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취재팀] 고 한충렬 목사(장백교회)가 태어나서 자라고 목회했던 장백조선족자치현. 장백현은 길림성 남동쪽에 위치한 변경 도시다. 압록강을 사이로 북쪽에는 중국 길림성 장백조선족자치현이, 남쪽으로는 북한 양강도 혜산시가 자리 잡고 있다.

'조선족자치현'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2011년 현재 장백현 전체 인구 구성원 중 약 17%가 조선족이다. 1958년 현 수립 당시 40%에 육박하던 조선족 비율은, 90년대 초 중국의 개혁 개방정책과 더불어 불어온 '출국 바람'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그럼에도 압록강 유역에 있는 강변 도시 중 유일한 조선족자치현이다.

장백현은 길림성 안에서도 오지에 속한다. 장백현에 진입하려면 크게 두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임강시에서 303 성급 도로를 타고 압록강을 따라 약 220km를 달려야 장백현에 도착한다. 길이 험해 임강시에서 장백현까지 5시간 이상 걸리는 여정이다.

302 성급 도로를 타고 백두산 남쪽 줄기를 따라 북으로 향하면 백두산 서파 관광의 관문 송강하진에 다다른다. 이 길은 중간에 장송령(장백-송강하 사이의 고개)을 넘어야 한다. 길이 험하고 고도가 높아 차량이 쉽게 오가기 힘들다. 고개 정상에는 5월에도 눈이 내릴 정도다.

▲ 장송령 정상 부근. 5월에도 곧잘 눈이 내린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두 길 중 어디를 선택해도 한국에서 출발하면 당일 안에 도착하기 힘들다. 인근의 심양공항, 장춘공항, 연길공항 중 어디에서 내려도 다시 차를 타고 10시간 가까이 달려야 장백현에 도착한다.

이는 달리 말하면 두 개의 성급 도로만 통제하면 장백현과 외부의 소통을 효율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한 목사 피살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한국 및 중국 언론의 접근 자체가 어려운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실제 장백현으로 향하는 모든 차량은 중국 변경 부대의 검문을 통과해야 한다. 평상시에도 외지인에게는 신분증, 여권 검사가 철저하다. 한 목사 피살처럼 민감한 사건이 터졌을 때는 검문 강도가 더 심해진다.

압록강은 전체 길이가 930km에 달하는, 한반도에서 가장 긴 강이다. 강 자체가 북한과 중국의 국경이다. 북한의 평안북도, 자강도, 양강도가 압록강에 연해 있다. 중국의 요녕성, 길림성은 압록강과 붙어 있다.

▲ 압록강에서 통나무로 뗏목을 만들어 나무를 운반하는 북한 주민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 압록강변의 북한 마을. 한 주민이 빨랫감을 정리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강을 따라 양편에 북한과 중국의 마을이 산개해 있다. 하구 쪽에는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중국의 단동시, 북한의 신의주시가 자리 잡고 있다. 상류로 올라가면 중국의 집안시, 임강시가 있다. 압록강을 따라 차를 몰고 가다 보면 강 건너편으로 북한의 작은 마을이 곳곳에 눈에 띈다.

압록강 인근에 북한 마을이 많음에도 탈북자 대부분이 압록강이 아닌 두만강을 넘는 이유가 있다. 첫째, 압록강은 수량이 많고 강폭이 넓어 건너기 어렵다. 상류 일부 지역을 제하곤 겨울에도 강이 얼지 않는 점도 도강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둘째, 도강 후 건너편 중국 마을에서 도움을 받기 어렵다. 압록강 유역의 주요 도시 중 장백현을 제외한 나머지 도시들은 조선족 인구 비율이 높지 않다. 중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탈북자들에겐 그 자체가 장벽이다.

압록강에 연해 있는 북한 도시 중 신의주시와 혜산시를 제외하면 다들 규모가 작은 점도 이유 중 하나다. 북한은 도시 간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도시로 통하는 주요 길목에 검문소가 있어 허가받은 사람 외에는 지나는 것이 어렵다.

작은 시골 마을에 낯선 사람이 들어서면 금방 눈에 띈다. 신의주시와 혜산시만 '군중 속의 개인'이라는 장점을 활용하여 다른 지역 사람들이 들어오기 용이한데, 일반인이 신의주시와 단동시를 가르는 압록강을 수영으로 건너는 것은 무리다.

▲ 압록강 너머로 보이는 북한 마을 전경.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 북한 마을 앞을 지나는 뗏목.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결국 압록강 유역에서 탈북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루트는 혜산시만 남는 셈이다. 혜산시와 장백현 사이는 압록강 상류여서 강폭이 좁고 수심이 얕다. 수영할 필요 없이 그저 바지를 걷어붙이고 건너면 되는 구간이 많다.

이런 지리적 특성을 이용해 탈북, 밀수 등 불법행위를 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양국 모두 대책 마련에 골머리다. 북한은 강둑에 긴 울타리를 설치했다. 감시초소도 촘촘하게 재배치했다.

중국도 강변을 따라 CCTV를 빠짐없이 설치했다. 곳곳에 북한 경내를 촬영하지 말라는 푯말이 한국어와 중국어로 병기되어 있다. 이를 무시하고 카메라를 꺼내 들면 중국 공안이 어김없이 달려든다. CCTV의 위력이다.

요행히 강을 건너 중국 땅에 발을 내딛었다 하더라도 안전한 장소를 찾기 쉽지 않다. 장백현 시내는 반나절이면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규모다. 말투와 복장에서 중국인과 확연히 구분되는 북한 사람들은 급한 대로 교회를 찾는 경우가 많다. 거기서 조건 없이 먹을 것, 입을 것, 돈을 준다는 소문 정도는 다 들었기 때문이다.

▲ 장백현에서 바라본 혜산시 모습.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한충렬 목사는 이런 환경 속에서 20년 가까이 북한 사람을 섬기는 일에 헌신했다.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도움을 얻기 위해 찾아온 사람이 배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동포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일념으로 사역을 지속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