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종식 후 구태로 회귀 중인 공약들

탄핵 이후 조기 대선 국면에 들어서면서, 사회 분위기는 다시 급박하게 바뀌고 있다. 광장에서 새로운 세상을 외치며 쏟아진 목소리들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익숙한 공약들이 자리를 다시 채웠기 때문이다.

윤석열 탄핵이 가결되기도 전부터,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반도체특별법 내용 중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주 52시간 예외 적용'이었다. 경제성장이라는 명목 아래 사람답게 살도록 노동할 권리를 빼앗는 법안이다. 여론의 반발로 인해 주 52시간 예외 조항은 빠지게 되었지만, 반도체 산업에서의 노동자 건강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새로운 세상을 요구하는 광장의 외침이 있는 와중에도 광장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었다.

기나긴 내란 증후군에 시달리던 시민들에게 '지브리 프사'는 분위기를 환기시켜 줄 유흥거리였다. 너도나도 소셜미디어에 '지브리 프사'를 올리고 하루에 120만 명이 챗GPT를 이용할 정도로 폭발적으로 생성형 AI 이용자 수가 늘어났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름다운 화풍으로, 내 얼굴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재창조하는 생성형 AI 서비스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다. 전쟁에 반대하며 평화의 가치를 그림에 담아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화풍으로 이스라엘 방위군의 홍보물이 나오기도 했다. AI는 분명 편리하지만 그만큼 어떤 부분은 과거로 회귀시키는 지점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AI 산업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막대한 자원을 소모한다. 전 세계가 장기적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가운데 AI 산업은 경제성장의 새로운 돌파구였다. 그 산업 경쟁에 뛰어들기 위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계획이 발표되었고, 반도체 클러스터를 가동하기 위해 대형 원자력발전소, LNG 발전소, 양수발전소와 전력을 끌어오기 위한 송전선로가 전국에 지어질 예정이다. 반도체 클러스터에서는 하루 170만 톤의 물을 소비할 예정인데, 이는 한강 유역에서 끌어올 수 있는 물의 양을 아득히 초과하는 수치다.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수십조 원 규모의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국민의 혈세가 반도체 기업에 투입되면 기업은 경쟁력을 갖출지 모르나,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건강은 위협받고, 막대한 자원을 소비할 것이다. 그리고 대기업의 영업이익만 올려 줄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덮어 놓고 '특정 기업이 망하면 한국 경제가 망한다'는 논리로 산업을 형성하는 것이 맞는지, 한번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의 첫 번째 공약은 AI 산업 육성이다. 이런 상황에 AI 산업 육성이 가장 중요한 공약이 된 것은 광장의 외침을 반영한 것인가? 

공약에 들지도 못한 진짜 문제들

주요 대선 후보들이 외면하고 있는, 공약에 빠진 '진짜 문제'들을 몇 가지 소개한다. 먼저 지난 2024년은 전 세계 평균 기온이 최초로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상승한 해였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정부간협의체)에서 195개국의 과학자들과 정부 정책 결정자들이 모여 만든 보고서에는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서 203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막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2021년에 발표되었고 그때는 9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발표로부터 3년밖에 지나지 않은 2024년에 지구는 한계선을 넘었다. 

IPCC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에 1.5도 상승을 막지 못하면 2050년에 2도에 도달할 수 있고 2070년쯤에는 3도에 도달한다. 3도가 도달한 이후로는 극심한 기후 재난이 발생한다. 과학자들은 3도가 넘으면 급격하게 오르는 기온으로 인해 2100년에는 6~7도까지 상승해 인류가 살 수 없는 지구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산업화 이후로 전 세계가 경제성장만을 바라보며 정책을 결정하고 있을 때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는 파헤쳐지고 불이 붙었다. 불붙은 집에 불을 끄기 위해서는 불을 내는 곳을 찾아서 꺼야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성장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이 불을 끌 수 없다. 막대한 자원과 전력과 노동력을 투입해야 경제가 성장하기 때문이다. GDP가 매년 복리로 측정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매년 복리로 자원과 전력과 노동력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 문제만 보더라도, 현재 고공 농성 중인 세종호텔,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한화옵티컬 해고 노동자 문제는 이미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올해 3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통과되었다. 이번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앞서 말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전력을 추가로 생산하기 위해 10GW에 해당하는 발전소를 추가 건설하게 된다. 추가로 건설하게 되는 발전원은 재생에너지가 아니라 원자력발전소이다. 문재인 정권에서 탈핵을 선언했던 민주당에서조차 원자력발전 생태계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다.

한편,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석탄 화력발전소는 단계적 폐쇄가 예정돼 있다. 발전소가 폐쇄되면 이 곳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발전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는다. 그러나 어느 원내 정당의 어느 대선 후보도 이 노동자들에 대한 관심과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당장 12월부터 태안화력발전소가 폐쇄되어 비정규직 발전 노동자들의 해고가 시작되는데도 말이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겠다며 내놓은 공약은, 대부분 재생에너지 투자와 관련된 내용이다. 그런데 외국 자본이 재생에너지 시장 점유율을 늘려 나가고 있다. 국가가 재생에너지 비중을 주도적으로 늘려가는 것이 아니라 투자를 유치하는 것은 기후 위기 대응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산업 시장을 형성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안정적으로, 값싸게 전력을 수급받는 것이 산업 유지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도 공공이 아닌 외국 자본에 이를 넘겨 주는 것은 다른 문제를 초래할 위험도 크다는 점을 후보들은 간과하고 있다. 원자력, LNG, 양수 발전소 등의 추가 건설을 공기업에서 추진하는 것과도 대비되는 모순이다.

토건 개발 문제도 심각하다. 전국 각지에 추진하는 신공항, 국립공원, 4대강 개발 등은 동료 피조물들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사업이다.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실제적인 지역 경제 활성화라기보다는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용자 없는 지역 공항을 만들어 적자인 공항이 현재 15개 공항 중 11개나 되는데도, 공항 10개를 추가 건설하겠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대부분의 건설 사업은 수조 원이 투입되지만 그 돈은 외부 대형 건설사가 가져갈 뿐,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효과는 투입된 재정에 비해 미미하다. 건설뿐 아니라 유지 관리에도 지속적으로 재정이 투입되어야 해서 장기적으로 세금이 줄줄 새는 사업이다. 차라리 그 세금으로 지역 소상공인을 위해 사용한다면 지역 경제 활성화에 더 나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정말 기후 대선이 되려면

기후 위기는 한 해가 다르게 가속화되고 있지만 정치에서 그만큼 주요하게 다뤄지지 못한다.  계엄 이전의 사회는 그냥 존재한 것이 아니다. 이전 사회를 만들어 온 '이전 정치'는 바뀌지 않고 다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리고 '정치는 계엄 이전의 정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전의 대선과 다르게 이번 선거는 특정 후보가 큰 표 차이로 당선될 것이 예측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기후 위기를 제대로 이야기 하는 정치적 세력에 투표하는 것이 새로운 세상의 희망을 꺼뜨리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사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남겨 두는 중요한 한 표로 작동할 것이다. 

문형욱 / 기후위기기독인연대 공동대표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