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교회위원회가 6월 1일 개최한 '세월호 참사 위로와 회복을 위한 연합 기도회'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강단으로 올라 한국교회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성경의 말씀대로 세월호 참사 이후 피해 가족들과 함께해 왔다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안전하고 행복한, 새로운 대한민국'을 이룩하는 데 한국교회가 큰 힘이 되어 달라고 요청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세월호 참사 47일째인 6월 1일, 박근혜 대통령이 명성교회 강단에 올라섰다. 박 대통령은 한국교회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성경의 말씀대로 세월호 참사로 고통받는 가족들과 함께해 주어서 감사하다며, '안전하고 행복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 데 한국교회가 힘이 되어 달라고 했다. 예배당을 가득 메운 교인들은 아멘으로 화답했다.

박 대통령이 참석한 기도회는, 지난 5월 22일 출범한 '세월호 참사 위로와 회복을 위한 한국교회위원회'(한국교회위원회·김삼환 위원장)가 개최했다. 위원장을 맡은 김삼환 목사는 한국교회가 연합하여 세월호 참사를 극복하고 치유하는 활동을 하기 위해 기도회를 마련했다고 했다. 6월부터는 세월호 참사로 인한 절망을 딛고, 새 희망과 소망을 바라보자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했다.

기도회가 열린 명성교회에는 최소 1만여 명 이상의 교인이 운집했다. 교회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사거리는 밀려드는 차들로 혼잡했다. 교통경찰들이 나서 차량을 통제하고,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에 차를 대도록 했다. 대형 버스를 동원해 수원에서 교인들을 태우고 온 교회도 있었다. 기도회 시작 한 시간 전부터 8000석 예배당은 가득 찼다. 미처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교인들은 구 예배당으로 가거나 미리 의자를 깔아 놓은 교회 앞 주차장에 자리를 잡았다.

▲ 명성교회의 8000석 예배당은 기도회를 찾아온 교인들로 가득 찼다. 예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운집한 1만 여 명의 교인들로 교회는 북적북적했다. 미처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교인들은 구 예배당과 주차장, 소예배실로 흩어져 자리를 잡았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한국교회 연합을 기치로 내건 한국교회위원회의 기도회 면면은 화려했다. 교단 연합 기구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대표회장을 지낸 박종순 목사와 한국교회연합 한영훈 대표회장이 예배 전 '여는 말씀'을 맡았다. 장종현 예장백석 총회장이 대표 기도를, 장차남·김장환 목사가 설교를 했다. 소강석 목사가 추모 시를 낭독하고, 최성규·유만석·권태진·한태수·김경원·정성진 목사가 중보 기도를 인도했다. 프린스턴신학대학원 크레이그 반스 총장도 참석해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림인식 목사가 축도를 맡았다.

기도회 순서에는 없었지만, 김선도·서기행·이영훈 목사 등 주요 교단의 전 총회장들은 한국교회위원회의 고문과 공동위원장에 이름을 올렸고,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와 수원중앙침례교회 고명진 목사도 공동위원장과 실행위원장에 나란히 올랐다.

이날 참석 인사의 정점은 단연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새하얀 정장을 입고 명성교회를 찾은 박 대통령을 교인들은 박수갈채로 맞았다. 몇몇 교인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경호를 이유로 수십 명의 요원이 배치되어 출입을 통제하고, 언론에도 차별을 두어 접근을 금지했다. '전속'이라고 적힌 곤색 완장을 찬 청와대 기자들은 어디든지 갈 수 있었다. '근접'이라고 적힌 녹색 완장을 찬 일부 방송사 및 뉴스 통신사는 10여 미터까지만 접근이 허용됐다. <뉴스앤조이>를 비롯한 일부 언론들은 '프레스'라는 명찰을 받았지만, 예배당 중간 지점으로 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지시 사항"이라고만 답했다.

강단에 올라선 목회자들은 세월호 참사가 사회의 누적된 병리 현상과 한국교회의 잘못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막을 수 있었는데, 막지 못해 미안하다"고 운을 뗀 박종순 목사는, '안전불감증'과 '배금주의', '책임 떠넘기기', '사이비 신앙' 등 그릇된 가치관이 참사의 주범이라고 했다. 한국교회가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고 유족들의 상처를 싸매 주자고 했다. 한영훈 목사는 구원파가 사고에 연루되었는데, 이단이라고 정죄만 하고 방조한 책임에서 한국교회가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이제라도 거듭나서 건강한 사회를 만들자고 했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을 주제로 설교한 장차남 목사는 세월호 참사는 부조리의 극치를 보여 준 사건이라며, "꽃봉오리를 피워 보지도 못한 젊은 영혼들이 산화했다"고 안타까워했다. 한이 쌓여 가는 유가족들의 손을 묵묵히 잡아 주고 위로하자고 했다. 김장환 목사는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자'를 주제로 절망과 고통 중에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며, 소망을 잃지 말라고 권면했다. "재난으로 대한민국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삶의 등대이신 예수를 바라보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했다.

