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 혼란 속 열린 제38회 인권상 시상식…"우리가 고통 속에서도 나아가야 하는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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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회 한국교회 인권상을 수상한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고 임보라 목사. 임 목사의 상은 유가족이 대신 받았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오늘의 인권상은 과거가 되어 버린 이들의 마음과 생각과 태도와 몸짓에 미안함과 감사함을 전하며, 그것들이 과거에만 머물게만 하지 않겠다는 결단이자 투쟁입니다. 이들을 추억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이어 가겠습니다. 미약하게나마 현재가 과거를 돕고, 산 자가 죽은 자를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고 임보라 목사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 '한국교회 인권상'을 공동 수상했다. 한국교회인권센터(박승렬 이사장)는 12월 9일 서울 종로구 기독교회관에서 제38회 한국교회 인권상 시상식을 열고 상을 수여했다. 

인권센터는 임보라 목사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혐오와 차별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성평등과 성소수자 인권 운동, 제주 강정마을 평화운동, 여성 인권 운동, 비정규직 및 해고 노동자 인권 운동 등 불평등과 부정의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자리에 언제나 있었다"면서, 모든 이들이 존엄하게 살아가는 데 기여한 임 목사의 삶을 높이 기린다고 밝혔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 진상 규명 활동 등을 펼치며 안전 사회를 위한 입법과 정책 활동을 이어 오고, 재난 피해자의 권리를 한국 사회의 중요한 의제로 인식시켰다고 했다. 인권센터는 "가족협의회의 헌신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미래의 사회적 변화를 촉구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세월호 참사가 한국 사회에 던진 교훈을 다시금 새기고, 재난 피해자를 넘어선 사회적 안전망 구축의 중요성을 일깨워 온 걸음에 선정 이유를 밝힌다"고 했다.

임보라 목사 유가족은 교회 안팎의 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 특히 성소수자 인권을 지키고 그들을 보호하는 데 앞장섰던 '초록나무' 임보라 목사를 기렸다. 익명으로 수상 소감을 말한 임 목사의 유가족은 "초록나무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생명은 존귀하다는 믿음을 실천했다. 때로는 견디기 힘든 비난을 받기도 했고, 오랜 신념을 흔드는 압박 속에도 흔들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고난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고난은 초록나무의 신념을 더 단단하게 다지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늘 강조했던 것은 '우리가 고통 속에서도 나아가야 하는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이었다. 우리는 그 길 위에 서 있다. (중략) 여러분의 삶 속에서 초록나무의 사랑이 계속 자라나고 있음을 믿는다. 상실은 우리에게 깊은 아픔을 남기지만 동시에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중략) 초록나무가 살아온 정신을 마음속에 품고 우리가 더 넓고 깊은 사랑으로 세상을 품어 가기를 희망한다. 함께 서로를 지켜 내고 더 많은 사랑의 나무를 심어 가며 편견 없는 숲을 이어 가길 바란다. 초록나무를 대신해 이 상을 받으며 그의 뜻이 세상에 닿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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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보라 목사 유가족은 수상 소감에서 초록나무의 넓은 품과 사랑을 이어 가자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안전한 사회를 위한 발걸음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했다. 김종기 운영위원장은 "광야와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는 자에게 구름 속에 무지개가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여 주셨다는 말처럼, 우리 세월호 가족들만으로는 견뎌 낼 수 없는 지난하고 힘든 시간을 시민들과 기독교인들이 무지개처럼 함께해 주셔서 큰 힘이 됐다"면서 "지금까지 함께해 주신 마음과 행동으로 다시는 재난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안전한 사회를 위해 계속 함께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김재형 상임이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박동호 이사장(인권재단 사람), 지몽 스님(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종생 총무가 축사를 전했다. 박동호 이사장은 "그리스도교는 인간 존엄을 포장하는 포장지의 색깔과 그 양식이 무엇이든, 사회적 최약자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다양한 권리 곧 인권을 수호하고 증진하려는 그리스도인의 노력과 헌신은 바로 신앙의 증언이며, 역사가 완성되는 그날까지 엄중한 사명"이라고 말했다. 

