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은혜와 복음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사람들
1992년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전도사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되던 해에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우리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여성 안수는 2004년에 통과되었으나, 소식을 늦게 접하여 안수가 늦어졌습니다. 당시 안수제 통과 소식은 여전도사에게 직접 통지되지 않았습니다. 여전도사는 대개 지방회에 참석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으므로, 교단 소식을 늦게 접하곤 했습니다. 특별히 묻지 않으니 알려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1996년 고 문수영 목사님(당시 전도사님)을 따라 '여성안수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결연하게 다짐하며 행동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장의 높디높은 철벽을 경험했습니다. 지도 교수님과 남편은 '여권 신장'과 '학문의자유'를 위해 유학하라고 강권했습니다. 시카고대학교에서 장학금을 저에게만 주었으므로, 남편은 어린 딸과 함께 한국에 남겠다고 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가족이 다 갈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인터넷도 전화도 불편하고 매우 비쌌습니다. 어린 딸을 떼어 놓고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으나,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처럼 모든 것을 걸고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문수영 전도사님은 우리 부부에게 밥을 사주시며, "우리의 꿈을 이루어 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과분한 격려에 큰 부담을 느꼈으나, 그 말씀은 유학길에서 예상치 않은 강도를 만났을 때 비장의 무기로 작동했습니다.
어린 딸에게 미안하여 눈물의 여왕이 되었습니다. 제 형편을 들은 미국 교수들은 안타까워하시며 가족처럼 대해 주셨습니다. 간혹 비정한 엄마라고 야단치는 성도님들도 계셨으나, 꿋꿋이 교회 전도사 일을 지속하며 공부했습니다.
1998년 IMF로 박사과정 입학을 포기하고 귀국하여 어린이 책 기획자로 일했습니다. 이후 박사과정 입학 허가 유효 기간들이 하나둘 지나가자, 남편은 좋은 직장을 버리고 작은 미국 회사로 옮겼습니다. 미국에 도착하자, 남편은 자카란다 보라 꽃비가 흩날리는 클레어몬트대학원 대학교로 우리를 데려갔습니다. 남편은 뜨는 해를 바라보며 두어 시간 운전하여 출근하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두어 시간 운전하여 퇴근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남편은 직장을 잃고 홀로 동남아에 일하러 갔습니다. 다시 만나기까지 13년이 걸렸습니다.
나는 아이들을 건사하며, 교회 사역과 신학교 강의를 계속하며 어렵사리 학위를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가르칠 기회가 있었으나,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급히 귀국했고, 귀국한 조국은 타국 같았습니다. 학계는 정글이었습니다. 대다수 신학교들은 남성 100% 교수진이었고, 교수 임용 과정도 공정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불교 집안에 태어나 교계와 학계에 지인이 없는 여성에게는 더 불리했습니다. 가족을 볼모 삼고 모든 것을 바쳐 헌신했으나, 한국 신학계와 교계의 여권신장은 여전히 요원했습니다. 간신히 교직을 잡아 가르치고 연구했으나, 극심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주어지는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여 연구자와 설교자로 삽니다, 주님께서 보고 계실 것을 믿으며!
그런데 아직도 교회의 주축인 여성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허드렛일이나 시키는 속 좁고 이기적인 남성 우월주의 교단이 있다고 합니다. 아내와 딸들을 추운 문밖으로 밀어내고, 아랫목을 차지한 힘센 남자들을 주님께서 어찌 보시겠습니까. 아내와 딸들에게는 요리와 설거지와 빨래를 시켜 놓고, 자신들은 까만 정장을 하고 교회 강단을 독차지한 힘센 남자들을 주님은 기뻐하실까요? 그런 남자들은 일반 사회에서도 지탄의 대상입니다.
마가복음 15장 40-41절은 증언합니다. "멀리서 바라보는(θεωροῦσαι)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있었으니,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ἀκολουθεῖν) 섬기던(διακονεῖν)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여기서 "바라보는"(θεωροῦσαι)은 현재분사로서,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여자들을 묘사합니다. 이들은 두려움도 잊은 채 갈릴리에서부터 그 참혹하고 위험한 십자가 형장까지 예수님을 줄곧 "따르며(ἀκολουθεῖν) 섬기다가(διακονεῖν)" 마침내 부활의 첫 목격자와 증인이 된 여자들입니다(막 16:1-8). 이처럼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전체를 함께한 부활의 증인을 '사도'라고 합니다(행 1:21-26). 그 여사도들의 주된 업무였던 '따름'(ἀκολο υθεῖν)과 '섬김'(διακονεῖν)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당부하신 핵심 제자도입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διακονεῖν) 나를 따르라(ἀκολουθεῖν),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διάκονος)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διακονεῖν)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요 12:26). 인자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주된 목적 또한 '섬김'이었습니다(마 20:28; 막 10:45).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감당하실 때, 남성 제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마가복음은 남성 주격 복수를 사용해서 그 남성 제자들이 "모두(πάντες) 그(예수)를 버리고 도망쳤다"고 보도합니다(막 14:50). 예수님이 체포되실 때 그들은 줄행랑을 쳤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가복음이 제시하는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누구입니까. 줄행랑을 친 남성들보다 시종일관 예수님 곁을 지켜 낸 그 여자들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여성 비하가 일상이던 고대 세계에 굳이 남성이 아닌 여성을 당신의 첫 증인과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이처럼 파격적으로 은혜로운 구세주 예수님의 복음을 감히 일부 남성 목사들과 장로들이 무효화합니까? 예수님과 여자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분위기가 한국 일부 교단에 고착되어서, 여성 안수제를 통과시키자고 감히 입 밖으로 발설할 수 없습니까? 교계에서 높은 자리를 탐하여 진리를 외면합니까? 선배들의 눈치가 보입니까? 목사님들, 용기 내어 신실한 여성 사역자들에게 안수해 주십시오. K-시대에 척박한 사역 현장에서, 주님의 종들은 K-목회를 선보일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당부드립니다!
문우일 / 한국요한문헌학회 회장, 신약학 Ph.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