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이 드러날 때, 삼일교회 안에서는 그에게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교인들이 있었다. 교인들과 전병욱 목사의 실체를 알리기 위해 활동해 왔던 이진오 목사가 <숨바꼭질>(대장간)을 펴냈다. 368면, 정가 1만 3000원.

4년 전, 여교인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던 전병욱 목사가 요즘 또 다시 구설에 오르고 있다. 전병욱 목사와 그가 담임하는 홍대새교회는 9월 29일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2위에 오르기도 했다. 전병욱 목사를 다시 한국 사회 앞에 세운 건 올해 8월 출간된 <숨바꼭질>(대장간)이다. 이 책을 한 언론사가 기사화하면서, 다른 언론사들도 앞다퉈 보도하기 시작했다.

<숨바꼭질>은 전병욱 목사의 성범죄가 드러날 때 문제를 제기했던 삼일교회 교인 권대원·지유석 씨와 온라인 카페 '전병욱목사진실을공개합니다' 운영자 이진오 목사 등 8명이 펴냈다. <한국일보>는 권대원·지유석 씨를 인터뷰해 책을 소개했다. 두 사람은 '숨바꼭질'이라는 제목에 대해, "교인은 목사라는 권위에 가려 진리를 보지 못하고, 교회는 가해 사실과 가해 목사를 가리기에 급급하고, 교회는 다시 교단 뒤에 숨고 있다"며 그 의미를 설명했다. 포털 사이트 '다음'에 게재된 이 기사는 현재까지 2300여 개의 댓글과 1만여 개의 공감을 얻었다. "성추행 목사는 감옥에 가야지 왜 설교하나"라는 댓글이 일반인들의 상식을 대변하고 있다. (관련 기사 : [단독] 스타목사 성추행 숨바꼭질 4년…교인들이 파헤쳐 <한국일보>)

책은 전병욱 목사 사건과 관련한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보도된 내용과 칼럼 등을 종합했다. 그에게 성추행 피해를 당한 여성들의 증언부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 삼일교회가 취했던 태도와 처리 과정, 기독교인들의 자발적인 규탄 운동, 전 목사가 소속한 평양노회의 무관심, '전병욱 현상'을 통해 본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인 등을 총망라했다. 피해자들이 직접 증언한 내용 몇 가지만 발췌한다. (관련 기사 : "제2, 제3의 전병욱 막으려 이제라도 나섰다" / "전 씨에게 성추행당한 내가 잘못?")

"그때 목사님이 제 엉덩이를 한 움큼 주물렀습니다. 그리고선 하시는 말씀이, 그 최양락 같은 목소리로 '넌 왜 이렇게 엉덩이가 처졌냐? 운동을 안 해서 그래. 운동을 해야 힙이 업 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기가 막혀서 멍했습니다. 소파에 앉으라고 하여 소파에 앉았습니다. 소파에 앉자 목사님이 또 말씀하십니다. '너 가슴 한번 만져 보자. 만져도 되지?' 대답할 새도 없이 목사님은 제 가슴을 만졌습니다. 그땐 움큼 집은 것은 아니고, 위아래로 한 번 쓸어내렸습니다. 그리고선 하시는 말씀이 '너 가슴도 처졌네. 너 정말 운동해야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0쪽)

"그리고 목사님은 '어떤 여자가 음부 사진을 찍어서 내 메일로 보냈다, 나체 사진을 찍어 보내는 여자애가 있다, 어떤 애는 예배 시간에 속옷 안 입고 제일 앞자리에 치마 입고 앉아서 다리 벌리고 있다'는 등 성적인 얘기를 자주 했습니다. 이런 얘기는 너무너무 많아서 다 쓸 수도 없습니다. 화려한 외모를 가진 친구랑 갔을 때는 그 친구에게 '넌 너무 싸 보여. 남자랑 자 봤지?' 하면서 절대로 아니라고 해도 확신하며 성희롱을 일삼았습니다. 결혼 못한 노처녀 언니에게는 남자 꼬시려면 가슴이 확 파인 야한 옷을 입고 다니라고 권하기도 했습니다." (49쪽)

▲ 전병욱 목사는 2012년 5월 홍대새교회를 개척해 지금까지 담임목사로 활동하고 있다. 목사를 실질적으로 치리할 수 있는 노회는 그를 가만히 두었다. 하지만 올해 10월 정기노회에 전병욱 목사 면직 청원서가 올라갔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그만큼 했으면 됐지 다 지나간 일을 왜 다시 끄집어내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전병욱 사태'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건재하다. 2012년 5월 홍대새교회를 개척해 담임목사로 활동 중이다. 그의 설교는 매주 홍대새교회 홈페이지에 업데이트되고, 영어로 번역까지 된다. 금요일 저녁 홍대 근처에 가면 노방전도를 벌이는 홍대새교회 교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홍대새교회 교인이 계속 늘어서 예배당을 확장한다는 소문까지 심심찮게 들린다.

전병욱 목사는 자신의 잘못을 명백하게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한 적이 없다. 삼일교회를 떠날 때 성 중독 치료비로 1억 원을 받았지만 치료를 받았는지도 알 수 없다. 오히려 전 목사는 성추행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모양새다. 지난해 3월 방영된 뉴스타파M에는, 성추행 사건을 묻는 사람에게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전 목사의 모습이 나온다. (관련 기사 : 죄인으로 살겠다던 전병욱, 성추행 부인)

목사를 치리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노회는 전병욱 목사에게 손대지 않았다. 전 목사가 소속한 노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평양노회다. 삼일교회 일부 교인들과 전병욱목사성범죄기독교공동대책위원회는 계속해서 평양노회에 전 목사를 징계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노회는 줄곧 절차, 즉 당회와 시찰회를 거쳐 정식으로 접수된 안건만 다룰 수 있다며 전 목사에 대해 함구했다.

평양노회는 오히려 2012년 10월 전병욱 목사가 제출한 홍대새교회의 노회 가입 신청서를 기각하지 않고 보류하는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이미 삼척동자도 다 아는 전 목사의 성추행을 진상 조사해야 한다며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이 위원회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모이지 않았다. 그렇게 전 목사는 성추행이 드러난 뒤에도 무풍지대에서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좀 다르다. <숨바꼭질> 발간으로 여론이 고조되는 이 시기에, 평양노회 가을 정기회에 '전병욱 목사 면직 청원'이 올라갔다. 삼일교회(송태근 목사)가 당회를 거쳐 정식으로 면직 청원서를 제출한 것이다. 현 평양노회장 강재식 목사는 "정식으로 서류가 접수된다면 전 목사에 대해 반드시 다루겠다"고 여러 번 공언한 바 있다. 평양노회 정기회는 오는 10월 13일 10시부터 서울 영등포 은석교회(김진웅 목사)에서 열린다.

한편, <숨바꼭질> 출간을 기념해 '전병욱 목사는 무엇에 숨어 있나'라는 주제로 포럼도 열린다. 10월 6일 오후 7시 30분 기독교회관에서 열리는 포럼에는, <숨바꼭질> 책임 편집자 이진오 목사,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정직윤리본부장을 맡고 있는 예장합동 평양노회 소속 신동식 목사, 김응교 교수(숙명여대), 여신학자 강호숙 박사(총신대), 삼일교회 장로가 패널로 참석한다. 사회는 전병욱 목사의 성범죄를 처음 보도한 <뉴스앤조이> 김종희 대표가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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