민주주의가 무너진 엄중한 시국 상황 속에서 인권과 평화의 끈을 놓지 말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김민아 교수(한국교회인권센터 전문위원)는 "우리는 지금 87년 체제를 넘어 진정한 민주주의를 구상하는 중대한 시간에 놓여 있다. 우리가 광장, 일상에서 부르짖는 민주주의에서 배제되고 낙오되는 존재가 없도록 기도한다. 언제나 고난당하고 무시되고 배제되고 혐오 받는 이들의 곁을 지켜온 한국교회 인권상이 이 엄중한 시기에 주어진 몫을 묵묵히 감당해 낼 수 있길 도와 달라"고 기도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수상 소감에서 안전 사회 건설을 위해 계속 힘써 나가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수상 소감에서 안전 사회 건설을 위해 계속 힘써 나가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한국교회 인권상은 한국 사회 인권과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사람·단체에 수여하는 상이다. 1987년 박종철 군 물고문 사건을 폭로한 오연상 씨에게 수여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이어져 왔다.

올해 NCCK인권센터는 한국교회인권센터로 이름을 바꿨다. 에큐메니컬 교단 내 반동성애 세력의 공격으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에서 공식 분리했기 때문이다. 개신교 반동성애 진영은 2014년 성소수자인 임태훈 소장(군인권센터), 2021년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상을 받은 사례 등을 들어, 교회협이 친동성애 단체라며 끊임없이 공격해 왔다. 결국 올해 'NCCK'를 떼고 한국교회인권센터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상의 명칭도 '한국교회 인권상'으로 바꿨다.

다만 교회협 김종생 총무가 시상식에 참석해 축사를 전했다. 김종생 총무는 "아픔이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임을 삶으로 보여 주며 고통당하는 이들과 일생을 동행했던 고 임보라 목사님, 지난 10여 년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 사회 건설을 온몸으로 고백해 온 4·16세월호참사유가족협의회 모든 분들께 주님께서 주시는 따뜻한 위로와 소망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한편 인권센터는 매년 시상식에서 국가인권위원장을 초청해 축사를 듣거나 서면으로 메시지를 받아 왔지만, 올해는 부르지 않았다. 안창호 위원장이 극우 개신교계와 강하게 결착해 '차별금지법 반대'를 공공연히 선언하는 등 반인권적 행보를 보인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황인근 소장은 "한국 사회의 인권 상황이 더 전진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다음은 역대 수상자 명단. 

역대 NCCK 인권상 수상 단체

1회(1987년) 오연상 - 박종철 군 물고문 사건 진상 규명

2회(1988년) 이명식 - 1988년 중앙경제신문 오홍근 부장 테러 사건 폭로

3회(1989년) 북미주인권연합 - 1970~1980년대 한국 인권 활동 지원 및 협력

4회(1990년) 윤석양 - 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5회(1991년) 강경대 유가족 - 민주화 운동에 헌신

6회(1992년) 한준수 군수 - 공무원 청렴성과 도덕성 회복을 위해 양심선언

7회(1993년) 주한미군의 윤금이 씨 살해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8회(1994년) 이효재, 윤정옥 선생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활동

9회(1995년) 성남외국인노동자의집,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10회(1996년) 고 나카지마 목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11회(1997년) 서준식 대표(인권운동사랑방)

12회(1998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13회(1999년)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대책위원회(위원장 정은용)

14회(2000년) 매향리미군폭격장철폐주민대책위원회(위원장 전만규)

15회(2001년) 중국조선족한국초청사기피해자협의회(대표 이영숙)

16회(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심미선 살인 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

17회(2003년)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대표 이계준)

18회(2004년) 삼청교육대인권운동연합(대표 전영순)

19회(2005년) 우토로국제대책회의(상임대표 박연철 변호사)

20회(2006년)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21회(2007년)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22회(2008년) 이랜드 일반노동조합

23회(2009년) 인권 활동가 박래군 씨

24회(2010년) 민주노총 금속노조 기륭분회

25회(2011년) 지영준, 박지웅, 신성수, 한창완, 이환범 군법무관 - 군 불온서적 선정 헌법소원 제기

26회(2012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27회(2013년) 표창원 박사(전 경찰대 교수)

28회(2014년) 임태훈 소장(군인권센터 소장)

29회(2015년) 4·16기억저장소

30회(2016년) 최승호 PD(뉴스타파)

31회(2017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강원영동지역 동양시멘트 지부

32회(2018년) 서지현 검사, 사토 노부유키(재일한국인문제연구소 소장)

33회(2019년) 박경석 대표(전국장애인차별철페연대,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34회 (2020년) 김진숙 씨(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특별상 - 자라 알바레즈 씨(필리핀 인권 활동가)

35회(2021년) 차별금지법제정연대

36회(2022년) 김혜진 노동운동가(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특별상 - 임은정 검사

37회(2023년)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38회(2024년) 고 임보라 목사,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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