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명의 목사·전도사들이 집사 2명을 데려다 놓고 강의를 듣고 있다. '목사님, 왜 이러세요?'라는 주제로 '쓴소리'를 듣는 시간이다. 집사 2명은 각자 일반 교인으로서 한국교회와 목회자에 대해 느끼는 점과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한다. 발제가 끝나자, 목회자들은 집사들이 던진 이슈로 진지하게 토론한다. 목회자로서의 애로 사항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한다.

목사가 집사 20명을 앉혀 놓고 강의하는 건 익숙한데 이런 모습은 뭔가 어색하다. 10월 27일 서울시 응암동에서 열린, 교회2.0목회자운동(교회2.0) 월례 포럼의 풍경이다. 교회2.0은 10월 포럼의 강사로 '평신도'를 불렀다. 목사나 교수가 생각하는 교회·목회자가 아닌, 일반 교인들이 생각하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 교회2.0은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에 포럼을 진행한다. 10월 27일 포럼의 주제는 '일반 교인'에게 듣는 교회와 목사 이야기였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작지만 내실 있게, 작은 교회 운동은 진행 중

교회2.0은 '작은 교회'를 '의도적'으로 지향하는 목회자들의 모임이다. 2011년 6월, 건강한작은교회연합(전 개혁교회네트워크)에 참여하던 목사들이 만들었다. 교인 수 300명 이하의 작은 교회를 지향하는 목회자와 신학생들이, '2.0'이라는 말에 맞게 서로 소통하고 협력한다. 한국교회의 타락상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찾고, 시대의 흐름과 이슈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교회2.0은 핵심 가치를 5가지로 요약했다. △세속적 가치를 극복하고 순수한 신앙의 회복을 위한 목회(성경적 가치) △직분에 따른 복음적 분업을 시행하는 목회(은사적 직제) △권위주의 극복과 교회의 민주적 운영을 시행하는 목회(민주적 운영) △개교회 이기주의 극복과 교회 개혁 운동에 동참하는 목회(교회 개혁) △정통 실천의 회복과 사회적 책임을 지향하는 목회(사회적 책임).

▲ 지난 9월 정기 포럼의 주제는 고난의 현장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었다. 평화 활동가 송강호 박사와 촛불교회 최헌국 목사가 강의했다. (사진 제공 교회2.0목회자운동)

3년이 지난 지금, 교회2.0은 작지만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정회원으로 회비를 내고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목회자와 신학생은 36명이고, 교회2.0 페이스북 그룹에 가입해 이들의 소식을 받아 보고 있는 사람은 3400명이다. 매월 한 번씩 포럼을 열어, 목회 사례를 발표하고 핵심 가치와 관련한 주제로 강연을 진행한다. 강남·강북·경기 북부·일산·부천·인천 등 6개 지역별로도 매월 한 번씩 모인다.

지방 목회자들이 건강한 작은 교회에 관심을 갖고 교회2.0에 연락을 해 오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교회2.0은 '찾아가는 포럼'을 연다. 지난해에는 경남·춘천 등에 회원들이 자비를 들여 찾아갔다. 신학대에서 연락이 오기도 한다. 교회2.0 목회자들은 올해 봄 학기에 서울신대·성결대·아세아연합신학대·장신대 등에서 강의하기도 했다. 서울신대에서는 두 학기째 강좌가 개설됐고, 성결대에서는 '성결2.0'이라는 신학생 모임도 생겼다.

지난 8월 교회2.0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천막 카페'를 운영했다.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에서 제안한 것을, 교회와 함께 카페를 운영하는 교회2.0 회원들이 받아들였다. 광화문 천막 카페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특별법 제정을 위해 수고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소소한 위로가 됐다. (관련 기사 : 교회2.0, 세월호 유가족 위한 '광화문 카페' 운영) 여기서 멈추지 않고, 교회2.0은 앞으로 여러 고난의 현장에 찾아가 천막 카페를 열 계획을 가지고 있다.

