길을 열었다(302~304쪽).

한 분 예수

이렇듯 4개 복음서가 그린 예수는 신학계, 문화계, 신앙과 예술의 영역에서 수많은 '예수들'로 뻗어 나갔다. 이 모든 예수의 초상은 동등하게 타당한가. 시대마다, 세대마다 예수는 다시 태어나도 되는 것일까. 저자는 복음서가 1권도 44권도 아닌 4권이라고 말한다. 1권이 아니라 4권이라는 점은 다양성을, 44권이 아니라는 점은 한계성을 의미한다.

1권 복음서는 다른 3권 복음서의 기준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각각의 복음서가 동일한 권위를 가지기 때문에 4권의 복음서 안에서 다양성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4권의 복음서 안이라는 분명한 경계와 한계를 놓쳐서는 안 된다. 로버트 모건이 4권의 복음서를 "자극제이자 제어장치" 역할을 한다고 밝힌 이유다.

본서는 많은 아이디어와 영감을 준다. 1장이 어려우면 2장을 펼쳐라. 각각의 초상화를 보면서, 큰 그림과 함께 아주 좋은 해석의 지도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1장을 이해해야 본서의 참맛을 알 수 있다. 되도록 첫 장과 마지막 장을 그냥 넘기지 않기 바란다. 본서는 복음서를 설교하는 많은 자에게 영감을 줄 것이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강도헌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제자삼는교회 담임목사, 프쉬케치유상담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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