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에 여성 안수를 도입하라고 요구해 온 여성안수추진공동행동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릴레이 기고를 합니다. 글은 격주 연재합니다. - 편집자 주 |
동일한 주제에 관해 기왕에 이루어진 다양한 신학적 주장과 실천적 논의를 여기서는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성경 해석과 관해서만 한 마디를 첨언하고자 합니다. 여성의 강도(講道) 사역 인정 여부도 그러하겠습니다만(눅 2:36; 행 21:9, 고전 14:33; 딤전 2:12), 일견 상충하듯 보이는 성경의 구절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여부가 중요합니다. 일반법에서 기본권 규정들이 충돌하는 경우 강조하는 '규범 조화적 해석'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성경 구절은 어느 하나 하나님 말씀이 아닌 게 없으므로 이러한 원리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경 전체의 체계적 일관성을 고려해야 하고(체계적 해석), 무엇보다도 복음은 무엇을 강조하는지에 관한 고찰(복음 조화적 해석)이 필요합니다.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 성경은 전체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까? 특히 복음은 무엇을 강조하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어떤 한 구절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를 게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과 특히 그리스도의 말씀을 중심과 목적으로 삼아 해석해야 마땅합니다.
이론뿐만 아니라 실천에서도 일관성이 절실합니다. 성경의 해석뿐만 아니라 그 말씀의 적용에 있어서도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구체적인 사역의 현장을 지배하는 가장 중대한 성경적 원칙은 바로 '공의'입니다. 성결법전(Holiness Code)은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레 19:36)는 공의의 원리를 선포합니다. 그런데 여성 강도권 인정 문제에 있어서 실질적으로는 이러한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정작 사람들이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결코 어렵지만은 않은 이 원칙대로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작년 10월 27일에 광화문 일대에서 열렸던 한국교회 연합 예배를 생각해 봅시다. 당시 주요 강사 중 한 분은 이름난 여성 목사였는데,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교단 소속 목회자와 성도들도 현장에 참여하여 모두 그가 전하는 말씀을 경청하지 않았습니까? 역시 작년 4월 4일 부산에서는 해운대 성령 집회를 앞두고 준비 기도회가 열렸는데 이때 강사도 경남의 유명한 여성 목사였습니다. 기도회가 열렸던 장소는 여성 안수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교단의 대표적인 교회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명망이 있는 설교자들이라서 그랬을까요? 그게 아니라면 다른 교파와 다른 교단은 상관없고 그저 우리는 안 된다는 전형적인 '영적 님비'(Spiritual NIMBY) 현상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겁니다.
교회의 안팎에서도 일관적인 태도를 견지하지 못합니다. 먼저 교회의 내부 교육 현장에서 특히 저학년이나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성경을 가르치는 대부분의 사역자가 여성입니다. 이들은 매주 강단에서 직접 성경을 강론하고 교육합니다. 왜 주일학교에서는 이런 일이 허용됩니까? 혹시 어린 예배의 강단은 진정한 강단이 아니라고 간주하는 걸까요? 만일 그렇다면 강단의 차별이요 말씀의 차별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성 목사 안수를 반대하는 교단 소속의 일부 초대형 교회에서는 공공연하게 여성 목사를 채용해서 사역을 허락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재정력을 포함해서 영향력이 막강한 교회는 교단의 입장을 초월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교회 외부에서도 마찬가지로 일관성을 상실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작년 9월 한국은 제4차 세계 로잔 대회를 개최했고, 올해 10월에는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서울 총회가 열릴 전망입니다. 신학적 노선이라든지 이런 차원을 떠나서, 국제 로잔 운동이 소개하는 185명의 지도자 가운데 65명이 여성이고(전체의 35%), WEA 역시 대표적인 리더십 23명 중에서 7명이 여성이라는 사실(전체의 30%)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서울 총회가 열리는 장소는 한국에서 여성 강도권을 거부하는 교단의 핵심적인 교회입니다. 어딘가 부조화스러워 보이지 않습니까? 일관성이 결여된 모습입니다. 여성의 지위를 국제 수준으로 맞추어서 연합하고 교류하든지, 아니면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하면서 보다 개방적인 모임에는 불참하든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부 사안에서는 대단히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고, 다른 사안에서는 반대의 태도를 드러내는 모습은 성경적으로도 신앙적으로도 옳지 못합니다. 주께서는 "예" 혹은 "아니요" 하라 하셨습니다(마 5:37). 하나님은 리숀과 아하손이시고(사 44:6) 알파와 오메가요 프로토스와 에스카토스가 되신다는 말씀(계 22:13)은 거룩한 일관성을 가리킵니다. 예수께서 유독 싫어하셨던 모습이 외식(마 15:7, 23:13)이었음을 늘 상기해야 합니다.
성경 구절을 다룰 때는 체계적 일관성을 갖추도록 조화롭게 해석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현장에서 성경적 공의의 원칙을 망각하거나 저버리는 모습과 태도를 이제는 지양해야 합니다. 교회 안팎에서도 사안마다 이중적인 잣대를 사용하지 말고 전후가 모순이 없고 시작에서 마침까지 일관성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성 강도권의 차원을 넘어서 한국교회 내부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공공연한 성차별과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들이 사라지고 철폐되는 그날이 속히 오기를 고대합니다.
홍석진 /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목사,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