▲ 지난해 8월 열린 신학생 수련회. 교회2.0 회원 낮은마음교회 오준규 목사가 강의하는 모습. (사진 제공 교회2.0목회자운동)

1년에 두 번씩 목회자·신학생 수련회도 연다. 목회자와 신학생이 모여 함께 배우고 건강한 작은 교회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시간이다. 작은 교회를 목회하는 목사들은 대부분 1인 목회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러 가지 행정적인 일까지 도맡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에 교회2.0은, 컴퓨터와 각종 스마트 장비로 콘텐츠 생산을 돕는 '스마트 목회'도 운영하고 있다.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지만, 교회2.0의 본질은 '목회'다. 회원들은 저마다 목회 환경 속에서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지역사회와 함께하기 위해 카페와 도서관을 운영하고, 의도적으로 작은 교회가 되기 위해 교회를 분립하기도 한다. 교회2.0은 이런 시도를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는 자리다. 10월 포럼 때 교회2.0을 처음 찾은 한 여전도사는 "작은 교회에 대한 목회적인 고민을 얘기할 수 있는 장이 여기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교인들의 쓴소리, 달게 받는다

▲ 권대원 집사는 삼일교회 간사로 11년간 사역했다. 그는 전병욱 사태를 내부에서 겪으면서, 진짜 목회자는 99마리 양이 아닌 잃어버린 1마리 양을 찾아 떠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10월 27일 포럼에 참석한 25명 중 7명은 교회2.0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포럼에 왔다. 한 전도사는 9살 때부터 수만 명이 다니는 ㅁ교회에 다녔다. 신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도, '교회'라 하면 그런 대형 교회의 이미지밖에 없었다. 하지만 교회2.0을 통해 작은 교회가 분투하는 모습을 접할 수 있었고, 지금은 ㅁ교회에서의 생활과 교회2.0이 추구하는 가치를 비교해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발제자로 초대된 일반 교인은 삼일교회 권대원 집사와 다니엘새시대교회 최규창 집사였다. 권대원 집사는 전병욱 목사가 삼일교회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11년간 간사로 활동했다. 전 목사의 성추행이 드러났을 때 교회 안에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이다. 지난 8월에는 <숨바꼭질>을 펴내 전 목사를 다시 한국 사회에 불러 세웠다. (관련 기사 : '승승장구' 전병욱 목사, 이번에는 면직될까)

권 집사는 전 목사의 성추행이 드러나기 전부터 삼일교회는 무너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전 목사는 오직 교인 늘리기만을 추구하고 조장했으며, 부교역자들과 간사들은 그에 부역하는 것을 하나님나라에 대한 충성이라고 착각했다. 간사들은 일반 교인으로, 주중에는 각자 일터에서 일하다가 주말에는 부목사들에게 잔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간사를 하는 동안 너무 무리해서 건강이 나빠지거나 교회를 떠난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교인들이 원하는 목회자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99마리 양을 두고 잃어버린 1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라고 권대원 집사는 말했다. 그는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 사건이 터졌을 때나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뭇사람의 반응이 비슷하다고 했다. 다수가 '교회(나라)를 흔들지 마라'는 말로 소수의 목소리를 짓밟았다. 권 집사는 "진짜 목회자라면 다수의 교인들이 혼란을 원하지 않더라도 피해자들의 편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

목회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권 집사의 말을 경청했다. 전 교회2.0 실행위원장 이진오 목사는 "이미 알고 있는 얘기더라도 목사가 아닌 교인에게 들으니 가슴 깊이 박힌다"며 "사실 99%의 교인들은 1%의 교인을 찾으려 모험하는 목사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 99%를 만든 것조차 1차적으로는 목사들의 잘못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최규창 집사는 우리나라 사회의 '왜곡된 가족주의'가 집단적 무의식의 형태로 교회에 나타난다고 봤다. 정(情)으로 뭉쳐 있어 개성이 무시당하고, 특히 지나친 가부장 문화로 젊은 세대가 억압당하는 문화가 교회 안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기성 교회의 구조와 형식은 새로운 세대들이 만든 것이 아닌데도, 기성세대는 신앙의 유산이라며 이를 물려주려 하고 강요하고 있다고 했다. 새로운 세대는 맞지 않는 옷을 입는 셈이라고 말했다.

