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탠리 하우어워스 - 시민, 국가 종교, 자기만의 신을 넘어서> / 마크 코피 지음 / 한문덕 옮김 / 비아 펴냄 / 144쪽 / 7,000원

<한나의 아이>(IVP)는 미국 신학자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쓴 회고록이다. 원서의 부제는 '신학자의 회고록'이지만, 한국 IVP 출판사는 이를 '정답 없는 삶 속에서 신학하기'로 바꿔 달았다. '정답 없는 삶 속에서 신학하기'라니! IVP는 이 부제를 고안한 사람에게 휴가를 줘야 한다. 이 멋진 표현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절묘하게 묘사한다. 그렇다. 신앙이란 세상이 제시하는 답에 만족하지 않고 휘청거리는 일. 그러면서 계속 앞으로 걷는 일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한나의 아이>를 둘러싼 반응은 호평 일색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뜨거운 관심과 찬사가 대체로 저 부제로 모아진다는 데 있다. 아무리 잘 지었다 해도 부제가 책의 모든 걸 담을 수는 없는 법. 어쩌면 저 멋진 부제에 가려 이 책의 중요한 면모를 지나쳐 버린 건 아닐까.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부제부터. 애초에 하우어워스가 달기 원했던 부제는 당연히 '정답 없는 삶 속에서 신학하기'가 아니었다. 그가 원한 건 '신학적 회고록'이었다.

신학자가 쓴 삶의 이야기. 그 안에서 삶과 신학은 어떻게 이어질까. 개인적 삶을 우려내 신학으로 발전시키는 것일까? 그렇기에 인생의 숫자만큼 다양한 신학이 존재하고, 가장 진실한 삶이 가장 탁월한 신학이 되며, 심하게 구부러진 삶일수록 더욱 심원한 신학을 낳는 것일까? 그렇다면 하우어워스는 좋은 신학자가 될 자격이 있는 듯하다. 그의 삶은 그리 쉽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게 생각한 것 같지 않다.

"내러티브가 기독교적 확신이 필요한 문법이라고 강조하던 내가 나 자신의 이야기를 신학을 전개하는 방식과 분리시키고 싶어하는 것이 이상해 보일 수 있겠다. 게다가 이 신학적 회고록에서 그런 주장을 펼치다니 더욱 이상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내러티브에 대한 강조는 우리 자신의 '경험'을 아무렇게나 가져다 신앙 언어의 의미를 시험하거나 결정하는 데 쓰라는 요구가 아니다." (<한나의 아이>, 288쪽)

이 책에서 하우어워스는 자신의 삶을 신학으로 번역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확히 반대다. 그는 신학으로 삶을 배열하고 정돈해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 중심은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에 있다. <한나의 아이>를 펴자. 표지를 열고 추천사를 쓱쓱 지나 속표지마저 넘기면, 목차가 나오기 직전 철학자 매킨타이어의 글이 인용된다. 사실상 이 책의 첫 문장이고, 사실상 이 책의 주제다.

"개인의 이야기는 세계의 역사 안에 들어 있으며, 그 전체 이야기 안에서 다른 모든 이야기들이 제자리를 찾는다." (14쪽)

개인의 삶은 "전체 이야기 안에서"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거대한 내러티브 안에서만 개인사는 정확한 의미를 획득한다. <한나의 아이>는 분명 스탠리 하우어워스라는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아무리 감동적이어도 그의 개인사가 그 자체로 신학적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성서와 교회가 전하는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통해 이해한다. 그가 삶을 배열하고 해석하는 기준은 다름 아닌 신학이다. 이 책은 신학책이다.

