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잃은 이웃과 함께한 기독인 50여 명, 피해자들과 함께한 희년 예배

집의 의미

[뉴스앤조이-박요셉 사역기획국장] 사람들은 누구나 집이 있다. 여기서 집이 있다는 건 자기 명의 집을 갖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집은 종착점이자 시작점이다. 집이 있다는 건 돌아갈 처소가 있다는 뜻이고, 그건 시작한 곳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집은 현재이자 미래이다. 안녕한 삶을 지켜 주고 보호하는 오늘이고, 사랑하는 친구나 가족과 함께 오래 누리고 싶은 희망이다. 그렇기에 집이 없다는 건 단순히 재산이 없다는 말로 대신하기 어렵다. 집을 잃었다는 건, 집을 빼앗겼다는 건, 자산 이상의, 삶의 일부 혹은 전부를 지탱하는 근간을 상실했다는 말과 동의어다. 

전국 약 3만 명의 피해자를 낳은 전세 사기 사건이 발발한 지 약 3년이 흘렀지만, 피해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집을 어떻게 대했는지 보여 준다. '자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가해자들에게 집은 부를 축적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사건 발생 이후 정부나 금융 당국도 피해자들에게 경·공매 절차나 조세 징수에 관한 특례를 부여함으로써 자산 보전에만 집중했다. 감시·규제 제도가 미비한 사실이 분명한데도, 이 사건을 단순히 사인 간에 금융 거래 정도로만 여기는 일부 대중 역시 그 피해를 왜 국민 세금으로 메꿔 줘야 하느냐고 불만을 쏟아낸다. 

희년함께를 비롯한 여러 기독 단체와 교회는 매년 9월 말, 희년의 정신을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하는 희년실천주일 연합 예배를 드린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희년함께를 비롯한 여러 기독 단체와 교회는 매년 9월 말, 희년의 정신을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하는 희년실천주일 연합 예배를 드린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9월 23일 저녁 7시 30분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는 '평화로운 집, 안전한 거처'라는 주제로 희년실천주일 연합 예배가 열렸다. 희년실천주일 연합 예배는 '땅과 자연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우리 사회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하는 기독 단체와 교회들이 매년 9월 말에 여는 자리다.

이날도 기독교인 50여 명은 거리에 놓인 의자에 모여 앉아 함께 예배하고, 성경에서 말하는 희년과 우리가 거주하는 집의 의미를 돌아보는 시간을 보냈다.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고, 인간은 잠시 빌려 사는 거류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전세 사기 피해를 당했지만 당국으로부터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도 함께 예배를 드렸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

예배에 참가한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각각 자신이 처한 상황을 호소했다. 잠실센트럴파크비상대책위원회 박 아무개 씨는 지차체가 추진한 '청년 안심 주택'에서조차 전세 사기 피해가 발생했다면서 국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년 안심 주택은 서울시가 대학생, 청년, 신혼부부에게 시세보다 25~30%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하는 공공 정책이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잠실센트럴파크는 2023년 9월 완공됐다. 그런데 민간 시행사가 시공사에 공사 대금을 지급하지 못해 올해 2월 강제 경매가 진행됐고, 청년 세입자 134세대의 보증금 약 240억 원이 묶이게 됐다. 

박 씨는 "이 사업 주체인 서울시가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청년 안심 주택은 보증 보험 없이 임대가 불가능한데도 시가 임차인들을 기만했다. 지금도 시는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은 채 언론 플레이와 책임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산 이주민 전세 사기 피해자 남명길 씨는 이주 노동자들이 전세 사기 피해를 입어도 지원을 받기 어려운 현실을 소개했다.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전세사기특별법 지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남 씨는 안산시 원곡동에 있는 빌라에 거주한다. 그는 2022년 12월 전세 보증금 1억 4000만 원을 내고 들어갔는데, 건물주가 20억에 달하는 부채를 갚지 못해 건물이 강제경매에 넘어가게 됐다. 안산은 이주 노동자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도시다. 전세 사기 대란이 지역을 휩쓸었을 때, 이주 노동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남 씨는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내몰릴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도 정당하게 일하고 세금도 다 냈는데 왜 구제 대상에서 벗어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외국인은 은행에서 대출을 안 해 주기 때문에, 보증금은 우리가 10년, 20년 모은 전 재산이다. 삶의 희망과 미래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 씨는 이주 노동자들의 피해 사례에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남 씨는 이주 노동자들의 피해 사례에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우리 사회가 정말
하나님의 집이라면

전세 사기 대란에 기독교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피해자들이 처한 딱한 사정과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잠재적 위험성 때문만은 아니다. 이날 설교를 전한 박나래 목사(높은뜻광성교회 청년부)는 전세 사기 대란을 나의 집에서 우리의 집 문제로 확대했다. 만약 우리 사회가 하나의 공동체, 즉 '하나님의 집'으로 생각한다면, 소수가 땅을 독점하고 약하고 억울한 이들이 외면받고 쫓겨나는 현실이 우리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박 목사는 물었다. 

박 목사는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가 모든 피조물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두의 집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공동체를 이루라고 이 땅을 만드신 것이다. 그렇기에 땅은 함께 살아가는 다른 이에게 곁을 내어 주는 모두의 집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집은 모든 피조물을 다 품어낼 만큼 넉넉한 곳이다. 그 집에는 누구나 들어와 살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집을 잃은 사람에게 집을 주고, 환대받지 못한 자를 기꺼이 우리의 이웃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믿고 있는 복음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 사회를 환대의 공동체로 만들어 가는 일이다.

 

누구나 안전하고 편안한 거처를 마련할 수 있는 사회, 서로 신뢰하고 의지하며 돕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이것이 바로 이 땅을 모두의 집으로 지으신 하나님의 뜻일 거라고 생각한다. 환대받지 못한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곁에 머무르며 이 사회가 환대의 공동체가 되도록 앞장서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실천인 줄 믿는다."

희년함께는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연대를 선언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연명을 받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희년함께는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연대를 선언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연명을 받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참가자들은 소리 내어 공동 기도문을 읽으며 마음을 모았다. 이들은 "전세사기로 고통받는 피해자들과 함께 서겠다. 이들의 눈물을 잊지 않고, 다시는 누구도 집 없는 설움 속에 내몰리지 않도록 주거권을 회복하는 일에 연대하겠다"고 기도했다.

희년함께는 같은 날 '전세 사기 피해자들과의 연대를 선언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현장에서 서명을 받았다. 전세사기특별법 개정과 사각지대 피해자의 목소리를 반영한 실질적인 지원 대책 등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희년함께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도 서명에 참여할 수 있다. 

※ 성명서 연서명 참여
※ 시민 제안 공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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