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독의 시간] 남오성 <예수 믿음 구원 천국>(뉴스앤조이)
얼마 전 교단 행사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차 안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인근 상가 교회의 간판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우리 다 함께 예수 믿고 천국 가요.'
대개 간판에는 교회 이름을 쓰기 마련인데, 그런 전도 메시지를 대문짝만하게 적어 놓은 것이 매우 특이해 보였습니다. 더 놀라웠던 것은 '다정한 말투'였습니다. 협박도 강요도 아닌 초청의 말투. '명동' 길거리에서 보던 것들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그나마 좀 낫네'라는 생각이 드는 지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다정한 초대에도 불구하고(그 교회 목사님께 정말 죄송하지만), 저는 그 메시지가 참 아팠습니다. 그래서 운전대를 부여잡고 이런 말을 중얼거렸습니다. "그래, 그렇게 좋으면 얼른 천국으로 가라…." 물론 비꼬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제 오래된 고민의 표현일 뿐입니다.
"흔히들 천국, 즉 하나님나라라고 하면 내세, 즉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살아가는 현실과는 관계없는 곳이라고 여기는데, 과연 그럴까요?" [남오성, <예수 믿음 구원 천국>(뉴스앤조이), 210쪽]
언제나 '땅의 현실'에 주목하는 <뉴스앤조이>에서 남오성 목사(주날개그늘교회)의 <예수 믿음 구원 천국>을 출간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곧바로 메모를 해 뒀습니다. '나오면 바로 사서 읽어 봐야지' 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책 제목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 연상됐기 때문입니다. 거친 표현일지 모르지만, 그동안 제게 그 구호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13쪽) 상관없이 개인적인 평안만을 강구하거나, 그저 내세로 도망칠 궁리나 하는 이들의 논리를 강화하는 불편한 말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을 손에 넣어 단숨에 읽었고, 제 마음은 기뻤습니다.
"이 세상에서 재물과 건강을 누리고 저 세상에서 좋은 내세의 삶을 기대하는 기복신앙을 전하려고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지 않았습니다." (109쪽)
사실 이 책에 담긴 신학이 제게는 '보수적인' 내용으로 보입니다. 마침 저자는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독자를 염두에 두고"(14쪽) 썼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굳이 그런 고백이 없었더라도 저는 이 책을 보수적인 책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뭐랄까,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단순하고 왜곡된 구호를 신앙의 중심으로 삼는 일반 신자들도 교리적으로 전혀 불편해하지 않을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는 뜻입니다. 소위 진보적인 신학을 추구하는 이들이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예수의 "신성"(65쪽)이나 "대속"(160쪽) 개념에 있어 이 책은 '정통 보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책 제목을 '예수 천당 불신 지옥'으로 바꿔도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를 제대로 믿을 수 있고, 어떻게 해야 지옥에 가지 않을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늘 듣던 개념과 단어들을 이 책은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책을 '진보적인' 책으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저자가 "예수께서 왜 가난한 존재로 태어나셨겠느냐"며 도전하기 때문입니다(38쪽).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은 '여인', 그러니까 당시의 비천한 존재로 취급받던 존재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신 이유가 무엇이겠느냐"며 도전하기 때문입니다(50쪽).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처럼 '산다'는 의미"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57쪽).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에는 관심이 없는 이들이, 그저 "믿어서 얻을 수 있다는 이익을 목표로 삼는 현실"을 아파하기 때문입니다(79쪽). 그리고 무엇보다, 천국은 단순히 '내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부터 이뤄 가야 할 하나님의 통치요, 그런 의미에서 "강자와 약자가 함께 어울리는 정의의 나라"라고 역설하기 때문입니다(97쪽). 심지어 "가난한 자의 유익을 위해 투표하라"(222쪽)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이야기를 당연하게 여기는 (대형) 교회를 많이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이 책은 더 이상 보수적인 책이 아닐 것입니다. 한마디 더 보태자면, '한국에 과연 진정한 의미의 보수적인 교회가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목사로서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
"가장 큰 유혹은 하나님을 감금하라는 유혹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종교 영역에만 국한시키라는 유혹입니다." (119쪽)
'세월호'가 침몰하고 일주일이나 지났을 때였을까요? 전철을 탔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열정적인 전도자는 "예수를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저는 정말 많이 슬펐습니다. '지금 여기가 지옥인데, 어째서 저 사람은 저런 소리만 한다는 말인가. 내가 믿는 예수가 정말 그런 존재란 말인가' 싶었던 것입니다. 저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천국'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신학이 얼마나 오염돼 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뜨거운 신앙을 가진 사람이 가장 비인간적인 사람일 가능성에 노출돼 있는 한국교회. 남오성 목사의 책은 예수님 닮은 참사람의 길로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 책의 강점은 '쉽다'는 점입니다. "핸드폰만 쳐다보는 중학생"(14쪽)도 쉽게 읽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저자의 바람은 이뤄진 것 같습니다. 이보다 더 쉽게 쓰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래서 교회만 생각하면 숨이 막히는 집사님들에게 꼭 권하고 싶습니다. 뭔가 잘못되긴 한 것 같은데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권사님들에게도 꼭 권하고 싶습니다. 안개가 걷히는 체험을 하게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신학이 재미없다', '독서가 힘들다'는 신학생 후배들에게도 꼭 권하고 싶습니다. 아마 이 책의 내용을 숙지하면, 조금 더 어려운 책으로 고민을 확장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기본적으로 '난 꽤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 자체가 위험한 자만일 수 있습니다." (171쪽)
교회의 타락을 증명하는 뉴스를 하루가 멀다 하고 들어서일까요? 역설적이게도 '그렇다면 나는 꽤 괜찮은 목사이겠군'이라는 착각의 늪에 빠져들곤 하던 부끄러운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결코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은 아닐 테지요. 그런 제 어리석은 마음을 정리해 줬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이 책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저자의 말처럼 제게는 "보혈"(162쪽)이 필요하고, 사실 누구에게든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타락을 신나게 조롱하려는 사람들 말고, 함께 아파하며 변혁을 추구하려는 이들을 위한 귀한 책을 출간해 주신 <뉴스앤조이>에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현우 / 자유인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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