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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들' 의식하면 예수 이해하는 문 열린다
[서평] 리처드 A. 버릿지 <복음서와 만나다: 예수를 그린 네 편의 초상화>(비아)
  • 김경민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7.02.20 14:03

<복음서와 만나다> / 리처드 A. 버릿지 지음 / 비아 펴냄 / 344쪽 / 1만 5,000원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장뤼크 고다르의 '기관총 부대'를 보고 '영화는 카메라로 찍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언뜻 생각하면 카메라로 영화를 찍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막상 극장에서 영화에 몰입하면 카메라는 금세 잊히기 마련이다. 카메라의 존재,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카메라라는 도구를 활용해 무언가를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감독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는 순간, 우리 안에서는 감독-영화-관객 구도가 만들어지고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순간에 감독의 시선이 어떻게 반영되는지, 관객인 나는 그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감독의 자리와 내가 위치한 자리는 어디인지 살피게 된다. 이렇게 되면 '영화 보기'는 다른 차원으로 진입한다. 단순히 두 시간 남짓의 영상물을 감상하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감독이 만들어 낸 세계와 마주하는 경험이 되는 것이다.

예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교인이라면 예수의 삶과 죽음, 부활에 대해 증언하는 복음서가 하나의 '이야기 집'이 아닌 네 권의 서로 다른 복음서로 구성돼 있는 것을 안다. 그리스도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상식이다. 하지만 설교나 강론을 하거나 들을 때, 책과 텔레비전에서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접할 때 '어떤 복음서의 내용이더라?' 떠올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복음서마다 내용 선택이나 순서와 맥락의 배치, 세세한(그렇지만 매우 중요한) 세부 묘사에 차이를 보인다는 점도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당연한 사실은 너무 쉽게 잊힌다.

어떤 계기로든 '복음서들'의 존재를 의식하는 순간, 예수를 이해하는 다른 차원의 문이 열린다. 이때 우리는 비로소 '한 복음서'가 전하는 평면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마르코와 마태오, 루가, 요한이라는 네 명의 복음서 저자가 쓴 '복음서들'이 예수의 삶을 증언하며 전달하려 했던 입체적인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복음서 저자들이 이해한 예수는 어떤 분이었으며, 그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과 배제되는 곳은 어디인지, 우리가 그들의 신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의식하게 된다. 이러한 시선을 이어 가면 각기 다른 복음서 속에 있는 연속성과 차이가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카메라 존재를 의식하는 순간 영화 보기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겪듯, '복음서들'의 존재를 의식하는 순간 우리의 예수 읽기, 예수와의 만남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복음서와 만나다: 예수를 그린 네 편의 초상화>는 당연하지만 잊기 쉬운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해 주는 책이다. 신약성서를 연구하는 학자이자 성공회 사제인 리처드 A. 버릿지는 새로운 차원으로 복음서를 읽는 법을 소개한다. 독자들이 네 편의 복음서가 그리는 거대한 세계와 만나도록 돕는다. 이 책의 원제는 'Four Gospels, One Jesus?: A Symbolic Reading'이다. 제목 그대로 저자는 교회 전통에서 사용되어 온 사복음서 상징을 사용하여, 네 권의 복음서가 예수라는 한 인물을 어떻게 다채롭게 그려내는지 효과적으로 보여 준다.

1장에서 버릿지는 신약성서의 사복음서를 처칠을 담아낸 네 개의 서로 다른 사진에 비유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말한다. 

"네 개의 그림(혹은 사진)은 모두 다르다. 각 그림에는 고유의 이야기가 있어 각기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 보는 이로 하여금 달리 반응하게 한다. 그러나 네 그림은 모두 한 사람을 담고 있다." (23쪽)

"이 주제를 두고 강의할 때 나는 한 사람의 온전하고 '확실한' 한 장의 초상을 얻어 내겠다며 네 장의 서로 각기 다른 초상을 투명 필름에 복사해 겹친 뒤 사람들에게 보여 주곤 한다. 이러한 시도는 그저 보는 이의 웃음을 자아내며, 이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은 엉망으로 뒤섞여 버린, 확실함과는 동떨어진 그림일 뿐이다." (25쪽)

"그런데 왜 우리는 예수의 초상을 그러한 식으로 다루는가? 별다른 고민 없이 네 개의 초상을 하나로 혼합하려는 시도는 복음서 저자들의 탁월함을 음미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예수를 이상한 눈으로 이해하게 할 뿐이다." (26쪽)

버릿지는 복음서의 여러 이야기를 성급하게 하나로 합쳐 내기보다 각각을 하나씩 천천히 음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처칠이라는 인물을 두고 서로 다른 측면을 부각시킨 네 편의 서로 다른 초상을 합쳐 버렸을 때 그림이 엉망이 되는 것처럼, 사복음서의 예수 증언을 하나로 뒤섞는다면 복음서 저자들이 본래 그리려 했던 예수의 얼굴(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복음서들이 그리는 예수의 모습을 적절하게 묘사하기 위해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한 에제키엘의 환상(에제 1:10, 또한 묵시 4:7)을 적극 활용한다. 인간의 모습을 한 성 마태오의 상징, 포효하는 사자로 그린 한 성 마르코의 상징, 인내심 많은 소의 모습을 한 성 루가의 상징, 날카로운 부리를 가진 독수리를 형상화한 성 요한의 상징이 그것이다. 버릿지는 이러한 상징들이 과거 반문맹 시대에서 성서를 가르칠 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역설하며, 네 개의 상징이 가진 특징을 중심으로 각 복음서를 풀어낸다.