최 집사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단(單)세대 교회'를 주창했다. 그는 교회가 전 세대를 캐어하는 것은 '환상'인 것 같다며, 한 세대로만 이루어져 있는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한 세대의 시대정신과 삶의 모습에 적합한 교회 구조와 형식을 만들고, 그 안에서 목회자와 교인들이 함께 늙어 가는 모습을 그렸다.새로운 세대는 또 그 시대에 걸맞은 교회를 만들어야 하며, 기성세대와는 미련 없이 이별해야 한다고 했다.

단세대 교회는 목회자들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됐다. 참가자들은 단세대 교회가 가능한지, 그것이 정말 대안이 맞는지 물었다. 몇 달 후 개척을 준비하고 있는 한 전도사는 "오히려 교회는 온 세대가 있어야 하지 않나. 젊은 세대가 보고 배울 멘토가 없는 게 문제지, 젊은 세대가 억압당한다고 해서 이를 끊어 버리는 건 대안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규창 집사는 기존의 교회가 왜곡된 가족주의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정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교인들이 바라는 목회자상과 교회상에 귀 기울이면서 교회2.0은 고민을 거듭한다. 그렇게 지난 3년간 배우고 실험하면서 성경과 시대가 요구하는 교회의 모습에 한 발짝씩 내딛고 있다.

▲ 25명의 목회자들이 두 집사의 말에 귀 기울였다. 발제가 끝나고는 토론과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누군가가 설교하는 것이 아닌, 서로가 고민과 의문점을 털어놓는 시간이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다른 목회가 있을 수 있다'

한국교회는 '큰 교회'와 '크지 못한 교회'로 나뉜다는 말이 있다.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교회는 모두 큰 규모에 목을 맨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는 대형 교회와 '짝퉁' 대형 교회로 나눌 수 있다. 짝퉁 대형 교회는 크지 못했을 뿐, 그 지향점이나 행태가 대형 교회와 똑같은 교회다." 1970~1980년대 경제 발전과 맞물려 급격히 불어난 교회는, 하나님의 복을 외형적인 교회 성장으로 대체해 버렸다.

어쩌면 목회자들은 '큰 교회' 말고는 모델을 찾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교회가 성장하지 않으면 실패한 목회라는 패배 의식도 팽배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건강한 작은 교회'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눈에 확 뜨이지는 않지만, 건강한작은교회연합, 교회2.0, 작은 교회 박람회 등이 작은 교회 운동을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교회2.0이 지난 3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이다.

실행위원장 정성규 목사는 "'다른 목회가 있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은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 실행위원장 이진오 목사도 "그동안 목회자들은 대형 교회와 스타 목사가 아닌 다른 모델을 찾기 어려웠다. 이런 한국교회 토양에 '작은 교회가 건강하다'는 의식이 스며들고 있다"고 평했다. 총무 이헌주 목사는 "작은 교회가 목회의 실패가 아니라, 좋은 전통이자 오늘날 한국교회에 반드시 필요한 대안이라는 인식을 넓혔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은 교회 운동'이 갈 길은 멀다. 정성규 목사는 "아직 영세하고 모험적이라, 기성 교회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 40대에서 50대 초반의 젊은 목회자들이 하는 이런 실험적인 목회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또 당장 생존의 기로에 서 있는 작은 교회 목회자에게, 카페나 도서관 등을 같이 운영하는 경우가 얼마나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다.

대형 교회는 오히려 큰 규모를 유지하면서 '건강함'이라는 가치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민주적인 정관을 만들고 재정 투명성·신뢰도를 높이는 '구조적 건강성'을 내세우는 것이다. 이헌주 목사는 "구조적인 건강성과 공동체적인 건강성은 함께 가야 한다. 작아야 공동체 내부를 발 빠르게 개혁하고 사회와 함께 호흡할 수 있다. 앞으로는 '작음'의 가치를 어떻게 실현해 갈 것인지가 과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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