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을 빕니다. 1년여 만에 몇 자 적어 근황을 남깁니다."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김대옥 목사는 1월 19일, 오랜만에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근황을 알렸다. 한동대학교가 교원소청심사위원회(소청심사위)를 상대로 건 행정소송에서 패했다는 소식이었다. 한동대가 김 목사의 재임용을 거부한 사건이 법정까지 간 것이다. 김 목사는 피고 소청심사위의 보조참가인으로 소송에 참여했다. 김 목사 입장에서는 소송에서 이긴 것이지만 그의 글에서는 기쁜 내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진한 씁쓸함이 배어 나오는 듯했다. 

한동대와 이렇게 질긴 악연이 될 줄은 몰랐다. 2004년부터 교목으로 한동대 생활을 시작한 김대옥 목사는 2017년 12월 31일 자로 '재임용 거부' 처분을 받았다. 학교의 재임용 거부 사유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김 목사는 소청심사위에 구제를 신청했고, 소청심사위는 학교의 처분이 잘못됐다며 김 목사의 손을 들었다. 첫 재임용 거부로부터 6년이 지나는 동안 이런 과정이 네 번이나 반복됐고, 소송도 두 번이 진행됐다. 거의 모든 부분에서 김 목사가 이겼지만, 그는 여전히 재임용 거부 상태다.

"소청심사위 쪽 담당하시는 분이 그래요. '이렇게 지속적으로 한 사람을 괴롭히는 학교는 처음 본다'고. 그분이 봐도 학교의 주장은 말이 안 되는 거거든요. 이런 일을 많이 해 보신 분이 그렇게 말할 정도이니 말 다 했죠."

김대옥 목사는 지난 몇 년간 칩거하듯 생활해 왔다. 소셜미디어에도 1년여 간격으로 재임용 거부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있을 때만 글을 올렸다. 사는 곳도 포항이라 더욱 눈에 띄지 않았다. 그를 걱정하고 바깥으로 불러내려는 사람들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설교나 강의를 부탁해 왔다. 하지만 그는 응하지 않았다. 응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한동대, 하나님의 학교, 어느 누구보다 '하나님'을 입에 달고 사는 자들의 횡포에 시달리다 보니, 그 스스로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게 힘들어졌다. 사람들을 만나는 횟수가 적어졌다. 말수가 줄어들었다.

"그렇게 예수 잘 믿는다는 사람들, 하나님과 가장 가깝다고 여기는 사람들, 진리 편에 서 있다고 하는 사람들의 행동들이, 적어도 제가 이해하는 성서적 진리라든지 하나님의 성품이나 속성이라든지 교회가 응당 보여 줘야 할 모습과는 너무 멀리 있다 보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피해를 당하는 입장에서 볼 때, 이런 상황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주장해 왔던 하나님의 속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간 내가 이해해 왔고 그러하다고 여겼던 신학과 신앙적 담론을 누군가에게 확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가령 그분이 사랑의 하나님이며 정의의 하나님이라면, 그 사랑과 정의가 구현되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제가 그런 하나님이라고 말을 못 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차라리 솔직하게 입을 닫자'고."

상처였다. 25세에 신학을 시작해 30년간 갈고닦았던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의심하게 됐다. 학자로서 원숙한 전문성을 펼칠 인생의 황금기를 학교와의 다툼으로 소진해 버렸다. 아니, 다툼이 아니다. 일개 비정년 교원과 학교 사이에 어떻게 싸움이 성립되겠는가. 이것은 일방적인 폭력이다. 

1월 25일 포항에서 김대옥 목사를 만났다. 구수한 인상과 점잖은 이미지는 몇 년 전 봤던 그대로였으나 가끔씩 얼굴에 쓸쓸한 표정이 비쳤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나름대로 몸과 마음을 잘 관리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쫓겨난 후에는 일부러 '몸 쓰는' 일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렇게 나를 괴롭혀도 나는 잘 살 수 있다는 걸, 이런 일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 주는" 의미였다고 했다. 한번은 아파트 공사 현장에 지원했다가 일주일을 앓아 누웠던 적도 있다고. 그는 이내 밝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개인적으로는 4년여 만에 김대옥 목사를 만난 것이다. 아직도 재임용 거부 사태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가 막혔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개인적으로는 4년여 만에 김대옥 목사를 만난 것이다. 아직도 재임용 거부 사태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가 막혔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네 번의 재임용 거부는 '괴롭힘'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은 지금까지 총 네 번 김대옥 목사 재임용을 거부했다. 그 사유는 2017년 12월 31일 첫 번째 재임용 거부 때 잘 드러난다. 학교는 크게 두 가지 이유 - '학교 정체성에 반하는 가르침'과 '업적 미비'로 재임용을 거부했다. 이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랐다. 만약 심사받는 교원에게 업적이 미비하다면 '정체성에 반한다'는 모호한 이유를 굳이 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교원에게 업적 미달은 결정적인 재임용 결격 사유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김대옥 목사 재임용 거부의 진짜 이유는 '학교 정체성에 반하는 가르침'이다. 이는 재임용 심사 기준이 될 수 없다. 당시 '학교 정체성'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정의되지 않았고, 재임용 심사에 적용된다는 예고도 없었기 때문이다. 소청심사위가 이를 지적하자, 학교는 두 번째 재임용 거부 때부터 이 이유는 대지 않았다. 그러나 진짜 이유가 이것이기에, 이후 '업적 미비'를 이유로 재임용을 거부한 학교의 처분은 번번이 소청심사위의 취소 판정을 받았다. 

