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16일 한기총 WCC반대대책위원회 전국지도자대회에는 예장합동 인사들이 많이 참석했다. 왼쪽부터 총신대 정일웅 총장, 김영우 재단이사장, 이기창 총회장, 정준모 부총회장. ⓒ마르투스 구권효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이기창 총회장)이 2013년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WCC) 부산 총회 개최 반대를 빌미로 여전히 이단 영입 교단을 회원으로 인정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홍재철 대표회장)에 단호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16일 한기총 WCC반대대책위원회 전국지도자대회에는 예장합동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길자연 전 대표회장과 홍재철 대표회장이 교단 소속 목회자인 것을 비롯해 WCC반대대책위 위원장도 김영우 총신대학교 재단이사장이다. 이날 예배 사회는 이기창 예장합동 총회장이 맡았고, 정준모 부총회장이 기도했다. 정일웅 총신대 총장은 환영사를 했다. 다른 교단 목회자들도 있었지만, 주로 합동 교단 소속 인사들이 요직을 맡고 있었다. 김영우 이사장은 한기총을 옹호하며, 길 전 회장과 홍 회장을 이순신·강감찬 등 유능한 장군에 비유했다.

이단 연루 교단들, 여전히 한기총에

WCC를 반대하는 행사로만 보면 예장합동과 한기총은 끈끈한 연대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더 살펴보면 그들의 동거는 어색하고 이질적이다. 특히 이단 문제로 들어가면 파국으로 내리달을 요소까지 안고 있다. 그렇지만 예장합동이 이단을 품는 한기총에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불안한 연대를 유지하고 있다.

한기총은 예장합동이 이단으로 규정한 교단을 회원으로 두고 있고, 통일교 전력이 있는 인사까지도 품고 있다. 다락방을 영입한 예장개혁(조경삼 총회장)과 통일교 전력이 있는 장재형 목사가 만든 합동복음(김상영 총회장)이 한기총 가맹 교단이다. 다락방은 예장합동·통합·합신·고신 등 9개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한 단체다. 한기총 이단사이비문제상담소가 2007년 발간한 <이단 사이비 연구 종합 자료 2>에도 다락방이 포함되어 있다. 장재형 목사는 대학 시절 통일교 활동을 하고, 선문대 교수로 재직한 바 있으며, '자칭 재림주' 의혹까지 받고 있는 인물이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이들의 회원 자격을 박탈하라는 항의가 안팎에서 빗발쳤다. 한기총은 오히려 장재형 목사는 이단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고, 다락방에 대해서는 교단 문제이니 교단 내에서 처리하라며 예장개혁에게 떠넘겼다.

지난해 홍재철 대표회장이 입후보했을 때도 이단 연루설은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다. 홍 회장은 1996년 예장합동에서 이단 연루자로 규정되었다. 1995년 열린 한기총 '평화통일희년대회'에 김기동(성락교회)·박윤식(평강제일교회)·이재록(만민중앙교회)·유복종(혜성교회) 등 이단으로 규정되거나 의혹이 있는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는데, 희년대회 준비위원장이 홍 회장이었기 때문이다. 예장통합은 이러한 홍 회장의 전력을 들어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에 나설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 홍 회장은 2011년 예장개혁(조경삼 총회장)이 다락방 영입 감사 예배를 하는 자리에서 격려사를 전한 바 있다고 예장통합은 발표했다.

예장합동, 한기총의 방패 자처

▲ 한기총 홍재철 대표회장(왼쪽)과 길자연 전 대표회장(오른쪽)도 예장합동 소속이다. 홍 회장은 교단으로부터 이단 연루자로 규정된 바 있고, 길 전 회장은 회장 재임 시 다락방 영입 교단을 묵인했다. ⓒ마르투스 구권효

예장통합이 한기총 수뇌부의 이단 연루 의혹에 날선 비판을 하는 사이, 예장합동은 한기총에 관대한 태도를 취했다. 한기총이 다락방 영입 교단을 회원으로 인정했을 때, 예장합동 총회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예장합동이 다락방을 이단으로 규정하는 과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을 감안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행보였다. 게다가 예장합동은 길자연, 홍재철 등 한기총 대표회장을 연달아 배출한 교단이다. 그런데 자기 교단의 목회자가 한기총의 대표회장이 되어 교단이 이단이라 규정한 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눈감아 주고 있는 것이다.