<한나의 아이>를 충분히 음미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신학이 필요하다. 어찌 보면, 꽤나 불친절한 책이다. 하우어워스는 근대성과 자유주의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그는 니버의 사회윤리에, 그리고 틸리히의 체계적인 신학에 왜 그리 비판적인가? 바르트와 요더가 하우어워스에게 미친 영향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매킨타이어의 공동체주의는 그의 교회론에 어떻게 접목되는가? 내러티브란 과연 무엇인가? 그는 왜 덕과 성품을 강조하는가? 넘어가는 책장을 따라 질문들도 하나씩 고개를 들지만, 하우어워스는 별다른 설명 없이 시치미를 떼고 쓱쓱 지나간다. 그를 따라 저 질문들을 그냥 지나치는 사람에게 이 책은 삶의 역경을 이겨낸 어느 신앙인의 감동적인 인생사가 되고 만다. 신학자 하우어워스를 만나려면 저 신학적 질문들을 통과해야만 한다.

<스탠리 하우어워스 - 시민, 국가 종교, 자기만의 신을 넘어서>(비아)는 저 질문들의 답을 가장 쉽고 빠르게 확인해주는 책이다. 상투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한국어로 된 가장 가벼우면서도 촘촘한 하우어워스 신학 입문서다. 세속화 시대에 기독교 윤리학이란 다소 단순하게 이분(二分)하자면,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입장과 세상에 맞서 교회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입장으로 나뉜다. 세상과의 대화 가능성을 긍정하는 '공공신학'과 세상과는 다른 교회다움을 강조하는 하우어워스의 '교회 윤리'는 전자와 후자를 각각 대변한다.

하우어워스가 교회와 세상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이유는 자유주의적 근대성에 대한 그의 거부감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인식론적으로는 갖가지 전통과 그에 근거한 특수성을 상대화하고 보편적 합리성을 유일한 기준으로 내세운다. 다른 한편 정치적으로는 개인의 자유와 번영을 최우선적 사회 과제로 설정한다. 자유주의와 타협하기로 결심한다면, 교회는 고유한 정체성을 잃고 세속의 한 부분으로 순치되고, 그리스도인은 자본주의와 국가권력에 무기력하게 종속될 것이라고 하우어워스는 경고한다.

그는 라우션부시나 니버 등에게서 국가와 교회의 잘못된 동거를 읽고, 바르트와 요더에게서 신앙고백과 성서에 근거한 정치와 윤리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또한 매킨타이어의 공동체주의에서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내러티브와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성품의 훈련에 관한 중요한 참조점을 얻는다. 교회의 할 일은 이성적으로 신앙을 변증하는 것도, 세상을 변혁할 '대안 프로그램들'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교회는 그 자체로 대안이 되어야 한다.

<스탠리 하우어워스 - 시민, 국가 종교, 자기만의 신을 넘어서>의 지은이 마크 코피는 자유주의, 변증, 윤리, 자본주의, 국가라는 다섯 개 주제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하우어워스의 신학을 명료하게 정리해낸다. 옮긴이는 국내 출간된 하우어워스의 책을 꼼꼼하게 정리하여 마크 코피의 설명을 솜씨 좋게 보충한다. 나아가 칼 바르트, 존 하워드 요더,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 라인홀드 니버 등 하우어워스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친 학자들의 대표 저작을 분석하여 하우어워스 신학의 계보와 지형도를 살필 수 있도록 돕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던 하우어워스에게 빛을 비춘 건 교회와 신앙이었다. 그처럼 절박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들은 우리 곁에도 있다. 교회는 응답해야 한다. 교회는 교회다워져야 하며, 그를 위해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깊이 숙고하고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 무엇이든 냉소하기 쉬운 시대다. 드문 일이지만, 신학이 삶 속에 육화되고 삶이 신학의 언어를 얻으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곤 한다. 어머니의 기도에 이끌려 교회에 나오던 '한나의 아이'가 '스탠리 하우어워스'라는 신학자가 된 것처럼. <한나의 아이>와 <스탠리 하우어워스 - 시민, 국가 종교, 자기만의 신을 넘어서>는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이다. 삶과 신학을 동시에 읽는 건 즐겁고도 유익한 일이니까.

김영수 /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디트리히 본회퍼 - 평화주의자 암살자 사이에서>(매튜 D. 커크패트릭, 비아, 2015)를 옮겼으며 몇몇 매체에 글을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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