"일종의 괘씸죄죠."

그렇다면 김대옥 목사는 무엇을 했기에 '학교 정체성에 반한다'는 말을 듣게 됐을까. 그가 학교 관계자에게 들은 이야기로 추정해 보면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하나님나라의 총체성과 현재성을 강조했다 △교계에 퍼진 이슬람 관련 허위 정보들을 걸러 내고 이슬람을 바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성애 반대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대학에서의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 정도면 복음주의를 견지하면서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입장이다. 한동대가 이런 이유로 김 목사의 재임용을 거부했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지금 한동대에서는 이보다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만 교원으로 있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한동대학교. 과연 '기독교 공동체'로 기능하고 있는가.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한동대학교. 과연 '기독교 공동체'로 기능하고 있는가.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소청심사위가 네 번이나 재임용 거부 처분을 취소하면서, 한동대는 꼬인 부분을 풀어 갈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러나 학교는 외려 소청심사위 결정에 소송으로 맞섰다. 재임용 평가 기준을 몇 번이나 바꿔 가며 김대옥 목사를 계속 탈락시켰다. 이는 애초에 어불성설인 것이, 지금 바꾼 규정으로 예전 업적을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교원들의 예측 가능성을 담보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소청심사위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다.

또 학교는 계속해서 김대옥 목사가 '강의 시수를 채우지 못했다',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는 거짓말이다. 김 목사는 학교에 몇 번이나 강의를 달라고 요구했고, 이런 자료들을 소청심사위에 다 제출했다. 소청심사위와 법원도 학교가 김 목사의 강의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금세 들통날 거짓말을 변호사까지 고용해 진지하게 하는 학교가 김 목사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가 학교의 대응을 '괴롭힘'이라고 느끼는 이유다. 왜 10년 넘게 함께 생활했던 한 사람을 이렇게 괴롭히는 걸까.

"내외부적으로 노리는 바가 있다고 봐요. 일단 내부적으로는 교원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단속하는 거죠. 저 정도의 생각을 가져도 쫓겨나고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는데, 누가 학교 강단에서 소신껏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외부적으로는 학생 유치를 위해 신경 써야 하는 교회들에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라고 봐요. '보십시오. 이슬람·동성애 옹호하는 교수, 우리가 일거에 제거했습니다. 안심하고 아이들을 우리 학교로 보내셔도 됩니다.' 뭐 이런 거죠."

생각이 다르다고 손쉽게 제거한다면

젊은 시절 김대옥 목사는 모로코 선교사였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25세에 신학교에 들어가 신학을 공부했다. 졸업하기도 전에 이슬람권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했고, 졸업하자마자 북아프리카로 들어갔다. 그 시절 김 목사에게는 '구령의 열정'이 가득했다. 가족의 병환으로 2년 8개월 만에 귀국해야 했지만, 그 시간 동안 아랍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현지인들 속에 녹아 들 정도였다. 김 목사가 속했던 선교 단체에서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됐다.

언제고 다시 현지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상황은 해외 선교사의 길을 열어 주지 않았다. 김 목사는 신학대학원에 들어가 공부하고, 졸업 후 독립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2004년 한동대 교목교원 공채에 지원해 합격하면서 한동대 생활이 시작됐다. 그의 나이 40이었다.

"저는 참 열심히 살았어요."