한기총 금권 선거 논란이 확산돼 해체 운동이 탄력을 받을 때도 예장합동은 한기총 옹호에 나섰다. 월드비전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등이 한기총을 탈퇴하고 예장통합·고신·합신에서 한기총 탈퇴가 헌의안으로 올라오던 때에, 예장합동은 성명서를 발표해 길 전 회장을 지지하며 "한기총을 보호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예장합동 총회가 한기총을 두둔하자, 지난해 말 전국 신학대학교 교수 100여 명이 성명서를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했다. 총신대 교수들이 대다수였다. 당시 예장합동 소속 오정호 목사(새로남교회)는 "장자 교단인 예장합동 교단의 목회자들이 결코 원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한국교회의 품격과 위상을 추락시키는 일에 앞장섰다"며 "교단의 사이즈만 자랑하고 거대 교단으로서의 명예로운 의무와 책임을 감당하지 못했음을 합동 교단에 소속된 목회자로서 심히 부끄럽다"고 정중히 사과했다.

예장합동, 이단 퇴치 사역 열심히 하는데

예장합동 총회는 여전히 이단 퇴치 운동에 열심이다. 96회 총회 보고서에 따르면, 이단(사이비)피해대책위원회(이대위·박호근 위원장) 전국 7개 상담소에서는 한 해 동안 117명을 상담했고 상담자 중 대다수가 개종했다. 이대위는 지난 4월 <이단·사이비 규정 지침서>도 발간했다. 2010년부터 이단·사이비 규정 및 해제 공청회를 열고, 책을 발간하는 등 활동을 꾸준히 한 결과다. 예장합동은 지침서 발간 예배에서 국내 교단 최초로 이단 규정 및 해제 지침을 마련했다며 자축했다. 또 지난해에는 신천지 교회 출입금지 포스터를 제작하여 배포하기도 했다.

지난 4월 한 언론에서 총회 황규철 총무를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황 총무는 "총회 임원회, 실행위원회는 이단 사이비에 연루된 단체와 연합 사업을 하는 것을 단호히 배격한다"고 밝혔다. 그는 "총회가 한기총과 함께하는 것은 WCC를 배격한다는 같은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대표회장이 합동 소속이기 때문이 아니다. 예장합동은 이단에 연루되거나, WCC 운동에 손을 잡은 교단 및 연합체와 함께할 수 없다"고도 했다. 황 총무는 이날 한기총 교단총무협의회에서 다락방을 영입한 예장개혁 측 총무가 총무협 회장으로 입후보하자, 이와 같은 입장을 전하고 즉각 퇴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단 목회자들, "한기총 참여는 회개할 일"

이단을 감싸는 한기총에 대한 단호한 태도는 딱 여기까지다. 황 총무의 논리대로라면, 다락방은 이단이고 다락방을 영입한 예장개혁을 회원으로 둔 한기총은 이단 연루 단체가 된다. 예장합동은 단지 WCC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이단 연루 단체와 손을 잡고 있는 꼴이다. 그렇지만 김영우 위원장은 "다리가 다쳤다고 해서 운동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나"라며 "다락방 문제는 그것대로 처리하고, WCC 부산 총회 개최 반대는 다락방 문제보다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협력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부 예장합동 목회자는 "총회가 한기총과 함께하는 건 회개할 일이다"라며 개탄했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한기총과의 관계는 빨리 청산해야 한다"며 안타까움을 표하는 목회자도 있었다. 지난 3월에는 예장합동 출신 목회자 23명이 한기총과의 관계를 청산하라며 성명서를 발표했다.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 나오지만, 예장합동은 이들의 주장을 귀담아 듣지 않고 있다. 오히려 WCC 반대를 동력으로 삼아 한기총과 결속을 더욱 다지고 있다.

구권효 / <마르투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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