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 - 말씀하시는 하느님, 응답하는 인간> / 마이클 레이든 지음 / 윤상필 옮김 / 비아 펴냄 / 152쪽 / 8,000원

하나의 유령이 한국교회를 떠돌고 있다. 칼 바르트라는 유령이. 이 유령을 향해 누구는 찬사를 보내고, 또 다른 누구는 비난을 보낸다. 하지만 넘쳐 나는 건 찬사와 비난뿐 실제로 그를 향해 다가가기란, 그의 신학 사상을 살피기란 결코 쉽지 않다.

신뢰할 만한 자료를 찾아 그의 삶이 궁금하여 전기를 들추어 보자니 900페이지에 달한다. 방향을 돌려 그의 저작을 살펴보자니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교회 교의학>(대표작이라지만 완간이 되지도 않았다)부터 모차르트에 관한 저작까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몇몇 해설서가 있긴 하나 그마저도 이미 바르트의 저작들을 어느 정도 읽었음을 전제한 책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시작하기도 전에 의욕은 사라지고 바르트는 다시금 찬사와 비난으로 점철된, 잡히지 않는 유령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비아 문고 <칼 바르트 - 말씀하시는 하느님, 응답하는 인간>(비아)의 출간은 유령처럼 맴돌기만 하던 바르트라는 신학 세계를 조금이나마 만지고자 하는 이들, 그 세계를 조금이나마 맛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바르트의 생애와 사상을 그리 두껍지 않은 분량에 알차게 담아낸 가이드이기 때문이다.

안개를 걷어 내는 하나의 시선, 윤리

총 7장으로 이루어진 이 작은 책(본문)은 바르트 사상의 전체 풍경을 위에서 바라보는 대신, 한 단면을 잘라내 '하나의 시선으로' 나머지 부분을 가늠할 수 있게 해 준다. 한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의 삶과 그가 남긴 말과 행동 모두를 살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겠지만 그의 문제의식 하나를 잡아내 집요하게 파고듦으로써 나머지를 유추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지은이 마이클 레이든이 택한 방식은 후자다. 그는 바르트의 삶과 사상을 엮는 하나의 '키'로 '윤리'를 택한다. 실제로 <Introducing Karl Barth’s Moral Theology>로 원제가 붙여진 이 책은 바르트 윤리신학에 대한 입문서이기도 하지만, '윤리'라는 렌즈로 묵직한 바르트의 삶과 사상을 간결하고 명료하게 파헤쳐 나가려는 지은이의 비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윤리'라는 렌즈로 바라본 바르트 사상의 특징은 무엇일까.

지은이는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비로소 우리는 책임을 지는 존재가 된다"는 말로 바르트 사상의 핵심을 압축적으로 정리해 낸다. 이 말은 언뜻 그리스도교인인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한 말로 보인다. 하지만 이 말이 지닌 깊이를 헤아리기 위해서는 이 말이 나오기까지 바르트가 직면한 상황, 문제의식을 좀 더 살펴봐야 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바르트에게 '행함'의 문제는 단순히 시시각각 다가오는 삶의 문제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라는 실용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세상이 비참한 전쟁의 화마로 폐허가 되자 바르트는 우리의 모든 행위가 남김없이 도마 위에 올랐다고, 우리가 "길을 잃었"음이 드러났다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은 바로 이 위기를 위기로 인지하고, 근본부터 다시 반성해 나갈 때에만 대답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그리스도교 문명권인 유럽이 이토록 허망하게 정치-군사적으로 분열할 수 있는가? 상관이 병사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이곳에 사랑과 인류애가 돋아날 자리가 있는가? 만약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내세운 윤리적 원칙이 실패했다면, 흔들리는 터전에서 그리스도교 윤리가 나아갈 길은 어디인가?" (28쪽)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물음은 위기의 실존 한 가운데서 길을 잃어버린 인간에 의해 대답될 수 없다. 인간 실존은 자신의 테두리를 빠져나올 수 없고, 전적으로 자신에게 예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리학의 물음은 '어떻게'라는 행위 물음에서 '누구'라는 존재 물음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근본적으로 중요한 윤리적 물음은 '우리의 입장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느님의 뜻은 무엇인가'를 깊이 숙고하는 것이다. 한국어판 부제를 빌려 말하자면 우리는 '말씀하시는 하느님'과 만날 때에만, 그 말씀에 귀 기울이고 이를 체화할 때에만 '응답하는 인간'이 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그에게 있어 진정한 윤리학의 과제였으며 그렇기에 그에게 윤리학은 교의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이렇듯 저자의 논지를 따라가다 보면, 바르트를 둘러싼 풍문은 사라지고, 조금씩 그의 문제의식, 그 문제의식에 상응하는 반성이 어떠한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서서히 갈피가 잡히기 시작한다. 이른바 '위기의 신학'이라 불리는 바르트의 신학은 인간 실존의 위기라는 '윤리적 문제'로 촉발되어 길을 잃어버린 인간의 절망 한 가운데로 새롭게 들려지고, 재구성되어진 '윤리학의 지표', 즉 자신을 드러내신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말씀의 신학'이다.