뭐든지 열심히 하는 게 김대옥 목사의 성격이었다. 어렸을 적 부모를 여의고 초등학생 때부터 우유 배달 등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 가야 했던 과거가 그를 악바리로 만들었다. 고등학교도 갈 형편이 못 돼 검정고시를 치르고 군대에 다녀온 후 대학에 갔다. 어떻게 한동대 교원이 됐지만 여느 교수들처럼 유학파 박사 학위 소지자가 아니었기에 더 열심히 공부했다. 어린 시절 맘껏 공부하지 못해 공부에 대한 욕심이 있기도 했다. 어찌 됐든 '교수'로 불리게 됐으니 학생들에 대한 책임감도 막강했다. 그는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공부했고, 동시에 박사 학위도 받았다.

모로코 선교사로 살았던 시절 고민을 이어 가기 위해, 석사·박사 학위논문을 이슬람과 연결지어 썼다. <이슬람의 성경 변질론>(CLC), <구약성서와 꾸란의 대화>(예영커뮤니케이션)라는 단행본으로도 출간된 그의 논문들은, 여전히 이슬람에 대한 오해만 쌓고 있는 한국 개신교계에 지금도 필요한 책이다. "이 두 권을 낸 것으로 한국교회에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개신교 시각에서 이슬람을 연구할 때 상당히 중요한 주제다. 이외에도 그는 한동대에 있는 동안 저서 2권과 번역서 8권을 더 냈다. 

단행본이 나온 지 몇 년이나 지났지만,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단행본이 나온 지 몇 년이나 지났지만,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2014년 갑작스레 국제법률대학원으로 전보되고 나서 그는 모든 공식적인 설교와 강의에서 배제됐다. 그럼에도 그는 무엇이라도 하려고 애썼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소그룹을 만들어 학생들과 만나는 일을 힘이 닿는 대로 했다. 한편으로는 강의나 설교의 기회를 달라고 학교에 서류와 구두로 몇 번이나 이야기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학교는 '업적 미비'를 이유로 재임용 거부를 통보한 것이다. 

"저는 어렵게 자라서 그런지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어요. 선교사로도 살아 봤으니 현지에 있지 않고 국내에 편하게 있다는 것에 늘 옅은 죄책감 같은 것도 있었고요. 그러다 보니 제 설교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맞춰져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에 대한 성서의 시각이 참 고마웠어요. 그에 따라 현실 비판적 설교를 하기도 했죠. 여느 교수들과 다른 그런 메시지들이 저에 대한 불온한 낙인들을 계속 강화했던 건 사실인 것 같아요. 그건 이해해요. 

 

그런데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가령 어떤 설교자는 제사장적으로 하나님의 강복을 이야기하고, 또 어떤 설교자는 선지자적으로 비판적인 메시지를 선포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마음에 안 든다고 성서에서 예언서를 잘라 내 버릴 수 있나요? 아니면 제사 문서를 없애 버릴 수 있나요? 

 

한동대는 기독교 대학이라는 정체성이 있지만, 어떤 특정 교단에 속한 신학교가 아니라 범기독교적인 학교이고, 심지어 타 종교인도 다녀요. 그렇다면 그 안에서 생겨날 수 있는 다양한 신학적 담론과 실천들이 서로 융합하고 발전해야 멋진 공동체가 되는 거죠. 생각이 다르다고 손쉽게 제거해 버리는 일은 '기독교 공동체'라는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김대옥 목사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고 손쉽게 제거당했다. 안타깝게도 생각이 다르다고 배제되고 축출되는 사례는 현재 한국교회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경기연회는 성소수자를 환대했다는 이유로 이동환 목사를 출교했고,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무지개 행동을 했던 전도사들은 소속 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에서 목사가 되지 못하고 있으며, 총신대학교는 별다른 활동도 하지 않는 성소수자 인권 모임 '깡총깡총' 회원들을 색출해 모조리 징계했다. 

"저는 그런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사실은 동성애에 대해 무지하고 관심도 없다고 봐요. 왜냐면 그들은 동성애자를 단 한 번도 못 만나 봤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에요. 만약 그들이 자신들의 목회 현장에서 성 정체성 문제로 고통스러워하는 성도를 만났더라면, 목회자인 이상 공감해 주고 그 고통을 해소해 주고자 하는 목회적 실천을 병행했을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무작정 정죄하고 몰아내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원천 봉쇄한다는 건 사실 무정하고 잘 모르는 거죠. 

