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루터교회 최주훈 목사가 '명화'를 주제로 연재를 합니다. 연재는 격주 수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Giotto di Bondone, '그리스도의 탄생'. 사진 출처 commons.wikimedia.org
Giotto di Bondone, '그리스도의 탄생'. 사진 출처 commons.wikimedia.org
후광

그림을 보다가 '왜 저 사람은 머리에 접시를 달고 다닐까'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한 적 있습니다. 그 후론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는데, 그게 '후광(halo)'이라는 걸 고교생 때 알았습니다. 종교화에서 심심치 않게 후광을 봅니다. 등장인물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나 후광을 그려 넣지 않는 걸 보면, 무언가 말하려는 특별한 장치가 분명합니다. 

둥근 원형의 링이나 접시 모양이 일반적이지만, 세분하여 머리 뒤를 둘러싼 동그란 테두리는 'Gloriola(環光)', 머리를 둘러싼 속이 꽉 찬 원은 'Nimbus(輪光)', 몸 전체를 비추면 'Aureole(後光)'로 칭하기도 합니다. 가끔은 네모나 세모 형태도 볼 수 있습니다. 둥근 모양은 하늘을 상징하는 반면, 네모는 땅의 동서남북을 뜻합니다. 

둥근 후광은 예수님과 열두 제자 그리고 성인으로 시복(諡福) 시성(諡聖) 된 사람에게 사용되는데, 죽어서 이 땅에서 볼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에 비해, 동서남북 땅을 상징하는 사각형 후광은 그림을 그리던 당시 생존 인물에게만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웬만큼 존경받는 사람 아니면 엄두도 못 낼 일이겠지요. 삼각형 후광도 있어요. 삼각형은 중세 화가들이 삼위일체를 강조하는 기법이기도 합니다. 

특별한 건 예수님의 후광입니다. 열두 제자 머리에 후광이 있더라도 예수님의 것은 언제나 더 크고 밝은 빛을 뿜습니다. 게다가 그분의 후광은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황금빛으로 채색되고 수난과 부활을 상징하는 십자 모양이 새겨진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고 보면, 후광은 단순한 원이 아니라 거룩한 틈새(구멍)의 기능을 가진 게 확실합니다. 그림을 보는 땅의 사람들이 후광을 비추는 사람의 얼굴과 그 모습을 통해 하늘을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웃 종교

어떤 사람들은 후광이 기독교의 전유물인 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AD 5세기 이전에는 기독교 예술에서 사용된 일이 없는 반면, 후광의 역사는 거기서 1000년을 더 올라갑니다. 로마의 미트라교, 불교, 조로아스터교 등등 기원전 5세기 초부터 사용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종교예술의 후광은 현세적 권력이 아닌 영적 권력을 상징합니다. 기독교에서 예수는 하나님나라에 속한 그분의 거룩과 신적 권위를 상징합니다. 즉, 후광을 가진 예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교리를 강조합니다. 

조로아스터나 붓다 신토처럼 고대 종교에서 종교적 인물에게 후광을 그려 넣을 때도 유사한 개념이 의도됩니다. 불교에선 머리 뒤의 후광을 '두광(頭光)', 머리 이하 몸을 감싸는 후광을 '신광(身光)'이라고 하며, 불교 조각(불상이나 보살상)에서 이를 표현한 것을 '광배(光背)'로 부릅니다. 중요한 건, 어떤 종교든 후광은 성스러운 임무를 깨닫고 수행한 어떤 종교적 인물의 암시라는 점입니다. 

후광과 관련해 덧붙일 말도 있습니다. 후광은 단순히 종교예술에만 사용된 게 아닙니다. 비종교 영역에서 후광 기법은 탁월한 정치 홍보물로 사용되었습니다. 일부 로마 예술에서 황제에게 후광 처리를 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마치 구약성서에서 선지자가 왕에게 기름을 부어 세운 것에 비견할 수 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는 의식을 행합니다. 이것으로 솔로몬은 하나님의 능력을 위임받고 왕으로서 신적 권위를 갖게 됩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지원을 받는 막강한 힘의 소유자가 됩니다. 

로마와 교회

로마 예술에서 황제가 후광을 가졌다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황제의 후광은 단순한 왕을 넘어 태양신인 미트라의 신적 권위를 위임받아 하늘의 지원을 받는다는 암시입니다. 로마 황제를 반신반인의 '신의 아들'로 부른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이로써 후광 기법은 황제가 통치하는 백성들에게 자신의 권력을 선전하는 정치 홍보의 성격을 갖게 되었고, 황제의 신격화에도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됩니다. 

5세기까지 로마 황제의 후광이 태양신을 숭배하는 미트라 종교와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기독교 예술에선 후광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교도와의 연관성 탓에 교회에서 사용된 건 5세기 이래입니다. 물론, 교회에서 사용할 때 언제나 로마 황제의 후광과 차별을 두었습니다. 모양에서부터 차이가 납니다. 로마 황제의 후광은 머리에서 부챗살처럼 직선이 뻗치는 형태지만, 교회 예술에선 언제나 원형으로 후광을 처리합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엄격한 구분은 점차 사라져서 간간이 그리스도에게서도 선형 후광이 사용되었습니다. 

부러운 얼굴

종합해 봅시다. 첫째, 후광은 모든 종교 정치 예술에서 나타납니다. 기독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둘째, 후광은 특정한 인물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한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때로는 신앙을 고취하기 위한 도구로, 때로는 정치적 홍보물이 되기도 합니다. 셋째, 기독교 예술에서 후광이 사용될 땐, 이 땅의 감상자가 거룩한 하늘의 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하는 통로가 됩니다. 

글을 다 쓴 다음 머리 뒤를 한번 쓰다듬어 봅니다. 워낙 헐렁한 사람이다 보니 황금 접시라도 하나 뒤통수에 달고 다녀야 할랑가 봅니다. 아, 사각형 접시를 찾아봐야겠습니다! 접시 같은 게 없어도 얼굴에서 빛이 나는 사람이 제일 부럽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