"성 마르코가 그린 사자는 무대 위로 뛰어올라 수수께끼처럼 이곳저곳을 종횡무진으로 다니며 포효하다가 지독하리만치 고독하게 죽는다. 성 마태오가 그린 인간의 얼굴을 한 이스라엘 선생은 긴 설교를 하고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며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세운다. 성 루가는 인내하며 짐을 짊어지고 가는 소를 그리는데 이 소는 모든 이를, 특히 내몰린 사람들을 돌보느라 희생 제물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발길을 멈추지 않는다. 성 요한은 높이 날며, 멀리 보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독수리를 그린다." (286쪽)

이후 책은 문체와 구조, 내러티브 기법에 초점을 맞추어 각 복음서의 특징과 내용을 설명한다. 버릿지는 복음서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면서도 주요 주제를 꼼꼼히 살펴보고, 저자의 특징적 어휘 사용이나 구약성서 및 고대 문헌 인용, 인물들에 내비치는 태도 등을 분석한다. 간혹 본문 이해를 돕는 역사 정보를 제공하지만 버릿지는 역사적 예수가 어떤 이였는지 보다 복음서가 예수 이야기를 조립하고 배열해서 전달하는 방식, 그리고 거기 담긴 저자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데 관심을 집중한다. 마태오와 루가가 마르코의 자료를 선별하고 덧붙이거나 생략하는 방식을 살피거나, 요한의 복음서가 다른 복음서들과 차이를 보이는 지점을 짚으면서 사복음서간의 관계도 설명해준다. 복음서 저자들의 고유한 상징, 인간과 사자, 소, 그리고 독수리는 이 모든 설명을 묶어 내는 구심점이다.

마지막 장에서 버릿지는 다시금 복음서가 네 권이라는 사실이 가진 의미를 말한다.

"복음서 저자들과 초대교회는 모두 서로 다른 네 복음서, 그리고 각기 다른 예수의 모습을 담은 복음서 특유의 문학적이고 신학적인 의미를 보존하고자 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점은 복음서 저자들이 거리낌 없이 특유의 영웅 초상을 그리기 위해 변화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네 편의 복음서가 본질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291쪽)

<복음서와 만나다>가 생경하거나 충격적인 주장을 하는 책은 아니다. 이 책에서 버릿지는 그저 우리가 읽고 듣는 예수 이야기가 복음서'들'이 전하는 풍요롭고 입체적인 이야기를 단순화한 것일 수 있음을 환기하고 다시 그 텍스트들로 돌아가 예수의 모습을 바라보는 법을 인도할 뿐이다. 그러나 이 작은 전환이 가져올 변화는 생각보다 크다. 버릿지의 안내에 따라 복음서를 한 권씩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다면, 한 평면 안에 뒤엉켜 있던 예수 이해가 점차 입체적으로 승화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좀 더 학적으로 말한다면 이 책은 문학비평적 관점에서 사복음서를 분석한 얇지만 옹골찬 주석서다. 

복음서 저자들이 이해한 예수의 모습을 통전적으로 조망하고 싶을 때, 복음서로 설교나 나눔을 준비할 때, 오늘 읽은 성서 묵상의 맥락을 이해하고 싶을 때,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전문가나 사복음서 세계에 막 발을 내딛은 신학생들, 복음서에 관심을 갖고 있는 평신도들 및 인문 독자들에게 이 책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 전문가들에게는 자신이 아는 바를 정리할 수 있는 역할을 해줄 수 있고, 신학생과 평신도에게는 좋은 해설서 역할을 할 수 있다.  

정성일은 처음 영화 평론집을 내면서 들뢰즈의 말을 인용해 책 제목을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로 정했다. 그에 따르면 영화감독은 현실에서 이미지를 차용해서 가공하고 다르게 배열하여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는 사람이다. 관객은 영화 보기를 통해, 감독이 창조한 세계에 참여함으로써, 달리 말하면 그 세계를 적절히 읽어냄으로써 새로운 의미,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고 이 의미와 이미지가 다시금 현실 세계를 새롭게 빚어낸다. 그러한 면에서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영화감독처럼 복음서 저자들도 예수의 말과 행적을 가져와 재배열하여 거대한 세계들을 빚어냈다. 이 세계들은 우리에게 한 인물을 만날 것을, 그리고 그가 전한 말과 행동을 우리의 세계에 새기고 새로이 재현할 것을 요청한다. 그 요청에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응답할 때, 우리 개개인이 그리는 예수의 얼굴이 복음서 저자들이 보았던, 2000년 전 한 팔레스타인 사내의 모습과 만날 때 '세상은 복음이(혹은 복음화)될 것'이다. 이 책은 그 '만남'을 가능케 하는 하나의 장이다.

"성 마르코의 날뛰는 사자, 성 마태오의 이스라엘 선생인 인간, 성 루가의 무거운 짐 짊어지고 가는 소, 그리고 성 요한의 높이 나는 독수리는 우리가 네 편의 복음서를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그리하여 우리는 한 예수를 볼 수 있게 된다." (314쪽)

김경민 /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요한의 복음서를 다룬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성서를 당대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읽는 일과 이를 오늘날 상황에 번역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옮긴 책으로 <역사적 예수>, <복음서, 복음으로 읽기>, <요한복음의 예수>(이상 성서유니온), <예수-생애와 의미>(비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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