 

그러니까 거기에는 어떤 다른 목적이 있다는 거예요. 마치 정치권에서 북한을 이용해 얻고자 하는 바를 얻듯이, 교회 지도자들도 한때 반공 이슈로 교회를 장악했죠. 이슬람 이슈, 동성애 이슈도 마찬가지예요. 교인들을 장악하고 교회를 사유화하려는 정치적 목적인 거죠. 사실은 동성애자에게 별로 관심도 없으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악의적으로 이용해 먹는다는 차원에서 그 자체로 거짓된 거죠. 실제로도 현실을 완전히 왜곡하고요. 한국교회가 단 한 번이라도 동성애자 때문에 피해를 당했다든지 전복됐다는지 했던 적이 있나요? 오히려 그들이 '창조질서'라고 말하는 이성애에 너무나 충실한 교회 지도자들이 여성 신자들을 유린해 교회를 무너뜨린 경우가 많죠."

'몸 쓰는 노동'을 했던 이유

학교에서 쫓겨나고 김대옥 목사는 '백수'가 됐다. 학교로 돌아갈 수도 있으니 다른 일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해가 갈수록 생계도 걱정해야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다양한 시급 노동도 해 보고 일용직 노동도 해 봤다. 수십 년간 해 왔던 강의로, 설교로 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그는 스스로에게 정직하기로 했다. 

사실 그는 완전한 백수는 아니다. 현재 김 목사의 공식(?) 직업은 '농부'다. 2009년 큰맘먹고 벽촌에 작은 농지를 사서 농사를 시작했으니 벌써 15년째다. 시골 출신이라 봄마다 흙냄새가 그리웠던 것도 있지만, 원래부터 신앙적으로도 '땀 흘리는 노동'에 관심이 많았다. 학교에서 연구하고 강의할 때도 마음 한 켠에는 하나님이 처음 인간에게 주셨던 에덴동산에서의 일로 돌아가자는 마음을 갖고 살았다. 처음에는 농사를 어떻게 짓는지 몰라 인터넷을 보고 하나하나 따라 했다. 막대 같은 묘목을 심어 놨는데 지금은 아름드리가 됐다. 

"해마다 탄복을 해요. 세상이 이렇게 변하기도 하는구나 하면서…. 이 시간을 지나올 때 만약 그 농장이 없었더라면 저도 좀 견디기 힘들었을 거예요. 거기 가면 아무 생각 하지 않을 수 있었거든요. 그냥 막 땀 흘리면서 일하다 보면, 풀과 나무들과 내가 매만지는 것들이 반응하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항상 내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나에게 보상으로 주더라고요. 아주 제대로 된 농사는 아니고 그냥 흉내만 내는 정도지만, 그래도 되게 힐링이 되더라고요. 힘이 되고요."

"시간은 내 편이 아니니까요." 앞으로도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나야 끝이 날지 모른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시간은 내 편이 아니니까요." 앞으로도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나야 끝이 날지 모른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애써 잘 버티고 있지만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학교는 1월 19일 패한 행정소송에 대해 항소를 했다. 몇 번이나 기각당한 거짓말을 또 할 것이다. 김대옥 목사도 초반에는 제자리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시간은 그의 편이 아니고, 이것은 김 목사의 재임용을 관장하는 학교 지도자들도 알고 있다. 

지금도 '하나님의 대학', '기독교 공동체'를 운운하는 한동대가 왜 이렇게 악한 짓을 하는지, 김대옥 목사는 알지 못한다. 그는 한때 한동대가 정말 '공동체'라고 생각했다. 한동대 스스로 '한동 패밀리'라 말하듯, 생김새도 생각도 심지어 국적과 종교도 각기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멋진 교육 공동체라 믿었다. 그러나 한동대는 공동체로서 기능하지 못했다. 소통을 단절했고 중재의 노력 또한 없었다. 14년간 한동대에 있으면서 누구와도 얼굴 붉힐 일 없이 지내 왔던 그였다. 학교를 위해 헌신했던 한 형제가 이렇게 괴롭힘을 당해 괴로워하고 있는데 누구 하나 나서지 않는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제가 잃어버린 건 단순히 직업이나 일터, 생계 같은 게 아니에요. 저의 보람들, 저를 성장시키고 더불어 교제해 왔던 학생들과의 관계들, 제 기쁨, 삶의 이유 등등을 한꺼번에 빼앗긴 거죠. 제가 평생 헌신해 왔던 제 신앙 자체를 회의하게 만들어서 더 이상 기독교적인 발언도 할 수 없게 만든 거예요. 한동대가 굳이 나를 괴롭혀 가면서 그렇게 할 이유가 없잖아요. 권한을 가진 그 몇몇 사람이 얼마나 나쁜 짓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좀 알았으면 좋겠어요.

 

이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한동대는 아무리 '하나님', '기독교' 이야기를 하더라도 위선자라는 딱지를 뗄 수 없어요. 누군가는 그것이 한동 공동체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빨리 이 문제를 봉합하고 새 살 돋게 하는 일에 나섰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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