설교가 끝나고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을 돕기 위한 성금을 모았다. 기획위원장인 손인웅 목사는 향후 2년에서 3년 동안 유족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일에 나설 것이라며, 헌금이 필요하다고 독려했다. 이날 모아진 헌금은 안산시기독교연합회(안기연·유재명 회장)에 전달했다. 성금을 받은 유재명 회장은 "인제 그만 끝내자, 덮자고 하지 말고 저들의 아픔과 회복에 끝까지 힘이 되어 달라"고 했다.

한국교회위원회는 '세월호 참사 위로와 회복을 위한 호소문'을 통해 사고당한 희생자 가족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영원히 잊지 않고 함께하겠다고 했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무책임한 대처에는 깊은 유감을 표하고,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구조적·관행적 비리 앞에 타협해 온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모습을 반성하고 생명 사랑과 정의 구현에 힘쓰자고 했다. 국민에게는 아픔을 넘어 회복과 희망의 미래로 나아가자고 호소했다. 구원파는 엄정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 김삼환 목사를 중심으로 한국교회위원회 참여 인사들이 강단에 올라와 무릎을 꿇었다. 지도자인 자신들의 잘못이 크다고 했다. 이들은 세월호의 아픔을 잊지 않고, 끝까지 희생자와 함께하고 하나 되어 섬기는 참된 교회 모습을 이뤄 나가겠다고 결단했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진상 규명·책임자 처벌 촉구, 최종 책임자인 박 대통령에겐 관대

한국교회위원회는 기도회에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촉구했지만, 대한민국의 최종 책임자인 박근혜 대통령에게만은 관대했다. 강단에 올라선 목회자들은 박 대통령의 책임을 논하기보단, 대한민국을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로 세울 수 있기를 기원했다.

한영훈 목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진심 어린 담화문을 보고 나도 눈물을 흘렸다. 세월호 참사는 대통령만의 책임이 아닌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며 박 대통령을 옹호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대통령 각하"라는 극존칭을 아끼지 않았다. 장차남 목사는 국민 통합을 위해, 김장환 목사는 대한민국의 경제가 살고 모든 분야가 소성하도록 기도하자고 했다.

6·4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대통령을 초청해 직·간접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은 보수 결집을 노리는 정치적 의도로 비칠 수 있다. 손인웅 기획위원장은 "정치적인 의도는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조계사와 명동성당을 방문한 대통령이 개신교 행사에도 공평하게 참석한 것뿐이라고 했다.

'망언' 논란 언급 없어…김삼환, "집사나 장로에게 문의하라"

한국교회는 최근 세월호 참사 관련 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잇따른 '망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한국교회위원회 위원장인 김삼환 목사도 5월 11일 설교에서 "하나님이 (세월호를) 공연히 이렇게 침몰시킨 게 아닙니다. 나라가 침몰하려고 하니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은 그래선 안 되니 이 어린 학생들, 이 꽃다운 애들을 침몰시키면서 국민들에게 기회를 준 것"이라고 말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관련 기사 : 김삼환 목사, "세월호는 하나님이 침몰시킨 것")

지난 5월 30일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전용재 감독회장)를 찾은 유가족 대표 6명은 진상 규명에 한국교회가 나서 달라고 호소하는 한편, 일부 목사들의 망언으로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전했다. 특히 김삼환 목사 설교에 서운함이 크다며, 더는 그런 말들이 나오지 못하도록 막아 달라고 요청했다. (관련 기사 : 세월호 유가족, "진상 규명 교회가 도와 달라")

한국교회위원회는 한국교회의 회개와 쇄신을 부르짖었지만, '망언' 논란과 관련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부적절한 발언으로 유가족에게 큰 상처를 준 일부 목회자를 대신해 지난 5월 29일 "죄송하다"고 사죄한 목회자 1000인의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기도회가 끝나고 김삼환 목사에게 설교 논란에 대해 물었다. 김 목사는 "집사나 장로에게 문의하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 세월호 참사로 고통받고 있는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교인들은 두 손을 들고 통성으로 기도했다. 하나님의 위로의 손길이 임하길 간절히 바라고,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에 대한 깊은 성찰과 회개를 바탕으로 다시 떨쳐 일어설 수 있는 회복을 다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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