바다를 항해하는 또 하나의 시선, 해설

한편 굵직한 윤곽으로 서서히 갈피가 잡히기 시작한 시선은 다시 세밀히 가닥을 잡아나가야 할 전체적인 조망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 뒤에 붙은 옮긴 이의 해설은 이 작은 책에 남겨진 의문과 여백을 솜씨 좋게 보충하는 또 하나의 숨겨진 렌즈다.

어떤 면에서 이 책은 하나의 책 안에 담긴 두 권의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바르트의 삶과 사상을 '윤리'라는 하나의 렌즈로 조명한 '본문'과 전체적으로 조망한 본문 뒤의 '해설'이 정확히 전체 150페이지 중 반반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 권이 저자의 문제의식에 따라 바르트를 처음 만나보는 자리라면, 뒷 권은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옮긴 이의 안내에 따라 바르트의 전체 윤곽을 살필 수 있는 지도를 제공한다.

바르트를 전공한 옮긴 이는 국내에 번역된 바르트의 중요한 강연문과 저서들을 구별하여 시간순으로 배치한 뒤 꼼꼼한 해설을 덧붙였다. 해설은 바르트의 신학이 어떻게 변화하고 무르익어 가는지를 찬찬히 살필 수 있게 해 주면서도 자칫 길을 잃고 해맬 수 있는 독자들에게 좋은 안내자 역할을 해 준다. 그중에서도 12쪽에 걸쳐 안내하고 있는 <교회 교의학>은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겪은 독서 경험을 반영해 일목요연한 구조와 내용에 대한 해설로 담아낸 옮긴 이의 안내는 방대한 <교회 교의학>을 읽을 때 쏟아지는 정보에 휩쓸리지 않게 해 준다.

바르트가 바라본 시선
우리가 바라본 바르트

풍문으로만 들어 봤던 바르트. 한국교회에는 그를 둘러싼 이견이 많다. 하지만 실체 없는 찬사와 비난이 서로 앞다투어 변죽만 올릴 뿐, 정작 바르트의 정신, 당시에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오늘날에도 내려오고 있는 그의 유산, 그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는 이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판단이 요원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르트를 하나의 '유령'(ghost)으로 대하고 맹목적인 찬사나 비난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그의 '정신'(spirit)이 무엇인지를 기리고, 되새기는 것이다.

우리는 공포를 일으키거나 묘하게 엄습해 오는 실체 없는 '유령'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인 교의의 실체가 새로운 현실인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를 겨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강하게 역설한 한 사람의 '영'을 만나야 한다. 우리의 신앙고백인 '교의'가 새로운 현실을 가리키기는커녕, 옛 신조를 단순히 읊조리는 무감각한 관습이 되어 버린 이때에 이 작은 책은 우리의 거리낌을 넘어, 새로운 눈으로 주의 역사를 목도할 기회를 얻게 해 준다.

성현철 /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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